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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마법(魔法).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라이프는 오늘 그것을 배우고자 했다.
과거 온라인 게임에서 키보드 단축키를 누르고 마우스 버튼을 연타하며 사용했던 그러한 마법이 아닌……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는, 바로 이곳에서 그 신비함을 전신으로 만끽하며 직접 발현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먼저 그전에…….”
[으워어어어!]
순간, 옆에서 좀비의 괴성이 들려온다.
소리를 낸 당사자는 바로 다솜이었다.
자연스레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라이프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풋, 비웃음을 터트렸다.
“너, 정말 얼굴 한 번 가관이다.”
[……남이사. 네 다크 서클이나 살펴보는 건 어때?]
다솜도 결코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엉망으로 변해 버린 두 사람의 얼굴은 지난 사흘 동안 이어진 능력치 상승 노가다의 후유증이었다.
쉬지 않고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서 진하게 묻어 나오는 피로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이루어진 의미 없는 말다툼들.
결국 두 사람은 동시에 항복이라도 하듯, 같은 말을 내뱉었다.
“자, 잠시만 쉬고 시작하자.”
[그건 동감이야.]
고된 노가다 끝의 꿀맛 같은 달콤한 휴식 시간이었다.

***

[라이프] ― [Lv. 10]

클래스 ― [초보자]
명성 ― [45] / 성향 ― [190]
HP ― [250] / MP ― [300] / SP ― [100%]

근력 ― [10] / 민첩 ― [8+1] / 체력 ― [15]
지능 ― [20] / 지혜 ― [20] / 집중 ― [14]
행운 ― [7] / 소울 ― [12]

Point ― [0]

지능과 지혜를 각각 6씩 상승시켰다.
이로써 알게 된 수련 능력치의 한계. 바로 20이라는 수치였는데, 이걸로 확정되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직 모르지. 레벨에 의한 제한일 수도 있고, 아니면 1차 전직 후에는 다시 수련으로 능력치의 상승이 가능해질지도 모르니까.’
늘 연구하고 고민해야 발전이 있는 법이다.
그 외에도 사흘 동안 두 개의 책에서 히든 피스를 찾아내 집중 4와 행운 5의 혜택을 얻은 라이프의 준비 상태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모처럼의 휴식으로 컨디션까지 좋은 상황!
보무도 당당하게 초보자 마을의 수련 마법사 NPC인 ‘엘빈’을 찾아갔다.
[한 번만 더 그런 일 시키면 나도 죽고 너도 죽을 줄 알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어차피 넌 죽었으니 나만 손해잖아.’
지난 사흘 동안의 노가다로 안 그래도 창백하던 피부색이 어디까지 새하얗게 변할 수 있는지 몸소 보여준 다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엄포를 놓았다.
사실 본인이 자청한 일이기에 티를 내지 못했을 뿐, 다솜 못지않게 도서관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라이프였다.
전역자들이 사회로 나가면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내뱉는, 부대 방향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소리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고나 할까?
사흘 동안 도서관에서 눈동자가 빠질 정도로 글씨를 읽어 내린 후유증인지, 이제는 책 비스무리한 것만 봐도 뒷골이 당겨올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사람들 엄청 줄었네.’
엘빈이 있는 마법사 길드의 건물로 가는 동안의 거리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도서관에 틀어박히기 전만 해도 제법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곳인데, 뜬금없이 쓸쓸함이 느껴졌다.
‘아니, 아니지. 이 느낌은…….’
[헤헤, 들켰어?]
뒤를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등 뒤에 바싹 달라붙은 다솜이 썩소를 날렸다.
충만한 음기를 통해 전해져 오는, 싸늘한 느낌.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 기분에 괜히 한 번 몸서리를 친 라이프는 그녀의 장난질을 경계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윽고 도착하게 된 마법사 길드 건물의 외견은 상당히 심플했다.
나무로 제작된 건물에 겉은 새하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늦은 밤 몰래 와서 페인트 같은 걸로 낙서를 하고 싶게 만드는 겉모습. 문 앞에서 일렁거리는 포탈로 들어선 순간, 라이프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여긴?’
대학교 강의실을 생각나게 할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
물론, 책상과 의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신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방의 중앙에는 받침대 같은 것이 있고, 그 위에 동그란 수정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가장자리로 길게 자리한 진열장들.
밑은 나무였고, 안에는 내용물이…… 그리고 위에는 유리로 덮개를 만들어 진열된 물품을 살필 수 있게 해놓았다.
‘뭘 진열해 놓은 거…… 우웁!’
호기심이 생겨서 그쪽으로 시선을 준 순간, 본능적으로 입을 가리고 말았다.
사흘 동안 지겹도록 봐서 이제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생기는 ‘책’이 그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이곳이 마법사 길드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그 책들의 정체는 아마 마법에 관련된 것들이 적혀 있는 ‘마법서’일 것이다.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마법사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순간, 뒤쪽에서 들려오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
라이프는 시야에 들어온 NPC 엘빈은 전형적인 마법사의 의상을 차려입은 지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몸과 팔은 물론이고, 무릎의 위까지 덮어버리는 매우 풍성한 모양새의 케이프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다음은 챙이 넓은 남색 모자와 끄트머리에 루비가 박혀 있는 곧은 나무 재질의 스태프였다.
거의 1m는 넘어 보이는 길이의 그것을 단단히 움켜쥔 엘빈은 느긋하게 걸어서 다가오더니 용건을 물었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반투명한 선택지들.
라이프는 그중에서 가장 정중한 내용의 선택지를 골랐다.
“위대한 세계의 진리에 대해 알고자 합니다. 이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음…… 당신은 진심으로 세계의 법칙을 탐구하며 진리를 깨닫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려고 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진지함을 잃지 않고 막힘없이 대답하는 라이프의 모습에 흡족함을 느낀 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에게 다가오라고 손짓을 했다.
“이미 각오는 충분한 것 같군요. 그렇다면 당신의 자격을 시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엘빈이 라이프를 이끈 곳은 바로 방의 중앙에 위치한 수정구의 앞이었다.
그러고는 손을 뻗는 시늉을 하며 라이프에게 수정구를 만지라고 지시했다.
‘홈페이지에서 본 동영상에는 이런 과정이 없었는데…….’
의아하긴 하지만 NPC가 설마 사기를 치진 않겠지, 하는 생각에 순순히 수정구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우웅, 우우우웅―!
“이건?”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이프 님이 가진 본질을 파악하는 과정이니까요.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갑자기 희미한 빛을 발하며 마법사 길드의 벽과 공명을 시작하는 수정구의 모습에 순간 불안감을 느꼈지만, 엘빈의 다독거림에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묘한 감각들.
수정구를 통해져 전해진 진동이 전신을 뒤흔들어 놓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고 엘빈의 말대로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보려고 했다.
[야, 뭐해? 너 설마 느끼고 있냐?]
“…….”
[어머, 변태인가 봐. 저런 구슬 같은 걸 만지면서 느낀다네.]
‘아, 좀!’
엘빈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까 봐 속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짓궂은 다솜의 장난을 이겨내며 집중을 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수정구에서 뿜어지던 빛의 광채가 점점 짙어져서 방 안을 가득 채우더니,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끝난 거 같습니다만.”
“오오! 정말이지, 이것은…….”
“……?”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르겠는데 엘빈은 멍한 눈빛으로 수정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반응.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에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정신을 차린 엘빈이 헛기침을 하며 민망함을 달래더니, 덥석 라이프의 손을 붙잡았다.
“아, 아니, 손은 왜…….”
“정말로 놀랐습니다. 이 방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놀라운 재능은 처음 봅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는지 야속할 정도입니다. 우리의 인연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알았으니까, 손을 좀…….”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
뭐에 그리도 흥분했는지, 아직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저 라이프는 속으로 투덜거릴 뿐이었다.
‘전직 퀘스트 더럽게 안 주네.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동영상으로 보니까 금방금방 넘어가 주더만.’
그러한 라이프의 내심과 관계없이 엘빈의 호들갑은 쉽게 끝나질 않았다.
그가 내뱉는 말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라이프의 마법적 ‘재능’을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그 이유를 모르는 라이프로서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내가 메이지 클래스를 얻기 위해 마법사 길드를 방문한 다른 플레이어들과 다른 점이 있나?’
엘빈이 보여주는 반응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첫 번째로 다솜의 존재였다.
하지만 다른 NPC들과 마찬가지로 엘빈 또한 옆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다솜의 모습을 보거나 느낄 수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소울 능력치였다.
이것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능력치였다.
다솜의 존재로 인해 생성된 능력치이기 때문에…….
아마 그 능력치를 가지고 마법사 길드에 방문한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상당한 가능성을 가진 두 번째 추론.
그리고 마지막은 한계까지 도달한 라이프의 수련 능력치였다.
‘지능과 지혜가 각각 20씩. 전직을 하거나 마법 관련 스킬을 배운 것도 아닌데 관련 능력치들이 이렇게 높은 것도 게임상 설정으로 본다면 어마어마한 재능이겠지?’
다시 한 번 천천히 생각해 보니, 세 번째 추론이 가장 확률이 높았다.
마법을 배우기 전에 가질 수 있는 마법과 관련된 능력치들의 한계치를 보유하고 있는 라이프. 이미 지나가긴 했지만, 고통스러운 노가다의 기억에 대한 보상일까?
라이프의 눈앞에 이제는 익숙해진 반투명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수련 마법사 ‘엘빈’이 당신에게 칭호를 제안합니다.]

