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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닥터 1권(20화)
8장 엘프(1)
“어디가 안 좋나요?”
“아무래도 어깨가 탈골된 것 같아. 탕카가 너무 세게 쥐어서 빠진 모양이야.”
“탈골? 그거 많이 아픈 병인가요?”
“아니, 간단히 치료할 수 있어. 잠깐만.”
난 요정을 바닥에 눕히고 한 손으로 고정한 채 빠진 팔을 잡았다. 그런 모양새가 되니 어쩐지 인형 놀이하는 것 같아 괜히 부끄러워졌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괜찮아, 조금만 참아.”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낀 것인지 요정은 온몸을 비틀며 바동거렸다. 만약 꽉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뿌리치고 도망갔을지도 모르겠다.
자, 실패하면 정말 도망갈지도 모르니 집중하고 살짝 비틀어 단숨에!
우득!
뼈가 맞춰지는 소리와 함께 팔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좋아, 성공이다.
“자, 이제 괜찮지?”
요정은 많이 아팠는지 바닥을 뒹굴었는데, 이내 괜찮다는 걸 알아차린 건지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자신의 어깨를 만져 댔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었다.
내가 하도 웃어서 그럴까? 요정은 불안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다 이내 후다닥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어…라? 뭐지? 뭔가 이 느낌, 매우 익숙한데…….
“아하!”
내가 갑자기 손뼉을 치자 에릴과 요정이 놀라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런 모습까지 똑 닮았네.
“이 요정… 에릴, 네 예전 모습이랑 닮았네! 너와 처음 만났던 그때랑 행동하는 게 판박이야! 하하하!”
“무, 무슨 소리예요! 판박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저, 저는 저러지 않았어요!”
아니라고 딱 잡아떼지만, 말을 더듬는 거 보니 에릴도 과거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응? 가만. 그렇다면 떠나지 않고 움막 주위를 서성거렸던 것도 요정 나름대로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는 건가?”
처음엔 과실주에 중독돼 떠나지 못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에릴의 행동 패턴과 접목해 보니 어쩌면 오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럴지도 몰라. 지금도 도망가지 않고 내 눈치를 살피고 있잖아.
“요정이 은혜를 갚는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글쎄요? 전에 말했다시피 저도 요정은 처음 봐서…….”
“하하! 역시 억측이겠지. 이 조그만 게 무슨 은혜야? 자자, 이젠 탕카에게 붙잡히지 말고 떠나가라. 다음에도 운 좋게 구해줄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말고. 그럼 안녕. 가자, 에릴.”
손가락으로 요정의 머리를 살짝 톡, 건드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에탄올 만들 증류기를 어찌 해결할지 고민을…….
“현호 님, 저기 뒤에…….”
“응? 어? 저 요정, 왜 따라오는 거야? 어이, 오지 마! 따라오면 위험하다니까!”
내가 짐짓 엄하게 소리치자 요정은 후다닥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쉽게 떠나갈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이해가 안 가네. 왜 저러는 거지?”
“글쎄요. 현호 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하지만… 간절해 보이는데요?”
에릴의 말대로 요정을 보니 마치 길 잃은 강아지마냥 처량한 모습이었다.
난 잠시 고민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았다. 머물 곳이 없다면 잠시 보살펴 줄 수는 있어. 하지만 오크들에게 발견되면… 우왁!”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정이 내 곁으로 날아들었다. 설마 지금 내 말 알아듣고 있는 건가?
정말 그러기라도 한 것처럼 요정은 기쁘다는 듯이 내 주위를 몇 번 휘돌더니, 이내 머리 위에 풀썩 안착했다. 그런 모습이 너무도 신기해 멍하니 에릴을 돌아보니 그녀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후훗, 요정은 의심이 많아 타인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신기하네요.”
“그래? 내가 보기엔… 뭔가 잘못 전해진 것 같은데.”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에릴은 잠시 그런 나와 머리 위의 요정을 고민하는 얼굴로 번갈아 보더니, 이내 손뼉을 쳤다.
“알았어요! 어째서 현호 님이 다른 자들과 어디가 다른지!”
“응? 뭐가? 아, 또 그 얘긴가?”
“네! 드디어 알았어요!”
“대체 어디가 다르다고. 그래서, 결론은 뭔데?”
