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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강한전사’와 ‘소맥이진리’는 같은 대학교의 동문이었다.
그전까지는 그냥 얼굴 정도만 아는 데면데면한 사이였지만, 국내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인 소드 앤 매직의 베타테스터로 합격한 것을 인연으로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미리 계획을 세워서 같은 왕국을 선택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그들을 즐겁게 했다.
둘 모두 초보자 마을 3에서 시작을 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시작하자마자 힘을 모은 둘은 남들보다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강한전사는 검과 방패를 들고, 소맥이진리는 창을 무기로 선택하여 후방에서 강력한 대미지로 지원했다.
무작정 사냥을 나서는 보통의 플레이어들과는 다른, 상당히 짜임새가 있는 전투법으로 경험치를 쓸어 담았던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획기적인 것은 아니고, 평균적인 테스터들의 레벨보다 1 정도 앞서 나가는 수준에 불과하긴 했다.
아무튼 그동안의 결과가 좋으니 자신감이 붙은 그들은 여우보다 좀 더 강력한 동물인 ‘늑대’를 사냥해 보고자 숲 속 필드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게임 오버의 페널티가 워낙 강력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전을 도모하고자 마을에서 파티원 한 명을 더 영입했다.
활과 단검을 무기로 사용하는 여성 플레이어 ‘루루’로, 오는 길에 여우를 몇 마리 사냥해본 결과 손발이 제법 잘 맞았다.
“늑대가 그렇게 경험치를 많이 준다는데, 오늘 각자 2레벨씩 올리자고.”
“그래야지. 벌써 전직 퀘스트를 진행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우리도 오늘쯤에는 전직을 해봐야 하지 않겠어?”
“맞아요. 우리 다들 힘내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늑대가 생각보다 강하긴 했지만 세 명이서 힘을 합치니 무난히 사냥에 성공할 수 있었고, 획득되는 경험치의 양이 여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래서 게시판의 공략집에 여우는 최대한 빨리 건너뛰고 늑대로 넘어가란 것이었군.”
“그러네. 생각했던 것보다 경험치가 훨씬 짭짤해.”
그렇게 세 마리째 늑대 사냥을 끝내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 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뭇가지와 풀잎이 스치는 소리들.
하지만 이들 일행은 다가오는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운 좋게 장비 아이템이나 하나 건졌으면 좋겠다고 하하호호거리는 이들에게 떨어져 내린 가혹한 방심이라는 이름의 철퇴!

[플레이어 루루 ― 기본 대미지 17!]

[플레이어 루루 ― 추가 대미지 13!]

[플레이어 루루 ― 기본 대미지 18!]


“꺄악!”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심장이 내려앉을 뻔한 그들 일행의 심정은 조금도 알아주지 않고 잔인한 습격자들의 칼날이 재차 휘둘러졌다.
첫 번째 기습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던 여성 플레이어 ‘루루’는 안타깝게도 이어진 추가 공격에 시야가 회색빛으로 물들며 게임 오버 되었다.
아직 게임의 오픈 초기라 다들 무기만 갖췄지, 별다른 방어구가 없었기에 집중 공격을 받으면 게임 오버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마!”
강한전사와 소맥이진리가 방어 태세를 갖추었을 때에는 이미 세 명의 머더러 플레이어가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에이, 신발이네.”
“그래? 아깝네. 어차피 팔 거면 무기가 좋은데.”
쓰러져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루루의 캐릭터로 다가가서 전리품을 수거하는 그들의 행동을 보며 강한전사는 이를 갈았다.
“이, 이 새끼들, 머더러 플레이어냐?”
“보면 몰라? 귀찮게 반항하지 말고 쉽게 쉽게 가자고. 그러면 다음에 마주쳐도 한 번 정도는 봐줄게.”
“야! 누구 마음대로 봐줘? 난 노멀 플레이어들 뼛속까지 뽑아 먹을 거야. 그래야 빨리 성장하지.”
강한전사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일단은 3:2로 숫자가 불리했다.
게다가 방금 전 늑대를 사냥했던 터라 HP가 60% 정도로 완전하지 못했다.
“야, 어…… 어떻게 해.”
소맥이진리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현실 세계에서 소맥이진리는 전형적인 범생이었다.
싸움은커녕 말다툼도 거의 해본 적 없는 순둥이 녀석.
이런 성격의 소유자가 아무리 게임이라고 해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적에게 공격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망할, 승산이 없네.’
이길 가능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전력에서도 밀리는데 소맥이진리는 겁까지 집어먹은 상태였으니…… 결국 강한전사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최선을 다해 막아볼 테니까, 너라도 도망쳐.”
“뭐?”
“빨리! 시간 없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소맥이진리는 강한전사가 소리까지 지르며 다그치자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등을 돌리고 말았다.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면 하나라도 살아야지.’
“워워, 어디서 지금 신파극하나 찍고 앉았네.”
“뭐야, 저 자식은? 더럽게 멋있는 척하네. 혼자서 우릴 막아보시겠다?”
머더러 플레이어들의 대응은 생각보다 훨씬 신속했다.
마치 이러한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둘은 강한전사를 상대로 앞뒤 포지션을 점했고, 남은 하나는 도주하는 소맥이진리를 추격했다.
“개자식들! 너희 얼굴 똑똑히 기억했어. 반드시 감옥에 처넣고 만다.”
“가능하면 해보시든가.”
“말이 길어지는데, 얼른 끝내고 한탕 더 뛰러 가자고. 좀만 더 하면 10레벨인데.”
머더러 플레이어는 게임 오버를 당하면 마을의 감옥에서 부활하게 된다.
거기에서 성향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구금당하게 되는데, 그 기간이 상당해서 머더러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게임 오버의 페널티 중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띠링!

