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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닥터 1권(8화)
3장 은혜(1)
“으음…….”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날이 밝아올 무렵, 간신히 눈을 떴을 땐 인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주위를 둘러봤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눈을 끔뻑거리다 퍼뜩 정신 차린 나는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없다. 정말 없다. 말도 안 돼. 어째서?
분명 큰 상처였다. 아무리 맹장이라지만 족히 일주일은 요양해야 하는 상태인데 사라져 버리다니! 설마 어젯밤 사이에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바다로 돌아간 건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굳이 움직이려고 하면 못 움직일 것까진 없겠지만, 그 인어는 다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아픈 몸으로 바닷가까지 기어갔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백번 양보해 바다까지 기어갔다고 하면 필시 몸을 끌고 간 흔적이 남아 있어야 정상이건만, 그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허공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종적을 감춰 버린 상태. 이게 어찌 된 거지?
“하, 뭐야? 설마 나… 꿈이라도 꾸었던 건가?”
설마 어제 그 모든 일은 전부 꿈이었던 걸까? 딱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말 어제 난 빈혈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나흘을 보내니 스트레스로 정신까지 피폐해져 버린 걸지도…….
“뭐… 그게 꿈인들 생시인들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기를 관뒀다. 정말 현실이든 꿈이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보다 오늘 당장 먹을 양식부터 생각하는 게 내 정신과 육체에 이득일 것이다.
“웃차, 오늘은 꼭 낚자.”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아침이기에 낚시하기는 가장 좋다. 그나마 서늘해서 일사병에 걸릴 일은 없을 테니까.
오늘은 고둥 대신 작은 게를 미끼로 써볼 생각이다. 그걸로 무엇을 낚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둥보단 낫겠지.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낚시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모른 채.
오후가 지나도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정말 포인트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내 낚싯바늘에 문제가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물고기가 먹는 미끼를 잘못 선택한 걸까? 솔직히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줄곧 손에 쥔 건 메스지 낚싯대가 아니었으니까.
결국 오후 늦은 무렵, 다시 고둥만 한 아름 안은 채 철수했다.
“포기해야 하나…….”
조금 쓴맛이 느껴지는 고둥을 쪽쪽 빨아 먹으며 중얼거렸다. 이럴 거면 차라리 조금 위험하더라도 근처 숲에서 버섯이나 나무 열매를 찾는 게 더 이득일 것 같…….
“우웁!”
갑자기 구토기가 몰려왔다.
뭐지? 속이 메스꺼워. 덜 익은 고둥을 먹어서 탈이 난 건가?
갑작스러운 몸의 이상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분명 혹시나 해서 고둥은 확실히 푹 익혀 먹었는데, 어디서 뭘 잘못 먹은 거지?
다급히 내 몸 상태를 체크했다. 우선 위에서 압통이 느껴지는 건 아니니 염증류는 아니다. 피부의 발진이나 가려움증도 없는 걸 보니 식중독도 아냐. 그럼 설마… 기생충?
몸이 오싹해졌다. 지금 내게 구충제 같은 건 없다. 무슨 경로에서든 기생충에 감염되었다면 동고동락하며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제발 녀석이 뇌까지 올라가 자리를 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 뿐인 거다.
“제기랄!”
웃기지도 않는 사실은 기생충의 종류가 워낙 많아 증상도 정말 수도 없이 많다는 것. 간단히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지속적인 여드름이나 식욕부진, 구취, 호흡곤란, 부종, 이명, 간헐적인 변비와 설사만으로도 기생충을 의심해야 한다. 그래서 내과의조차 많이 착각하고 진단해 후에 몸을 열었다가 기생충 덩어리를 보고 기겁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다.
그래도 확실히 진단하기 위해 난 내 몸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보았다.
우선 구토 증상. 그리고 뭐가 있지? 혼수? 그러고 보니 두통도 조금 느껴진다. 피부도 여기저기 햇볕에 타서 붉게 올라왔고, 땀으로 흥건… 잠깐, 이건…….
“단순한 일사병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불가에서 멀어져 그늘을 찾았다.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이런 것도 하나 체크 못하고 있었다니. 정말 바보다, 나는.
일사병이란 고온 속 환경에 노출되어 심부 신체의 온도가 섭씨 37도에서 40도 사이로 상승하여, 적절한 심박출을 유지할 수 없으나 중추신경계의 이상은 없는 상태를 말한다.
