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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13화)
5. 포기하는 자와 뛰어드는 자(3)
“조심해!!”
나는 기철이를 말리며 소리쳤다.
귀여운 것에 민감한 여자아이들이 다가가려다가 나의 외침을 듣고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소희 쪽에도 눈치를 주었다. 소희가 두려움에 찬 얼굴로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운 친구를 어떻게 해서든 일어나게 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를 다쳤는지 민영이라 불리던 친구는 소희를 붙잡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작은 생물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멀리 돌아서 소희에게 다가갔다.
말하지 않아도 기철이와 성현, 찬석이가 뒤를 따랐다.
그때였다. 나의 주의가 무색하게도 대천 일당 중 동호가 겁도 없이 그 작은 생물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쪼그만 거 하나 가지고 뭐가 무섭다고 이 난리야! 이 녀석이 우리 점심을 다 먹어치우고 있잖아. 이 썅!”
살기등등하게 다가가는 동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기로 사용할 것이 있는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무엇인가 큰일이 터질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우리를 지킬 만한 것이 필요했다.
단단해 보이면서도 휘두르기 적당한 나뭇가지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둘러보았다.
“너희들도…….”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세 명의 남자를 둘러보며 말하려 했을 때 이미 성현이가 어디선가 나뭇가지 4개를 찾아 왔다.
“이거 찾아?”
성현이가 내가 찾고 있던 적당한 나뭇가지를 내밀었다.
“고마워.”
눈치 빠르게 대응하는 성현이가 놀랍게 느껴졌다.
나는 하나 더 찾아서 하나는 소희에게 쥐어줬다. 소희가 불안한 듯 내가 쥐어준 나뭇가지를 바라봤다. 그리곤 더 마음이 급해진 듯 누워서 눈을 감은 채 꼼짝도 안 하는 친구를 흔들었다.
“민영아…… 일어나. 눈 좀 떠 봐.”
“내가 업을까?”
나는 민영이란 친구가 다친 것이라고 생각하고 소희에게 말했다.
그러자 소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민영이란 친구는 다친 곳이 없었다.
그런데 왜인지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소희의 무릎을 베고 누워 소희가 흔들 때마다 오히려 소희를 꼭 붙잡고 놔 주지 않은 그녀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소희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가 자신의 절망 속에서 갇혀 그녀를 놔주고 있지 않음을…….
그리고 내가 업는다고 했을 때 그 절망 속에 나까지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발목잡지 않기 위해 거절했던 것이었다.
기철이를 데리고 나왔을 때 차 안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때 느꼈던 분노를 떠올렸다.
그때였다.
“이걸 그냥 썅, XXX!”
동호였다.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가 제일 우려하고 있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동호는 욕을 내뱉으며 어디서 구했는지 나무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 작은 하얀 생물을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호의 팔이 위로 올라갔다가 세차게 휘둘러지고 있었다.
대천 일당은 멀리 떨어져서 동호의 모습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나는 소희를 잡아 당겨 일으켜 세웠다. 소희가 자신의 무릎에서 떨어지는 민영의 머리를 받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내가 그 손까지도 잡아당겨 버려 민영이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려고 했다.
민영이는 그래도 정신이 있었는지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자신의 머리를 지탱하고 자신을 떠나려는 소희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민영이에게 소리쳤다.
“일어나!”
나는 큰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민영이는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왜?”
그리고 반문했다.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악!”
동호의 비명 소리가 터졌다.
그 작은 생물은 자신을 공격하려는 동호의 팔을 물고 있었다. 동호가 미친 듯이 자신의 팔에 들러붙어 있는 작은 생물을 떼어 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팔은 절반 이상 이빨에 의해 잘려 나가고 있었고 그 사이로 붉은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으악, 떨어져. 떨어져! 씨B XXXXXX, 떨어져!”
가장 우려하는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동호는 미친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대천 일당 중 치민이가 동호 팔에 붙은 작은 생물을 떼어내려 그 작은 몸뚱이를 잡아챘다.
“이앗!”
생각보다 쉽게 동호로부터 작은 괴물은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괴물과 함께 동호의 오른팔이 함께 떨어져 나갔다.
“악! 씨B.”
이번에는 그 괴물을 붙잡고 있던 치민이가 소리쳤다.
우리는 모두 춘추복을 입고 있었는데 위는 흰색 티셔스에 초록색 조끼, 밑은 초록색 바지였다. 우리는 이 교복 색깔을 죄수복이라고 놀렸었다.
그 푸른색 교복은 피로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푸른 교복에 붉은 피가 번져 대비를 이뤄선지 더 처참해 보였다. 피가 동호의 것인지 치민이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치민이가 손에 들린 괴물이 혐오스럽다는 듯 자지러지며 그 괴물을 집어 던졌다. 괴물과 함께 괴물의 입에 물려진 동호의 팔이 완만한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며 사방에 피가 뿌려졌다.
나는 그 괴물에게서 더 멀어지기 위해 소희를 끌어당겼다. 소희는 민영이를 향해 힘없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반응 없이 민영이는 멍하게 앞의 처참한 광경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피가 민영이의 맨 얼굴에 튀었다.
