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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 Shine 13화
8. 철거 현장 (3)


병진은 병원에 도착해서도 다시 한번 혼비백산이었다. 의식도 없이 피투성이가 돼서 뻗어 있는 사장은 이미 인간의 꼴이 아니었고, 호진조차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호진은 수술실 밖에서 아랫입술을 터질 정도로 깨물고 있었다. 안경은 어디로 날려 먹었는지, 피멍투성이 맨얼굴로 벽에 기대서서 쓰러질 것처럼 휘청대고 있었다. 구김 하나 없던 셔츠와 슈트는 흙투성이에 단추까지 몇 개씩 떨어져 나갔다. 연보라색 스트라이프 셔츠 앞자락에는 검붉은 자국이 난잡하게 얽혔다.
평소에 그렇게 꼿꼿하고 냉정하던 사람이 저게 무슨 꼴이야. 정말 이 실장까지 패싸움을 한 건가? 많이 다친 건가?
“……제발, 제발, 일어나, 이러면 안 되지. 이러면…… 나는 어쩌라고.”
병진은 그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려다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모양인지, 이마를 대고 있는 사내가 눈을 꽉 감고 중얼거렸다.
“윤연희, 이봐, 제발 일어나. 나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호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비서실장이 사장에 대해서 하는 말이라 보기 어려웠다. 병진은 그가 온몸을 들들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어지간히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하긴 사장님 스타일에 익숙한 나도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영국에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샌님 같은 이 실장은 오죽 놀랐겠나. 말을 붙일 만한 상황이 아니다. 병진은 말없이 병실을 빠져나와 복도에서 펑펑 울고 있는 김영미 주임에게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

정신 드셨습니까? 눈 좀 떠 보세요. 사장님? 시끄러운 소리가 귓가에서 너울거렸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병원인가? 연희는 반쯤 감긴 눈을 간신히 밀어 올렸다.
“목소리 들리십니까? 저 보이십니까?”
호진이 침대 옆에서 땀이 맺힌 얼굴로 입술을 떨고 있었다. 연희는 한쪽 눈만 간신히 뜨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이…… 실장. 다쳤습니까? 꼬, 꼴이 이게 뭡니까!”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져 나왔다. 호진의 단정하던 머리카락은 들쑤셔진 것처럼 떠 있었고 안경마저 없어진 민낯에는 시뻘건 핏자국과 손자국이 선연했다.
“다쳤냐고! 회의장에 들어왔습니까? 얼굴에 그거 무슨 자국입니까!”
“얼굴 좀 맞은 게 문젭니까! 사장님 거기서 죽을 뻔한 건 아십니까?”
“들어오지 말랬잖아!”
연희의 고함이 천장을 꽝꽝 후려쳤다. 호진도 지지 않고 얼룩얼룩한 얼굴로 맞고함이다.
“사장님 죽을 뻔했다니까요!”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어! 왜 말 안 듣습니까! 얼굴이 그게 뭡니까!”
서 있던 사내가 이를 빠득, 갈았다. 항상 서늘하고 담담하던 얼굴에 열기가 이글이글했다.
“제 얼굴이요? 사장님 꼴이나 보고 얘기하시죠? 사장님 오른팔이 부러지고, 왼쪽 발목도 나갔습니다. 뒤통수 일곱 바늘 봉합했습니다. 어금니도 한 대 나가서 다시 박아 넣어야 할 거고, 한쪽 눈 아예 못쓰게 될 뻔했습니다. 온몸에 멍이 안 든 곳 없어요. 지금 사장님 얼굴 어떤지는 아십니까? 네에, 아주 볼만합니다. 전치 16주 나왔습니다. 사람이 쉽게 안 죽는다고요? 웃기지 마십시오, 그런 식으로 린치당하면 아주 쉽게 죽습니다.”
“이 실장!”
“말 안 들은 게 불만이면 해고하십시오. 다음에 이런 일 또 시키면 사직서 쓰겠습니다.”
목이 메는지, 덜덜 떨며 내뱉는 목소리가 거의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저놈의 사직서 타령이 듣기 싫어 한마디 하려던 연희는 호진의 눈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촬영은?”
“복사해 두었습니다. 소장 초안은 어제 미리 작성해 놓았습니다. 사장님께서 확인하신 후에 경찰에 제출하면 됩니다.”
연희는 누운 채 입술 끝을 조금 실룩실룩했다. 그 와중에 발 빠르게 처리할 일을 끝냈구나. 수고했다고 손을 들어 보이려던 순간 헉, 하는 신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팔다리를 도끼로 찍는 것처럼 아팠다. 이마를 잔뜩 구겼다.