구토나 복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으니 지금 내 상태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래도 나 같은 경우는 뙤약볕에서 무리하게 낚시를 했던 게 탈이 난 것 같았다. 가뜩이나 물도 부족한데 장시간 햇볕에 노출되었으니, 일사병에 걸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게다가 이런 몸으로 불가에 앉아 식사를 했으니…….”
이런 더운 날 불가에 앉아 식사한다는 것 자체가 죽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건데, 그런 사실도 잊고 있었다니. 의사라는 간판은 아무래도 내려놓아야 할 듯싶다.
그래도 천만다행이랄까, 만약 일사병을 넘어 열사병까지 번지거나, 위염 또는 병원균 감염이었다면 정말 손쓸 수도 없었을 거다.
어쨌거나 일사병이라면 서늘한 곳에 앉아 30분간 휴식하는 것만으로도 적당한 회복이 가능하다. 물이 많다면 좀 더 괜찮았겠지만… 많은 걸 바라면 안 되겠지.
지금 내게 있어선 물보다도 우선은 식량이다.
“이대로 고둥만 먹다간 없는 병도 찾아올 거야. 위험하지만 산속에서 먹을 걸 찾아야 해.”
바다에서 먹을 걸 찾을 수 없다면 산속에서 찾으면 된다. 다행히도 한의학을 공부할 때 여러 가지 약초에 대해서도 알아둔 터라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정녕 하늘은 나를 버린 걸까? 허망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천둥을 치기 시작했다.
쏴아아.
지겹도록 쏟아지는 폭우. 처음에는 일사병에 도움이 될 물을 쉽게 구할 수 있겠거니 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사흘이 넘어가자 진심으로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비에 젖어 감기라도 걸리면 그걸로 끝인지라 바위 굴속에 들어가 몸을 웅크린 채 물만 먹었다.
“으으…….”
나뭇가지를 많이 모아놓지도 못해 모닥불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꺼져 버린지라 오로지 인내로 추위를 버텨내야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마른 나뭇가지를 많이 모아놓는 건데. 이제 와 폭우 속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니, 그저 내 체온만으로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지만.
그렇게 이틀이 더 지나 닷새째가 되었다. 드디어 저주스러운 폭우가 지나가고 햇볕이 쨍쨍 내리비췄다.
하지만 내 몸은 닷새를 버텨내지 못했다.
“하아, 하아…….”
머리가 어지럽다. 몸도 무기력해 움직여지지 않는다. 닷새 동안 추위 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밸런스가 무너진 것인지, 두통과 오한, 발열까지 찾아왔다.
“뭐라도… 먹어야… 하아, 하아…….”
호흡이 가쁘다. 추위로 인해 감기가 찾아온 건지 몸을 일으키기만 해도 빈혈 증상에 머리가 어지러웠고, 무기력증에 구토까지 몰려왔다.
이런 몸 상태로 움직이라고? 절대로 무리다.
기껏 해가 찾아왔건만, 내 몸은 손가락조차 까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여기까지 버텼는데… 정말 필사적으로 버텼는데…….
난 옆으로 누운 채 멍하니 바위 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내 눈에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나왔다.
내가 이렇게나 잘 우는 사람이었던가?
몇 년 동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가 요 며칠 새 거의 하루마다 운 것 같다.
“살고… 싶어, 누가… 제발… 살려…줘.”
잔뜩 잠긴 목소리로 애타게 구원을 요청했다. 머릿속에는 어째선지 자꾸만 선배와 자영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하루가 더 지났다. 물조차 마시지 못해 입술도 비쩍비쩍 말랐다. 푸들푸들 떨리는 손을 들어서 바라보니 뼈의 굴곡이 다 보일 정도로 메말라 있고, 손톱도 전부 갈라져 보기 흉하게 되어 있었다.
이게 내 손이라고?
지금 내 얼굴은 어떠할까? 좀비처럼 삭막한 인상에 눈도 퀭해 있지 않을까?
이렇게 나는 죽는 건가? 아무도 모르는 이런 무인도에서 처량하게?
사실 죽는 건 그렇게 무섭지 않다. 언제나 환자를 집도하며 나 역시 그러한 상황이 찾아올 것이고, 언젠가는 죽을 거라고 줄곧 인식해 왔으니까. 오히려 지금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죽음이 아니라 이렇게 죽었다는 걸 영원히 아무도 알아채 주지 못한다는 외로움이었다. 그래, 이렇게 홀로 죽어 사라진다는 건 정말 쓸쓸하다는 걸 이제 깨달았다.
