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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닥터 1권(6화)
2장 충수염(맹장)(1)
해변으로 돌아오자 책이 전부 타 재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바보스러움에 이마를 짚었다. 불은 정말 중요한 건데 신경도 쓰지 않다니!
대충 잘라낸 죽통과 죽순을 바닥에 내려놓고 근처 숲에서 지푸라기나 낙엽, 나뭇가지 등을 구해 와 다시 불을 지폈다. 이번엔 절대 꺼트리지 않을 작정으로 나뭇가지를 집어 왔으니, 오늘 하루는 어찌어찌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불을 다시 지핀 나는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가져온 죽통 껍질을 벗겨내(껍질을 벗기지 않으면 죽통을 가열할 때 터질 위험이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얼추 죽통 잔을 만들었다. 사실 죽통 잔이라기보단 여전히 대충 잘라낸 죽통을 조금 작은 크기로 다듬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양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이어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 뒤, 수술용 장갑의 고무와 청진기의 고무관을 이용해 불가에 올린 죽통 잔에서 증류수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젠 마실 수 있는 물이 모이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는 동안 구해 온 죽순 껍질을 벗겨냈다. 껍질을 벗기니 뽀얀 살결이 드러났다. 생채로 먹고 싶었지만, 독소가 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포기했다.
죽순에는 섬유질, 칼륨, 단백질이 풍부하여 변비에도 좋고 체내의 염분을 조절하여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해 주지만, 시아노겐이라는 유독 물질이 있어 꼭 익혀 먹어야 한다. 만약 한의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것도 모르고 날로 먹었겠지.
일단 익혀 먹는 거야 그냥 바닷물로 해도 되니 담수 작업이 끝나면 바로 해 먹을 생각으로 옆에 잘 놓아두었다.
“돼, 됐어! 물이야! 물이라고! 하하하! 하하하하하!”
한 시간쯤 지났을까, 쓰러지듯 누워 불만을 구경하다 참지 못해 담수가 담긴 죽통 잔을 들여다보곤 만세를 불렀다. 선배가 이 모습을 보면 미친 사람이 광소한다고 핀잔주려나? 하지만 그 정도로 좋았다. 내가 이 손으로 무언가를 노력해 얻은 성과니까.
조심스럽게 모인 물을 입으로 가져갔다. 고작 한 모금뿐인지라 한 방울도 새지 않게 몹시 조심했다.
물에선 얕은 고무 냄새가 났다. 평소였다면 입에 대는 순간 뱉었을 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맛있었다. 정말로 물이 맛있게 느껴졌다.
마지막 한 방울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 죽통 잔을 흔들었다. 젠장, 너무 적어. 정말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양이다. 한 시간이나 기다렸건만 고작 이 정도라니.
그래도 빈속에 수분이 들어가서일까? 몸에 활력이 돋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몸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뒤이어 죽순까지 익혀 먹고선 만족한 얼굴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오늘 온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물 한 모금과 작은 죽순 한 조각에 불과했지만, 여태껏 갖은 진미를 먹으며 살아온 세월보다 지금 이 한순간에 가장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 걸까?
“제기랄, 제기랄…….”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와 지금 당장의 행복이 뒤섞여 말로 표현 못할 기분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그저 하염없이 울었다. 누가 볼 사람도 없기에 더욱 힘차게… 나는 여기 살아 있다고, 이 자리에 내가 살아 있노라고 외치듯 서럽게…….
다음 날, 다리가 엉망이기에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식량을 조달할 수 있는 낚시로 내일 식량도 확보해 두려고 마음먹었다.
봉합용 침은 완만한 곡선 형태를 하고 있어 갈고리 형태로 쉽게 휘어졌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낚싯바늘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선지 물고기는 전혀 잡히지 않았다.
포인트가 안 좋았던 걸까, 아니면 뭔가 내가 간과한 게 있는 걸까? 낚시는 해본 적이 없어 당최 영문을 모르겠다. 그렇게 날이 저물 때까지 끙끙 앓다 빈손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까 죽통을 구하러 가는 사이, 운 좋게도 해변 근처 작은 굴을 발견해 놓았기에 그날 잠자리는 굴속에서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었다.
굴속은 성인 한 명이 들어가기엔 비좁아서 태아처럼 잔뜩 웅크리고 잠을 취했다. 잠자리로 쓰기엔 말도 안 되는 곳이지만, 그래도 은신처라 안심된 덕일까? 그날은 꿈조차 꾸지 않을 정도로 정말 푹 잤던 것 같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이번에야말로 물고기를 잡아보겠노라 다짐하며 밖으로 나왔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만들어놓은 불가가 누군가의 발자국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던 것이다. 사람의 발자국 같지만, 크기가 상당했기에 난 범인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 이건 그 이족보행 괴물들의 짓이다.
