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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이, 이것도 아니고…….”
띠링!

[책은 지식뿐만 아니라 마음을 가꾸는 수단입니다. 모두 마음의 양식인 책을 읽도록 합시다!]

[지혜 능력치가 성장하였습니다.]


“흐흐흐, 지혜? 좋지. 지혜가 올라가면 최대 MP가 늘어나고 회복 속도도 빨라지니까.”
[…….]
옆에서 불쌍하다는 듯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다솜이 심히 거슬린다.
라이프는 속으로 외쳤다.
난 아직 멀쩡하다고!
“끄으…….”
뚜득!
어디선가 뼈마디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본인의 허리는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의 눈과 귀를 막으며 라이프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살짝 욱신거리는 눈동자 주위를 문질렀다.
이러다가 죽겠다, 정말로.
접속 제한 시간에 도달하여 자동 로그아웃된 지도 벌써 두 번째였다.
그 말인즉,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소리.
오늘은 소드 앤 매직의 베타테스트 5일 차로, 라이프는 그 기간 동안 모든 것을 투자하여 책만 읽었다.
마치 책에 원수라도 진 사람처럼.
사서 NPC도 그런 라이프의 모습에 질렸는지, 더 이상 까칠하게 굴지 않고 시간이 될 때마다 와서 얌전히 돈만 받아갔다.
“흐흐흐…….”
[그렇게 웃지 마. 징그러워!]
‘그래도 수확은 있었으니까.’
라이프는 옆에서 다솜이 질색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거의 100여 권에 달하는 책을 읽었다.
다솜이 읽은 책까지 합하면 그 수량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
바로 지난 오전 우연히 얻게 된 첫 번째 수확물인 새로운 ‘스킬’ 덕분이었다.

[속독법(速讀法)] ― [Lv. 6]
분류 : 패시브
등급 : E
설명 : 문자를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 36% 향상된 속도로 문자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

무척이나 저렴한 설명의 스킬이었다.
전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함이 있는 것도 아닌, 단순히 문자를 빠르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속독법 스킬.
처음 이것을 얻게 되었을 때, 라이프의 마음은 실망으로 가득했다.
일단은 등급부터가 눈에 거슬렸다.
처음 얻은 스킬인 빙의가 B등급이었기 때문에 눈높이가 놓아져 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의 시간을 가져 본다.
그러고 난 다음 직접 사용해 본 스킬.
놀랍게도 현재의 라이프에게는 마른하늘의 단비나 다름이 없는 스킬이었다.
단순히 빠르게 읽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에 발맞춰서 이해까지 도와주니, 단순 비교를 해도 스킬을 사용하기 전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울 정도로 책을 읽는 속도가 늘었다.
‘이 스킬이 없었다면 수련을 통한 능력치 상승 시스템을 분석하는 데 최소 나흘 이상 걸렸을지도…….’
100여 권의 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물론, 이곳 도서관에 비치된 책의 전체 수량을 생각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간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던 것이 아니다.
히든 피스의 규칙성을 찾아내기 위해 마법에 관한 책, 검술에 관한 책, 전장 지휘에 관한 책 등 분야별로 탐독하는 시간을 가졌고, 몇 가지 가설을 거쳐서 현재 약소하게나마 몇 가지 결론을 낸 상태였다.
첫 번째로 히든 피스에는 규칙성이 없었다.
지난 이틀 동안 라이프는 ‘하이 위저드 제논’에게 은총을 받은 것과 같은 경우를 한 번 더 겪을 수 있었는데, 그때 읽은 책은 ‘초급 요리 50선’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때는 가정과 주방의 여신에게 축복을 받았다는 메시지를 보게 되었는데, 체력이 자그마치 5나 올랐다.
그 사실은 특정 분야의 책과 관련 없이 보물찾기나 이벤트처럼 능력치 상승의 기회가 숨겨져 있다는 것!
레벨 업을 할 때 랜덤으로 3에서 5 정도의 능력치가 오르는 것을 생각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보상이었다.
‘같은 시간을 사냥에 투자했다면 4, 5레벨 정도는 올렸을 테니, 다른 플레이어들은 20쯤 늘어난 건가?’
라이프가 체력을 5 올릴 동안 다른 테스터들은 총합 20 정도의 능력치를 올렸다.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라이프지만,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사실 이건 보물을 찾은 것과 다름이 없기에…….
지금이야 속독법까지 포함하여 이틀 내내 책만 읽어서 겨우 두 권을 찾은 것이지만, 정식 서비스가 오픈되었을 때라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동일한 혜택을 얻을 수 있었다.
이미 어떤 책인지 제목을 알고 대부분의 내용과 꽂혀 있는 위치까지 외워 버렸으니까.
게다가 초반이야 레벨 업이 쉬워서 금방금방 능력치를 올릴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레벨 1을 올리는 데 심각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필요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걸 생각해 본다면 레벨 업을 하지 않고도 능력치를 얻은 이번 성과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지능과 지혜 능력치가 엄청나게 올라 버렸네.’
두 번째로 알아낸 사실은 공부나 수련 등과 같은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얻어지는 능력치 상승 시스템이었다.
이건 게임 회사에서 플레이어들에게 공개할 법도 한데,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정보였다.
일정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 그와 관련된 능력치가 상승하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라이프는 이틀 동안 책을 읽으면서 지겨울 정도로 올라가 버린 지능과 지혜 능력치를 보고 그러한 시스템의 존재 유무를 확신할 수 있었다.

