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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2화)
2. 수학여행 길의 행방(1)


아침에 이상한 꿈을 꾸면 하루 종일 기분이 찝찝하다. 특히나 오늘 꿈은 강렬한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는지 그 사람의 눈빛이 떠나지 않았다.
혼자 앉아 있으면 별 생각을 다하게 되는데 지금의 내 머릿속 화제는 어제의 그 꿈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하는 원인 분석을 끝없이 하고 있었다.
늘 꾸고 나면 즐거웠던 꿈이 갑자기 공포물이 된 까닭, 또 뭔가 메시지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 꿈 해몽 잘하는 방법은 없을까? 등…… 여러 가지 쓸데없는 잡생각 안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문득 수학여행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그런 꿈을 꾸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것보다도 내 잠재의식 안에서는 수학여행은 생각보다 더 큰 스트레스였나 하는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쩐지 긴장하고 있었나 보다.’
사실 나는 수학여행을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처음 담임이 수학여행 신청 용지를 주었을 때 가지 않는다고 표시했다. 하지만 학교생활에서 선택의 자유란 없었다.
결국 담임선생님에게 왜 가지 않느냐는 잔소리를 3시간이나 듣고, 집에서 학교생활이 원만하지 않느냐는 부모님의 상담을 가장한 잔소리를 새벽 2시까지 듣고 나서야 그냥 가는 게 편하겠다고 결정했을 정도였다.
수학여행이 끔찍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단체 생활이라든가, 누구나 하고 친하게 지내야 하는 그런 자리자체가 불편할 뿐이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찝찝함이 내 잠재의식 안에 존재하지 않을 리 없었다. 역시나 찝찝함의 결정체인 꿈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 나의 기분을 끝도 없이 다운시키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학여행 버스를 타기 위해 모여 이런 왁자지껄 떠드는 현실적인 소리를 들으면서도 마치 꿈이 깨지 않은 것처럼 멍하고 내가 딛고 있는 발밑이 마치 꿈에서처럼 현실감 없었다.
“집합∼∼∼ 실장! 인원 체크 끝났냐?”
선생님의 소리.
“네.”
실장인 가영이의 목소리.
“모두 탑승!”
선생님의 구령이 울리자마자 선생님과 실장이 애써 반듯 반듯 세워두었던 정렬이 ‘공들인 탑도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든 우르르 무너지며 혼란 속에서 탑승이 시작되었다.
나는 무거운 머리 때문에 이 혼란이 달갑지 않았지만 빠져나가지도 다른 아이들처럼 적극적으로 앞으로 밀고나가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 휘말려 빨려 들어가듯 차에 올랐다.
차 안이라고 조용할 리 없었다. 차안은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안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더 시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제일 탈이 없을 것 같은 중간자리 복도 좌석 쪽에 앉았다. 위치상 중간자리 복도 좌석이 제일 인기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굳이 자리 쟁탈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맨 뒤에 앉자앙∼”
평소에도 덜렁대고 철없이 날뛰는 기철이가 맨 뒷좌석에 가서 덥석 앉는다.
“너 뭐야?”
그런 기철이의 목덜미를 잡고 강태가 끌어 내렸다.
강태는 대천이의 똘마니였다.
대천이는 2학년 짱인데 강태 말고도 우리 반에만 두 명의 똘마니를 더 거느리고 있었다.
그 녀석들이 뒷자리를 포기할 리 없었다. 맨 뒷자리는 선생님과 가장 멀고 물건을 쌓아놓기도 좋은데다 역시 제일 좋은 점은 음주를 즐기는 데 더 없이 좋은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기철이는 제대로 저항조차 해 보지 못한 상태로 자신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모든 아이들이 다 차에 타자 기철이가 자리를 못 잡고 갈팡질팡했다.
강태에게 자리를 빼앗기면서 시간을 지체한 탓에 다른 아이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같이 어울리는 녀석들조차 짝짝이 다 앉아 버린 후였다. 기철이가 주위를 뚤레뚤레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내 옆자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잠시 망설이는 듯 머뭇거리더니 역시 녀석답게 아무생각 없이 내 옆자리에 냉큼 앉았다. 그러더니 나를 슬쩍 바라보고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다른 녀석들 옆에 있으면 시끄러울 만큼 소란스런 녀석인데도 너무도 조용해져 버렸다. 그렇다고 기분 나쁜 표정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수학여행을 싫어하는, 아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영 어색하고 힘들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노력도 해봤지만 잘 되지 않는 것은 언제까지도 잘 되지 않았다.
이제는 사람들과의 거리감이 불편하지만 익숙해져 버렸다. 나도 기철이에게 관심 끊듯이 고개를 돌리고 잠을 청했다. 버스가 덜컹덜컹 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뭔가 옆자리의 기철이가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그냥 앉아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버스 안은 더 시끌벅적해졌다 저마다 게임이나 노래를 하거나 하는 동안 기철이의 안절부절은 더욱 강해졌다.
처음에 신경을 끄고 있으려다가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는 지경이 돼서야 기철이에게 말했다.
“자리 바꿔줄까?”
