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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4화)
2. 수학여행 길의 행방(3)


다른 반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한 명씩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마치 쫓기듯 버스에서 나오는 그 아이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섞인 어리둥절한 표정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상황이 비슷한 듯했다.
“얘들아, 우리도 일단 나가자!”
실장의 야무진 목소리는 모두를 다시 현실로 끌어 내렸다. 하지만 당장에 내릴 수가 없었다. 버스 문을 여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순간 기철이가 폴짝폴짝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앞자리까지 나오더니 아무 설명도 없이 어떤 버튼을 꾹 하고 눌렀다. 그러자,
“푸식∼”
소리가 나며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열렸다!”
공포로 꽉 차있던 차 안에 찬바람이 들어오며 숨통이 트였다. 그러자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갔다.
“흐힉!”
애들한테 밀린 나머지 막상 열림 단추를 누른 기철이는 빠져 나가지 못한 체 기사 아저씨 쪽으로 밀렸다. 그러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무리 티가 안 난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을 처음 접해 본 사람은 꺼림칙하기 마련이었다. 그 심정을 알기에 옆에 서있었던 내가 뒷자리로 끌어내 주었다.
“응? 땡큐.”
기철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애들이 다 밖으로 나갈 때까지 꼼짝 없이 둘이 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뻘쭘하기도 해서 물었다.
“거기 버튼이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짧게 말했다.
“그거? 우리 아빠가 버스 운전기사거든.”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순간을 어색하게 느꼈지만 어쩔 수 없음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 나가고 기철이가 일어설 때까지의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기철이가 나가며 살짝 뒤돌아보더니 말했다.
“너 이마에 피난다.”
버스에서 내렸다. 평소의 팔짝 팔짝 뛰는 걸음으로 멀리 가버린 친구를 뒤쫓는 것이 버스 창문 너머로 보였다.
그제야 아직도 머리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구급약 상자를 찾았다. 상자는 생각보다 찾기 쉬운 곳에 있었다.
상자를 열고 보니 간단한 설사약과 멀미약, 상처 연고약, 소독약 등 사용 간편한 약들이 담겨 있었다.
일단 소독약을 솜에 묻혀 피가 나는 곳을 소독했다. 피가 많이 난 것에 비해 상처는 생각보다 얕았다. 상처를 닦고 있을 때였다.
“일루 줘 봐!”
성현이가 다가왔다. 그리곤 내 손에서 솜을 빼앗더니 손끝으로 내 턱을 슥 당겼다.
“됐어.”
나는 퉁명스럽게 솜을 뺏으려 했지만 성현이가 나의 손을 살짝 피하며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습∼ 떼끼!”
그리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내 얼굴을 끌어 들이더니 척척 머리 상처를 소독하면서 후후 불어주었다. 솔직히 나 혼자 소독하면서 정작 상처에는 손을 못 대고 있었다.
소독약이 닿으면 쓰릴 것이라는 걸 알기에 본능적으로 상처를 피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성현이가 후후 불어주며 소독해주니 견딜 만했다.
그리곤 연고를 짜서 조심스럽게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나선 상처를 피해 이마에 살짝 때리며 말했다.
“다 됐다.”
성현이의 신호를 마지막으로 나는 살짝 웃어줌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소란스러움과 어수선한 느낌이 창 안까지 전해져 오고 있었다.
밖에서 우왕좌왕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혼돈 그 자체였다. 내릴까 하다가 머릿속에서 뭔가 경종이 울리는 듯 느껴졌다.
주섬주섬 닥치는 대로 주위의 물품을 가방에 주어 담았다. 내안에서 알 수 없는 불안이 무엇인가를 준비하라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내 것이 아닌 약상자에 있는 약까지도 주어 담았다.
성현이는 내 행동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필요할지도 모르잖아.”
내 대답이 설명이 됐는지 모르지만 성현이는 왠지 모르게 알겠다는 듯 한번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신의 가방도 내밀었다.
그런 성현이를 한번 바라보고는 내 가방 안에 담지 못하는 물품을 내민 그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둘 다 등산용 가방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은 물품이 들어갔다. 우리가 한참 동안 가방 안에 물건을 쑤셔 담는 동안,
“니들 뭐하냐?”
대천이가 다가오며 말했다. 우리는 순간 하던 행동을 멈추고 대천이를 바라보았다.
대천이는 우리들 옆에 손수건이 얼굴이 덮여진 채 얌전히 누워 있는 이미 차가워진 몸을 바라보며 얼굴을 살짝 찌푸리더니 더럽다는 듯 발등으로 살짝 건드렸다.
그 모습이 무척 무례하게 보였지만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그냥 얼굴을 돌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대천이도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닌 듯 우리에게서 금세 흥미를 잃고 주위를 둘러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씨B, 재수 없게.”
그러더니 선생님 옆에 있는 맥주 캔과 포켓에 있는 담배를 자신의 주머니 속에 담더니 다시 뒷자리로 가버렸다.
그의 똘마니 셋이 그의 뒤에서 얼쩡거리며 그의 눈치를 보더니 이제는 노골적으로 선생님 주머니와 기사 아저씨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기사 아저씨 포켓에서 담배를 발견하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나누곤 자신들의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곤 다시 대천이가 있는 뒷자리로 가버렸다.
“쓰레기.”
겨우 나에게만 들릴 듯한 조용한 중얼거림이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얼굴이 구겨져 있는 성현이가 보였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기에 그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는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천이와 그 일당이 흘리고 간 라이터를 발견하고는 얼른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었다.
그때 찬석이가 버스로 돌아왔다.
“성현아!”
차에서 먼저 내렸던 찬석이가 성현이가 따라오지 않자 다시 돌아온 듯했다.
“야! 밖이 좀 이상해!”
찬석이가 성현이를 바라보며 불안한 눈빛을 흘렸다. 그러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로 옆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향하더니 진저리를 쳤다.
“그런데 너희들 여기에서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
뭔가 질린 듯한 말투로 가방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현이는 찬석이의 얼굴을 한번 바라봐 주고 나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더니 끄덕하면서 나에게 무엇인가 신호를 보냈다.
“네 가방도 내놔 봐!”
성현이는 앞뒤 설명 없이 찬석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뭐하는 건데?”
찬석이는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선선히 자신의 가방을 내밀었다. 찬석이의 가방은 옆으로 매는 스포츠 가방이었는데 이미 이것저것의 물건으로 거의 가득 차 있었다.
“이것들이 다 뭐냐?”
성현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야! 그래도 고등학교 들어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긴 여행길인데 제대로 준비를 해야지 않겠냐?”
찬석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자 성현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번 바라봐 주고는 가방 안을 뒤졌다. 그 안에는 포커를 비롯해 각종 보드게임들과 양주, 소주, 맥주들이 가득 차 있었다.
성현이는 다시 어이없다는 듯이 찬석이 바라보더니 가방에 있는 대부분을 다 꺼내버렸다.
“야! 야! 뭐하는 거야?”
성현이는 찬석이의 어이없다는 물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위에 공동으로 준비한 음식들과 모포 같은 것으로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곤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다고 여겼는지 가방을 잘 마무리해서 다시 찬석이에게 돌려주었다. 찬석이는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성현이는 그러든지 말든지 세 개의 가방이 꽉 차자 나를 바라보고는 준비가 다되었다는 눈빛을 지으며 비장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솔직히 성현이가 이렇게까지 나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동조 해 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나의 생각이 전달되었는지 성현이가 조용히 말했다.
“나 봤어. 그 버섯 같은 거…….”
그 말로도 충분히 성현이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논 한가운데 있던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던 커다랗고 빨간 버섯같이 생긴 것이 떠올랐다.
그리곤 나처럼 성현이도 이세계에 이질감을 느끼고 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단 것을 알아챘다.
물론 단지 창밖의 풍경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도 서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도 성현이도 말을 아끼는 대신 알 수 없는 불안을 무엇인가 준비함으로 대비하고 있었다.
우리를 어이없이 바라보는 찬석이를 한 번 바라봐 주고는 성현이를 향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답했다. 그리곤 배낭을 들쳐 메고는 각오를 다지며 힘차게 일어나 버스 밖으로 한발 내딛었다.



