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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돌아버리겠네.’
강제 로그아웃을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일은 주위의 머더러 플레이어를 살피는 것 정도였다.
그렇게 얻어낸 정보의 결과. 아쉽게도 패스는 게임 오버를 당하지 않았다.
레빗의 부축을 받고 있는 걸 봐서는 거동조차 힘든 중상인 보이긴 하지만, 중요한 건 휴식을 취함으로써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경험치나 능력치, 스킬 숙련도의 하락을 겪은 라이프와는 다르게.
‘최소 다섯 번 이상은 능력치를 떨어트려 주마.’
시시각각 원한이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꺄악! 주, 죽었어. 정말 죽었어…….]
‘……?’
갑작스레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주위를 휩쓴다.
원래도 하얀 편인 얼굴빛이 이제는 창백해 보이는 주인공…… 바로 다솜이었다.
‘그래, 졌으니까 맘껏 비웃어라. 에휴.’
하지만 다솜이 보여주는 행동은 라이프가 예상한 것과 달랐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라이프의 캐릭터를 보더니, 문자 그대로 대성통곡을 하는 다솜이었다.
‘야, 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후우, 게임 오버 정도는 설명을 안 해도 알아야지. 무슨 진짜로 죽은 줄 아나.’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내쉬는 사이, 다솜은 아예 고개를 라이프의 가슴팍에 처박은 채 울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진한’ 스킨십.
낯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리려는데, 갑자기 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
[훌쩍! 에? 이건…….]
회색빛의 화면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태창의 HP가 조금씩 차올랐다.
아니, 그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라이프와 접촉한 다솜에게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원래도 반투명하던 다솜의 몸이 점점 더 흐릿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마치 빛의 산란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 시작점은 바로 다솜이 안타깝게 붙잡고 있는 라이프의 오른손.
사실 형체가 없기에 그냥 겹쳐져 있을 뿐이지만, 놀랍게도 다솜의 몸이 빛으로 변해서 캐릭터 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만둬!’
[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이게 갑자기…… 꺄악!]
짧은 비명 소리를 끝으로 머릿속을 울리는 다솜의 염(念)이 사라져 버렸다.
화들짝 놀란 라이프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애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다솜이 사라져 버렸다.
투명해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시야에서 자취를 감췄다.
“헤에…… 이게 뭐야?”
[전투 필드에 진입하셨습니다.]
[착용 중인 모든 장비들의 외형이 드러납니다.]
다시 화면이 밝아진다.
선명하게 돌아온 가상현실 세계의 시야.
게임 오버를 당했음에도 황당하게 필드에서 접속했을 때의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을 스쳤다.
라이프는 무심결에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캐릭터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입에서 내뱉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목소리는 분명 본인의 것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별개인…….
“우왓! 몸이 움직여. 대박, 대박!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라이프가 움직인다.
하지만 그걸 조종하는 주체는 ‘소이’가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되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야! 너 가만히 있어. 움직이려고 하지 마. 말도 하지 말고.’
“히잉! 진짜 기분 좋은데, 나 조금만 움직일게. 응?”
‘으으, 그만…… 그만!!’
본인과 동일한 목소리로 내뱉어지는 소녀의 말투를 듣자니 전신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치이…… 그럼 다음에는 양보해 줘야 해? 알았지?”
‘……차라리 날 죽여.’
직관(直觀)이라는 능력은 상당히 탁월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본인의 모습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상하게 해주었으니까.
비록 그 모습이 본인과 완벽히 닮은 캐릭터, ‘라이프’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귀여운 척하고 있던 중이었다는 게 큰 문제겠지만.
“뭐, 뭐야?”
“저게 뭐야!”
갑자기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머더러 플레이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버그인가?
그래, 버그야.
버그가 확실하겠지.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 전부였다.
방금 전, 그들의 손으로 PK를 했고, 성공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까지 확인했다.
