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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닥터 1권(10화)


4장 감옥 같은 섬(1)


“좋아! 완성이다!”
그로부터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나뭇잎을 엮어 어설프지만 돛과 노를 만들었다. 장장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 걸려서야 기본적인 바다 여행 준비가 끝난 것이다. 이제 바다에서 먹고살 식량과 물만 충분히 준비하면 바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뭐야, 신기해? 그건 노야, 노. 그러니까 이렇게 저어서 뗏목을 움직이거나 방향키 역할을 해주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노를 톡톡, 건들며 의아해하는 인어가 귀여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니, 인어는 내 행동을 조금 따라 하다가 웃기 시작했다.
선물을 준 후부터일까? 10m 거리가 더욱 좁혀져 이젠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까지 진전되었다. 게다가 내가 말을 걸어도 놀라거나 하지 않아 최근 이렇게 서로 대화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 물론 내 일방적인 대화일 뿐이지만.
“너는 말을 못하는 거야?”
처음 만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역시나 인어는 뭐라 입을 뻥긋거리더니, 이내 포기한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쉽네. 말상대라도 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뭐, 네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안정되지만.”
이건 빈말이 아니다. 정말 알게 모르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장장 한 달 반이 넘도록 혼자서 이 무인도에 살았다면 정말 미쳐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이전에 인어가 생선을 구해다 주지 않았더라면 이미 이 세상을 하직했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은혜는 갚았을 텐데, 여태껏 인어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다. 그녀도 나름대로 생활이 있을 것이고, 가족과 동료가 있을 텐데도…….
내 측은한 표정을 따라 하는 건지, 인어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마저도 귀여워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고 보니… 이제 배는 괜찮아?”
내가 배를 가리키며 묻자 인어는 허리에 묶은 가운을 들춰 상처를 보여주었다.
바닷속을 들락거리는 탓에 세균이 침입할지 몰라 걱정했는데, 놀랍게도 이미 상처는 거의 다 나아 있었다. 생각해 보니 배를 짼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바다로 돌아갈 정도였으니, 엄청난 재생력이 아닐 수 없었다.
“놀라워. 완쾌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야. 실도 이미 녹아 사라진 것 같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흡수성 봉합사를 사용했던 게 정답이라고 할까? 잘못했으면 실밥이 그대로 남아 크게 흉이 질 뻔했다. 아무리 사람과 비슷하다지만, 역시 인어라 재생력에서 차원이 다른 걸까? 보통은 수술 후에 적어도 몇 주간 요양해야 하는데, 지금껏 아파하는 낌새도 보이지 않았고.
“아, 미안. 놀랐어?”
무심코 상처에 손을 얹자 인어가 깜짝 놀라 뒷걸음쳤다. 이거, 의사 생활 하던 습관 덕에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올라가 버렸네.
“뭘 어쩌려는 건 아니고… 으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 쩔쩔매고 있는데, 놀랍게도 인어가 먼저 내게 다가와 내 손을 잡더니 상처 부위에 턱 얹어놓았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인어는 그 신비한 에메랄드 빛 눈동자로 그런 나를 직시하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아니겠는가.
지금 내 말을 알아들은 건가?
내 손을 잡은 인어의 손이 약하지만 떨리고 있는 걸 느꼈다.
그렇구나. 내 말을 알아들은 게 아니야. 그저 나를 믿고 용기 내 저러는 것뿐이었어.
지금까지 인어가 직접 나를 건드린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얼마나 용기를 내 취한 행동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장하네. 아, 미안.”
너무도 기특해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황급히 손을 뺐다. 기분이 상한 것인지, 인어의 얼굴이 붉게 변했기 때문이다.
이거, 조심해야겠는걸.