“수…… 수고했습니다. 그래도 잘 끝났잖습니까. 조만간 상황 정리될 겁니다.”
“꼭 이래야 했습니까?”
“다른 방법 있었습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잘된 겁니다. 이제 다들 나랑 제대로 합의하려면 똥줄 좀 타겠죠.”
호진의 얄팍한 입술 선이 안으로 깊이 말려들어 갔다. 연희는 그것이 호진이 진심으로 노할 때 나타나는 표정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연희는 그의 엉망인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확인할 게 있었다.
“날 안고 대신 맞은 사람이 있는데 혹시 누군지 봤습니까?”
“…….”
“이 실장입니까?”
“…….”
연희의 입이 꽉 다물렸다. 역시 그랬군. 형편없이 구겨진 그의 슈트와 와이셔츠의 핏자국이 말할 수 없이 거슬렸다. 한참 만에야 이를 부득거리며 물었다.
“몇 주 나왔습니까?”
“타박상뿐입니다. 골절은 없습니다.”
“몇 주 나왔냐고 물었습니다, 이호진 씨!”
“6주 나왔습니다.”
“대체 왜 그랬습니까! 정신 있습니까? 내가 들어오지 말라 했어요, 안 했어요! 누가 구해 달랬습니까? 왜 쓸데없이 당신까지 대가릴 들이밀어서 얻어터지고 그래! 엉! 왜 말을 안 들어! 왜!”
호진의 눈이 위로 솟아올랐다. 눈알이 빠지고 허리가 부러질 뻔한 주제에 뭐가 어째? 그러면 당신이 혼자서 죽을 때까지 두들겨 맞고 있는 걸 나한테 끝까지 보고 서 있으란 말인가? 저렇게 다친 사람한테 화를 내면 안 되는 건 알지만, 속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누가 대신 얻어맞고 사장님 구하고 싶어서 그런 줄 아십니까? 눈앞에서 살인날까 봐 그랬습니다. 네, 사장님 돌아가시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내가! 내가 살인 방조죄에 말려들기 싫어서! 아시겠습니까? 창창하고 전도유망한 내 팔자 말아먹기 싫어서요! 제 앞길까지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습니까?”
“이 실장! 주먹질 몇 번 당하는 거 봤다고 무슨 살인 방좁니까! 아니 그보다 대체 왜 이렇게 화를 내고 그래? 당신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안 다치고 넘어갔을 거잖아! 어쨌든 잘되지 않았냐 말이에요!”
“어쨌든 잘? 그걸 지금 나한테 말이라고!”
호진은 눈에 힘을 바짝 주고 으르렁거렸다.
작은 균열이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작은 용수철이 팅,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가서 생긴 실 같은 틈. 개미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할 그런 틈.
“왜 그렇게 벼랑 끝에 바짝 몰린 것처럼, 낼모레 죽을 사람처럼 그러십니까! 지금까지 매번…… 매번, 그런 식으로 아슬아슬한 곳에 몸을 던지면서 사업해 온 겁니까? 자기 몸 중, 중한…… 것도 모릅니까? 살자고 하는 짓이지 죽으려고 사업합니까? 얻어맞고 시커멓게 멍들고, 팔다리 둘둘…… 감아 놓고, 꼬, 꼴좋습니다!”
제기랄. 그 실 같은 틈이 사실 물을 막아 두던 댐의 균열이었던 모양이다. 의도하지도 않았던 말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호진은 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계속 퍼부어 댔다. 긴장이 풀리니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는 거야. 긴장이 풀려서. 호진은 떨리는 팔을 움켜잡고 이를 갈았다. 호진을 노려보던 연희의 목소리가 갑자기 한풀 죽었다.
“이 실장……. 왜 그러십니까?”
“다시 하는 말이지만 이, 이런 일 한 번만 더 있으면…… !”
“호진 씨! 왜, 아, 왜 이러십니까!”
연희는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어으으, 앓는 소리를 심하게 하며 베개에 머리를 처박았다.
하지만 더 당황한 것은 호진 본인이었다. 호진은 한 걸음 물러서며 뒤를 돌아 손등으로 눈가를 꽉 눌렀다. 손등이 축축했다.
……미쳤다 이호진.
“글쎄 잠깐만 저 좀 봅시다. 얼굴 좀 돌려 봐요. 왜 이러십니까. 화내고 소리 지른 거 미안합니다. 이 실장, 저, 저기…….”
그래도 호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돌리기는커녕 벽을 짚고 선 채 헐걱헐걱 숨을 내쉬기만 할 뿐이었다.