[라이프] ― [Lv. 10]

클래스 ― [초보자]
명성 ― [45] / 성향 ― [190]
HP ― [250] / MP ― [240] / SP ― [100%]

근력 ― [10] / 민첩 ― [8+1] / 체력 ― [15]
지능 ― [14] / 지혜 ― [14] / 집중 ― [10]
행운 ― [2] / 소울 ― [12]

Point ― [0]

가정과 주방의 여신이 내린 축복 덕분에 체력이 5 올랐고, 지속적인 독서로 인해서 지능이 4, 지혜가 7 증가했다.
처음에는 한 시간가량 집중하면 1의 능력치가 올랐는데, 점점 상승하는 속도가 더뎌지더니, 이제는 반나절을 꼬박 읽어야 효과가 있을 정도가 되었다.
‘확실히 이런 식으로 무한하게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면 악용될 소지가 있으니까…….’
능력치의 수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이와 같은 방법으로 상승시키기가 힘들어진다.
그래도 형편없는 능력치를 가진 초반이라면 쉽고 빠르게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비록 소울 능력치의 정체를 확실하게 밝히진 못했지만, 이틀간 알아낸 이 두 가지 정보라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지.’
이틀 동안의 수확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능력치의 분포를 살피며 라이프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었다.
‘지능, 지혜, 집중…… 그리고 소울 능력치까지. 이걸 포기할 수는 없지.’
매지컬 계열…… 휴먼 족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직업이라면 바로 메이지였다.
라이프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나갔다.
‘우선 이곳에서 지능, 지혜 능력치를 한계까지 올려보자. 수련으로 올릴 수 있는 마지막 선까지. 그리고 메이지로 전직하는 거야.’
능력치 성장의 한계에 도전하는 수련.
이건 고된 인내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 누가 게임을 하며 퀴퀴한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만한 메리트가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런 실험을 통해 당장의 능력치 상승은 물론이고, 정식 오픈을 대비한 알짜배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저, 저기, 난 잠깐 현실에서 쉬고 올…….]
“어차피 이 작업 끝날 때까지는 여기서 안 벗어날 거야. 차라리 협조해서 빨리 끝내는 게 좋을걸?”
[으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도주를 선택하려고 했던 다솜이었지만 라이프의 선언에 발이 꽁꽁 묶였다.
어지간해서는 자비를 베풀어주겠지만, 놀랍게도 다솜이 함께 책을 읽어주면 그 혜택이 라이프에게 돌아갔다.
속독법의 숙련도 상승 속도를 관찰하면서 그 사실을 알아낸 라이프였기에 절대로 다솜을 풀어줄 수 없었다.
“노예……가 아니라, 열심히 일해보자고, 파트너.”
[흑.]
이러다가 도서관 귀신이 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다솜이었다.

