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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닥터 1권(3화)


서장(3)


“그게 무슨! 어째서! 수술은 성공하지 않았나!”
“75! 60!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현호 선생님!”
마취의인 도경 선생님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신구 선생님도, 김 간호사도, 희준 선배까지 나를 돌아보았다.
“보스민 1앰플!”
난 빠르게 지시 내린 뒤, 무언가 놓친 게 있는지 심장을 살펴보았다. 어딘가 천공이 일어난 게 아닐까? 문합이 잘못되어 혈액이 샌다든가, 아니면 어딘가 모를 또 다른 종양이?
없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상 없다! 천공이 일어난 흔적도, 종양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 대체 무슨 경우……!
퍼뜩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가지 생각. 등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설마!
“현호 선생!”
자영이의 심장을 어루만지듯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심장의 형태를 요리조리 살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촉감.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이건…….”
“무, 무슨 일인가?”
“우심실에 종양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무슨 소린가! 우심실 종양은 아까 적출하지 않았나!”
“안쪽입니다. 우심실 안쪽에 종양이 하나 더 숨어 있었습니다.”
“뭐, 뭐라고!”
희준 선배가 경악 어린 음성을 토했다. 뒤늦게 도경 선생님도 눈치챘는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그럼 종양이 총 세 개였다는 말인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허허, 심장 부근에만 종양이 세 개라니……. 이렇게 되면 우심실 바깥쪽에 있던 종양을 적출한 게 오히려 악수가 되어버렸네. 가뜩이나 약해지고 작아진 우심실에 종양이 자리 잡아 혈류를 방해하기 좋도록 도와준 격이니.”
“그럼 어쩌죠? 심박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냥 나머지 종양도 적출해 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도경 선생, 그건 무리네. 우심실 안쪽에 있는 종양까지 적출하면 우심실의 기능은 완전히 말소돼 버릴 거야.”
“이런… 그럼 애초에 외과적 방법으로는 무리였던 거군요.”
“…….”
“…….”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저 입을 악다문 채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없을까? 무슨 방법이 없을까?
간혹 심실 안으로 종양이 퍼져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종양이 심실의 수축을 방해하면 심부전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럴 경우는 수술이 불가능하므로 외과적 치료가 아닌 화학요법을 선택한다. 심한 경우에는 심장이식도 고려한다.
고로… 신이 아닌 이상 지금 상황은 방법이 없는 것이다.
희준 선배는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챈 건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건 현호 선생의 실수가 아니네. 애초에 초음파로도 알아내기 어려운지라 개흉하기 전까진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지 않나. 이렇게나 상태가 나쁘다면 누구라도 성공할 수 없었을6 게야.”
“하지만… 하지만…….”
난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방법이 없다. 정말 심장이식 말고는 방법이 없다.
정말 신은 악마가 따로 없다.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종양이라니. 신이시여! 당신은 그토록 이 소녀를 데려가고 싶었습니까!
“혈압 60! 55! 이, 이런! 심장… 정지했습니다.”
“…….”
“…….”
“심장마사지를 개시합니다!”
모두가 어깨를 늘어트리는 가운데 나 혼자만이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20분을 붙잡으니 신구 선생님이 나를 말렸다. 희준 선배도 나를 말렸다. 보다 못한 김 간호사까지 내 허리를 붙잡았다.
“아직이야! 아직이라고! 이렇게 끝낼 순 없어!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울부짖으며 외쳤다. 눈앞에, 눈앞에 아직 날개도 채 펴보지 못한 아이가 누워 있다. 나를 믿으며 기꺼이 수술에 응해준 여린 아이가 눈앞에 있다. 그런데도 나라는 놈은, 나라는 놈은…….
이리도 무력하게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아직, 아직……!”
“…생님, 현호 선생님!”
김 간호사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어?”
“이봐! 현호 선생! 정신 차려! 자네, 대체 왜 이러는가.”
“…네?”
뭔가 꿈속을 헤매는 기분이라 무의식적으로 되묻자 희준 선배는 그런 내 이마를 툭, 밀치더니 자영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메스로 개흉만 한 채 무슨 딴생각인가? 어서 심막 박리 안 하나?”
“심막 박리요? 어, 어라?”
선배의 말대로 지금 자영이는 개흉만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이게 무슨……!”
그제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수술실에서 끌어내고 있던 선배와 의사 선생님들이 각자 맡은 자리에 서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귀에 거슬릴 정도로 삐― 소리만을 발하던 심전계도 안정적인 심전도를 나타내고 있고, 암울했던 분위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서, 선배. 지금 수술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죠?”
“무슨 바보 같은 소린가. 지금 막 시작했잖은가!”
잔뜩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하는 선배. 내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보다도 선배가 한 말에 더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 지금 막 수술을… 시작했다고?
정말 선배의 말대로 우심실에 있는 종양을 적출한 흔적도, 글렌 문합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한 시간 전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너무도 깔끔한 상태다. 대체 이게 무슨…….
난 얼떨떨한 기분으로 심막을 박리했다. 그러자 상대정맥에 나 있는 종양 덩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이로군. 심장엔 아무런 문제도 없어.”
“이거라면 수술 가능할 거 같습… 현호 선생님?”
난 심막을 완전히 박리해 우심실을 필사적으로 살펴봤다. 손으로 심장을 주물러 우심실 안쪽 또한 살펴봤다. 모두가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아해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럴 수가… 없어. 없다고! 아무리 찾아봐도 있어야 할 종양이 없어!
상대정맥에 나 있는 종양은 내가 아까 적출했던 종양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 우심실에 종양이 있을 거라 예상해 살펴본 것이다. 그런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심장은 깨끗했다.
만약 조금 전 한 시간이 내 망상이었다면, 이렇게나 똑같은 모양의 종양이 상대정맥에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대체 뭐지?
수술하기 직전 들었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갑자기 기억났다. ‘그 소원, 이루어질지니’라고 했지. 설마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건가?
“현호 선생?”
“…수술을 속행합니다.”
고개를 휘젓곤 일단 수술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날 수술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