“그 눈빛! 그 눈빛이 달라요!”
“눈…빛?”
생각지도 못한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해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요. 어째선지 현호 님의 눈빛을 보면 그냥 믿음이 가요. 분명 무서운 인간인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종족인데도 해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요. 오크들도 분명 그렇게 생각해서 투아를 선물로 준 게 틀림없어요! 그리고 이것 보세요! 의심이 많아 절대 어울릴 수 없다는 요정도 현호 님을 따르잖아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눈이 다 똑같은 눈이지, 그런 게 어딨어?”
“정말이라니까요!”
에릴은 한사코 그게 맞다는 듯 양 주먹을 꽉 쥔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눈빛이 다르다니. 무슨 내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얼토당토않은 소리 그만하고 돌아가자. 오늘은 해야 할 게 많… 에릴! 위험해!”
“꺅!”
에릴의 등 뒤에서 무언가 휙 날아오는 게 보여 다급히 에릴에게 뛰어들었다.
“으윽!”
겨우 에릴을 밀쳤다. 그와 동시에 쐐애액, 하며 날아온 무언가가 내 어깨를 스치며 땅에 박혔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에릴은 사색이 된 얼굴로 내게 달려왔다.
“혀, 현호 님!”
“괘, 괜찮아. 어깨에 조금 스쳤을 뿐이야. 그보다 이건… 화살?”
땅에 박혀 있는 건 분명 화살촉이었다, 그것도 매우 정교한.
2년 동안 함께 살아온 바로 오크는 창을 던지면 던졌지, 화살을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정교한 모양의 화살을 만들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오크 이외의 다른 누군가가 쏜 화살이다.
날아온 방향으로 봐선 오크 마을과 정반대 숲 속이다. 큰 포물선을 그린 걸로 봐선 꽤 먼 거리에서 쏜 것 같은데, 이렇게 험준한 산속에서 정확히 우리를 노리고 쐈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질 않았다.
혹시 우연히 우리에게 화살이 날아왔던 게 아닐까, 하고 희망을 품어봤지만, 그 희망은 바로 놓아주어야 했다.
저 하늘에서 다시 쐐애액, 하는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도, 도망쳐!”
“꺄아아아악!”
다급히 에릴의 손을 붙잡고 달렸다. 몸을 움직이기 무섭게 우리가 있던 자리에 투파바바바바박! 화살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듣기론 적어도 수십 발 이상. 내 머리 위에 앉아 있던 요정도 겁이 난 것인지, 다급히 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우와아아아아아악!”
화살이 마치 우리 뒤를 따라오듯 달리는 곳곳에 화살이 박혀들었다. 만약 우리 주위에 나무가 없었더라면 화살 받이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의문사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젠장, 2년 동안 편히 생활하다 보니 가장 큰 것을 망각하고 있었어! 이곳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는데!
“꺄악!”
“이쪽이야!”
에릴 바로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화살을 보고 이대로 정직하게 달려선 답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다급히 방향을 틀어 언덕 아래로 내려가 큰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하아, 하아. 대체 이게 무슨…….”
“쉿.”
누군가 언덕 위를 달리는 소리가 들려 다급히 에릴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사이 인기척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긴장이 에릴에게까지 전해진 것인지, 내 손을 꽉 잡는 손길이 느껴진다.
낙엽 밟는 소리가 거의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추적자는 두 명뿐인지 서로 뭐라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생전 처음 듣는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나와 에릴은 최대한 바위 뒤에 몸을 밀착시킨 채 제발 그 두 명이 떠나가기만을 바랐다.
곧 두 인기척이 점점 멀어졌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숨소리도 새어 나가지 않게 하려고 입을 손으로 막으며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완전히 사라진 인기척. 에릴과 내가 서로를 바라보다 굳어진 어깨를 늘어트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팍!
귓등을 스치듯 바위에 단검을 박아 넣은, 금빛 머리에 뾰족한 귀가 무척 특이한 한 남성이 내 눈앞에서 씩 웃는 모습이 보였다.
정신을 잃은 채 몇 시간을 끌려온 걸까? 간신히 눈을 떴을 땐 이미 어둠이 가득한 곳으로 끌려온 뒤였다.
“으윽! 이거 놔! 놓으란 말… 크윽!”
