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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지난 이틀 동안의 수확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총 여섯 개의 머더러 파티, 17명의 머더러 플레이어를 척살했다.
완벽한 계획.
방심하고 있던 적들.
대인전에서 놀라운 힘을 발휘한 직관 능력.
그리고 완벽한 정보를 제공해 준 다솜의 존재까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이뤄낸 결과였다.
‘그래도 이제는 쉽지 않네.’
한데 어느 순간부터 머더러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날을 세우는 고양이처럼 예전과 다르게 주위를 경계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더 이상의 공격이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세 명 이하의 소수 무리를 대상으로 했고, 최초 기습으로 한 명은 무조건 처리를 하고 대적했기에 힘들게나마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데, 아무리 직관 능력과 다솜의 존재가 있다곤 하지만 비슷한 능력치를 가진 머더러 플레이어들과의 3:1 전투는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은 개점 휴업하는 것도 괜찮겠지. 하루 이틀 장사할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만족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얻어낸 결과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풍요로워진 소지금과 장비들.
게다가 레벨과 능력치들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라이프] ― [Lv. 10]

클래스 ― [초보자]
명성 ― [45] / 성향 ― [190]
HP ― [200] / MP ― [140] / SP ― [100%]

근력 ― [10] / 민첩 ― [8+1] / 체력 ― [10]
지능 ― [8] / 지혜 ― [4] / 집중 ― [9]
행운 ― [2] / 소울 ― [12]

Point ― [0]

드디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10레벨이 되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 없는 건 능력치의 분포 탓이었다.
근력이나 민첩 등 근접 전투 캐릭터를 위한 능력치는 물론이고, 지능과 지혜 등 마법 관련 직업을 위한 능력치까지도 어중간하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소울 능력치의 성장은 라이프에게 가장 뼈아프게 다가왔다.
‘레벨 업을 할 때마다 능력치가 너무 잘 올라가서 문제야. 소울 능력치 때문에 다른 능력치들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어.’
만약 소울 능력치에서 10 정도가 근력이나 민첩으로 갔다면 라이프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소드맨이나 파이터의 전직 퀘스트를 받으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러지 못했고, 소울 능력치는 떡하니 전체 능력치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버티는 중이었다.
근력이나 체력 능력치보다도 오히려 2나 더 높을 정도였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직업을 정할 수는 없었다.
‘소울 능력치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아야 뭐든 할 텐데…….’
지금까지 플레이해 왔던 온라인 게임에서 검을 다루는 클래스를 주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법사나 주술사와 같은 매지컬 클래스를 아예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만약 소울 능력치가 마법과 관련된 것이라면 소드 앤 매직의 세계에서 그쪽 계열의 직업을 선택할 생각도 있기에 라이프의 고민을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홈페이지에도 소울 능력치에 관한 정보는 전무한 상태고…….’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소이는 문뜩 첫날 촌장 NPC인 에드윈이 소개해 준 마을의 주요 건물들을 떠올렸다.
‘그래, 도서관이 있었지!’
촌구석 시골 마을에 도서관이라고 하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어찌 보면 초보자 마을의 버프였다.
전직을 위해서 신전도 있고 마법사 길드도 있는 상황에 도서관 정도는 애교라고 할 수 있었다.
[난 도서관 싫은데. 거기 가면 졸려.]
“넌 귀신이라 잠 안 잔다며? 무슨 헛소리야?”
[칫!]
들켰다는 듯 혀를 살짝 내미는 다솜을 데리고 라이프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본인으로 인해서 불어닥칠 작은 변화의 바람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

