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7화)
3. 삶과 죽음 그리고 버스(4)
나는 정확히 버스 한가운데에 그냥 서 버렸다. 차 밑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마치 차 밑이 지옥의 밑바닥을 보는 듯 이상한 예감이 들었음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두 마리는 귀엽게 나를 바라보며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녀석들은 새이지만 새보다는 훨씬 영리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그들이 내 쪽으로 오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커다란 몸뚱이를 끌고 들어오기에는 차 옆은 거의 낭떠러지에 가까웠다.
새 주제에 높은 데를 무서워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날지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날지 못하는 녀석들이 그렇게 육지에서 잘 걸어 다니지 못하고 뒤뚱뒤뚱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잘 걷지 못하는 것을 보아 그들의 주 활동장소는 하늘일 것이다.
그러나 낭떠러지라는 이유로 내 곁에 다가오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새들은 차에 집착하고 있었다. 도망간 아이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만약 충분한 먹이를 원한다면 날아서 그들을 쫓아가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계산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 있고 차 안에 있는 아이들을 노리며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분명 날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앞뒤로 괴물이 바라보며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내가 해야 할 행동을 생각해 냈다.
그리곤 그저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내가 주저앉자 귀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새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카아악!”
“키아아아악!”
그들이 무섭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날개를 퍼덕이며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세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녀석의 머리가 내 앞으로 휙 하고 날아들었다. 벌떡 일어나려다가 결심한 듯 그냥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본능적으로 이 선택이 최선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머리가 뒤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던 것 같았다.
순간 내 뒤통수 쪽으로 찬바람이 휙 불며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어딘가에 걸린 것처럼 조금 뜯기고 말았다.
“아얏!”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세를 바로 했다. 머리가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빳빳하게 고개를 들었다.
괴물의 머리가 다가올 때마다 입안에서는 피비린내 같은 것이 풍기고 있었다. 역겨웠지만 그보다는 섬뜩한 느낌이 강했다.
죽음의 향기였다.
나는 정말 그들의 머리가 닿지 않는 정확한 그 지점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조금만 뒤로 조금만 움직여도 나는 여기에 있기보다 괴물의 부리 안에 있을 터였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역시나 그들은 날지 않은 건지 못한 건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카악카악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나를 무섭게 한번 째려보고는 머리를 휙 돌려 차량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캉!”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캉!”
반복해서 들렸다. 소리와 함께 버스가 들썩거리며 움직였다. 그들은 반대편에서 차를 뒤집어 버릴 작정인 듯했다.
“악! 그만!”
차 안의 아이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중에는 기철이의 소리가 젤 크게 들리는 듯했다.
나는 곧 뒤집어질 것 같은 차를 바라보며 뛸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나…… 나, 나 두고 가지 마∼!”
차 안에서 기철이가 울먹이며 나를 애타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막 뛰려다가 그 눈빛에 붙잡혀 버렸다. 내가 멈칫하자 기철이가 다시 창문으로 상체를 불쑥 내밀었다. 차 안은 이미 패닉 상태였기 때문에 기철이를 막는 사람이 없을 듯했다.
다시 기철이의 손을 붙잡았다.
“어딜 가!”
차 안에서 날카로운 신경질적인 음성이 들려왔다.
“죽어도 같이 죽어. 너 때문에 우리가 모두 이렇게 차 안에 갇혀 버린 거잖아! 어딜 도망가! 못 가! 같이 죽어!”
“너 혼자만 도망가려고? 그렇게는 못 해!”
“너가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야, 책임을.”
창 밖에 있는 나는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다른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차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그곳에 있어봤자 괴물에게 도망칠 수도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차 안에서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다.
못하는 것은 아니다. 기철이도 도망가려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은 그 노력조차도 부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도망가지 않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머릿속에 자리한 왜라는 물음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버리지 못하는 것, 나아가지 못하는 것.
바로 차였다.
아니 차라는 안전한 도구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차는 더 이상 안전한 도구가 아니다. 그리고 차를 버리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들이 차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이들이 그 허무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 차를 버리면 공포와 불안정 속에서 도망을 가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다.
도망가는 상황에서 그들 중 누군가는 희생양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자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차 안에 있으면 누가 희생양이 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면 모두가 그 안에서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였다.
분명 기철이는 차를 움직이려 한 사람이었다.
만약 그가 차를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들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자신의 발로 달려서 도망을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눈앞에 더 편리하고 안전한 수단이 그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에게 허무한 희망을 안겨준 장본인이 바로 기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철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차에 타라고 한 적은 없었다. 차에 탄 건 그들의 의지였다.