뒤늦게 발버둥 치자 좌우에서 날 붙잡고 있던 뾰족 귀 남성 둘이 어느 지하 공간 안으로 날 패대기쳤다.
숨이 턱 막힐 만큼 어깨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아까 화살에 스친 상처가 방금 전의 충격으로 더 크게 찢어진 모양이다.
내가 괴로움에 몸부림치자 뾰족 귀 남성 둘은 그런 나를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한동안 내려다보더니, 이내 문을 쾅! 닫아버렸다. 찰그랑, 쇠 마찰음이 들리는 것을 보니 자물쇠까지 단단히 채우는 모양이었다.
“잠깐! 이봐! 기다려! 에릴은 어디로 데려간 거야! 기다리라고! 제기랄!”
몇 번 문을 쾅쾅! 두드리다 주르륵, 미끄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뾰족한 귀. 분명 오크 대족장에게 들은 기억이 있다. 이 섬 서쪽 끝엔 뾰족 귀를 한, 엘프라는 종족이 있다는 말을.
이 섬은 몹시 좁기 때문에 섬 중앙에 위치한 에메랄드 마운틴을 경계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서로 섬을 차지하기 위해 잦은 영역 다툼을 벌여왔다고 했다. 그때 분명 뾰족한 귀를 언급했으니, 아마 나를 붙잡은 이들은 엘프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설마 엘프라는 종족이 뾰족한 귀만 다를 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니.
뾰족한 귀가 조금 특이할 뿐, 겉모습은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정교한 화살촉, 검과 자물쇠를 만들 정도로 금속을 세밀하게 다루며 이런 독방 같은 감옥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오크에 비해 문명도 몇 단계나 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론 오크는 사냥과 채집이 주를 이루기에 먹을 게 많은 풍성한 토지가 필요했고, 그렇기에 항상 침범하고 공격했던 건 오크이며 방어적 성향을 띤 건 엘프였다고 알고 있다.
그런 엘프가 되레 오크영역을 침범했다? 도대체 왜?
2년 전, 내가 온 뒤부터 식량문제가 사라져 오크는 엘프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됐다. 그 사실에 가장 반가워해야 할 종족은 엘프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나를 이리 적대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8장 엘프(1)
“어디가 안 좋나요?”
“아무래도 어깨가 탈골된 것 같아. 탕카가 너무 세게 쥐어서 빠진 모양이야.”
“탈골? 그거 많이 아픈 병인가요?”
“아니, 간단히 치료할 수 있어. 잠깐만.”
난 요정을 바닥에 눕히고 한 손으로 고정한 채 빠진 팔을 잡았다. 그런 모양새가 되니 어쩐지 인형 놀이하는 것 같아 괜히 부끄러워졌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괜찮아, 조금만 참아.”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낀 것인지 요정은 온몸을 비틀며 바동거렸다. 만약 꽉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뿌리치고 도망갔을지도 모르겠다.
자, 실패하면 정말 도망갈지도 모르니 집중하고 살짝 비틀어 단숨에!
우득!
뼈가 맞춰지는 소리와 함께 팔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좋아, 성공이다.
“자, 이제 괜찮지?”
요정은 많이 아팠는지 바닥을 뒹굴었는데, 이내 괜찮다는 걸 알아차린 건지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자신의 어깨를 만져 댔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었다.
내가 하도 웃어서 그럴까? 요정은 불안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다 이내 후다닥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어…라? 뭐지? 뭔가 이 느낌, 매우 익숙한데…….
“아하!”
내가 갑자기 손뼉을 치자 에릴과 요정이 놀라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런 모습까지 똑 닮았네.
“이 요정… 에릴, 네 예전 모습이랑 닮았네! 너와 처음 만났던 그때랑 행동하는 게 판박이야! 하하하!”
“무, 무슨 소리예요! 판박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저, 저는 저러지 않았어요!”
아니라고 딱 잡아떼지만, 말을 더듬는 거 보니 에릴도 과거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응? 가만. 그렇다면 떠나지 않고 움막 주위를 서성거렸던 것도 요정 나름대로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는 건가?”
처음엔 과실주에 중독돼 떠나지 못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에릴의 행동 패턴과 접목해 보니 어쩌면 오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럴지도 몰라. 지금도 도망가지 않고 내 눈치를 살피고 있잖아.