[플레이어 ‘소맥이진리’ 님과의 거리 유지에 실패하였습니다.]

[파티의 구성 인원이 부족합니다.]

[‘늑대를 잡자’ 파티가 해산됩니다.]


‘무사히 도망친 건가?’
파티원들끼리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 있으면 자동으로 파티의 구성원에서 빠지게 된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는 강한전사에게 머더러 플레이어들이 비웃음을 날리며 찬물을 끼얹었다.
“그놈도 참 악취미야.”
“그러게. 지가 무슨 사냥꾼인 줄 아는지, 겁에 질린 플레이어를 가지고 논다니까.”
“으으…… 죽어!”
상황을 파악한 강한전사는 분노에 휩싸여서 머더러 플레이어에게 달려들었다.
사방팔방으로 검과 방패를 휘두르는, 필사적인 몸부림.
하지만 플레이어들과의 전투에 익숙한 머더러 플레이어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련하게 강한전사의 공격을 회피했고, 후방에서 기회가 생길 때만 공격을 가했다.
결국 성난 황소마냥 날뛰다가 배후의 일격으로 쓰러져 버리는 강한전사의 모습.
느긋하게 전리품을 챙긴 머더러 플레이어들은 이제 추격을 간 동료를 기다리기로 했다.
“……뭐야, 이 자식?”
“왜 이렇게 안 와? 메시지 보내봐.”
닉네임을 알고 있는 상대에게는 메시지를 통한 대화 신청을 할 수 있었다.
동료가 돌아오질 않자 참지 못하고 메시지를 보낸 머더러 플레이어들.
하지만 돌아오는 시스템 메시지는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띠링!

[플레이어 ‘머리깜기싫어’ 님은 현재 미 접속 상태입니다.]

[미 접속 상태의 플레이어님에게는 메모를 남길 수 있습니다.]

[메모를 남기시겠습니까? YES / NO]


“뭐, 뭐야?”
“설마 창을 든 그놈한테 당한 거야?”
머더러 플레이어들은 당황하면서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동료가 추격했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강한전사 일행과 마찬가지로 너무 안일하고 신중하지 못한 것이었다.
서걱―!

[플레이어 아구아구 ― 기본 대미지 21!]

[플레이어 ‘라이프’ 님에게 공격당하셨습니다.]


“컥!”
두꺼운 나무 뒤쪽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날이 머더러 플레이어의 가슴께를 길게 찢어놓았다.
“으으…….”
“뭐, 뭐야!”
머더러 플레이어가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늘 먹잇감을 고르고 조용히 따라가서 기회를 노려 습격을 해온 그들이니까.
이렇게 반대로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떠올린 적도 없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촤악―!
“크억!”
그건 당하고 나서도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공격이었다.
분명히 상대의 공격을 보고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귀신처럼 방어하고 있는 루트를 비껴가며 바늘처럼 좁은 틈새를 파고들어 왔다.
“도, 도와……줘.”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벌써 HP가 바닥이었다.
강한전사 파티와 마찬가지로 머더러 플레이어들도 방어 장비를 갖추지 못한 것은 동일했다.
공격력은 강하지만 방어력은 형편없는 수준.
그런 상황에서 두 번이나 제대로 된 공격을 허용하자 심각한 부상으로 몸의 반응이 극도로 느려졌다.
“아, 아아…….”
설상가상으로 날카로운 습격자의 눈빛에 기가 질린 동료는 전혀 움직이질 못했다.
그사이 다시 한 번 검이 찔러져 왔다.
그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검을 부딪쳐 갔다.
어떻게든 충돌을 만들어내서 상대의 움직임을 잠시라도 봉쇄하려던 생각. 하지만 손끝에 걸려오는 감촉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푸욱―!
“컥!”
심장을 찌르는 일격이 크리티컬 대미지라고 쓰여진 반투명한 시스템 메시지를 소환했다.
회색으로 물들어가는 시야를 붙잡으며 머더러 플레이어 ‘아구아구’는 가능한 눈을 커다랗게 떴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
늘 즐거움만을 안겨주었던 PK 행위를 통해 처음으로 느껴본 공포, 그리고 두려움……. 본인도 사냥감이 될 수 있다는 인식.
머더러 플레이어의 화면이 검은색으로 암전(暗轉)되었다.