[칭호란 소드 앤 매직의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어떤 성향의 소유자인지 나타내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칭호는 명성 수치를 보조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칭호의 선택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것을 수락한다면 다른 칭호를 얻기 전까지 삭제나 교체가 불가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한층 표정이 밝아진 라이프는 엘빈이 제안한 칭호의 정보를 살폈다.

[진리의 탐구자(길잡이)]

등급 : D
옵션 : 지능, 지혜 +3
설명 : 진리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을 뜻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닌, 오랫동안 연구하고 찾아 헤매던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발견된 소중한 가치!
이것은 당신에게 그 위대한 여정을 함께해 나갈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영광된 호칭이다.


‘땡잡았군.’
메이지로 전직하게 되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될 능력치인 지능과 지혜를 각각 3씩 올려주는 칭호였다.
라이프로서는 입이 귀에 걸리지 않도록 표정 관리를 하는 게 힘들어질 정도였다.
그만큼 행복한 상황.
이제는 엘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해하기 힘든 헛소리들조차도 기꺼이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그 위대한 여정에 동반하기 위한 자격의 증명으로 저기 진열되어 있는 마법서들을 읽으셔야 합니다.”
“이런 미친!”
“네? 지금 저에게 뭐라고 하신…….”
“아, 아닙니다. 제가 사실은 틱 장애가 있어서…….”
“…….”
어쭙잖은 변명을 해보지만, 엘빈의 표정은 이미 싸늘하게 굳어져 버렸다.
하필이면 넌더리가 나서 보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책’을 언급하다니.
게다가 그것으로 모자라서 읽기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망할, 당분간 글자는 보기만 해도 동공이 아려오는 기분인데.’
일일희비하지 말라고 했던가.
이 순간, 그 말에 적극 동의하게 되는 라이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