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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3화)
2. 수학여행 길의 행방(2)
그러나…….
그 평야에 버섯이 자라고 있다면?
그 버섯이 빨간 꽃 모양으로 눈에 확 띈다면?
아마 꽤 멀리 떨어진 나에게조차 보일 정도로 엄청 커다랗다면?
물론 버섯이라고 표현했지만 버섯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단지 버섯처럼 보이는 갓 부분과 기둥 부분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나에게 뚜렷이 보였을 뿐이었다.
확실한 것은 외래종이라 할지라도 저런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아니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야를 뒤덮는 커다란 빨간 버섯이라니.
아무리 봐도 불길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세상을 많이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식견이 넓지도 못한 나에게 이 세상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만한 근거나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이렇게 뚫어지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앞자리에 이동한 후에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살폈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저 버섯을 보지 못한 것일까?’
‘우리는 산속에 있는데 양 옆으로 보이는 평야라던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운전기사 아저씨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하게 살폈다.
별 다른 점을 알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알 수 없었다.
기사 아저씨는 이렇게 어두운데도 선글라스에 버스 회사에서 유니폼으로 제공하는지 버스회사 로고가 찍힌 창 있는 모자까지 쓰고 있었던 것이다.
손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상적인 상태인 것 같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올지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이 버스를 멈출 수 있을 만큼의 확신과 담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시계가 오전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통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곳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든가 계기판이나 시계바늘이 고장난 듯 빙글빙글 돈다든가 하는 이상 현상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 손목시계의 시계바늘이나 버스의 계기판은 그야 말로 평온 그 자체였다.
오로지 시간대와 맞지 않는 어두운 하늘만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안개까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존재감이 없었던 안개가 이제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진해져서 버스 전체를 덮었다.
창문 밖의 도로가 어느새 회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며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다.
그리곤 점점 밖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졌다. 심지어 앞에 가고 있는 버스조차도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이 이상 현상을 증명해 줄 만한 증거를 찾듯이 오랫동안 시계바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초침만 딸깍딸깍 조용히 움직일 뿐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바늘이 천천히 움직여 12시로 움직이고 있었다. 시침이 움직일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오로지 바늘에 집중했다. 어차피 바깥 풍경을 봐봤자 안개와 앞에 있는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버스 뒤태뿐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내 기대대로 시침이 정확히 12시로 움직여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하나로 만나가고 있었다. 단지 시계가 평소와 똑같이 다가가고 있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신비로웠다.
“12시……. 10, 9, 8, 7, 6, 5, 3, 2, 1, 땡.”
속으로 쿡쿡 웃었다. 오늘 아침 꿈으로 인해 아무 일도 아닌 일에 민감해져 있었던 것 같아 우스웠다. 초침이 분침과 시침을 떠나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어느새 소리 내어 초침을 세고 있었다.
“1, 2, 3, 4, 5, 6, 7, 8…….”
8까지 셌을 때었다.
“끼∼∼∼∼ 익∼∼∼∼∼”
‘덜커덩.’
엄청난 소리와 진동 속에 버스가 급정거를 했다.
갑자기 몸이 앞으로 심하게 쏠렸다.
결국 시계를 보느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앞에 있는 가로막에 머리를 찧었다. 텅하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그 소리의 정체가 내 머리가 가로막에 부딪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리 자체가 아프게 느껴졌다.
균형이 잡히자마자 머리를 감싸 쥐었다. 머리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머리털 나고 머리에서 그렇게 피가 흐르는 것은 정말 처음 봤다.
여드름을 짜고 나는 피와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아픔보다는 놀라움이 더 컸다.
옆에 공동으로 쓰는 타월을 발견하고 얼른 머리에 댔다. 그제야 아픔이 느껴지며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바로 옆에는 용석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깔려 낑낑대고 있었다.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 위에 있는 아이가 꼼짝도 안하는 탓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일단 제일 밑에 있는 용석이를 끌어 내 주기 위해 위에 있는 아이들이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용석이 위에는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런 저런 방향으로 엉켜 있어서 도와주지 않으면 힘들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뒤집어 고꾸라져 있는 녀석, 다리만 엉켜 있는 녀석 등등 한 명씩 일으켜 세우고는 다친 데가 없는지 살펴보았다. 마지막 아이를 끌어 올리려는데,
“으아아아아악!”
갑자기 버스 바닥에 누워 있는 용석이가 자신의 위에 쓰러져 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엄청난 비명을 질러 댔다. 모두의 시선이 용석이에게 쏠렸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리고 한때 학우였던 싸늘한 몸체가 축 늘어진 채 용석이의 몸을 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용석이는 감히 만질 수도 없다는 듯이 양손으로 허공을 졌고 있었다. 무서워서 눈을 뜰 수도 없는 건지 두 눈을 꼭 감은 채 잔뜩 겁에 질린 비명을 계속해서 질러댔다.
“으악. 으아아아악!”