연희는 뭘 어찌할지 몰라 진땀을 흘리며 눈만 껌벅껌벅했다. 손수건이 들었을 주머니께를 더듬었지만 옷은 어느새 환자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참만에야 퉁퉁 부은 입술에서 낮은 목소리가 더듬더듬 흘러나왔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정말 별일도 아닙니다. 호진 씨가 더 걱정입니다. 많이 안 아픕니까? 얼마나 많이 맞았습니까? 앞으로는 이런 짓 안 할 테니까, 소리도 다시는 안 지를 테니까…….”
호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긴 손가락이 뺨과 턱을 다시 훑었다. 습한 숨소리가 높아졌다. 덩치 큰 사내의 음성은 더욱 쭈그러들었다.
“그, 그러니까…… 세수……라도 하고 오십시오. 이 실장, 호진 씨.”

***


연희가 공언한 대로 상가 연합회 회의에 참석한 인원은 전원 고소 처리되었다. 호진이 촬영한 영상 증거는 그들의 폭행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 냈다. 군중심리의 저급함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영상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시체를 본 까마귀, 독수리 떼처럼 몰려들어 사생결단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화면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귀청이 터질 것 같은 욕설만큼이나 그네들의 얼굴도 선명하게 나왔다.
진단서도 제대로 끊었다. 전치 16주, 전치 6주. 연희는 강경했다.
“버티는 사람들이 하나라도 있으면 소 취하는 없어!”
병실에 떼를 지어 몰려온 연합회 사람들을 보고, 문병 온 직원들은 겁에 질려 떨었으나 연희는 그들 앞에 백지 합의서 뭉치를 거침없이 집어 던졌다.
“이제 협상은 없어! 감옥 가서도 계속 싸울 놈은 멋대로 해! 이 지경까지 됐으니 난 모가지가 부러져도, 심장에 칼 박혀도 끝장 봐!”
상처 입은 야수는 한껏 흉포하고 교활해졌다. 그는 격분한 것을 숨기지도 않았고, 어르고 달래는 일도 없이 무지막지 완강했다. 연희는 호진의 멍든 얼굴을 보거나, 호진이 몸을 움직이며 저도 모르게 신음을 삼킬 때면 얼굴을 무섭게 찡그렸고,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더욱 험하게 반응했다.
옆 병실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온 호진이 간신히 조건을 달아 그들과 협상을 시작했다. 협박과 회유, 그리고 협조 잘하는 곳에 차등지급하겠다는 이간책. 삼박자가 잘 맞아 들어갔다.
“이번 주말이 마지노선입니다. 그 안에 오시는 분들만 개별 협의해서 차등 지급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시설비나 권리금 보상이 아니고, 계약 기간보다 일찍 비워 주는 데 대한 위로금입니다. 법적으로는 주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 금액입니다만, 이건 저희 회사에서 배려 차원에서 책정한 겁니다. 책정된 금액은 한정되어 있으니, 먼저 오셔서 협의하시는 게 유리하겠죠. 다음 주부터 저희에 대한 피해 보상 청구 들어갈 겁니다.”
호진은 사장과 자신이 호흡이 몹시 잘 맞는 협잡 파트너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사장과 비서실장은 병원 특실에 아예 사무실을 차렸다. 팔다리가 하나씩 골절된 연희는 혼자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화장실에 갈 때도 목발이 필요했다.
깁스를 해서 뻣뻣한 오른손으로 서류에 서명을 하고 보상 내역을 확인하고 전화를 눌러 직원들을 다그쳤다. 직원들이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상가별 퇴거 날짜와 합의 내역서를 들고 뛰어왔다. 개별적으로 병원을 찾은 매장 주인들을 일일이 만나 보는 것도 마다치 않았다.
연희든 호진이든 개인 문병객은 거의 없었다. 연희는 딸에게 바빠서 당분간 못 간다고만 말해 두었고 호진은 형에게 상가 퇴거 문제로 잠시 충돌이 있어 당분간 본가엔 들어가지 못하겠노라 했다. 호진은 타박상뿐이라 장기 입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멍 자국으로 얼룩덜룩한 얼굴과 골골 기어 다니는 꼴을 본가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퇴원한 호진은 이마와 뺨에 큼직한 반창고를 붙이고 짙은 색 레이밴 선글라스를 쓴 채 연희의 입원실로 출근했다. 연희는 얼굴을 심하게 구기면서도 푹 웃음을 터뜨렸다.
“이 실장, 조폭 같습니다.”
“거울이나 보시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책상 옆에 목검을 숨겨두고 계시는 분은 어디 사는 누구신지.”
호진도 입술 끝을 위로 살짝 끌어당기며 웃었다. 연희는 눈을 껌벅거렸다. 호진의 웃음이 조금 더 명확해졌다.