***

몸이 가볍다.
컨디션도 좋았다.
새로 구입한 검은 상승한 가치만큼이나 손바닥에 착하고 감겨드는 느낌을 주었다.
공격력 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상황.
거기에 레벨 업을 하면서 획득한 추가 능력치는 이전보다 더욱 원활한 움직임을 보장해 주었다.
‘지금까지는 좋아.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어.’
라이프가 머더러 플레이어를 발견한 것은 그들이 막 강한전사 일행을 습격하려던 찰나였다.
처음에는 약간 고민도 했다.
강한전사 일행과 함께 머더러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는 건 어떨까 하고.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시 동안 고려해 본 수준에 불과했다.
어차피 그들은 ‘타인’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관계이고, 라이프에게 중요한 것은 ‘실리’였다.
‘함께 전투를 해서 전리품을 나눌 필요는 없지. 경험치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머더러 플레이어들이 일을 벌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노멀 플레이어들은 너무도 쉽게 무너져 버리면서 약간의 계획 수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게 노멀 플레이어와 머더러 플레이어의 차이인가.’
레벨과 능력치만 따지고 본다면 노멀 플레이어들도 1:1로는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멀 플레이어들에게는 경험이 없었고, 머더러 플레이어들은 익숙했다.
그 차이가 전투의 결과를 너무도 싱겁게 만들어 버렸다.
‘떨어져 나온 녀석부터 처리해야겠군.’
상황이 변했으니, 계획도 따라서 변했다.
좀 더 시간은 걸리더라도 안전하고 완벽하게 처리하기로.
추적에 나선 머더러 플레이어가 일을 끝낼 때까지 뒤를 쫓다가 노멀 플레이어를 해치운 다음 방심하고 있는 녀석을 습격했다.
제법 반항을 했지만, 최단 시간 내에 끝내기 위해 ‘직관’을 사용한 라이프의 검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막으려 해봐도 절묘하게 피해가며 급소를 파고드는 검끝의 날카로움.
최대한 버텨내려 한 머더러 플레이어지만, 1, 2분 남짓한 시간 만에 시야가 회색빛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방어 장비가 없어서 그런가? 습격을 통한 선공의 성공이 승패에 너무 큰 영향을 줘버리네.’
방어력도 낮고 HP도 적은 초반인데, 무기만은 다들 빠른 사냥을 위해 여건이 되는 선에서 최고의 것들을 구비하고 있으니 전투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라이프는 승부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동료가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놈이 사라진 방향으로 이동해 오겠지? 이번에도 기습으로 한 놈의 전력을 확 깎아버리면 직관 능력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전투를 끝낼 수 있을 거야.’
다솜이라는 조력자가 있기에 세울 수 있는 계획이었다.
마치 인공위성처럼 높은 곳에서 머더러 플레이어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주는 다솜의 도움!
라이프는 그들의 이동 경로 중에 몸을 숨기기 수월한 장소를 골라서 은신했다.
그리고 심장의 두근거림을 억누르며 완벽한 타이밍에 행해진 습격!
첫 번째 공격을 성공시키니, 그 뒤는 더욱 쉬웠다.
뒷걸음질 치면서 어설프게 행하는 방어를 뚫고 재차 옆구리를 베어버렸다.
손끝을 타고 전해져 오는 서늘한 감각.
거의 무력화된 녀석을 다른 적이 개입하기 전에 서둘러 처리하기 위해 ‘직관’을 사용했다.
얼어붙은 눈동자를 통해 비춰진 세상은 모조리 굳어 있었다.
옆에 있는 머더러 플레이어는 얼이 빠져 있어서 당장은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
‘3초 정도인가?’
그만큼의 시간적 여유만 주어진다면 정신을 차리고 동료를 도우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전에 끝을 내야했다.
‘막으려는 건 가슴 쪽이군.’
검이 움직이는 궤적을 머릿속으로 그려 나갔다.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최종적으로 검이 도달한 위치를 파악했다.
찔러가는 검.
그것의 움직임을 힘겹게 조금씩 수정해 냈다.
그야말로 찰나(刹那)의 순간 동안 이루어지고 있는 궤적의 변화.
마지막 1초 동안 머더러 플레이어와 라이프의 검이 비껴 나가면서 그대로 날카로운 끝이 심장을 찔러 버렸다.

[플레이어 아구아구 ― 기본 대미지 21!]

[플레이어 아구아구 ― 크리티컬 대미지 62!]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반투명한 메시지 창과 그대로 앞을 향해 고꾸라지는 머더러 플레이어가 보인다.
그 너머로 완전히 얼어붙어 있는 마지막 사냥감까지도.
‘운까지 따라주는군.’
만족스러움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매달린다.
좀 더 드잡이질을 해야 할 줄 알았는데, 크리티컬 공격 덕분에 머더러 플레이어 하나를 손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너, 너 뭐야?”
“나?”
전리품을 챙기는 동안 겨우 정신을 차린 녀석이 더듬더듬 내뱉은 말에 라이프는 피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사냥꾼. 그리고 너는…….”
“…….”
“내 사냥감.”
“……!”
머더러 플레이어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