그래도 엿새 동안 내 마음도 어느 정도 정리된 것인지 느긋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되도록 고통스럽지 않게 잠든 사이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엿새째가 지나고, 일주일이 될 무렵이었다.
잠에서 깨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직도 살아 있다는 현실에 한숨을 쉬었는데, 무언가 눈앞에서 펄떡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가물거리는 눈동자로 눈앞에 인식되는 무언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당히 놀라고 말았다.
생선이었다. 무슨 종류의 생선인지는 시력이 약해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건 생선이었다.
대체 어째서 여기에 생선이, 그것도 갓 잡아 올린 것처럼 싱싱하게 살아 있는 생선이 여기 있는 건지 생각할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저 반사적으로, 또는 본능에 따라 힘겹게 손을 뻗어 생선을 잡았다. 무게가 상당하다. 내 팔뚝만 하달까?
이젠 손가락 하나도 까닥할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건만, 대체 체력이 어디서 솟아난 것인지 난 그 팔팔한 생선을 양손으로 꽉 잡아 으적, 씹었다.
바다의 짠맛과 생선의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하지만 지금 내게 맛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몸이 이 생선을 원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의 몸이란 참으로 신비롭다.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았는데 단지 생선을 한입 깨문 것만으로도 이렇게 활기가 돋을 수 있단 말인가.
“감사합니다. 으흑,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며 짐승처럼 게걸스럽게 생선을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머리, 꼬리, 뼈, 눈… 할 거 없이 통째로 전부. 기생충에 감염되든, 뼈가 목에 걸려 죽든 아무런 생각도 못하고.
끅끅, 눈물을 삼키며 먹고 또 먹었다. 그렇게 생선 한 마리를 전부 먹어 치우고 나서야 좀비 같은 행위를 멈출 수 있었다.
생선을 먹은 직후 긴장이 풀려 다시 기절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쯤 일어났는데, 또다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내가 먹어 치운 줄 알았던 생선이 다시 눈앞에서 펄떡거리고 있는 것이다.
귀신의 장난? 지금 내가 헛것이라도 보고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지금 이 모든 게 꿈?
“대체 이건…….”
혼란스러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 몸은 아직도 눈앞에 생선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3장 은혜(1)
“으음…….”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날이 밝아올 무렵, 간신히 눈을 떴을 땐 인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주위를 둘러봤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눈을 끔뻑거리다 퍼뜩 정신 차린 나는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없다. 정말 없다. 말도 안 돼. 어째서?
분명 큰 상처였다. 아무리 맹장이라지만 족히 일주일은 요양해야 하는 상태인데 사라져 버리다니! 설마 어젯밤 사이에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바다로 돌아간 건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굳이 움직이려고 하면 못 움직일 것까진 없겠지만, 그 인어는 다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아픈 몸으로 바닷가까지 기어갔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백번 양보해 바다까지 기어갔다고 하면 필시 몸을 끌고 간 흔적이 남아 있어야 정상이건만, 그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허공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종적을 감춰 버린 상태. 이게 어찌 된 거지?
“하, 뭐야? 설마 나… 꿈이라도 꾸었던 건가?”
설마 어제 그 모든 일은 전부 꿈이었던 걸까? 딱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말 어제 난 빈혈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나흘을 보내니 스트레스로 정신까지 피폐해져 버린 걸지도…….
“뭐… 그게 꿈인들 생시인들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기를 관뒀다. 정말 현실이든 꿈이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보다 오늘 당장 먹을 양식부터 생각하는 게 내 정신과 육체에 이득일 것이다.
“웃차, 오늘은 꼭 낚자.”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아침이기에 낚시하기는 가장 좋다. 그나마 서늘해서 일사병에 걸릴 일은 없을 테니까.
오늘은 고둥 대신 작은 게를 미끼로 써볼 생각이다. 그걸로 무엇을 낚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둥보단 낫겠지.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낚시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모른 채.
오후가 지나도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정말 포인트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내 낚싯바늘에 문제가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물고기가 먹는 미끼를 잘못 선택한 걸까? 솔직히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줄곧 손에 쥔 건 메스지 낚싯대가 아니었으니까.
결국 오후 늦은 무렵, 다시 고둥만 한 아름 안은 채 철수했다.
“포기해야 하나…….”