햇빛은 아직 따사롭고 때때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이마의 땀방울을 식혀주는 평화로운 오후였다.
마을을 벗어나 전투 필드에서 힘차게 사냥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들.
어제에 비하면 제법 숫자가 줄어든 상태였다.
전직 퀘스트를 끝내고 초보자 마을을 벗어나 월드 맵으로 진입한 플레이어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었다.
퀘스트나 게임 머니를 버는 행위 등을 일체 생략하고 최단 시간 내에 초보자 마을을 벗어나는 걸 목표로 한 사람들.
신천지는 언제나 사람들의 가슴을 떨리게 한다.
결코 성공을 보장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
그곳을 향해 홀린 듯 바삐 떠나 버린 플레이어들의 빈자리가 오늘따라 커 보였다.
“이야! 사람들이 좀 빠져나가니까, 완전 할 맛 나네.”
“그러게. 사냥감이 널려 있다니까. HP랑 스태미너 회복량만 받쳐 줬다면 무한 사냥인데.”
그러한 사실에 즐거워하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테스터로 당첨은 되었지만 현실의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겨우겨우 최소 접속 시간만 채우는 사람들.
접속 시간도 짧은데 늘 경쟁자들에게 치여서 지쳐 있던 이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양팔 벌려 반길 수밖에 없는 호재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이들의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 어어? 저 새끼들 봐봐.”
“머더러다! 튀어!”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었다.
노멀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줄어들자 머더러 플레이어들이 마을 근처까지 다가와서 활개를 치는 일이 늘어났던 것이다.
게다가 무리를 이룬 것인지, 작은 파티 정도의 숫자가 아니었다.
열 명을 조금 넘기는 숫자로 우르르 몰려와서 사냥터의 노멀 플레이어들을 휩쓸고 사라진다.
당연히 그에 대한 항의글들이 소드 앤 매직 공식 홈페이지의 게시판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머더러 플레이어들에게 대한 폭언과 욕설부터 시작해서 우리도 뭉쳐서 보복을 해야 한다는 식의 선동글도 보이고, 듬성듬성 HNN사의 운영 방식에 대한 비난글도 있었다.
갑론을박, 시끄럽게 변해 버린 게시판.
문제는 대부분의 항의글들이 ‘초보자 마을 3’에서만 올라온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초보자 마을에서는 이처럼 조직적인 머더러 플레이어들의 활동을 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소규모 파티로 움직이는 것 정도?
그래서인지 회사 측의 반응은 무척 미온적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포기할 소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올리는 플레이어들이 생기자 결국 회사 측에서 운영자를 통해 답변을 주었다.
모든 것을 플레이어들의 ‘자유’에 맡긴다는 것.
게임의 시스템이라는 정해진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그것만 지키며 행동한다면 PK도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는 플레이의 한 종류고 콘텐츠 중 하나라고 이야기를 하니, 아이템과 경험치 등을 잃어버린 노멀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랬다고……. 하지만 이미 가상현실 게임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린 플레이어들이기에 테스터의 자격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것은 경험치의 분배가 불만족스럽더라도 파티의 인원을 늘리는 것이었다.
아니면 조금이라도 빨리 전직 퀘스트를 끝내서 초보자 마을을 벗어나든가.
아무튼 머더러 플레이어들의 대규모 습격 사태는 그 정도로 일단락될 줄 알았다.
다수의 노멀 플레이어들과 충돌한다면 머더러 플레이어들도 피해가 막심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 예상과 다르게 머더러 플레이어들의 습격은 계속되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거세졌다.
마치 시간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 그리고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

“한 시간에 10브론즈입니다. 대여는 한 권에 5브론즈고요.”
도서관 사서 NPC는 소이의 상상 속 여자 기숙사 사감을 닮아 있었다.
안경을 끼고 완전 깐깐해 보이는 이미지.
라이프는 길게 대화를 나누지 않고 바로 10브론즈를 지불했다.
그리고 순서대로 정리된 책장들 중 ‘ㅅ’ 열을 찾아서 소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찾기 시작했다.
“무슨 흑인 소울 R&B야? 별별 책이 다 있네.”
[음…… 음음! 이거 넘겨줘.]
그럴듯한 제목의 책이 있을 때마다 꺼내서 빠르게 읽어 나갔다.
그 일은 다솜도 함께했는데, 책을 한 권 앞에 두고 라이프와 마찬가지로 내용들을 읽어 내렸다.
다만, 물리력이 없어서 페이지를 다 읽은 뒤에는 의지를 전해 라이프에게 넘겨 달라고 부탁하는 식이었다.
이렇게라도 시간을 아끼려는 라이프의 간절한 노력.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추가 요금을 내시든가, 아니면 도서관에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
그런 라이프의 노력에 재를 뿌리다 못해 짓밟으려고 하는 도서관 사서 NPC였다.
‘망할, 나한테 노처녀 히스테리 부리냐? 왜 이렇게 깐깐해?’
냅다 소리를 치고 싶지만, 현재 상황에서 라이프는 명백한 약자였다.
급할 때는 꼭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투덜거리며 10브론즈를 꺼내 사서 NPC에게 내밀었다.
그러다가 문뜩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맞아, 물어보면 되잖아!’
뒤돌아서서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사서 NPC를 바라보았다.
아직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아서 이름은 모른다.
호감도도 없고…….
그래도 간절한 마음에 라이프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찾고 있는 게 있는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질문은 30브론즈입니다.”
“……네?”
“30브론즈라고요.”
약간의 짜증마저 섞여 있는 사서 NPC의 리얼한 반응에 감탄 이전의 분노가 솟구쳤다.
‘이 NPC를 프로그램한 개발자는 분명 노처녀일 거다. 그것도 최소 40대 이상의!’
깐깐해 보이는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일그러지기 전에 라이프는 재빨리 30브론즈를 내밀었다.
돈도 중요하지만, 시간은 더욱 중요하다.
정보의 값어치 또한 마찬가지고.
그렇게 30브론즈를 받은 사서 NPC는 고개를 한 번 까딱거리곤 물어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혹시 ‘소울’에 대해서 아십니까?”
“소울 에너지. 그건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아주 위험한 힘이죠.”
“그, 그게 어떤 종류의 힘입니까?”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책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전장을 지배할 정도로 강력하고 사악한 마법의 힘이라고 하더군요.”
“……!”
라이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단서가 잡혔다.
마법…… 마법의 힘이라고 했다.
‘이왕이면 검을 쓰고 싶지만 전장을 지배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라고 했으니, 이걸 포기할 수는 없지.’
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라이프는 기대 섞인 눈빛으로 사서 NPC의 이어질 말들을 기다렸다.
“끝입니다.”
“……네?”
“끝이라고요.”
“…….”
믿을 수 없었다.
라이프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기다렸지만, 사서 NPC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망할.’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NPC다.
추가로 돈을 지불하겠다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대답이라고는 거기까지밖에 모른다는 소리뿐.
“이번에는 이쪽에서 읽자.”
[우우! 책 읽는 거 따분한데.]
소울 능력치가 마법과 관련이 있다는 소리에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ㅁ’으로 시작되는 책장이다.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며 라이프는 각오를 다지고, 다솜은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을 쉬었다.
숲으로 사냥이나 나가자며 지루함에 몸부림치는 다솜이지만…… 현실에서도, 소드 앤 매직의 세상에서도 라이프에게 매인 몸이다.
라이프가 정해놓은 범위 이상을 벗어나면 현실로 튕겨 나가기 때문에 입술을 삐죽이며 결국은 라이프가 펴준 책을 읽는 다솜이었다.
‘마법의 기초, 마법과 연금술, 마도의 길…… 정말 많다, 많아.’
처음에는 대충 앞부분만 보다가 훌쩍 넘겼다.
소울에 관련된 내용을 찾아야 했으니까.
그러다가 문뜩 소드 앤 매직의 마법 원리에 관해 설명된 책을 보고 흥미가 생겨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목이 살짝 뻐근해져서 고개를 들다가 그러한 본인의 모습을 깨달은 라이프. 동시에 귓가로 정겨운 시스템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띠링!