그리고 기철이는 자신의 의지로 그 차를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그 차에 탔기 때문에 그것이 기철이가 차를 ‘움직이려 한’, ‘움직일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리고 그 희망이 희망으로 끝나버렸다는 것 하나만으로 기철이의 다리를 붙잡고 놔주지 않고 있었다.
그게 다 같이 죽는 일이었음에도 말이다.
“놔! 이거 놔. 버스는 안 가! 못 간다고!”
기철이가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발버둥을 치는 그를 보며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분명 기철이의 비명 소리를 괴물들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괴물들이 고개를 들이댄다면 이번에는 진짜로 기철이는 괴물들에 의한 희생양이 될 것이었다. 아까와 같은 좋은 타이밍이 두 번 있으리라는 보장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아니 이번에 그들은 한 번 학습했으므로 단 한 번만으로 확실하게 노릴 것이다. 나 또한 아까와 같은 절묘한 자리를 또 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눈앞에 순식간에 흐르듯 움직이던 그들 머리의 움직임이 떠올랐다. 겁에 질린 기철이의 표정을 보며 그의 다리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뱃속에서부터 폭발할 듯한 분노가 일었다.
흐르는 분노를 조용히 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기철이에게 낮게 말했다.
“문을 열어!”
기철이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내 낮은 목소리에 반응을 하며 소리를 지르다가 뚝 그쳤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그저 빤히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패닉 상태였던 그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먹지 못한다고 해서 탓할 일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기철아, 문을 열어.”
갑자기 기철이의 눈동자가 크게 열렸다.
기철이가 그 뜻을 알지 못하는 듯했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 눈을 바라보며 이해해 주길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나의 말을 이해하는 듯 기철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러면…… 그러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기철이를 바라보며 비장하게 고개를 끄떡하고 움직였다. 그러자 기철이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분명 내가 말한 바를 이해하고 그 결과까지도 생각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곤 자신의 다리를 잡고 놔주지 않는 차 안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결심을 한 듯 표정이 험악해졌다.
나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를 꼭 잡고 있는 손을 다시 한 번 고쳐 잡았다. 그러더니 바동거리던 다리를 가지런히 모았다. 힘을 모으려는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
다리를 모아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을 붙잡고 있는 녀석을 차버렸다. 물론 상대방 역시 있는 힘을 다해 붙잡고 있었던 듯 기철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기철이의 목적은 그를 떨쳐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 상대방이 주춤하고 있는 사이 오른쪽 다리 하나만을 그의 손아귀에서 빼냈다. 그리곤 곧바로 움직여 탑승 문을 여는 붉은 버튼을 꾹 눌렀다.
“치이익!”
버스에서 김빠지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리곤 지옥문이 열리듯 앞문이 열렸다.
“악!”
“너 뭐하는 짓이야?”
앞문이 열리자마자 괴물의 머리가 쳐들어 온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앞좌석은 패닉 상태가 되었고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반대편 까지도 붉은 핏방울이 튀었다.
기철이가 갑자기 가볍게 느껴졌다. 아마도 다리에 붙잡고 있는 힘이 사라진 듯했다.
다리에 아무도 붙어 있지 않음을 확신한 나는 그를 있는 힘껏 잡아 당겼다. 너무도 쉽게 기철이는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기철이가 창문을 통해 나오자마자 아이들의 탄성소리가 흘러 나왔다. 처음에는 우왕좌왕 하던 아이들이 창문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 창문을 통해 자신들도 도망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창문 앞은 순식간에 그 곳을 통해 나오려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하나하나 침착하게 빠져 나와도 나올까 말까한 좁은 창문으로 서로 나오려는 아이들의 몸싸움이 일어 단 한 명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그 아수라장 속에 서서 그 안에 있는 아이들도 구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기사도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신이 홀랑 빠져버린 듯한 기철이의 손을 붙잡았다. 기철이도 길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처럼 내손을 꼭 마주잡아 왔다.
앞뒤 볼 것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다가 괴물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을 때 보고 말았다.
괴물들은 마치 도시락에서 국수 뽑아 먹듯이 열린 문을 통해 아이들을 하나하나 해치우고 있었다.
기철이가 나온 창문 쪽에도 한 놈이 서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녀석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끌어내어 부리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 지옥의 한 귀퉁이 같은 모습을 더 볼 수 없어 눈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기철이의 손을 꼭 모아 잡고는 그저 앞을 보며 달리고 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