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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6화)
3. 삶과 죽음 그리고 버스(3)


예전에 보았던 쥬라기 공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게 현실인지 영화 속의 일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만큼 현실성이 없는 장면이었다. 아마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인지 모두 조용히 그 장면을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차 안에서 도망쳐 나온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자 점차 이것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5반 차는 두 명의 희생자로 인하여 피로 뒤덮여 있었던 것이다.
“끼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퍼졌다. 마치 그 비명 소리가 신호가 되듯이 아이들은 깨어나듯 정신을 차리며 처음 보는 그 장면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악!”
비명 소리가 퍼졌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수라장이었다.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녀석들은 멍하게 서있었고 곧 세차게 도망치는 아이들에게 치어 넘어지거나 밟혔다.
나 역시 불안을 예감하긴 했지만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나자 당황해서 나 하나를 추스르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도망치기는커녕 그 자리에 서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릉 부릉.”
차 엔진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머릿속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야! 타자.”
엔진 시동소리에 아이들이 우르르 차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안 돼!”
나는 본능적으로 차로 달려갔다.
“차는 안 돼! 모두 뛰어!”
서로 차에 타려고 정신없는 아이들은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차 입구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떼어 내며 소리쳤다.
“모두 달려! 도망쳐!”
계속해서 소리쳤다. 그러나 패닉 상태의 아이들이 내 말을 들을 리 없었다.
그때였다. 두 번째 희생자까지 먹어 치운 그 하얀 괴물은 다음 희생자를 찾고자 함인지 아이들이 모여 있는 우리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기어코 한 명을 차에서 떨어뜨려 놓았다. 차에 오르려고 기를 쓰던 아이도 막상 내가 차에서 떨어뜨려 놓자 겨우 상황 파악이 되는 듯 주위를 살펴보더니 괴물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괴물은 뒤뚱뒤뚱 뛰며 천천히 다가오는 듯했다. 그랬기에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차에 붙어 있는 아이들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아이들을 차에서 떨어뜨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판단능력을 상실한 아이들은 무조건 차에 타기 위해 패닉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요지부동인 아이들을 떼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도망가기 위해 몸을 살짝 비틀었을 때였다. 빨간 부리가 내 옆구리 쪽을 날카롭게 스치는 것을 느꼈다.
작은 머리에서부터 이어지는 하얀 목은 몸체와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색한 몸놀림에 비해 목은 뱀처럼 유연하고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또 그 목은 평소에는 몸통 안에 가려져 있다가 필요할 때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길게 늘어났다.
괴물이 또 다른 희생자를 결정한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순식간에 가장 바깥쪽의 아이를 채가는 그 몸놀림은 눈으로 쫓기도 힘든 찰나였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희생양은 내가 될 뻔했다.
원래 가장 바깥쪽에 있었던 것이 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이들을 차에서 떼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느꼈기에 몸을 비틀자 아슬아슬하게 비껴갔을 뿐이었다.
다시 곧바로 무엇인가가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여유조차 없었으므로 다가오는 모든 것에 긴장하는 상태로 몸을 움츠렸다. 그리곤 부리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으므로 그저 바싹 엎드렸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바싹 엎드리긴 했지만 위를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차 바닥 안으로 기어 들어가려 했다. 들어가려는 순간 등에 무언가가 확 하고 잡아채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드리는 듯 느껴졌다.
‘모든 것이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죽을 때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흐른다고 하는데 나는 주마등은커녕 아직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만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의지는 몸을 바싹 엎드리며 잡아끄는 힘에 저항하려 했다. 그러나 위로 끌려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그저 붙잡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나를 붙잡은 것을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단지 배낭이 차 모서리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온몸의 힘이 빠지는 듯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배낭의 한쪽에서 팔을 빼서 한쪽에만 걸친 상태로 배낭을 질질 끌듯 하여 차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옆으로 무엇인가가 툭하고 떨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괜히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절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사람의 한쪽 팔…….’
사람의 몸에 붙어 있을 때와 하나만 떨어져 있을 때의 모습은 천지 차이란 것을 증명하는 듯 피범벅이 된 사람의 팔은 그 존재만으로 구역질이 났다. 잠시 안심하는 마음이 언제였냐는 듯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
차 밑을 기어 빠르게 움직였다. 역시 예상대로 차는 처음보다 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까는 그저 본능적으로 차에 타려는 아이들을 저지하려고 했었다. 왠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차가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을 예상했던 것 같다.
솔직히 그 상황에 무엇인가를 떠올리고 계산하고 할 여유는 없었다. 단지 모든 것을 직감과 본능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부릉부릉, 부르르릉 크크!”
차를 운전하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엑셀을 거칠게 밟고 있었다. 그러나 바닥이 폭신하다 보니 엑셀을 밟으면 밟을수록 바퀴는 더욱 깊게 빠져버려 헛바퀴만 돌고 있었다.
나 역시 차가 더 가라앉아 나를 짓누르기 전에 이 안에서 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들었다.
그때였다.