조금 쓴맛이 느껴지는 고둥을 쪽쪽 빨아 먹으며 중얼거렸다. 이럴 거면 차라리 조금 위험하더라도 근처 숲에서 버섯이나 나무 열매를 찾는 게 더 이득일 것 같…….
“우웁!”
갑자기 구토기가 몰려왔다.
뭐지? 속이 메스꺼워. 덜 익은 고둥을 먹어서 탈이 난 건가?
갑작스러운 몸의 이상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분명 혹시나 해서 고둥은 확실히 푹 익혀 먹었는데, 어디서 뭘 잘못 먹은 거지?
다급히 내 몸 상태를 체크했다. 우선 위에서 압통이 느껴지는 건 아니니 염증류는 아니다. 피부의 발진이나 가려움증도 없는 걸 보니 식중독도 아냐. 그럼 설마… 기생충?
몸이 오싹해졌다. 지금 내게 구충제 같은 건 없다. 무슨 경로에서든 기생충에 감염되었다면 동고동락하며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제발 녀석이 뇌까지 올라가 자리를 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 뿐인 거다.
“제기랄!”
웃기지도 않는 사실은 기생충의 종류가 워낙 많아 증상도 정말 수도 없이 많다는 것. 간단히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지속적인 여드름이나 식욕부진, 구취, 호흡곤란, 부종, 이명, 간헐적인 변비와 설사만으로도 기생충을 의심해야 한다. 그래서 내과의조차 많이 착각하고 진단해 후에 몸을 열었다가 기생충 덩어리를 보고 기겁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다.
그래도 확실히 진단하기 위해 난 내 몸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보았다.
우선 구토 증상. 그리고 뭐가 있지? 혼수? 그러고 보니 두통도 조금 느껴진다. 피부도 여기저기 햇볕에 타서 붉게 올라왔고, 땀으로 흥건… 잠깐, 이건…….
“단순한 일사병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불가에서 멀어져 그늘을 찾았다.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이런 것도 하나 체크 못하고 있었다니. 정말 바보다, 나는.
일사병이란 고온 속 환경에 노출되어 심부 신체의 온도가 섭씨 37도에서 40도 사이로 상승하여, 적절한 심박출을 유지할 수 없으나 중추신경계의 이상은 없는 상태를 말한다.
구토나 복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으니 지금 내 상태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래도 나 같은 경우는 뙤약볕에서 무리하게 낚시를 했던 게 탈이 난 것 같았다. 가뜩이나 물도 부족한데 장시간 햇볕에 노출되었으니, 일사병에 걸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게다가 이런 몸으로 불가에 앉아 식사를 했으니…….”
이런 더운 날 불가에 앉아 식사한다는 것 자체가 죽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건데, 그런 사실도 잊고 있었다니. 의사라는 간판은 아무래도 내려놓아야 할 듯싶다.
그래도 천만다행이랄까, 만약 일사병을 넘어 열사병까지 번지거나, 위염 또는 병원균 감염이었다면 정말 손쓸 수도 없었을 거다.
어쨌거나 일사병이라면 서늘한 곳에 앉아 30분간 휴식하는 것만으로도 적당한 회복이 가능하다. 물이 많다면 좀 더 괜찮았겠지만… 많은 걸 바라면 안 되겠지.
지금 내게 있어선 물보다도 우선은 식량이다.
“이대로 고둥만 먹다간 없는 병도 찾아올 거야. 위험하지만 산속에서 먹을 걸 찾아야 해.”
바다에서 먹을 걸 찾을 수 없다면 산속에서 찾으면 된다. 다행히도 한의학을 공부할 때 여러 가지 약초에 대해서도 알아둔 터라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정녕 하늘은 나를 버린 걸까? 허망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천둥을 치기 시작했다.
쏴아아.
지겹도록 쏟아지는 폭우. 처음에는 일사병에 도움이 될 물을 쉽게 구할 수 있겠거니 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사흘이 넘어가자 진심으로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비에 젖어 감기라도 걸리면 그걸로 끝인지라 바위 굴속에 들어가 몸을 웅크린 채 물만 먹었다.
“으으…….”
나뭇가지를 많이 모아놓지도 못해 모닥불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꺼져 버린지라 오로지 인내로 추위를 버텨내야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마른 나뭇가지를 많이 모아놓는 건데. 이제 와 폭우 속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니, 그저 내 체온만으로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지만.
그렇게 이틀이 더 지나 닷새째가 되었다. 드디어 저주스러운 폭우가 지나가고 햇볕이 쨍쨍 내리비췄다.