누워 있는 사내의 꼴이 볼만했다. 눈가에 멍이 시커멓게 자리를 잡자 판다처럼 보였다. 덩치 큰 사내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추위를 제법 타는 편이었고, 밤에 조금 서늘하다고 솜이불을 부탁해서 얼굴만 쏙 내밀고 온몸을 둘둘 말고 있었다. 딱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병원 식사는 어떻습니까? 입맛에 맞으십니까?”
“새 모이 주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두 숟가락 담으면 끝이 나. 가을철 곰처럼 허기가 듭니다.”
“대나무 잎이라도 갖다 드릴까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연희는 껄껄 웃었다. 저 사람 쌀쌀맞게만 봤는데 의외로 장난기가 있었다. 잠시 후 연희의 웃음이 멎었다. 호진의 가방에서 나온 것은 커피가 담긴 연희의 보온병과 큼직한 샌드위치, 그리고 짜파게티 컵라면이었다.

그날부로 호진은 사장의 간식 공급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가을철 곰의 식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난생처음 깨달았다. 가을철 곰은 새 모이에 대한 불평을 종일 늘어놓으며 하루에 세 개의 샌드위치와 네 개의 컵라면, 한 사발의 커피를 ‘간식으로’ 먹었다.

상가 연합회는 단박 자중지란이 일어났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영업도 접어 놓다시피 하며 악다구니를 하고 그들끼리 싸웠다. 누가 먼저 그에게 주먹질을 시작했느냐를 두고 몇 시간을 다투고 책임 전가를 하다가 어느덧 그걸 따지기엔 너무 늦었다는 데 동의하게 되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게 시급했다.
이쯤 해서 백기 들고 주는 돈이라도 챙기자 하는 사람들과, 본때를 보여 주고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그들은 나중에 패싸움까지 벌일 지경이 되었다.
연합회에서는 총회를 개최해 투표에 부쳤고, 결과에 따라 연희에게 항복했다. 협잡과 밀당 솜씨가 천하제일인 곰 한 마리는 약정한 기한이 지났다는 핑계로 한 푼도 지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가 밀고 당기는 지루한 공방 끝에 자신에게 협조했던 상가의 주인들 중심으로 차등을 두어 소액 지급했다.
차등 지급 이야기에 모래알처럼 흩어진 사람들은 더 이상 뭉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연희는 호진에게 사시미 폭언을 했던 매장에는 끝까지 심술을 부렸다. 당신이 가장 먼저 때렸네, 당신이 때릴 때 다리에서 뚝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네, 당신이 밀어서 팔이 꺾였네 온갖 트집을 잡다가 정신적 피해 보상까지 들먹이며 끝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 지경까지 되고 보니 이제는 덩치 큰 사내를 아무도 들쑤시지 못했다. 상가 퇴거는 조용하지만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


집에 들어선 호진은 눈을 날카롭게 세웠다. 불이 켜져 있었다. 가끔 집안 살림을 하러 오는 본가의 신 여사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내가 켜 놓고 나갔나? 그럴 리가.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인영이 움직였다.
“……재철…… 형?”
오랫동안 연락도 제대로 안 했다고 직접 온 건가? 재철의 이맛살이 밀려 겹주름이 생겼다.
“……너 꼴이 그게 뭐냐? 설마 멍 자국이냐?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지?”
“연희유통 상가 철수작업 때문에 싸움이 있었어요.”
재철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너까지 싸움판에 끼어들었다고? 네가 용역업체 직원이야? 왜 그런 일까지 하고 다녀? 비서실장이라며.”
“제 집에선 담배 피우지 마세요, 형님.”
호진은 맞은편에 앉아 선글라스를 벗고 눈을 비볐다. 눈두덩이 욱신욱신 쓰렸다.
“저는 양반입니다. 사장은 전치 16주예요. 팔다리 다 부러지고 일곱 바늘 꿰맸습니다. 철거 마무리 빨리하려고 일부러 얻어터질 곳에 가서 대가리 밀어 넣었어요.”
후욱, 재철이 숨 막히는 소리를 냈다. 긴 신음 끝에 낮게 기침 소리가 흘렀다.
“오늘 보상 작업 완료됐습니다. 믿어지세요? 다다음 주부터 당장 건물 밀기 시작합니다.”
허! 재철은 무의식중에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호진은 불현듯 담배라도 한 대쯤 피우면 머릿속이 좀 가라앉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연희 그 사람, 유의해서 보셔야 할 겁니다, 형님.”
“매장 자리 하나 손에 쥐는 게 만만찮구나.”