차에 타려던 아이들이 왜인지 한꺼번에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차 안에서 차문을 닫아버린 것 같았다. 웬만하면 인파에 섞여 도망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너무 늦어 버린 듯했다.
어쩔 수 없이 차 바닥을 통해 괴물이 있는 반대편인 차량 왼쪽으로 빠져 나왔다. 배낭을 고쳐 멘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망갈 타이밍을 재야 했다.
그런데 도망치는 아이들을 쫓을 거라고 생각했던 괴물이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 안을 바라보는 순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차 안에는 수십 명의 아이들이 나오지 못한 체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차 안에서 아이들이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빨리 가!”
“빨리 안 가고 뭐하는 거야!”
아이들은 차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지 그 안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나는 운전석 쪽 바깥에 서있어서 그 운전대를 잡고 있는 당사자의 표정이 똑똑히 보였다.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 녀석은 우리 반이며 잠시나마 버스 안 짝꿍이었던 기철이었다.
물론 내가 이쪽에 있다는 것을 괴물들이 알게 된다면 탈출은 불가능해질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기철이와 다른 아이들을 나두고 도망갈 수는 없었다.
“똑똑.”
운전석 창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기철이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놀라는 눈치였다.
“바퀴가 빠져서 차가 움직이지 않아. 그러니까 그 차 안에서 도망쳐야 해.”
괴물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소리쳤다. 기철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랗게 변하는 것이 보이는 것을 보니 작은 소리였어도 알아먹은 듯했다. 그리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기철이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운전석 창문을 벌컥 열었다.
“텅 텅!”
그 순간 커다란 소리와 함께 차가 크게 들썩거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차 안에서 아이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 순간 기철이가 뭔가 결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창문으로 몸을 쑥 뺐다.
창문은 그저 밖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지 전체가 다 열리는 문이 아니라 문이 절반으로 나누어져 한쪽으로 밀어 조금만 열리는 문이었다.
좀 좁은 것 같아 다른 문이 없는지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보통 관광버스가 다 그렇듯이 문을 열고 닫지 못하게 만들어져 그 창문 말고는 나올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가장 뒷좌석 창문조차도 열고 닫을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기철이가 몸을 내밀었을 때 말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창문이 너무 좁다는 것에 있었다. 몸이 중간이나 빠졌지만 골반에서 딱 멈춰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그의 두 손을 잡아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잡아끌어도 나오지 않았다. 기철이는 키도 작은 편에 속하고 몸도 빼빼한 편이었다. 그랬기에 무리 없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허리 이하로 꼼짝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악∼∼”
기철이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제야 어디가 걸린 것인지 눈치채고 기철의 허리 아래 부분을 바라보았다.
차 안에 있는 부분이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자 무서운 표정의 얼굴들이 보였다.
기철이의 다리는 어디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 차 안의 아이들이 기철이의 다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 차 안에는 그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그러니 기철이가 떠나고 난 후에 남겨질 것을 걱정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틈이 없었다. 나는 괴물을 자극하게 될까 봐 조용히 말했다.
“차는 움직이지 않아. 너희들도 빨리 거기서 나와야 돼!”
그러나 차 안의 아이들은 내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못들은 것인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때였다.
“텅 텅!”
커다란 소리와 함께 차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차 안의 비명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으으아아아아악!”
기철이가 미친 듯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몸은 절반이 차에 끼어 있는데다가 안쪽에서는 기철이의 다리를 잡고 놓지 않고 있고 거기에 괴물은 차를 뒤집어엎을 생각인 것이다.
기철이가 충분히 공포에 미칠 만큼의 상황이었다.
“놔, 놔앗! 이거 놓으란 말이야!”
기철이가 차 안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광을 하며 온몸을 비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나의 손이 생명줄인 듯 꼭 잡고 놓지 않으려고 했다. 손이 저릿저릿해졌다.
“놔, 놔!!”
기철이의 외침이 더 커졌다.
그때였다. 하얀 물체가 불쑥 나타났다.
새의 머리였다.
커다란 검은 눈동자가 순진한 빛을 띠고는 나와 기철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될지 몰랐다.
가까이서 본 새는 목은 더 짧지만 백조를 닮은 듯 새하얀 깃털이 폭신해 보였다. 검은 눈동자가 반짝반짝 흑진주처럼 깊고 아름답게 빛났다.
나를 관찰하는 듯 머리가 귀엽게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지며 애교스럽게 움직였다.
만약 그 붉은 부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진심으로 귀엽다고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 머리가 얼마나 유연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는 나였다.
순간적으로 기철이의 손을 놓고는 몸을 낮춘 후 다섯 발자국 정도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기철이의 몸은 순식간에 차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그 괴물의 부리가 우리 쪽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그러나 나도 기철이도 그 괴물의 부리에 걸려들지 않았다. 모두 동시에 절묘하게 피했던 것이다.
당연히 그 괴물이 내 쪽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괴물은 다가오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괴물이 없는 차 반대편으로 도망갈까 하다가 나쁜 예감에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 예감이 정확히 들어맞았음을 알았다. 바로 뒤에 사냥감을 몰이하듯 다른 한 녀석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