하지만 내 몸은 닷새를 버텨내지 못했다.
“하아, 하아…….”
머리가 어지럽다. 몸도 무기력해 움직여지지 않는다. 닷새 동안 추위 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밸런스가 무너진 것인지, 두통과 오한, 발열까지 찾아왔다.
“뭐라도… 먹어야… 하아, 하아…….”
호흡이 가쁘다. 추위로 인해 감기가 찾아온 건지 몸을 일으키기만 해도 빈혈 증상에 머리가 어지러웠고, 무기력증에 구토까지 몰려왔다.
이런 몸 상태로 움직이라고? 절대로 무리다.
기껏 해가 찾아왔건만, 내 몸은 손가락조차 까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여기까지 버텼는데… 정말 필사적으로 버텼는데…….
난 옆으로 누운 채 멍하니 바위 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내 눈에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나왔다.
내가 이렇게나 잘 우는 사람이었던가?
몇 년 동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가 요 며칠 새 거의 하루마다 운 것 같다.
“살고… 싶어, 누가… 제발… 살려…줘.”
잔뜩 잠긴 목소리로 애타게 구원을 요청했다. 머릿속에는 어째선지 자꾸만 선배와 자영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하루가 더 지났다. 물조차 마시지 못해 입술도 비쩍비쩍 말랐다. 푸들푸들 떨리는 손을 들어서 바라보니 뼈의 굴곡이 다 보일 정도로 메말라 있고, 손톱도 전부 갈라져 보기 흉하게 되어 있었다.
이게 내 손이라고?
지금 내 얼굴은 어떠할까? 좀비처럼 삭막한 인상에 눈도 퀭해 있지 않을까?
이렇게 나는 죽는 건가? 아무도 모르는 이런 무인도에서 처량하게?
사실 죽는 건 그렇게 무섭지 않다. 언제나 환자를 집도하며 나 역시 그러한 상황이 찾아올 것이고, 언젠가는 죽을 거라고 줄곧 인식해 왔으니까. 오히려 지금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죽음이 아니라 이렇게 죽었다는 걸 영원히 아무도 알아채 주지 못한다는 외로움이었다. 그래, 이렇게 홀로 죽어 사라진다는 건 정말 쓸쓸하다는 걸 이제 깨달았다.
그래도 엿새 동안 내 마음도 어느 정도 정리된 것인지 느긋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되도록 고통스럽지 않게 잠든 사이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엿새째가 지나고, 일주일이 될 무렵이었다.
잠에서 깨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직도 살아 있다는 현실에 한숨을 쉬었는데, 무언가 눈앞에서 펄떡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가물거리는 눈동자로 눈앞에 인식되는 무언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당히 놀라고 말았다.
생선이었다. 무슨 종류의 생선인지는 시력이 약해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건 생선이었다.
대체 어째서 여기에 생선이, 그것도 갓 잡아 올린 것처럼 싱싱하게 살아 있는 생선이 여기 있는 건지 생각할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저 반사적으로, 또는 본능에 따라 힘겹게 손을 뻗어 생선을 잡았다. 무게가 상당하다. 내 팔뚝만 하달까?
이젠 손가락 하나도 까닥할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건만, 대체 체력이 어디서 솟아난 것인지 난 그 팔팔한 생선을 양손으로 꽉 잡아 으적, 씹었다.
바다의 짠맛과 생선의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하지만 지금 내게 맛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몸이 이 생선을 원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의 몸이란 참으로 신비롭다.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았는데 단지 생선을 한입 깨문 것만으로도 이렇게 활기가 돋을 수 있단 말인가.
“감사합니다. 으흑,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며 짐승처럼 게걸스럽게 생선을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머리, 꼬리, 뼈, 눈… 할 거 없이 통째로 전부. 기생충에 감염되든, 뼈가 목에 걸려 죽든 아무런 생각도 못하고.
끅끅, 눈물을 삼키며 먹고 또 먹었다. 그렇게 생선 한 마리를 전부 먹어 치우고 나서야 좀비 같은 행위를 멈출 수 있었다.
생선을 먹은 직후 긴장이 풀려 다시 기절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쯤 일어났는데, 또다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내가 먹어 치운 줄 알았던 생선이 다시 눈앞에서 펄떡거리고 있는 것이다.
귀신의 장난? 지금 내가 헛것이라도 보고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지금 이 모든 게 꿈?
“대체 이건…….”
혼란스러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 몸은 아직도 눈앞에 생선을 원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