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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닥터 1권(2화)
서장(2)
“잠깐만 김 간호사, 무슨 일이야?”
“아, 현호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갑자기 자영이가 고양이를 안고 들어오는 바람에…….”
“선생님, 고양이가… 고양이가!”
자영이는 서럽게 울며 고양이를 품에 꼭 안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고양이는 물에 푹 젖어 있었는데, 덕분에 자영이까지 물로 흠뻑 젖어 있는 상태였다.
“자영아, 괜찮으니까 무슨 일인지 선생님에게 말해볼래? 자, 뚝 그치고.”
“으흑, 다른 애들이… 흑, 고양이를 물에 빠트려서… 흑! 그래서… 그래서…….”
혹시 저 고양이, 아까 나무 위에서 쉬고 있던 그 고양이인가? 분명 근처 연못가에서 다른 아이들이 놀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랬구나. 병실로 돌아간 자영이는 연못에 빠져 괴롭힘당하는 고양이를 보곤 구하러 갔던 거야.
“어쩜! 누구니! 생명의 소중함도 모르고!”
김 간호사도 상황을 파악한 건지 분개해 당장에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기세라 겨우겨우 말리곤 자영이 품에 안긴 고양이를 들여다보았다.
이런, 의식이 없다.
코로 손가락을 가져가 숨을 쉬는지 파악.
숨도 쉬지 않아. 이미 늦은 건가?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자영이가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라 그런지 남의 심리 상태를 잘 파악해 이럴 땐 곤란하다.
나는 잠시 옆에 있는 선배와 여전히 분개하고 있는 간호사를 번갈아 보곤 다시 자영이를 돌아보았다.
“자영아, 그 고양이 이리 줘봐.”
“안 돼요! 살려주세요, 선생님!”
“걱정하지 마.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선생님을 믿고 맡겨주지 않겠니?”
내가 손을 내밀자 자영이는 머뭇머뭇 나에게 고양이를 건네주었다.
“어머! 선생님! 더러운 고양이를 만지면 가운이!”
“김 간호사, 그리고 선배. 저는요, 제 눈앞에서 누가 죽는 건 다신 보고 싶지 않아요. 그건 이런 작은 생명도 포함된 얘기입니다.”
“현호 선생님?”
“현호 선생…….”
“생명에 옳고 그르거나 작고 큰 건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구할 수 있다면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동물을 병동 안으로 들여보낼 순 없겠죠. 그러니 이 자리에서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난 소아를 대상으로 한 심폐소생술을 고양이에게 써먹기로 결심했다.
고양이를 바닥에 눕히고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가슴을 압박했다. 방법은 1분당 100회의 속도와 가슴의 1/3~1/2 깊이로 30회 압박. 그런 뒤, 난 생각할 것 없이 고양이의 코와 입을 동시에 내 입으로 덮어 호흡을 불어넣었다.
“꺅! 선생님!”
그 모습에 놀란 간호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그럴 만도 하겠지. 누가 보면 고양이를 머리째 물어뜯는 모습처럼 생각할 테니까.
캬악!
그렇게 인공호흡을 10세트 정도 진행했을까? 고양이가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살았다! 소아를 대상으로 한 심폐소생술이 고양이에게도 통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살아났어!
“선생님! 고양이가… 고양이가 살아났어요!”
정말 정신을 차린 것인지 고양이가 이리저리 앞다리를 휘저으며 고통스러워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가. 생명에는 옳고 그르거나 작고 큰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 그게 자네 신념이라면… 쯧, 미국행은 물 건너갔구먼. 안타깝지만 더는 말하지 않겠네. 그러니 어서 몸이나 씻게. 무슨 물에 빠진 생쥐 꼴도 아니고.”
지금 내 가운은 물과 흙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래서야 의사가 아니라 거지라 해도 할 말 없겠네.
“고마워요, 선배.”
“원장님!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나?”
“아, 네… 원장님!”
“이거참, 정말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니까. 김 간호사, 자영 환자도 좀 씻겨주……!”
선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살아난 고양이를 보며 기뻐하고 있던 자영이가 갑자기 심장을 움켜쥐었다.
“자영아, 괜찮아?”