***

초보자 마을의 인근 지역에는 총 세 종류의 보스 몬스터가 있었다.
먼저 숲 속 필드 늑대들의 우두머리인 ‘카잔’과 커다란 덩치를 가진 흉악한 불곰, ‘볼베’가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 초보자 마을의 유일한 던전인 허수아비 수련장의 인형술사 ‘마리엔’이었는데, 스킬의 사용법과 전투법을 교육시키는 이벤트성 던전이기에 사실 초보자 마을 플레이어들의 관심은 모두 카잔과 볼베에게 향해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보스 몬스터 불곰 ‘볼베’의 보금자리인 커다란 동굴의 내부. 그곳에는 지금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열심히 찾아봤지만 최근 사흘 동안 사냥터에서는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
보고를 올리던 플레이어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순간, 동굴 벽 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플레이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앞으로 걸어 나와 머뭇거리던 보고자의 복부를 앞차기로 차버렸다.
“컥!”
“찾아서 데려오라고 했지, 누가 그런 쓸데없는 보고를 듣자고 했어?”
“죄, 죄송합니다.”
복부를 얻어맞은 플레이어는 더러운 기분에 왈칵 일그러지는 얼굴 근육을 필사적으로 참아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거친 행동을 보였던 플레이어가 기분만 망쳤다는 듯, 혀를 차며 주위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훑어보았다.
“…….”
하나같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그들의 어깨 위로 넘실거리는 적색의 기운들.
놀랍게도 보스 몬스터 불곰 볼베의 보금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머더러 플레이어들이었다.
“복수해 달라고 찾아와서 사정을 한 건 너희들이야. 그래서 인원까지 동원해 줬는데, 이딴 결과를 가져와? 월드 맵으로 향하는 걸 사흘씩이나 미루고 기다린 일인데……. 씨발.”
“…….”
거칠게 내뱉은 욕설이 동굴 내부를 울리자 주위에 있던 머더러 플레이어들의 고개가 더욱 수그려졌다.
이러다가 바닥에 파고 들어갈 지경. 분위기를 보다 못한 머더러 플레이어 중 하나가 나서서 욕설의 주인공에게 대화를 청했다.
“형님, 이런 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들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사냥터란 사냥터는 모두 샅샅이 뒤졌는데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아무래도 ‘라이프’라는 놈이 마을에서 나오질 않아서인 것 같습니다.”
“사흘 동안 마을에만 처박혀 있었을 거라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테스터 녀석이?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데블, 너마저 날 실망시키지는 마.”
“아니요, 제 생각이 맞을 겁니다. 아마 저희의 소문을 들었겠죠. 그리고 겁을 먹었을 겁니다. 지은 죄가 있으니까요. 그 결과가 바로 이겁니다.”
“……확실한 거야?”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데블은 평소에도 바른 소리와 정확한 판단으로 머더러 플레이어 집단을 이끌어가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조력자였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부하이자 동생. 계속해서 성을 내고 있던 머더러 플레이어의 목소리 톤이 처음으로 조금 가라앉았다.
“네. 절 믿으시고 이제 월드 맵으로 이동하시죠. 제가 이곳에 남아 다른 동료들과 함께 라이프라는 놈을 완전히 박살 내버리겠습니다. 앞으로는 마을 밖으로 나설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
계속된 데블의 설득에 잠시 갈등하는 표정을 짓던 머더러 플레이어는 결국 본인이 알지도 못하는 원한 관계에 휘둘리기보다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을 선택했다.
초보자 마을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드넓게 펼쳐져 있는 광활한 월드 맵. 그곳이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먼저 간다. 확실히 만져 준 다음, 정신교육 좀 시켜서 말귀가 있는 놈이면 그쯤에서 풀어주고, 아니면 아예 게임을 접고 싶을 정도로 확실하게…… 더 이상 말 안 해도 알지?”
“당연하죠.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끝낸 머더러 그룹의 장과 정예 멤버들이 동굴을 나서서 멀리 사라져 간다.
이제 이곳에 남은 인원은 ‘데블’을 비롯한 스무 명 정도의 머더러 플레이어들뿐이었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지만, 우리 그룹의 미래를 위해서…… 확실한 본보기가 되어 사라져 줘야겠어.’
수많은 머더러 플레이어의 입을 통해 알게 된 ‘라이프’라는 닉네임을 곱씹으며 소매 안에 숨겨진 단검을 쓰다듬는 데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