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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5화)
3. 삶과 죽음 그리고 버스(2)
“어른이…… 없다.”
마음에 있는 소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또다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깊어지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맞아. 이상하지?”
나는 이번에도 정말 화들짝 놀랐다.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승현이었다.
“큭큭큭, 왜 이렇게 놀래? 내가 다 놀랬다, 인마.”
이런 상황에서도 승현이는 여유롭게 웃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진짜 어른이 없어. 다른 반도 우리하고 똑같은 걸까?”
느긋한 태도로 주위를 관찰하듯 바라보며 말하는 승현이가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이렇게 동요하고 작은 일에도 화들짝 놀라고 있는데 승현이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 같지?”
여유로운 사람이 옆에 있어서인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동지를 만나서 그런지, 놀란 마음이 점차 가라앉는 걸 느꼈다.
아까보다는 좀 더 침착하게 주위에 소리를 귀 기울였다.
“교장 선생님도 돌아가신 것 같아.”
“네 전화는 터지냐?”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여기가 대체 어디야?”
“씨B! 개○○네?”
대부분의 아이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불안에 떨고 있기는 모두가 다 똑같은 상황이었다.
“삐이이이익∼”
불안한 아이들의 소란 사이로 귀를 괴롭히는 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퍼졌다. 갑작스런 소음에 불안에 찬 아이들의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러분, 집중!”
다른 사람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기로 모여 주십시오.”
학생회장이었다. 학생회장은 약간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연설을 시작했다.
학생회장은 약간은 권위적인 태도가 느껴지는 액션으로 팔을 커다랗게 휘두르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겪을수록 질서를 잘 지켜야 하며 정숙을 유지하고…….”
학생회장이 말하자
“너나 조용해라!”
“너가 더 시끄럽다!”
“지R, 씨B.”
“우우우∼!”
여기저기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조용히, 조용히!”
학생회장이 아이들을 진정시켜 보려고 했지만 전혀 소용없이 야유소리는 더 커지기만 했다.
그러자 학생회장은 자신이 들고 있던 확성기를 여기저기 살펴보고서는 학생을 향해 치켜들었다.
“삐이이이이익!”
처음에 냈던 불편한 소음이 야유를 뚫고 퍼졌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귀를 틀어막았다. 안 그래도 불편한 심정을 더 불편하게 하는 느낌이었다.
“저거 뭐 하자는 거야?”
어느새 찬석이가 우리 곁에 다가와 있더니 한마디 던졌다.
“글쎄. 저건 달래자는 건지 도발하자는 건지…….”
찬석이의 말에 승현이가 맞받아쳤다.
“흠흠.”
학생회장이 다시 말을 이으려는 듯이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확성기 넘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이제는 정말 못 참겠다는 듯이 학생회장 쪽으로 모든 아이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물론 다가가지는 못했다.
학생회 친위대가 학생회장을 둘러싸듯 다가오는 아이들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친위대를 뚫으려고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친위대에는 검도부 대표 선수인 윤환이가 있다는 것과 윤환이는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해 정확하고 냉정하게 목검을 휘두르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목숨 걸고 회장을 응징할 필요도 용기도 없는 아이들은 그냥 손가락질만으로 학생회장에게 화풀이를 해대고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아이들의 반응이 나쁘리라고 상상도 못한듯 학생회장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끙끙댔다.
“참, 저것도 재주다, 재주.”
찬석이가 말했다.
“……?”
내가 찬석이를 바라보며 의문을 나타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저렇게 순식간에 전교생 안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재주가 아니면 뭐겠냐?”
“큭큭큭.”
찬석이의 말에 승현이가 웃었다.
하지만 난 찬석이의 농담에도 왠지 웃을 수가 없었다. 그냥 뭔가 안절부절못하는 무엇인가가 나의 안면을 마비시켜 버렸던 것이다.
“삐이이이익∼”
또다시 귓가를 괴롭히는 확성기의 소음이 울렸다.
“이게 진짜 죽고 싶냐?”
확산되는 불만의 목소리에 학생회장은 의기양양하게 학생들을 향해 확성기를 들고 있었다. 그러자 항의의 목소리는 이제 불만을 넘어서서 폭동 수준으로까지 번지려 하고 있었다.
“삐이이이익∼”
다시 확성기의 소음에 답하듯 또 다시 쇠를 긁는 듯한 소음이 울렸다.
“진짜 해도해도 너무하네.”
아이들은 진짜 험악하게 변했다. 어떤 성질 급한 녀석들은 친위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학생회장이 당황한 듯 말했다.
“어? 이번엔 나 아닌데?”
그러자 아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너가 아니면 누구야 어?”