“저, 저는 괜찮…….”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가늘고, 입술이 파리하다. 전형적인 호흡곤란 증세다.
“자영아!”
기어코 쓰러지려는 자영이를 간신히 붙잡았다. 자세히 보니 자영이의 얼굴에 묻은 물이 연못 물이 아니라 식은땀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제길! 아무래도 이 어린 소녀는 우리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참은 모양이다.
“어서 응급실로! 김 간호사! 보호자께 당장 연락드려!”
상황은 급작스럽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현호 선생님, 보호자께 연락했습니다! 10분 후 도착한답니다! 그리고 지금 도경 마취의 선생님도 합류하신답니다! 보조는 제가 맡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럼 제1조수는 내가 맡겠네. 인공심폐 장치를 조작하는 건 신구 선생님께 부탁하는 게 좋겠군.”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다급한 상황이 벌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랄까, 소식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보호자를 겨우겨우 설득해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수술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밖에 마취의로 믿을 수 있는 도경 선생님이 참여하셨다. 또한 이 병원에서 가장 오래 근무하신 신구 선생님이 임상 공학 기사(의사의 지도하에 의료 기기를 조작하는 기술자)를 맡아주시고, 직접 간호사로 베테랑인 김 간호사가 함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믿을 수 있는 희준 선배가 조수로 들어와 준다. 이런 상황이라면 할 수 있다. 아니, 해내야 한다.
***
“자영이는 소원을 한 가지 이룰 수 있다면 무엇을 빌 거니?”
“소원요? 아, 저는요… 병이 나으면 꼭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하고 싶은 거? 그게 뭘까? 놀이동산 가는 거? 아니면… 바다?”
“아니요. 선생님 일 쉬게 하는 거요! 요새 만날 바쁘시잖아요. 새벽에도 저 보러 오시고. 저도 병원일 잘할 수 있어요!”
저번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념해 무언가 해줄 게 없을까 하고 물어봤던 질문이 수술을 앞둔 지금 갑자기 기억났다. 그날 이 어린 천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해도 부족하건만,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는 모습에 눈시울을 붉혔었지.
그런데 이런 천사 같은 아이를 어찌 그리 일찍 데려가려 한단 말인가. 아직 꽃도 피우지 못한 연약한 어린양을 어찌 그리도 빨리!
수술 대기실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며 격정을 참지 못한 나는 떨리는 두 손을 모았다.
아직 꽃도 피우지 못한 어린 소녀입니다. 아직 꿈도 펼치지 못한 어린 샛별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움도, 인생이 어떠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작디작은 생명입니다. 내 생전 이렇게 당신을 찾는 건 처음입니다.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신 이런 부탁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저를 데려가도 좋으니… 자영이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그 소원, 이루어질지니.』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무안할 정도로 수술 대기실은 조용했다. 지금 내가 헛소리를 들은 건가?
“수술 준비 완료했습니… 선생님,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으세요.”
“아, 아니에요. 별것 아닙니다. 가죠.”
고개를 흔들어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래도 나까지 정신이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이런 정신 상태론 제대로 집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냉정해지자. 항상 해오던 대로만 하면 돼.
손을 세척하고 수술용 장갑을 끼며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모두가 대기하고 있던 건지, 환자 우측에 위치한 희준 선배가 대표로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셨다.
“선생님, 기구 준비 끝났습니다.”
“인공심폐 전환 완료네.”
“마취 완료했습니다. 언제든지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종격종양 절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역시나 믿음직한 김 간호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메스를 넘겨주었다.
나는 든든함을 느끼며 흉골 정중앙을 세로로 절개했다.
“심막 상연 박리.”
“으음, 종양은… 다행이로군. 우심방 부근 상대정맥이야.”
상체에서 심장으로 돌아오는 정맥 혈관인 상대정맥에 있는 종양을 본 선배가 쾌재를 불렀지만, 난 이를 으득 씹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선배… 종양이 하나가 아닙니다. 이쪽을 보세요.”
난 우심방 아래 우심실 부근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직 벗겨내지 않은 심막 안쪽,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돌기가 솟아나 있었다.
“우, 우심실에 종양이라니…….”
“이건…….”