용석이의 비명에 모두가 겁에 질려 버린 터라 그런지 다가오는 아이들이 없었다. 나는 용석이의 바로 옆에 있었고 위기 상황이면 더 냉정해지는 탓인지 무섭다는 감정을 느끼기 전에 생각했다.
‘단지 사람일 뿐이다. 그저 사람이야.’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그리고 용석이 몸에서 그 축 늘어진 몸체를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러나 힘이 빠져 버린 몸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나는 낑낑거리며 들어 올리려 노력했으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때 다른 손들이 다가왔다.
성현이와 찬석이었다. 평소에는 얌전한 녀석들이라 눈에 띄지 않는 녀석들이었으나 이럴 때는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느라 힘이 배로 들었다. 신중하게 바로 뉘였다.
목이 이상하게 뒤틀려 목뼈가 튀어 나와 있었다. 넘어지면서 어딘가에 부딪치는 바람에 즉사한 듯했다. 입을 벌린 채 눈을 벌겋게 뜨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괴기스럽게 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일단 눈을 감겨 주고 입도 닫아 주려 했다. 조심스럽게 눈과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턱이 어긋났는지 입이 잘 닫혀 지지 않았다.
결국 성현이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학우의 얼굴을 덮어 주었다.
용석이는 손수건이 덮여 있는 곳을 겁에 질린 눈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리곤 앞자리에 앉아 있는 담임에게로 향했다.
다행히 담임은 이 혼란 속에서도 팔짱을 낀 채로 창문에 기대어 주무시고 있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는지 다치신 곳도 없는 것 같았다.
용석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임을 깨우려는 듯이 어깨를 흔들었다. 이 순간에 기댈 곳은 그래도 담임이 유일했다. 처음에 담임을 살짝 흔들었다.
“쌤.”
하지만 담임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쎄에엠∼!”
갑자기 격한 감정이 올라오는지 두 손으로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툭.’
담임이 힘없이 쓰러졌다.
“으악!”
용석이는 순식간에 두 발자국 물러섰다. 그러다 앞에 있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아까까지만 해도 바로 앉아서 운전하고 있는 듯하던 아저씨가 운전대 위로 툭하고 쓰러졌다.
“으아아악! 으악, 으악, 으악!”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듯이 어디다가 손을 놓아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허공에 손을 저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으아아악!”
마치 용석이에게 전염이 되듯 아이들은 우르르 뒤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두 뒤쪽으로 몰리자 가운데는 텅 비어 버렸다.
“그만해!”
누군가 소리쳤다. 단호한 외침이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버스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아이들은 이성을 찾았다기보다 현실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차 앞쪽에 있어선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쩌지?”
성현이가 자신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그러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성현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깐만.”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성현이의 어깨를 꼭 쥐어 주었다. 그리고 일단 담임선생님께 다가가 숨을 쉬시는지 일단 손가락을 코끝에 대보았다.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에 맥을 짚어 보았다.
역시나 아무 느낌이 없었다. 아직까지 따뜻해 죽음의 기운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증거도 아무 데도 없었다.
다음으론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는지 외상은 아무 데도 없었지만 역시나 삶의 기운이 전혀 없었다. 만약 심장마비로 죽는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 속으로만 추측할 뿐이었다.
어디선가 흐느낌이 들려 왔다. 여자아이들이 하나둘씩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는 흐느끼는 남자아이들도 있었다. 봇물 터지듯 터진 흐느낌은 어느새 통곡으로 변했다. 그때였다.
“얘들아∼ 잠깐!”
모두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이 몰렸다. 실장인 가영이었다. 가영이의 손에는 언제부터인지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얘들아! 핸드폰 있는 사람 얼른 119에 연락해 봐. 내 꺼는 안 터진다!”
가영이는 평소의 똑소리 나는 말투로 혼란을 진정시키며 현실을 일깨웠다. 아무도 없이 텅 비어 버린 중앙에 당당히 선 자세로 귀에 핸드폰을 대고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뒤적뒤적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오랜 울림 후에 반가운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지금 거신 전화는 서비스 권외지역에 있거나 전원이 켜져 있지 않기 때문에 통화할 수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핸드폰 밖으로 같은 내용의 소리가 삐져나왔다.
“왜 이래?”
“어, 이상하다. 요즘도 안 터지는 곳이 있냐?”
“산속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흑흑흑.”
“안 그래도 불안하니까 그만 좀 울어.”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
웅성웅성.
겁에 질린 목소리.
신경질적인 목소리.
여자아이들의 훌쩍이는 소리.
모든 소리들이 차 안에 있는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우리를 불안에서 구하는 것은 어느 샌가 밝게 개어 있는 화창하기 그지없는 창밖의 날씨였다.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과 바깥 광경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는 급제동한 듯한 1, 2반의 차량이 서 있었다. 우리 차 뒤로도 2대의 차량이 역시나 급제동 한듯 비뚤비뚤 서있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을 깬 것은 밖에서 나는 소란스러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