기철이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아래위로 세차게 흔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창가 자리가 좋았겠지만 매사 활동적이고 나쁜 말로는 주위가 산만한 기철이에게는 답답한 자리였을 것이었다.
나는 기철이에게 복도자리를 내주고서야 조용히 버스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버스는 전형적인 수학여행 코스를 밟기 위해 경주로 향하고 있었다. 바깥 경치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으로 평소 도시에만 생활하던 나에게는 숨통이 트일 만큼 좋았다.
하지만 혈기 넘치는 열일곱 소년, 소녀들에게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특히 용석이가 나서면서 어느새 장기자랑 퍼레이드가 시작되어 버린 뒤라 더욱 그랬다.
용석이는 외모는 뛰어나지 않았지만 특기인 유머러스한 말빨로 반에서 인기 탑을 달리고 있었다. 같은 말도 용석이가 하면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그런 녀석이 마이크까지 잡으니 모든 사람들을 끌어들이듯 주의 집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따∼∼∼ 음∼∼ 은 특별히 초빙한 전 세계 순회공연을 1년 6개월 하고 돌아 올라다가 동남아 순회공연을 1년 동안 할라다가∼∼ 가∼ 가∼ 특별히 우리 2학년 3반에 초빙되어 어쩔 수 없이 못 다녀온 우리 한솔 고등학교의 명가수∼∼ 마빡 쌤을 소개합니다! 쌤∼∼∼”
마빡이는 담임의 별명이었다. 성이 ‘마’라서도 있지만 약간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 때문에 어느새 불리기 시작한 별명을 담임은 조금은 기분 나빠 했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이 말하면 화가 날 말도 용석이가 때와 장소에 따라 어투를 달리하면 폭소를 터트리면서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담임은 사람 좋은 얼굴로 용석이가 쥐어주는 마이크를 붙잡으며 곧 울려 퍼지는 소양강 처녀 반주에 맞추어 구성지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조금은 비위를 맞추는 느낌으로 선생님이 부르는 노래에 환호하며 박수도 쳐주고 다 같이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서 더 없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물론 나에게는 딴 세상일이었다.
분위기를 맞추어 주기 위해서인지 사이키 조명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에 맞추어 아이들이 창문에 커튼을 내려서 차 안을 어둡게 만들었다. 다른 차도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나는 창밖 풍경을 더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바깥을 볼 수 있을 정도만 커튼을 걷어 올렸다. 충분히 빛은 가려질 정도였다.
어느새 다른 자리에 놀러갔는지 옆자리의 기철이도 사라졌기 때문에 커튼을 살짝 걷어 올리는 것에 대하여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차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폭소를 터트리든지 신경 쓰지 않고 멍하게 바깥 경치를 구경했다.
머릿속의 화제는 역시 오늘 꾼 꿈이었다. 그렇기에 바깥 경치가 조금 이질적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여전히 꿈속에 빠져 있는 상태라 현실 감각이 무뎌진 까닭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 안의 시계는 오전 10시를 가리키는데 바깥이 점점 어두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막연히 하늘의 먹구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드문드문 본 적 없는 나무가 보였다. 잎이 큰 나무였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나무가 있었는지 바깥 풍경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요즘에 수입종도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라고 그냥 막연히 생각했다. 여전히 창밖은 논으로 둘러싸여 있고 멀리 산이 보였다.
산이 지나치게 멀리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름 모를 평야를 지나나 보다 하고 또 막연히 생각해 버렸다. 늘 산으로만 둘러싸인 도시에만 살다보니 평야를 보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터널을 두 갠가 지났을까?
멍하던 내 눈동자는 어느 샌가 초점이 생기며 풍경을 뚫어지게 바라보게 되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며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무엇인지 말할 순 없지만 좀 이상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자리로 이동했다. 좀 더 바깥 풍경을 잘 살필 수 있는 자리로 이동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앞자리 왼쪽은 누가 정하지 않아도 담임선생님과 실장의 자리였다. 그러나 앞자리 오른쪽은 범생이들 아니면 절대 앉지 않으려 했다.
왜냐하면 담임선생님의 잔소리를 직방으로 들을 수밖에 없는 앞자리에 앉으려는 용자가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용석이의 쇼가 시작된 이후에는 그 범생이들조차도 뒷자리로 이동한 상태라 비어 있었다.
어렵지 않게 오른쪽 앞자리를 차지한 후 바깥 경치에 집중했다. 과연 이것이 현실인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계속해서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하며 창밖의 풍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처음 출발했을 때부터 바깥 광경이 현실에서 괴리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꿈 때문에 모든 것을 이질적으로 보던 내 정신상태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터널을 통과하며 우리가 산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눈앞에 평야가 펼쳐져 있었던 것도 있었다.
이때만 해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렇기에 그냥 평야구나, 신기하구나 하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상태 역시 조금은 멍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드문드문 우리나라 토종이 아닌 것 같은 나무가 보였다. 그것 역시 실제로 우리나라에 그런 종류의 나무가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무에 대해선 초등학생 지식 정도나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판단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이 10월 말경이고 대부분 잎이 넓은 활엽수가 곱게 단풍 드는 계절에 여름의 싱싱함을 갖추고 있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될 듯도 하지만 역시나 외래종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