“요정이 은혜를 갚는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글쎄요? 전에 말했다시피 저도 요정은 처음 봐서…….”
“하하! 역시 억측이겠지. 이 조그만 게 무슨 은혜야? 자자, 이젠 탕카에게 붙잡히지 말고 떠나가라. 다음에도 운 좋게 구해줄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말고. 그럼 안녕. 가자, 에릴.”
손가락으로 요정의 머리를 살짝 톡, 건드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에탄올 만들 증류기를 어찌 해결할지 고민을…….
“현호 님, 저기 뒤에…….”
“응? 어? 저 요정, 왜 따라오는 거야? 어이, 오지 마! 따라오면 위험하다니까!”
내가 짐짓 엄하게 소리치자 요정은 후다닥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쉽게 떠나갈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이해가 안 가네. 왜 저러는 거지?”
“글쎄요. 현호 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하지만… 간절해 보이는데요?”
에릴의 말대로 요정을 보니 마치 길 잃은 강아지마냥 처량한 모습이었다.
난 잠시 고민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았다. 머물 곳이 없다면 잠시 보살펴 줄 수는 있어. 하지만 오크들에게 발견되면… 우왁!”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정이 내 곁으로 날아들었다. 설마 지금 내 말 알아듣고 있는 건가?
정말 그러기라도 한 것처럼 요정은 기쁘다는 듯이 내 주위를 몇 번 휘돌더니, 이내 머리 위에 풀썩 안착했다. 그런 모습이 너무도 신기해 멍하니 에릴을 돌아보니 그녀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후훗, 요정은 의심이 많아 타인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신기하네요.”
“그래? 내가 보기엔… 뭔가 잘못 전해진 것 같은데.”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에릴은 잠시 그런 나와 머리 위의 요정을 고민하는 얼굴로 번갈아 보더니, 이내 손뼉을 쳤다.
“알았어요! 어째서 현호 님이 다른 자들과 어디가 다른지!”
“응? 뭐가? 아, 또 그 얘긴가?”
“네! 드디어 알았어요!”
“대체 어디가 다르다고. 그래서, 결론은 뭔데?”
“그 눈빛! 그 눈빛이 달라요!”
“눈…빛?”
생각지도 못한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해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요. 어째선지 현호 님의 눈빛을 보면 그냥 믿음이 가요. 분명 무서운 인간인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종족인데도 해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요. 오크들도 분명 그렇게 생각해서 투아를 선물로 준 게 틀림없어요! 그리고 이것 보세요! 의심이 많아 절대 어울릴 수 없다는 요정도 현호 님을 따르잖아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눈이 다 똑같은 눈이지, 그런 게 어딨어?”
“정말이라니까요!”
에릴은 한사코 그게 맞다는 듯 양 주먹을 꽉 쥔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눈빛이 다르다니. 무슨 내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얼토당토않은 소리 그만하고 돌아가자. 오늘은 해야 할 게 많… 에릴! 위험해!”
“꺅!”
에릴의 등 뒤에서 무언가 휙 날아오는 게 보여 다급히 에릴에게 뛰어들었다.
“으윽!”
겨우 에릴을 밀쳤다. 그와 동시에 쐐애액, 하며 날아온 무언가가 내 어깨를 스치며 땅에 박혔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에릴은 사색이 된 얼굴로 내게 달려왔다.
“혀, 현호 님!”
“괘, 괜찮아. 어깨에 조금 스쳤을 뿐이야. 그보다 이건… 화살?”
땅에 박혀 있는 건 분명 화살촉이었다, 그것도 매우 정교한.
2년 동안 함께 살아온 바로 오크는 창을 던지면 던졌지, 화살을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정교한 모양의 화살을 만들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오크 이외의 다른 누군가가 쏜 화살이다.
날아온 방향으로 봐선 오크 마을과 정반대 숲 속이다. 큰 포물선을 그린 걸로 봐선 꽤 먼 거리에서 쏜 것 같은데, 이렇게 험준한 산속에서 정확히 우리를 노리고 쐈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질 않았다.
혹시 우연히 우리에게 화살이 날아왔던 게 아닐까, 하고 희망을 품어봤지만, 그 희망은 바로 놓아주어야 했다.
저 하늘에서 다시 쐐애액, 하는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도, 도망쳐!”