수술실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이런 삭막한 분위기 수술실에 가끔 발생하곤 한다.
그건 바로 환자에게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수술을 속행합니다.”
나는 그런 정적을 깨트리듯 말했다. 그제야 좌절 중이던 모두가 나를 돌아본다.
“현호 선생, 이걸 무슨 수로 고치겠다는 말인가.”
임상 공학사로 합류하신 신구 선생님이 주름 가득한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심실은 심장으로 들어온 혈액을 폐로 보내는 펌프 역할을 하고 있네. 아무리 최소한으로 절제한다 하더라도 근력이 떨어져 폐로 보낼 힘이 부족해지지 않겠나.”
적확한 판단이다. 신구 선생님 말대로 우심실에 있는 종양을 절제하면 근력이 떨어져 폐로 보낼 힘이 부족해지겠지. 하지만 꼭 불가능하다는 법은 없다.
“글렌 문합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글렌 문합?”
“호오, 그렇군. 그 방법이라면 우심실에 부담이 적어질 게야.”
역시 희준 선배는 바로 알아챈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하반신에서 올라오는 하대정맥과 상반신에서 내려오는 상대정맥에서 우심실로 혈액이 모이는데, 글렌 문합이란 이 중 상대정맥을 폐동맥에 직접 연결함으로써 우심실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다. 이것이라면 우심실에 다소 근력이 떨어져도 문제될 건 없다.
“이미 상대정맥에 종양이 있습니다. 어차피 일부분을 잘라내야 한다면, 차라리 아예 잘라 버려 글렌 문합을 시행하는 게 좋습니다. 상대정맥증후군이 우려되지만, 사람의 목숨 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글렌 문합을 하게 되면 상대정맥증후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것이 최선이었다. 수술 후에도 잦은 병치레를 겪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된다면 그게 어디인가.
“환자의 일생이 걸린 문제를 우리 멋대로 결정할 순 없네. 일단 종양의 위치를 알아낸 것으로 만족하고 보호자와 다시 상의해…….”
“신구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자영이는 여러 번 수술할 체력이 없다는 거. 어쩌면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건 제가 책임질 테니, 제 지시에 따라와 주세요.”
단호하게 말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신구 선생님은 여전히 고민하는 표정이었는데, 그때 희준 선배가 신구 선생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내버려 둡시다. 환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법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는 게 현호 선생 아닙니까.”
“원장님…….”
“후우, 알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죠.”
“한 번 해봅시다.”
역시 원장인 희준 선배가 나서니 수술실 분위기가 바뀌었다.
난 작은 목례로 고마움을 표한 뒤, 상대정맥에 붙어 있는 종양에 집중했다.
“우심방 근처 상대정맥 종양 적출 완료. 우심실 종양 적출 후, 글렌 문합 시행합니다. 심막 적출 완료.”
“빠, 빨라.”
“상대정맥에 붙어 있는 종양도 쉬운 것이 아니건만, 간단하게 적출해 버렸어…….”
“엄청난 속도야. 직접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는군.”
주위에서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오로지 종양에만 집중했다.
내 컨디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다. 이 상태라면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어!
“우심실 종양 적출 완료. 글렌 문합 들어갑니다. 겸자.”
우심실 종양 적출 후, 빠르게 혈류를 겸자로 집었다. 심박, 혈압 전부 이상 없다. 고비는 넘겼어. 이제 마무리만 하면 돼!
“글렌 문합… 종료.”
상대정맥을 잘라 폐동맥에 연결시키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대충 여기까지 한 시간 남짓. 종양 두 개를 적출하고 글렌 문합까지 시행하는 데 한 시간이라면 수술 역사상 기네스북에 오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속도였다.
“대단하군. 고작 한 시간 만에 끝내다니.”
“그런데도 이 정밀도를 보십시오. 1㎜의 오차도 없이 봉합하다니,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허허, 마치 기계와 다름없군요. 원장님께서 어째서 현호 군을 냉철한 기계라 부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내 말했잖은가, 한국대학 병원에서 신의라 불린 사나이라고. 어쨌든 수고했네. 수술은 성공…….”
“잠시만요! 환자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심박 미약! 혈압 저하!”
그때, 절대로 들리지 않아야 할 소리가 들려왔다.