[마법의 원리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연구되어 왔고 미래에도 끊임없이 마법사들 사이에서 회자(膾炙)될 위대한 진리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끝자락을 붙잡고 왕성한 탐구심을 보인 당신에게 하이 위저드 ‘제논’의 은총이 함께할 것입니다.]

[지능, 지혜, 집중 능력치가 성장하였습니다.]


“뭐, 뭐야?”
판사님, 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상승한 능력치에 버그는 아닌가, 제 발 저린 라이프는 반투명한 시스템 메시지의 내용을 읽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능력치 창을 열었다.

[라이프] ― [Lv. 10]

클래스 ― [초보자]
명성 ― [45] / 성향 ― [190]
HP ― [200] / MP ― [170] / SP ― [100%]

근력 ― [10] / 민첩 ― [8+1] / 체력 ― [10]
지능 ― [10] / 지혜 ― [7] / 집중 ― [10]
행운 ― [2] / 소울 ― [12]

Point ― [0]

놀랍게도 지능, 지혜, 집중이 각각 2, 3, 1씩 상승했다.
라이프는 뜻밖의 횡재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신없이 머리를 굴렸다.
‘마법의 원리를 탐구했다고? 그냥 내용이 흥미로워 이해하면서 봤을 뿐인데…….’
사냥을 하다가 능력치가 올랐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놀라운 전투의 결과나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면 그 보상으로 능력치가 상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보스를 사냥하거나 지속적으로 자기보다 강한 몬스터를 사냥하다 보면 우연한 전투의 깨달음으로 능력치가 올랐다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고 했던가?’
생각을 곱씹으면서 라이프는 점점 기분이 고조되어 갔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이건 아직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고 꽁꽁 숨겨져 있던 히든 피스(Hidden Piece)일지도 몰랐다.
‘확실히 다들 사냥이나 퀘스트를 쫓아다니지, 도서관에 처박혀서…… 그것도 이렇게 자세히 정독하고 있을 플레이어는 흔치 않을 테니까.’
겹쳐진 우연이 만들어낸 행운이었다.
만약 라이프가 책을 집중해서 봤더라도 그 시간이 짧았더라면?
아니면 아까 불친절한 사서 NPC를 마주하고 화가 나서 그대로 돌아가 버렸더라면?
이쯤 되니 사서 NPC의 까칠함이 혹시나 방금 경험했던 히든 피스를 숨기려고 프로그램된 것은 아닌지, 살짝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어안이 벙벙하긴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순 없지.’
책을 읽어서 능력치가 올랐다고 하지만, 무작정 아무 책이나 읽는다고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분명히 어떠한 패턴 같은 게 있을 테고, 라이프는 그것을 찾아내야만 했다.
[응. 알았어, 수고해.]
“너도 같이할 거야.”
[싫어! 책 그만 볼래. 머리 아프단 말이야.]
“시끄럽고 빨리 읽기나 해.”
[으아앙!]
시끄럽긴 하지만 도서관 전체에 울리기는커녕 오직 라이프에게만 들리는 다솜의 투정 섞인 목소리.
예상하지 못한 책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