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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18화)
7. 가장 중요한 것(2)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구경만 할 수밖에 없을 때 또 피해자가 발생했다. 의외로 피해자는 여자아이였다.
멀리서 바라보니 작은 괴물 녀석들의 공격 패턴이 쉽게 읽혀졌다. 내가 겪었던 것처럼 1진이 앞에 있는 남자아이들을 공격했다.
그럼 남자아이들이 날아오는 녀석들을 방어하기 위해 액션을 취할 때 2진이 밑으로 돌진해서 뒤에 있는 여자아이의 다리를 물어 잡아끌고 나오는 식이었다.
그럴 것이라 예상했지만 막상 보니 그것은 매우 질서정연하고 계획적이어서 인간의 전술을 넘어서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해도 효과적이었다.
한 마리의 강한 상대보다 다수의 조직적인 적이 훨씬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남자 아이들은 또 속절없이 사라지는 한 명의 목숨을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톡톡.’
기철이가 내 팔을 손가락으로 꼭 찔렀다.
그냥 무시했다.
나는 그녀석의 생각처럼 슈퍼 히어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 안에는 평소에 대천이보다 더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했던 녀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윤환이었다.
윤환이는 검도로 청소년 국가대표 급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실제로 전국체전에 단체전에 참가하여 이긴 전력도 있었다.
물론 혼자만 이기고 선배들이 줄줄이 패한 탓에 순위권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개인전으로 나갔다면 충분히 금메달을 따올 수 있는 실력이 자타공인 인정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역시 같은 패턴이었다.
1진이 시선을 빼앗고 2진이 공격을 하고…….
‘톡톡.’
희생자가 발생할 때마다 기철이가 나를 꾹 하고 찔렀다. 점점 찌르는 강도가 세지고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냥 무시해줬다. 인상을 구기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무시해줬다.
그러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남자아이들이 저렇게 거세게 저항하고 있는데 괴물의 숫자가 전혀 줄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윤환이를 중심으로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딱 보기에도 엄청난 힘으로 괴물들을 쳐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괴물들은 목도에 맞고도 마치 공처럼 튕겨 나와서 가볍게 착지했다. 전혀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 때도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물론 내가 녀석들과 대결할 때에도 공처럼 튕겨 나가긴 했지만 나를 다시 쫓아오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쓰러트린 녀석을 다른 녀석들이 잡아먹느라 나를 쫓는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 멀리 날리기도 했다. 그러면 다른 녀석들까지 멀리 따돌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도망칠 수 있었지 만약 눈앞에 벌어지는 것처럼 쳐내도 다시 일어나고 다시 일어나고 했다면 추격대를 도저히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 혼자도 아니고 소희까지 데리고서 말이다.
그러니 뭔가 이상했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치는 방법이 다르다.’
검도는 내려치거나 양 옆으로 치는 검법이었다. 찌르기도 사용하는 듯했지만 잘 못하면 괴물들이 칼끝을 물고 놓지 않는 탓에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 피하는 듯했다.
검도를 배우지 않은 녀석들까지도 윤환이를 따라하느라 비슷한 몸동작을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싸움은 전혀 젬병인 탓에 공이 날라 온다고 생각하고 야구하는 식으로 쳐냈었다. 분명 거기에 약점이 있었다.
‘어떻게든 알리는 게 좋다.’
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러나 어떻게 저 괴물들에게 우리가 여기 있다는 티를 안내고 알리냐가 문제였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안전조차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희생자는 늘어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기철이의 반응도 더욱 세졌다.
내 팔을 꼬집다 못해 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시하기에는 점점 강도가 심해져서 한마디 해 줘야 할 지경이 되었다.
남자 아이들 중에서조차도 희생자가 생길 즘이었다. 이때 쯤 또 오른쪽에서 또 한방이 날아오겠다고 생각하고 째려봐 줄 생각으로 휙 돌았다.
그런데…….
기철이가 엄청 험악한 표정으로 손을 하늘 높이 들고 있는 것 아닌가!
회심의 한방을 준비하는 듯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반대방향으로 돌리며 휙 피했다. 기철이는 준비자세 그대로 내리쳤다.
‘찰싹.’
맞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전혀 아프지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내 등 뒤에는 소희가 업혀 있었던 것이다.
“으으응!”
소희가 깨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들썩이는 소리도 들렸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듯 들썩이는 움직임도 조금 커졌다. 그리고는 한참 있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어? 혜미야? 장미야?”
뭔가 파악하려고 애쓰는 느낌이었다.
될 수 있으면 눈 뜨지 않기를 바랬건만…….
나는 기철이를 째려봐 주었다.
기철이도 잘못한 걸 아는지 움찔 뒤로 한발 물러섰다. 멀리서 또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악!”
처음에는 뭣 모르고 있다가 점차 사태파악이 되는지 소희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열이 펄펄 끓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는 것이 등 뒤에 있어도 느껴질 지경이었다.
내 등 뒤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오히려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소희가 멀리 있는 친구를 애타게 부르기 시작했다.
“혜미야! 장미야!”
역시나 힘이 없는 작은 소리였다. 그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일단은 깨어났으니 내려 주려는 순간. 하얀 괴물의 눈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향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크크크크크으응! 크크크!”
작은 괴물들이 다른 아이들의 포위를 풀지 않은 채 우리를 향해 이빨을 보이며 위협적으로 으르렁댔다. 언제든지 우리한테 달려들 수 있다는 표시였다.
이제 와서 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 중 하나였다.