“젠장, 그 괴물 자식들…….”
주위가 잔뜩 훼손돼 불도 다시 피워야 했지만,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외진 가방하고 죽통 잔을 챙겨가지 않았더라면 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 테니까.
“더는 여기 있을 수 없어. 이동해야 해.”
어쨌거나 이곳은 그 괴물들의 시선에 들어왔으니 더는 머무를 수 없다. 비록 안식처를 잃었지만, 그래도 살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일단 물고기 낚시는 뒤로 미루고 내 물품을 주섬주섬 챙겨 바닷가를 따라 이동했다. 여전히 발 상태는 좋지 못하지만, 죽는 것보단 나았기에.
얼마나 걸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해가 완전히 떠 무척 덥게 느껴질 즈음에 절벽 가를 발견했다.
절벽 주위엔 숨어 있기 좋은 바위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둥이나 게 같은 것들이 보여 식량 조달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곳을 제2은신처로 선택했다.
자리를 잡자마자 불 피우기 좋은 자리를 수색했고, 바로 죽통 잔을 준비해 담수 만들기 작업에 착수했다.
벌써부터 죽을 듯이 피곤해졌다. 거의 사흘 동안 죽순 한 조각 먹은 게 전부여서 급성 영양실조에 걸린 것이다. 까슬까슬한 피부나 갈라진 손톱, 여전히 낫지 않는 발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영양 결핍의 경우, 피부, 머리카락, 손톱, 점막, 신경계를 포함하여 전신에 영양을 준다. 특히나 부종과 상처 치유도 지연되기 때문에 아직 발도 낫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불이 꺼지지 않게 나무를 잔뜩 올려놓은 뒤, 해변으로 다가가 이번에는 기필코 낚고 말리라 다짐하며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다섯 시간이 지났다. 찌는 듯한 더위에 쓰러지듯 누워 한 시간을 더 버텼지만, 물고기는커녕 물고기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미끼로 고둥을 썼는데, 이것으론 안 되는 건가?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고둥만 한 아름 안아 와 익혀 먹었다.
고둥은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을 다량 함유하고, 거기에 칼슘, 구리, 철, 마그네슘, 아연, 칼륨, 나트륨 등의 무기질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간의 해독 작용과 소화 기능을 돕는다. 특히나 골다공증 예방에 좋아 만약 인대뿐만 아니라 발배 뼈[Navicular]나 목말뼈[Talus]에도 문제가 생긴 것(전부 발목에 해당하는 뼈다)이라면 치료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포만감을 느끼기엔 너무도 부족했다. 이대로는 점점 체력이 빠져 정작 중요할 때 아무것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
역시 단백질 섭취를 위해 물고기를 잡아야 해. 뭔가 좋은 방법이… 응?
고심하는 그때, 파도의 흰 포말 속에 무언가 떠내려오는 것을 목격했다.
나무? 아니다. 물고기? 사람 정도의 크기인 것 보니 돌고래인가?
어찌 됐든 내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픈 다리에도 불구하고 절룩거리며 해변으로 나갔다. 처음엔 그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잔뜩 생각했다. 허기진 배를 채울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기만 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나는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건… 사, 사람이야. 사람이었어!”
얼핏 보이는 살색의 피부와 물결에 가득 차 있는, 긴 검은 머리카락까지. 분명 사람이었다. 해조류 같은 걸 잘못 본 게 아니다.
설마 나처럼 조난당한 건가? 젠장, 물에 빠진 것이라면 상당히 위험해! 어서 구해주지 않으면!
발길이 다급해졌다. 해변까지 쓸려올 정도면 이미 익사한 시체일지도 모르지만, 난 필사적으로 바위 사이를 이동했다. 무려 사흘 만에 만난 사람이다. 어찌 보면 고작 사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지난 사흘은 삼 년처럼 길게 느껴졌기에 반가움이 너무도 컸다.
“여기예요! 여기를 잡아요!”
파도 때문에 들어왔다 밀려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난 상반신만 떠 있는 여성의 손을 잡아채 어떻게든 해변으로 끌고 왔다. 여성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예쁜!
“이봐요, 괜찮아요? 정신 차려보세… 흐아악!”
낑낑, 끌고 나오며 정신없이 상태를 살피던 나는 해변으로 나온 순간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분명 사람이다. 잘못 본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하반신은…….
물고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뭐, 뭐야. 저거… 인…어?”
동화책에서나 보았을 법한 인어가 지금 내 눈앞에 쓰러져 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 여성을 바라보았다.