“선생님!”
“하하! 그래, 오늘 드디어 퇴원이구나.”
자영이가 활짝 웃으며 내 품에 뛰어들었다. 난 그런 자영이의 등을 토닥이며 내 앞에 선 자영이의 부모를 돌아보았다.
“따님의 퇴원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전부 선생님 덕분입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부 자영이가 잘 버텨내 준 덕이죠.”
자영이의 수술이 끝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ICU(집중 치료실)에서 치료 받는 동안 종양마커(종양 세포가 만들어내는 물질. 이 농도를 측정해 종양의 유무를 알아낼 수 있다)가 발견되지 않아 오늘 드디어 퇴원하게 된 것이다.
“아이고, 선생님. 밖까지 마중 나오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어차피 저도 외진이 있어서요.”
난 외진 가방을 슬쩍 들어 보이며 웃었다. 사실 이건 핑계고, 솔직한 심정으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자영이를 보고 싶다는 게 진심이다. 그래, 내 딸과도 같은 아이라 아쉽다. 이제 다시는 병원에 오지 않는 게 자영이에게 좋은 일이건만, 사람의 마음이란 참 이기적인 거 같다.

“그 소원, 이루어질지니.”

나는 아직도 그 당시의 일을 잊지 않았다. 아니, 그 신비한 경험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날 이후, 내가 빈 소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당시에 나는 자영이를 살려 달라며 신께 빌었다. 그리해 준다면 내가 죽어도 좋다는 말과 함께…….
“선생님, 자주 놀러 올게요!”
“그래.”
병원 밖까지 나온 난 자영이의 머리를 한차례 흩트리곤 드디어 떠나보냈다. 그 귀여운 아이는 멀어지는 내내 손 흔드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멀어졌던 자영이가 전해 줄 게 있는 건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내게 달려왔다.
그와 동시에 급히 병원으로 들어오는 응급차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래, 이거구나.
신이 원한 대가는 이거였어.
외진 가방을 집어 던지고 달렸다.
한없이 놀라 당황하는 자영이의 부모와, 기함해 내 이름을 부르는 김 간호사의 얼굴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쾅!
자영이를 밀치는 순간, 아찔한 충격이 온몸에 퍼졌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피와 함께 서너 번 정도 허공과 땅이 번갈아 보였다.
우직.
지면에 몸이 닿는 순간, 소름 끼치는 소리가 허리에서 들려왔다.
뒤늦게 붉어진 시야 속에 울부짖는 자영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어린 소녀는 엄지손가락만 한 유리구슬을 꼭 쥔 채 내게 뭐라 말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내 귓가엔 윙윙거리는 이명 소리만 가득하다.
나는 괜찮다며 자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다.
이것이 자영이를 살리는 대가. 제물로 바친 내 목숨. 이것이 내가 신께 호소하며 빌었던 소원.
『후회하는가.』
후회? 피거품 물고 있는 입을 움직여 비죽 웃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할 거면 그런 소원은 빌지도 않았다.
더는 누가 내 앞에서 죽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서 소중한 이가 죽어가는 걸 보는 건 내 부모만으로 충분하니까.
잔인한 신의 안배에도 고귀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단지 아쉬운 게 있다면 희준 선배나 내가 진료한 여러 환자분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랄까. 그리고 이번 일을 평생 마음의 상처로 안고 갈 자영이가 불쌍하게 여겨지는 정도랄까.
정말 신이라는 자는 성격도 고약하다.
만약 당신이 진정 신이라면 마지막 부탁이 있습니다. 내 운명은 마음대로 거둬가도 좋으니, 자영이는 항상 행복할 수 있기를.
『운명을 붙잡아 또 하나의 기회를 열었으니, 자신의 신념을 믿고 길을 개척하라.』
점점 멀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기어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