3. 삶과 죽음 그리고 버스(1)


땅에 한발을 내디뎠을 때 미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바닥이 푹신했기 때문이었다. 꿇어앉아 발밑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입자가 고운 흙과 짚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풀이 정교하게 섞여 폭신폭신하고 따스해 보이는 바닥이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지 않으면 자연적으로는 그렇게 섞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오른쪽은 절벽, 왼쪽은 낭떠러지로 깎아지른 듯이 가파랐다. 산의 형태로 보아 산 중턱이 아니면 정상 부근으로 보였다.
나무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나선형 모양인지 급한 커브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의 색깔이 일정한 것이 이런 폭신한 길이 우리를 중심으로 위아래로 계속되고 있었다.
발끝 부분에서부터 알 수 없는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일단 학생들을 태운 수학여행 버스가 이런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당장 이 푹신해 보이는 길은 딱 보기에도 차가 다닐 길로 보이지 않았다. 수학여행은 계획 단계부터 선생님들이 철저히 준비하시는데 이런 코스를 집어넣을 리 없었다.
그리고…….
기억이 남아 있는 어느 시점까지는 아스팔트길이었다.
분명 차는 부드럽게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길에서 그렇게 차가 진동하지 않고 부드럽게 나아갈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바닥이 폭신하고 부드러워서 인지 무거운 버스의 바퀴가 절반 이상 가라 앉아 도저히 움직일 것 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었다.
“야! 뭐하냐?”
찬석이가 어느 샌가 내 뒤로 다가와 있었다. 버스 바퀴에 집중하느라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뭐냐? 왜 그렇게 놀라?”
“아니, 그냥…….”
“야! 어디 가?”
“…….”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찬석이를 그냥 놔둔 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달리 목적지를 정해 놓은 것은 없었지만 그냥 찬석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었다.
앞을 보니 1반 버스 앞에 5대의 차량에서 모두 몰려온 듯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긴급 상황인지라 학년주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타고 있는 1번 버스가 믿음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이 많은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무질서하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낭떠러지에 대고 마구 토하고 있었고 그 뒤를 친구인 듯한 아이가 등을 두드려 주고 있었다.
우는 아이, 소리 지르는 아이.
그러다 한 가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