2장 충수염(맹장)(1)
해변으로 돌아오자 책이 전부 타 재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바보스러움에 이마를 짚었다. 불은 정말 중요한 건데 신경도 쓰지 않다니!
대충 잘라낸 죽통과 죽순을 바닥에 내려놓고 근처 숲에서 지푸라기나 낙엽, 나뭇가지 등을 구해 와 다시 불을 지폈다. 이번엔 절대 꺼트리지 않을 작정으로 나뭇가지를 집어 왔으니, 오늘 하루는 어찌어찌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불을 다시 지핀 나는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가져온 죽통 껍질을 벗겨내(껍질을 벗기지 않으면 죽통을 가열할 때 터질 위험이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얼추 죽통 잔을 만들었다. 사실 죽통 잔이라기보단 여전히 대충 잘라낸 죽통을 조금 작은 크기로 다듬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양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이어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 뒤, 수술용 장갑의 고무와 청진기의 고무관을 이용해 불가에 올린 죽통 잔에서 증류수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젠 마실 수 있는 물이 모이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는 동안 구해 온 죽순 껍질을 벗겨냈다. 껍질을 벗기니 뽀얀 살결이 드러났다. 생채로 먹고 싶었지만, 독소가 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포기했다.
죽순에는 섬유질, 칼륨, 단백질이 풍부하여 변비에도 좋고 체내의 염분을 조절하여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해 주지만, 시아노겐이라는 유독 물질이 있어 꼭 익혀 먹어야 한다. 만약 한의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것도 모르고 날로 먹었겠지.
일단 익혀 먹는 거야 그냥 바닷물로 해도 되니 담수 작업이 끝나면 바로 해 먹을 생각으로 옆에 잘 놓아두었다.
“돼, 됐어! 물이야! 물이라고! 하하하! 하하하하하!”
한 시간쯤 지났을까, 쓰러지듯 누워 불만을 구경하다 참지 못해 담수가 담긴 죽통 잔을 들여다보곤 만세를 불렀다. 선배가 이 모습을 보면 미친 사람이 광소한다고 핀잔주려나? 하지만 그 정도로 좋았다. 내가 이 손으로 무언가를 노력해 얻은 성과니까.
조심스럽게 모인 물을 입으로 가져갔다. 고작 한 모금뿐인지라 한 방울도 새지 않게 몹시 조심했다.
물에선 얕은 고무 냄새가 났다. 평소였다면 입에 대는 순간 뱉었을 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맛있었다. 정말로 물이 맛있게 느껴졌다.
마지막 한 방울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 죽통 잔을 흔들었다. 젠장, 너무 적어. 정말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양이다. 한 시간이나 기다렸건만 고작 이 정도라니.
그래도 빈속에 수분이 들어가서일까? 몸에 활력이 돋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몸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뒤이어 죽순까지 익혀 먹고선 만족한 얼굴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오늘 온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물 한 모금과 작은 죽순 한 조각에 불과했지만, 여태껏 갖은 진미를 먹으며 살아온 세월보다 지금 이 한순간에 가장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 걸까?
“제기랄, 제기랄…….”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와 지금 당장의 행복이 뒤섞여 말로 표현 못할 기분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그저 하염없이 울었다. 누가 볼 사람도 없기에 더욱 힘차게… 나는 여기 살아 있다고, 이 자리에 내가 살아 있노라고 외치듯 서럽게…….
다음 날, 다리가 엉망이기에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식량을 조달할 수 있는 낚시로 내일 식량도 확보해 두려고 마음먹었다.
봉합용 침은 완만한 곡선 형태를 하고 있어 갈고리 형태로 쉽게 휘어졌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낚싯바늘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선지 물고기는 전혀 잡히지 않았다.
포인트가 안 좋았던 걸까, 아니면 뭔가 내가 간과한 게 있는 걸까? 낚시는 해본 적이 없어 당최 영문을 모르겠다. 그렇게 날이 저물 때까지 끙끙 앓다 빈손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까 죽통을 구하러 가는 사이, 운 좋게도 해변 근처 작은 굴을 발견해 놓았기에 그날 잠자리는 굴속에서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었다.
굴속은 성인 한 명이 들어가기엔 비좁아서 태아처럼 잔뜩 웅크리고 잠을 취했다. 잠자리로 쓰기엔 말도 안 되는 곳이지만, 그래도 은신처라 안심된 덕일까? 그날은 꿈조차 꾸지 않을 정도로 정말 푹 잤던 것 같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이번에야말로 물고기를 잡아보겠노라 다짐하며 밖으로 나왔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만들어놓은 불가가 누군가의 발자국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던 것이다. 사람의 발자국 같지만, 크기가 상당했기에 난 범인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 이건 그 이족보행 괴물들의 짓이다.