서장(2)
“잠깐만 김 간호사, 무슨 일이야?”
“아, 현호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갑자기 자영이가 고양이를 안고 들어오는 바람에…….”
“선생님, 고양이가… 고양이가!”
자영이는 서럽게 울며 고양이를 품에 꼭 안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고양이는 물에 푹 젖어 있었는데, 덕분에 자영이까지 물로 흠뻑 젖어 있는 상태였다.
“자영아, 괜찮으니까 무슨 일인지 선생님에게 말해볼래? 자, 뚝 그치고.”
“으흑, 다른 애들이… 흑, 고양이를 물에 빠트려서… 흑! 그래서… 그래서…….”
혹시 저 고양이, 아까 나무 위에서 쉬고 있던 그 고양이인가? 분명 근처 연못가에서 다른 아이들이 놀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랬구나. 병실로 돌아간 자영이는 연못에 빠져 괴롭힘당하는 고양이를 보곤 구하러 갔던 거야.
“어쩜! 누구니! 생명의 소중함도 모르고!”
김 간호사도 상황을 파악한 건지 분개해 당장에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기세라 겨우겨우 말리곤 자영이 품에 안긴 고양이를 들여다보았다.
이런, 의식이 없다.
코로 손가락을 가져가 숨을 쉬는지 파악.
숨도 쉬지 않아. 이미 늦은 건가?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자영이가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라 그런지 남의 심리 상태를 잘 파악해 이럴 땐 곤란하다.
나는 잠시 옆에 있는 선배와 여전히 분개하고 있는 간호사를 번갈아 보곤 다시 자영이를 돌아보았다.
“자영아, 그 고양이 이리 줘봐.”
“안 돼요! 살려주세요, 선생님!”
“걱정하지 마.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선생님을 믿고 맡겨주지 않겠니?”
내가 손을 내밀자 자영이는 머뭇머뭇 나에게 고양이를 건네주었다.
“어머! 선생님! 더러운 고양이를 만지면 가운이!”
“김 간호사, 그리고 선배. 저는요, 제 눈앞에서 누가 죽는 건 다신 보고 싶지 않아요. 그건 이런 작은 생명도 포함된 얘기입니다.”
“현호 선생님?”
“현호 선생…….”
“생명에 옳고 그르거나 작고 큰 건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구할 수 있다면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동물을 병동 안으로 들여보낼 순 없겠죠. 그러니 이 자리에서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난 소아를 대상으로 한 심폐소생술을 고양이에게 써먹기로 결심했다.
고양이를 바닥에 눕히고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가슴을 압박했다. 방법은 1분당 100회의 속도와 가슴의 1/3~1/2 깊이로 30회 압박. 그런 뒤, 난 생각할 것 없이 고양이의 코와 입을 동시에 내 입으로 덮어 호흡을 불어넣었다.
“꺅! 선생님!”
그 모습에 놀란 간호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그럴 만도 하겠지. 누가 보면 고양이를 머리째 물어뜯는 모습처럼 생각할 테니까.
캬악!
그렇게 인공호흡을 10세트 정도 진행했을까? 고양이가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살았다! 소아를 대상으로 한 심폐소생술이 고양이에게도 통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살아났어!
“선생님! 고양이가… 고양이가 살아났어요!”
정말 정신을 차린 것인지 고양이가 이리저리 앞다리를 휘저으며 고통스러워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가. 생명에는 옳고 그르거나 작고 큰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 그게 자네 신념이라면… 쯧, 미국행은 물 건너갔구먼. 안타깝지만 더는 말하지 않겠네. 그러니 어서 몸이나 씻게. 무슨 물에 빠진 생쥐 꼴도 아니고.”
지금 내 가운은 물과 흙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래서야 의사가 아니라 거지라 해도 할 말 없겠네.
“고마워요, 선배.”
“원장님!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나?”
“아, 네… 원장님!”
“이거참, 정말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니까. 김 간호사, 자영 환자도 좀 씻겨주……!”
선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살아난 고양이를 보며 기뻐하고 있던 자영이가 갑자기 심장을 움켜쥐었다.
“자영아, 괜찮아?”