“일어나!”
내가 민영이를 향해 소리쳤다.
민영이는 내 소리에 깜짝 놀란 듯 정신이 들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얼굴에 튄 끈적끈적한 것을 손으로 살짝 쓰다듬어 손에 묻은 것을 확인했다.
그것이 피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곤,
“꺄아아아아악!”
미친 듯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일단 민영이에게 떨어지지 않으려는 소희를 승현이에게 넘겨주고 민영이의 입을 막으려 했다. 그리곤 승현이를 비롯해 모든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도망쳐!”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는지 아이들이 우왕좌왕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때 승현이가 외쳤다.
“물길을 따라 밑으로 도망쳐!”
우왕좌왕 사방으로 도망치던 아이들이 움찔하며 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으악∼!”
“캬악∼!”
“악∼!”
세 명의 비명이 동시에 퍼졌다.
일단 민영이를 조용히 시켜 보려고도 했고 움직여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꼼짝도 안하는 녀석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치민이에게 달려가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치민이가 우당탕탕 넘어지며 겨우 정신이 든 듯 나를 바라보았다.
“달려!”
내가 큰소리로 외치자 그제야 괴물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나는 이미 도망쳐 버려 보이지 않은 대천이의 달린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치민이가 도망치려 하자,
“크아앙!”
작은 괴물이 위협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덤벼들려고 하지 않았다. 추측하기에 손쉬운 먹이가 바로 옆에 있는데 굳이 나까지 노릴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내가 만만하지 않게 보일 때의 이야기였다. 이놈 저놈 다 먹을 수 있다면 눈앞의 괴물이 나를 포기할 리 없었다.
일부러 나도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해 작은 괴물을 눈으로 쏘아보아 주었다.
언제든 너를 죽일 수 있다는 눈빛을 보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두려움을 없애려 노력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았던 야생의 법칙을 깨달아 가고 있는 내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자는 무섭다는 것을……. 그들도 야생에 살아가고 있다면 모를 리 없을 것이었다.
작은 괴물에 눈을 떼지 않으며 슬금슬금 민영이에게 향했다. 사실 동호 쪽으로도 가보려고 했으나 작은 괴물이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에 감히 그쪽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크아앙∼!”
“크아앙∼!”
사방에서 작은 괴물의 소리에 응답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어디서 울리는 지 알 수 없었다.
“끼아아아아악!”
작은 괴물의 울림보다 민영이의 비명 소리가 훨씬 컸기 때문이었다. 사방을 주의하면서 민영이를 어떻게든 조용히 시켜 일으키려고 했다.
“꺄아아아아아악!”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민영이를 어떻게 조용히 시켜야 할지 암담했다.
‘바스락.’
사방에서 조용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민영이를 달래는 것을 멈추고 몸을 바싹 엎드렸다.
머리위로 무엇인가 휙휙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으아아아아악!”
기절한 듯한 동호가 깨어났는지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동호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동호가 어느새 새 하얀 괴물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느새 동호의 비명이 멈춰 있었다.
“까아아아아악!”
민영이는 이제 동호 쪽을 바라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괴물들은 동호를 둘러싸고는 자리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마리는 그 자리싸움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천천히 둘러보더니 민영이쪽을 바라보았다.
“킁킁킁!”
코를 씰룩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민영이를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보려고 노력했다.
“크아앙!”
킁킁거리던 그 작은 괴물들은 우리를 발견하고 둘러싸듯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민영이를 끌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내가 물러나는 것보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이 훨씬 빨라서 점점 가까워졌다. 그렇게 아까는 보지 못한 그 생김새를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토끼같이 귀엽게 생긴 얼굴에 귀는 토끼보다 작았다. 귀의 위치가 토끼와 같은 위쪽에 달려 있어 개량종의 토끼처럼 보였다.
킁킁거릴 때는 작게 오물거리던 귀여운 입이 으르렁거리자 목 뒤까지 찢어졌다.
사람의 머리 정도는 한입에 삼킬 정도로 보였다. 아마도 몸의 절반이 입인 것처럼 보였다. 살짝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과 큰 입이 그들이 토끼와는 완전히 다른 생물로 보이게 했다.
귀엽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변하는 것도 놀랍지 않았다. 겉모습이 귀여울수록 더 두렵게만 느껴졌다.
나는 저번 새들보다 이 작은 생물이 훨씬 공격적이고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렇게 모든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문명세계에 살 때는 전혀 필요 없던 감각들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너무도 쉽게 깨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 손안에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어느새 민영이는 조용해졌다. 그저 멍하게 눈앞의 생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엽다.”
눈이 풀린 민영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야옹아, 일루 와.”
귀여운 고양이 부르듯 그것들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미쳤어?”
내가 째려보며 말했다.
“큭큭큭.”
민영이가 미친 것처럼 웃었다. 그러더니,
“차라리 미쳤으면 좋겠다.”
한숨 섞인 작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