다른 아이들을 포기하고 우리들끼리 도망을 가던지.
모두를 구한 다음 함께 도망을 가든지.
우리들끼리 도망을 간다면 조금 더 높은 확률로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모두 희생된 후 우리들의 뒤를 쫓을 확률이 컸다. 특히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지쳐 있는 상태였다.
멀리 못가 따라잡힐 것이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무리의 괴물들을 만난다면? 100% 우리는 죽을 것이다.
단지 다음 차례가 될 뿐이었다.
후자를 택하게 된다면 저 괴물들과 맞붙게 되어 지금 당장 살아남을 확률은 훨씬 줄어든다. 그러나 만약 살아남게 된다면 좀 더 높은 확률로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다지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윤환은 분명 듬직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었다.
나는 빠르게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전자든 후자든 빨리 선택하는 것이 피해자를 하나라도 줄이고 내 편을 늘리는 결과가 될 터였다.
“…….”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후자를 선택했다. 인간은 날카로운 발톱도 몸을 보호하는 가죽도 없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동물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우수한 두뇌와 결집력이라는 이야기를 국사시간에 귀가 부르트도록 배웠었다.
인간은 혼자 살아남을 수 없는 동물인 것이다.
나는 일단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주위에 발을 딛을 수 있는 돌들과 기댈 수 있는 나무들이 많은 탓에 많이 가파른 길이었음에도 내려가기가 어렵지 않았다.
아직도 소희는 내 등 뒤에 있었다. 그러나 정신이 들었는지 내 목을 꼭 잡아 주는 탓에 훨씬 움직이기가 편했다. 밑에 있는 아이들도 긴장한 듯 숨죽여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내려오자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저 일단 비명 소리가 그쳤다는 점에 있어서 안심했다. 주위를 살핀 후 아까 봐두었던 큰 나무 앞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크악!”
내가 나무 쪽으로 가려고 하자 작은 괴물 중 한 녀석이 나를 그쪽으로 못 가게 하려는지 위협하는 듯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동했다.
“크앙!”
그러자 그 녀석이 나를 향해 뛰어 올랐다.
나는 야구하는 자세를 잡고 뛰어 오르는 녀석의 안면을 향해 쳐올렸다.
‘퍽.’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멀리 떨어져 내렸다. 내 예상대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다른 녀석들의 먹이가 되는 것까지 확인하고 다시 나무 앞까지 왔다.
나무를 등지고 따라온 기철이를 내 뒤에 세웠다. 기철이가 나무에 등을 딱 붙이는 것을 보고 말했다.
“거기에서 떨어지지 마! 그리고 위로 날아오는 것들은 무시하고 밑으로 기어 오는 녀석들만 네 곁에 다가오지 못하게 해! 알았어?”
“응!”
기철이가 무서워하는 기색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하며 끄덕였다. 이럴 때 보면 대담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애매한 녀석이었다.
기철이의 다짐을 듣자마자 나는 상황을 살폈다. 다섯 걸음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괴물들이 진을 짜고 있었다. 딱 그 정도가 녀석들의 사정권 안이었다.
사정권 안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공격해 온 녀석을 날려 버리는 것을 보고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적이자 먹잇감은 나보다 내 앞에 있는 다른 아이들이 먼저일 것이었다.
물론 그런 것도 계산하고서 이쪽으로 들어왔다. 등 뒤로 큰 나무가 있으니 완전히 포위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보였다.
괴물들의 일부는 나를 경계하고 있고 나머지 녀석들은 아이들을 여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돌발 상황 때문인지 공격을 하지 않고 그저 위협만 하고 있었다.
그런 면만 보아도 녀석들은 단순한 야생동물이 아니었다. 적어도 전투에 있어서는 인간에 능가할 지능을 가진지도 몰랐다.
얕잡아 볼 수 없었다.
윤환이가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일부러 윤환이와 눈이 마주쳤다. 지쳐 있는데다 긴장하고 있는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고갯짓으로 준비 신호를 보냈다.
잘 알아들어 주기를 바라는 신호였다. 윤환이의 눈이 조금 커지는 것이 보였다.
내 공격 방법이 윤환이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발밑에 있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제일 앞에 있는 괴물 녀석을 향해 던졌다.
“캬랏!”
돌멩이를 머리로 툭 쳐버리더니 화난 듯이 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울부짖었다.
그러나 역시 지능적인 동물이라 이 정도로 넘어오지는 않았다. 더 큰 돌을 들어 죽여 버리겠다는 각오로 세게 던졌다.
“탓!”
제법 큰소리가 나며 머리를 강타했다. 그러자 맞는 것과 동시에 괴물의 몸체가 엄청난 반동으로 뛰어 올랐다. 역시 똑같은 동작으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듯 안면을 향해 쳐올렸다.
“깡!”
경쾌한 소리와 함께 뭔가 터지는 느낌이 나며 멀리 날아가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양 옆에 있었던 괴물이 동시에 날아올랐다.
한 녀석은 측면으로 때려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 정면으로 날아오는 다른 녀석만 제대로 안면을 노려 쳐냈다.
“깡!”
측면을 맞은 녀석은 가볍게 착지 했지만 정면을 맞은 다른 녀석은 완전히 흐트러진 자세로,
‘툭.’
떨어졌다.
역시나 동료의 먹이가 된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연속으로 쳐내는 것을 보고 윤환이 쪽이 시끄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작전회의를 하는 듯했다.
그러자 괴물 측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