“꺄아아아악!”
다급히 에릴의 손을 붙잡고 달렸다. 몸을 움직이기 무섭게 우리가 있던 자리에 투파바바바바박! 화살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듣기론 적어도 수십 발 이상. 내 머리 위에 앉아 있던 요정도 겁이 난 것인지, 다급히 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우와아아아아아악!”
화살이 마치 우리 뒤를 따라오듯 달리는 곳곳에 화살이 박혀들었다. 만약 우리 주위에 나무가 없었더라면 화살 받이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의문사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젠장, 2년 동안 편히 생활하다 보니 가장 큰 것을 망각하고 있었어! 이곳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는데!
“꺄악!”
“이쪽이야!”
에릴 바로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화살을 보고 이대로 정직하게 달려선 답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다급히 방향을 틀어 언덕 아래로 내려가 큰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하아, 하아. 대체 이게 무슨…….”
“쉿.”
누군가 언덕 위를 달리는 소리가 들려 다급히 에릴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사이 인기척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긴장이 에릴에게까지 전해진 것인지, 내 손을 꽉 잡는 손길이 느껴진다.
낙엽 밟는 소리가 거의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추적자는 두 명뿐인지 서로 뭐라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생전 처음 듣는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나와 에릴은 최대한 바위 뒤에 몸을 밀착시킨 채 제발 그 두 명이 떠나가기만을 바랐다.
곧 두 인기척이 점점 멀어졌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숨소리도 새어 나가지 않게 하려고 입을 손으로 막으며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완전히 사라진 인기척. 에릴과 내가 서로를 바라보다 굳어진 어깨를 늘어트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팍!
귓등을 스치듯 바위에 단검을 박아 넣은, 금빛 머리에 뾰족한 귀가 무척 특이한 한 남성이 내 눈앞에서 씩 웃는 모습이 보였다.
정신을 잃은 채 몇 시간을 끌려온 걸까? 간신히 눈을 떴을 땐 이미 어둠이 가득한 곳으로 끌려온 뒤였다.
“으윽! 이거 놔! 놓으란 말… 크윽!”
뒤늦게 발버둥 치자 좌우에서 날 붙잡고 있던 뾰족 귀 남성 둘이 어느 지하 공간 안으로 날 패대기쳤다.
숨이 턱 막힐 만큼 어깨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아까 화살에 스친 상처가 방금 전의 충격으로 더 크게 찢어진 모양이다.
내가 괴로움에 몸부림치자 뾰족 귀 남성 둘은 그런 나를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한동안 내려다보더니, 이내 문을 쾅! 닫아버렸다. 찰그랑, 쇠 마찰음이 들리는 것을 보니 자물쇠까지 단단히 채우는 모양이었다.
“잠깐! 이봐! 기다려! 에릴은 어디로 데려간 거야! 기다리라고! 제기랄!”
몇 번 문을 쾅쾅! 두드리다 주르륵, 미끄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뾰족한 귀. 분명 오크 대족장에게 들은 기억이 있다. 이 섬 서쪽 끝엔 뾰족 귀를 한, 엘프라는 종족이 있다는 말을.
이 섬은 몹시 좁기 때문에 섬 중앙에 위치한 에메랄드 마운틴을 경계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서로 섬을 차지하기 위해 잦은 영역 다툼을 벌여왔다고 했다. 그때 분명 뾰족한 귀를 언급했으니, 아마 나를 붙잡은 이들은 엘프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설마 엘프라는 종족이 뾰족한 귀만 다를 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니.
뾰족한 귀가 조금 특이할 뿐, 겉모습은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정교한 화살촉, 검과 자물쇠를 만들 정도로 금속을 세밀하게 다루며 이런 독방 같은 감옥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오크에 비해 문명도 몇 단계나 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론 오크는 사냥과 채집이 주를 이루기에 먹을 게 많은 풍성한 토지가 필요했고, 그렇기에 항상 침범하고 공격했던 건 오크이며 방어적 성향을 띤 건 엘프였다고 알고 있다.
그런 엘프가 되레 오크영역을 침범했다? 도대체 왜?
2년 전, 내가 온 뒤부터 식량문제가 사라져 오크는 엘프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됐다. 그 사실에 가장 반가워해야 할 종족은 엘프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나를 이리 적대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