“맨바닥에서 거저 성공한 게 아닙디다. 목숨 걸어 놓고 대시합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절박하게 만드는가. 호진은 궁금해졌다. 재철의 손 안에서 차가운 담배가 몇 차례 돌았다. 동생에게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재철은 말없이 일어섰다.
“네 근황이 궁금해서 들렀다. 며칠 동안 집에도 안 들어온 것 같다고 해서.”
신 여사가 말했나? 하긴. 아닌 척해도 내 행동반경을 쫓고 있었던 거지. 검증 기간이니.
“제 집에 말도 없이 함부로 들어오지 마세요.”
“건방진 놈……. 뭐 좋다, 네 영역이니 주의하지.”
재철은 건방지다고 할 때도 분한 표정이 없었고 주의한다고 할 때도 미안한 표정이 없었다. 그는 한결같이 굳어 버린 석고 같은 얼굴이었다. 사업을 길게 하면 저런 얼굴이 되는 걸까? 형이 필요에 의해 무감해졌는지 애초부터 무감했는지도 이제는 잊어버렸다.
형에게 말해야 할까? 형에게 해 주어야 할 말이 남았는데.
……매장 하나가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싹을 자르지 않으면 그 사람이 형님의 다리를 찍을 수도 있습니다. 더 커지면 싹을 자를 기회도 못 얻을 겁니다. 살고 싶으면, 지금 윤연희 그를 잘라 내셔야 합니다. 일어서지도 못하게 밟아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재규어나 흑표 따위가 아닙니다. 대호(大虎)예요. 몹시 위험합니다.
호진은 말하지 않았다. 두 개의 마음이 속에서 맹렬하게 싸웠다. 이성과 당위에 맞서는 감정은 제법 팽팽했다. 싸움의 승패가 갈라지기 전까지는 말할 수 없다.
사실 윤연희라는 싹을 지금 자르지 않는 것은 형님의 발등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내 발목을 찍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한정된 피자를 나눠 먹는 시장에서의 경쟁이니까.
하지만 그 사람이 만들어 가는 신화를 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한다. 흥미있다, 재미있는 사람이다, 하는 범주는 이미 넘어섰다. 그와 함께 일하고 싶다, 그가 키우는 회사가 어떤 전설을 만들어 내는지 보고 싶다, 그 사람의 성취에 함께 기뻐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독버섯처럼 번지면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잠식하는 중이었다.
K마트에 패를 올인하느냐, 윤연희 옆에서 그의 신화에 동참하느냐.
어느 쪽이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그래서 더 문제야.
호진은 시커멓게 멍든 얼굴을 손으로 덮고 소파 위로 쿡 기대앉았다.
……내가 요새 정말 정신이 빠졌나?
문제는 뭐가 문제야? 그 두 가지가 비교거리가 되기는 해?
재철은 소리 없이 들어와 있던 것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


연희는 한동안 호진의 얼굴을 보면 고개를 돌렸다. 어떤 때는 혀를 차며 눈썹을 찡그렸고, 호진이 의자에 앉으면서 아픈 기색을 내면 쿵쿵 다가와 책상에 진통제를 집어 던지듯 했다.
“얼굴이 왜 아직 그 모양입니까?”
그는 자신의 얼룩덜룩한 얼굴 상태는 기억하지도 못했다.
“약 안 바르고 다니십니까? 멍이 왜 아직 그대로 있습니까! 집에 계란 같은 거 없습니까?”
이젠 멍이 안 빠진다고 매일 닦달이다. 어지간히도 거슬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사건 이후 연희가 호진에게 더욱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건 보는 사람은 다 알았다. 그럴 만하다고도 생각했다. 경리부 직원들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킬킬 웃었다.
“어련하시겠어요, 사장님! 다 이해해요!”
“그래도 애정 표현은 저희 없는 데서 하세요!”
호진은 그런 농담에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연희는 정색하고 손을 내저었다.
“남자한테 애정 표현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런 농담 맙시다, 김 주임! 한가합니까? 일 없어요? 박연수 씨 일 많아서 연속 철야던데 사수가 대체 뭐하는 겁니까? 김 주임, 연수 씨 일 좀 나눕시다.”
“와아! 사장님 왕치사해요! 너무하세요!”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 가서 대가리를 들이밀고 일부러 얻어터진 사장이나 그 사장을 끌어안고 대신 얻어터진 비서실장이나 보통 사람들은 아니었다. 연희유통의 새로운 전설이 될 이야깃거리였다. 며칠 동안 사색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던 곽병진 과장은 호진이 퇴원해서 회사로 출근하자마자 그를 붙들어 앉히고 진지하게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