“진짜 나 아닌데…….”
“삐이이이익∼”
다시 한 번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생회장이 울리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왜냐하면 확성기가 있는 곳이 아닌 정반대 방향에서 뚜렷하게 울려 왔기 때문이었다.
모두는 뒤로 돌아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뒤에는 버스들이 삐뚤삐뚤 서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학생들은 다시 학생회장을 잡아먹을 듯 바라보았다.
“너잖아!”
학생하나가 주머니에 들어 있었는지 종이 뭉치 하나를 던졌다. 그러자 그것을 신호로 학생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학생회장을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물론 위험한 것을 던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충분이 분노가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아, 진짜 나 아니라니까!”
학생회장은 종이 뭉치를 얻어맞으며 억울한 듯 소리쳤다.
나는 밀려오는 불안감에 소리가 나는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노하는 아이들에 휘말려 뒤에서든 앞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어졌다.
그때였다.
“삐이이이익∼”
또다시 울리는 귀를 괴롭히는 소음.
아이들의 행동이 일시에 행동이 멈췄다. 그리고 숨죽이며 뒤를 바라보았다.
소리는 명확히 뒤에서 울리고 있었고 이제는 확성기조차도 단상에 곱게 놓여 있었다.
적어도 확성기가 자기 혼자 울리지 않는 이상 이 소음의 정체가 저 확성기일 리 없었던 것이다.
“…….”
“…….”
주변은 개미 한 마리 지나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해 졌다.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산속.
전화기는 통화 불능.
어른들은 모두 죽었다.
아이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공포였다. 그리고 이제는 알 수 없는 소리까지 들리고 있었다.
“꿀꺽.”
누군가의 침 넘기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이들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 하얀색의 물체가 불쑥 나타났다.
그 물체는 모퉁이를 돌아 내려오는 길 부분에서 소리도 없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새였다.
모두들 얼어버린 듯 그 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마리였다. 긴 목에 검은 눈동자, 붉은 부리, 둥그스름한 몸통에 달린 하얀 날개, 털이 없는 발목과 발톱. 아무리 봐도 새인 것은 맞는 듯 보였다.
그 새는 걸을 때마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균형을 잡듯 뒤뚱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얼어버린 까닭은,
그 새가…….
그 새가…….
컸다.
그것도 매우 컸다.
처음에는 오르막길 끝 모퉁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 눈을 의심하게 했다. 그러나 새가 다가올수록 점점 그 실체가 느껴졌다.
특히 버스 옆에 나란히 섰을 때 깨닫게 되었다.
“버스보다 크다…….”
그것도 긴 목 때문인지 버스보다 2배 정도는 큰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거 뭐냐? 타조냐?”
“글쎄 타조보다 목이 짧은 거 같지 않냐?”
“바보 같은 놈 지금 목이 문제냐? 몸통이 버스보다 큰 타조가 어디 있냐?”
“유전자 변형 타조인 건가?”
“우리나라 유전자 기술이 세계 최고라더니.”
“여기 황 박사의 별장이 있다거나.”
“진짜?”
“뭘?”
아이들은 저마다의 추측을 늘어놓으며 멍하게 그 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 틈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새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듯 킁킁 대며 맨 끝에 있는 5반 차량을 이리 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열려져 있던 문 안으로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생각보다 머리가 작았던지 버스 문 안으로 머리가 쉽게 들어갔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으아아아아악!”
찢어지는 사람의 비명 소리.
새가 버스 안으로 들이민 머리를 빼냈을 때 부리에 뭔가가 끼어 있었다. 그리고 그 물체는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새의 머리는 미동조차 없었지만 부리에 끼어 있는 그것만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부리 밖으로 삐져나와 마구 흔들리는 것은 팔과 다리처럼 보였다.
“우걱.”
새의 부리가 움직였다. 그리고 그 물체에서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짐과 동시에 그 세차게 움직이던 그것은 밑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 있던 다른 한 마리는 떨어진 그것을 집어 들고 있다.
다른 한 마리가 떨어진 무엇인가를 주어드는 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새는 붉은 액체를 부리에 가득 묻힌 채 다시 한 번 차 안으로 고개를 들이 밀었다.
“꺄아아아아악!”
또다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다시 새의 부리 안에는 흔들리는 무엇인가가 들려 있었다. 그 물체는 더욱 저항이 거셌던 것인지 붉은 액체를 사방에 흩어트리면서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악! 으악, 으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악!”
새의 머리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 안에서 몇몇 아이들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오고 있었다.
“살, 살려 줘.”
“우드득, 우득, 우드득.”
비명 사이로 선명히 들려오는 뼈를 씹는 소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잔인한 소리는 들어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