“저, 저는 괜찮…….”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가늘고, 입술이 파리하다. 전형적인 호흡곤란 증세다.
“자영아!”
기어코 쓰러지려는 자영이를 간신히 붙잡았다. 자세히 보니 자영이의 얼굴에 묻은 물이 연못 물이 아니라 식은땀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제길! 아무래도 이 어린 소녀는 우리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참은 모양이다.
“어서 응급실로! 김 간호사! 보호자께 당장 연락드려!”
상황은 급작스럽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현호 선생님, 보호자께 연락했습니다! 10분 후 도착한답니다! 그리고 지금 도경 마취의 선생님도 합류하신답니다! 보조는 제가 맡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럼 제1조수는 내가 맡겠네. 인공심폐 장치를 조작하는 건 신구 선생님께 부탁하는 게 좋겠군.”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다급한 상황이 벌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랄까, 소식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보호자를 겨우겨우 설득해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수술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밖에 마취의로 믿을 수 있는 도경 선생님이 참여하셨다. 또한 이 병원에서 가장 오래 근무하신 신구 선생님이 임상 공학 기사(의사의 지도하에 의료 기기를 조작하는 기술자)를 맡아주시고, 직접 간호사로 베테랑인 김 간호사가 함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믿을 수 있는 희준 선배가 조수로 들어와 준다. 이런 상황이라면 할 수 있다. 아니, 해내야 한다.
***
“자영이는 소원을 한 가지 이룰 수 있다면 무엇을 빌 거니?”
“소원요? 아, 저는요… 병이 나으면 꼭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하고 싶은 거? 그게 뭘까? 놀이동산 가는 거? 아니면… 바다?”
“아니요. 선생님 일 쉬게 하는 거요! 요새 만날 바쁘시잖아요. 새벽에도 저 보러 오시고. 저도 병원일 잘할 수 있어요!”
저번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념해 무언가 해줄 게 없을까 하고 물어봤던 질문이 수술을 앞둔 지금 갑자기 기억났다. 그날 이 어린 천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해도 부족하건만,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는 모습에 눈시울을 붉혔었지.
그런데 이런 천사 같은 아이를 어찌 그리 일찍 데려가려 한단 말인가. 아직 꽃도 피우지 못한 연약한 어린양을 어찌 그리도 빨리!
수술 대기실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며 격정을 참지 못한 나는 떨리는 두 손을 모았다.
아직 꽃도 피우지 못한 어린 소녀입니다. 아직 꿈도 펼치지 못한 어린 샛별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움도, 인생이 어떠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작디작은 생명입니다. 내 생전 이렇게 당신을 찾는 건 처음입니다.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신 이런 부탁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저를 데려가도 좋으니… 자영이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그 소원, 이루어질지니.』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무안할 정도로 수술 대기실은 조용했다. 지금 내가 헛소리를 들은 건가?
“수술 준비 완료했습니… 선생님,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으세요.”
“아, 아니에요. 별것 아닙니다. 가죠.”
고개를 흔들어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래도 나까지 정신이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이런 정신 상태론 제대로 집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냉정해지자. 항상 해오던 대로만 하면 돼.
손을 세척하고 수술용 장갑을 끼며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모두가 대기하고 있던 건지, 환자 우측에 위치한 희준 선배가 대표로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셨다.
“선생님, 기구 준비 끝났습니다.”
“인공심폐 전환 완료네.”
“마취 완료했습니다. 언제든지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종격종양 절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역시나 믿음직한 김 간호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메스를 넘겨주었다.
나는 든든함을 느끼며 흉골 정중앙을 세로로 절개했다.
“심막 상연 박리.”
“으음, 종양은… 다행이로군. 우심방 부근 상대정맥이야.”
상체에서 심장으로 돌아오는 정맥 혈관인 상대정맥에 있는 종양을 본 선배가 쾌재를 불렀지만, 난 이를 으득 씹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선배… 종양이 하나가 아닙니다. 이쪽을 보세요.”
난 우심방 아래 우심실 부근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직 벗겨내지 않은 심막 안쪽,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돌기가 솟아나 있었다.
“우, 우심실에 종양이라니…….”
“이건…….”