“젠장, 그 괴물 자식들…….”
주위가 잔뜩 훼손돼 불도 다시 피워야 했지만,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외진 가방하고 죽통 잔을 챙겨가지 않았더라면 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 테니까.
“더는 여기 있을 수 없어. 이동해야 해.”
어쨌거나 이곳은 그 괴물들의 시선에 들어왔으니 더는 머무를 수 없다. 비록 안식처를 잃었지만, 그래도 살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일단 물고기 낚시는 뒤로 미루고 내 물품을 주섬주섬 챙겨 바닷가를 따라 이동했다. 여전히 발 상태는 좋지 못하지만, 죽는 것보단 나았기에.
얼마나 걸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해가 완전히 떠 무척 덥게 느껴질 즈음에 절벽 가를 발견했다.
절벽 주위엔 숨어 있기 좋은 바위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둥이나 게 같은 것들이 보여 식량 조달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곳을 제2은신처로 선택했다.
자리를 잡자마자 불 피우기 좋은 자리를 수색했고, 바로 죽통 잔을 준비해 담수 만들기 작업에 착수했다.
벌써부터 죽을 듯이 피곤해졌다. 거의 사흘 동안 죽순 한 조각 먹은 게 전부여서 급성 영양실조에 걸린 것이다. 까슬까슬한 피부나 갈라진 손톱, 여전히 낫지 않는 발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영양 결핍의 경우, 피부, 머리카락, 손톱, 점막, 신경계를 포함하여 전신에 영양을 준다. 특히나 부종과 상처 치유도 지연되기 때문에 아직 발도 낫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불이 꺼지지 않게 나무를 잔뜩 올려놓은 뒤, 해변으로 다가가 이번에는 기필코 낚고 말리라 다짐하며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다섯 시간이 지났다. 찌는 듯한 더위에 쓰러지듯 누워 한 시간을 더 버텼지만, 물고기는커녕 물고기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미끼로 고둥을 썼는데, 이것으론 안 되는 건가?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고둥만 한 아름 안아 와 익혀 먹었다.
고둥은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을 다량 함유하고, 거기에 칼슘, 구리, 철, 마그네슘, 아연, 칼륨, 나트륨 등의 무기질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간의 해독 작용과 소화 기능을 돕는다. 특히나 골다공증 예방에 좋아 만약 인대뿐만 아니라 발배 뼈[Navicular]나 목말뼈[Talus]에도 문제가 생긴 것(전부 발목에 해당하는 뼈다)이라면 치료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포만감을 느끼기엔 너무도 부족했다. 이대로는 점점 체력이 빠져 정작 중요할 때 아무것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
역시 단백질 섭취를 위해 물고기를 잡아야 해. 뭔가 좋은 방법이… 응?
고심하는 그때, 파도의 흰 포말 속에 무언가 떠내려오는 것을 목격했다.
나무? 아니다. 물고기? 사람 정도의 크기인 것 보니 돌고래인가?
어찌 됐든 내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픈 다리에도 불구하고 절룩거리며 해변으로 나갔다. 처음엔 그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잔뜩 생각했다. 허기진 배를 채울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기만 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나는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건… 사, 사람이야. 사람이었어!”
얼핏 보이는 살색의 피부와 물결에 가득 차 있는, 긴 검은 머리카락까지. 분명 사람이었다. 해조류 같은 걸 잘못 본 게 아니다.
설마 나처럼 조난당한 건가? 젠장, 물에 빠진 것이라면 상당히 위험해! 어서 구해주지 않으면!
발길이 다급해졌다. 해변까지 쓸려올 정도면 이미 익사한 시체일지도 모르지만, 난 필사적으로 바위 사이를 이동했다. 무려 사흘 만에 만난 사람이다. 어찌 보면 고작 사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지난 사흘은 삼 년처럼 길게 느껴졌기에 반가움이 너무도 컸다.
“여기예요! 여기를 잡아요!”
파도 때문에 들어왔다 밀려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난 상반신만 떠 있는 여성의 손을 잡아채 어떻게든 해변으로 끌고 왔다. 여성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예쁜!
“이봐요, 괜찮아요? 정신 차려보세… 흐아악!”
낑낑, 끌고 나오며 정신없이 상태를 살피던 나는 해변으로 나온 순간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분명 사람이다. 잘못 본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하반신은…….
물고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뭐, 뭐야. 저거… 인…어?”
동화책에서나 보았을 법한 인어가 지금 내 눈앞에 쓰러져 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 여성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