“식량 준비 완료! 물도 이 정도면 충분해. 드디어 출발이다!”
이틀간 식량과 물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 나는 드디어 고대하고 또 고대하던 무인도 탈출을 감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하루 멧돼지처럼 진흙 팩을 온몸에 바르고 지냈던 것도, 벌레들에게 물어뜯기며 밤을 지새웠던 것도, 하루하루 살아갈 걱정 하며 필사적으로 식량을 구했던 것도… 이제 전부 안녕이다.
어쩌면 바다로 나가는 게 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지금 생활보다 위험할 거다. 그럼에도 나는 뗏목을 타고 나아갈 생각이다. 적어도 바다로 나가는 일은 희망이란 것이 있으니까.
“너도 가고 싶어?”
인어는 뗏목에 돛을 단 모습이 신기한지 연신 돛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귀여워 내가 장난치듯 묻자 인어는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활짝 웃는다.
“고마워. 덕분에 여기까지 해낼 수 있었어.”
정말 감사한 마음에 손을 내밀자 인어가 의아해한다.
역시 악수란 걸 알 리가 없겠지.
어쩔 수 없이 인어의 손을 억지로 잡아당겨 반강제로 악수를 해 보였다. 인어는 처음엔 놀란 표정을 보였지만, 이내 내가 장난치는 줄 알고 자신이 더 손을 흔들어 댔다.
악수의 의미를 모르기에 인어는 웃을 수 있겠지. 그래, 차라리 그 모습이 더 보기 좋다. 헤어질 때 우는 것보다야 낫겠지.
난 씁쓸히 웃으며 인어의 손을 놓고 뗏목을 잡았다.
“그럼 간다! 이곳도 안녕이다!”
힘차게 뗏목을 바닷가로 밀었다. 한 번 뗏목을 물 위로 띄우면 나무가 물을 먹어 무거워지므로 다신 해변으로 가져올 수 없다. 정말 뗏목을 띄우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상어 떼를 만나 물고기 밥이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태풍을 만나 물속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며, 또 어쩌면 식량이 다 떨어져 처량하게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결심했다. 비록 죽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모험을 감행했노라고.
“좋아! 출발이다!”
뗏목을 띄우자마자 재빨리 위에 올라타 힘차게 소리 질렀다. 별거 아닌 행동이지만,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자, 나는 기필코 살아남겠어!
뗏목은 파도를 탄 것인지 노를 젓지 않아도 금세 해변에서 멀어졌는데, 어느새 손가락만큼 작아진 인어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인어는 몹시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랄 만도 하겠지. 뗏목이 이런 용도일지는 몰랐을 테니까.
“잘 있어라! 건강하고!”
인어가 나를 향해 뭐라 말하는 것 같아(그저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지만) 노를 들어 올려 마주 인사해 주었다. 인어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어째선지 발을 동동 구르더니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응? 뭐야? 따라오지 마! 이제 너도 네 갈 길을 가라고! 응? 어이! 잠깐, 뭐하는 짓이야!”
금세 날 따라잡은 인어가 갑자기 뗏목을 뒤로 잡아끌기 시작했다. 내가 당황해 노를 이용해 떼어내자 이번엔 반대편으로 돌아 온 힘을 다해 해변으로 밀기 시작했다. 정말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만해! 이미 파도를 타서 소용없다고!”
인어는 매우 필사적이었지만, 이미 파도를 탄 뗏목을 막을 수는 없어 안쓰럽기만 했다.
“하아, 그만해라. 바다로 나가는 게 위험하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그래도 나는 가야 한단 말이다. 그러니 너도 나한테 붙들려 있지 말고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
열심히 해변으로 뗏목을 밀고 있는 인어가 안타까워서 말하니, 인어는 다급한 얼굴로 고개를 붕붕 저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한테 뭔가 말하고 싶은 거라도 있는 거야? 하아, 답답해 죽겠네. 어차피 이미 되돌리기엔 늦었… 응? 어? 배다! 그 배야! 전에 봤던 그 배라고!”
인어에게 말하던 도중 수평선 너머로 커다란 배의 모습을 포착했다. 해변에서 봤을 땐 자세히 안 보였는데, 이렇게 바다로 나오니 확실히 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한 점은 기본적인 선박(船舶)이나 함선(艦船) 같은 게 아니라 나무로 만든 목선(木船)이란 것이 특이했지만, 어찌 됐든 배라는 게 중요했다.
“여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제길! 좀 더 다가가야 해!”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리라.
필사적으로 노를 저었다. 인어가 나를 가로막든 말든 그대로 밀치고 앞으로 나갔다.
인어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나와 저 멀리 배를 번갈아 보더니, 다시 다급히 입을 뻐끔거렸다. 당연히 소리는 들리지 않아 내가 무시하고 있자, 무언가 결심한 것인지 놀랍게도 뗏목 위로 풀쩍 뛰어오르는 게 아니겠는가. 덕분에 무게중심이 흔들려 하마터면 뗏목이 뒤집어질 뻔해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뭐하는 짓이야! 하마터면 뒤집힐 뻔… 흡!”
사고가 정지됐다. 들고 있던 노도 그만 놓쳐 버리고 말았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눈앞에 보이는 에메랄드 보석 같은 눈동자, 볼가를 스치는 축축한 머릿결, 그리고 서로 맞닿은 입술.
오랜만에 느낀 키스의 맛은 무척이나 짰다.
“푸하! 지금 뭐하는 짓……!”
“위험하다고요!”
또다시 사고가 정지됐다. 그 정도로 놀랐다. 인어가 내 앞에서 소리친 것이다.
“마, 말할 수… 있었어?”
“당장 해변으로 돌아가야 해요! 여긴 위험… 꺅!”
“우왁!”
쾅!
뜬금없이 앞으로 잘 나가던 뗏목이 다이너마이트에 폭사한 것처럼 터져 버렸다. 정말이지, 터진다는 단어가 정말 적당했다. 말 그대로 터져 버렸으니까.
“푸하! 무, 무슨 일이야!”
난 조각난 나무 파편을 하나 부둥켜안고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배가 터지다니! 아니, 그 이전에 배가 터진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이거 때문이에요!”
인어가 주위에 떠 있던 나무 파편을 하나 집어 정면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무 파편은 허공에서 펑! 소리와 함께 박살 나버렸다. 동시에 난 나무 파편이 닿은 곳을 중심으로 파문이 일 듯, 빛에 굴절된 무언가가 사방으로 번져 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벼, 벽? 눈에 보이지 않는 벽?”
“네! 이 섬 전체는 저 위험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고요!”
“뭐, 뭐라고? 그, 그럴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나무 파편을 집어 던졌다. 다른 곳을 향해 또 던졌다. 포기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집어 던졌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터지지 않는 게 없었다.
하, 하하…….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저 멀리에는 아직도 목선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난 여기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해 그저 허망하게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신의 저주인가? 이곳은 무인도가 아니라 신이 만든 감옥이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제기랄, 빌어먹을! 젠자아아아아앙!”
내가 맞이하고자 했던 희망은 불과 30분도 채 되지 않아 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