수술실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이런 삭막한 분위기 수술실에 가끔 발생하곤 한다.
그건 바로 환자에게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수술을 속행합니다.”
나는 그런 정적을 깨트리듯 말했다. 그제야 좌절 중이던 모두가 나를 돌아본다.
“현호 선생, 이걸 무슨 수로 고치겠다는 말인가.”
임상 공학사로 합류하신 신구 선생님이 주름 가득한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심실은 심장으로 들어온 혈액을 폐로 보내는 펌프 역할을 하고 있네. 아무리 최소한으로 절제한다 하더라도 근력이 떨어져 폐로 보낼 힘이 부족해지지 않겠나.”
적확한 판단이다. 신구 선생님 말대로 우심실에 있는 종양을 절제하면 근력이 떨어져 폐로 보낼 힘이 부족해지겠지. 하지만 꼭 불가능하다는 법은 없다.
“글렌 문합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글렌 문합?”
“호오, 그렇군. 그 방법이라면 우심실에 부담이 적어질 게야.”
역시 희준 선배는 바로 알아챈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하반신에서 올라오는 하대정맥과 상반신에서 내려오는 상대정맥에서 우심실로 혈액이 모이는데, 글렌 문합이란 이 중 상대정맥을 폐동맥에 직접 연결함으로써 우심실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다. 이것이라면 우심실에 다소 근력이 떨어져도 문제될 건 없다.
“이미 상대정맥에 종양이 있습니다. 어차피 일부분을 잘라내야 한다면, 차라리 아예 잘라 버려 글렌 문합을 시행하는 게 좋습니다. 상대정맥증후군이 우려되지만, 사람의 목숨 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글렌 문합을 하게 되면 상대정맥증후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것이 최선이었다. 수술 후에도 잦은 병치레를 겪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된다면 그게 어디인가.
“환자의 일생이 걸린 문제를 우리 멋대로 결정할 순 없네. 일단 종양의 위치를 알아낸 것으로 만족하고 보호자와 다시 상의해…….”
“신구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자영이는 여러 번 수술할 체력이 없다는 거. 어쩌면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건 제가 책임질 테니, 제 지시에 따라와 주세요.”
단호하게 말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신구 선생님은 여전히 고민하는 표정이었는데, 그때 희준 선배가 신구 선생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내버려 둡시다. 환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법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는 게 현호 선생 아닙니까.”
“원장님…….”
“후우, 알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죠.”
“한 번 해봅시다.”
역시 원장인 희준 선배가 나서니 수술실 분위기가 바뀌었다.
난 작은 목례로 고마움을 표한 뒤, 상대정맥에 붙어 있는 종양에 집중했다.
“우심방 근처 상대정맥 종양 적출 완료. 우심실 종양 적출 후, 글렌 문합 시행합니다. 심막 적출 완료.”
“빠, 빨라.”
“상대정맥에 붙어 있는 종양도 쉬운 것이 아니건만, 간단하게 적출해 버렸어…….”
“엄청난 속도야. 직접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는군.”
주위에서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오로지 종양에만 집중했다.
내 컨디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다. 이 상태라면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어!
“우심실 종양 적출 완료. 글렌 문합 들어갑니다. 겸자.”
우심실 종양 적출 후, 빠르게 혈류를 겸자로 집었다. 심박, 혈압 전부 이상 없다. 고비는 넘겼어. 이제 마무리만 하면 돼!
“글렌 문합… 종료.”
상대정맥을 잘라 폐동맥에 연결시키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대충 여기까지 한 시간 남짓. 종양 두 개를 적출하고 글렌 문합까지 시행하는 데 한 시간이라면 수술 역사상 기네스북에 오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속도였다.
“대단하군. 고작 한 시간 만에 끝내다니.”
“그런데도 이 정밀도를 보십시오. 1㎜의 오차도 없이 봉합하다니,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허허, 마치 기계와 다름없군요. 원장님께서 어째서 현호 군을 냉철한 기계라 부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내 말했잖은가, 한국대학 병원에서 신의라 불린 사나이라고. 어쨌든 수고했네. 수술은 성공…….”
“잠시만요! 환자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심박 미약! 혈압 저하!”
그때, 절대로 들리지 않아야 할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