동료인 패스의 부상을 돌보느라 아직 전리품을 챙기진 못했지만, 분명 모든 상황은 종료되어야 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개자식들!”
“헉!”
라이프는 망설이지 않았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HP와 스태미너가 충분히 회복된 상태였다.
반면, 머더러 플레이어들은 방금 전의 격렬했던 전투로 인해 지쳐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었다.
“허억!”
헛바람을 들이켜는 레빗의 가슴팍에 검을 찔러 넣었다.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본능은 살아 있는지, 몸을 비틀어서 피해내는 녀석이지만,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한 바였다.
그대로 검의 궤적을 비틀어서 비어 있는 레빗의 옆구리를 길게 베어주었다.
촤악―!
[플레이어 레빗 ― 기본 대미지 17!]
무리한 동작으로 인해 순간 손목에서 시큰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통증에 신음하는 레빗에게 앞차기를 선물해 주고는 잽싸게 뒤로 돌아서 그레이의 방패 공격을 피해냈다.
얍삽한 자식.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재회까지…… 머더러 세 명 중 가장 비호감인 놈이다.
“어, 어떻게 살아난 거야? 씨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겁을 먹게 된다.
미지에 대한 공포!
동료가 당하자 반사적으로 움직여서 기습을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나자 스멀스멀 다리를 붙잡고 기어 올라오는 두려움에 그레이의 눈동자가 쉬지 않고 좌우로 움직였다.
“이벤트야, 이벤트.”
“뭐?”
“지금 이거 이벤트라고. 다시 살아나는 거.”
“……?”
그레이의 표정이 더욱 혼란스럽게 변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라이프는 신속하게 지면을 박찼다.
“허엇!”
당황한 상태임에도 굳어 있지 않고 즉각 방패로 전면을 가리는 움직임을 보면 그 숙련도를 알 수 있다.
과연 플레이어들과의 전투에 익숙한 머더러라는 건가.
하지만 라이프는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해 온 플레이어들과는 달랐다.
“흡!”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차가운 빛이 맴돌다가 사라진다.
동그란 형태의 라운드 실드가 충실히 급소를 가리고 있지만, 미묘하게 흔들리는 틈새를 라이프의 눈은 놓치질 않았다.
푹―!
[플레이어 그레이 ― 기본 대미지 14!]
[플레이어 그레이 ― 추가 대미지 11!]
“크흑!”
방패 위를 때릴 것 같던 라이프의 검이 부드럽게 비껴 가며 미끄러지듯 그레이의 허벅지를 찔렀다.
깊게 파고든 검날을 통해 추가 대미지가 주어졌다.
검을 회수하자 찔린 상처에서 혈액이 흘러나왔다.
“씨, 씨발, 더러운 버그 플레이어.”
“……할 말은 그게 끝이야?”
그레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다시 살아난 건 그렇다 쳐도 자기보다 레벨도 낮은 녀석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분명히 완벽하게 방어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귀신처럼 생각지도 못한 틈새를 찔러온다.
“이, 이게 끝이라고 생각 마라. 네 등 뒤를 노릴 동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얼마든지 덤비라고 해.”
촤악―!
[플레이어 그레이 ― 기본 대미지 15!]
[플레이어 그레이 ― 추가 대미지 13!]
[플레이어 그레이 ― 크리티컬 대미지 42!]
이미 전의를 상실한 녀석에게 거창한 검 놀림은 필요 없었다.
무방비 상태의 목덜미를 깨끗하게 베어 넘기자 처음으로 세 종류의 시스템 메시지가 터져 나왔다.
띠링!
[‘카오스’ 상태의 플레이어 ‘그레이’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210을 습득합니다.]
[다수를 상대로 한 승리!
놀라운 전투 결과를 통해 이름을 날립니다.]
[명성 5를 얻었습니다.]
털썩!
시체라고 표현해야 할까?
게임 오버가 되어버린 캐릭터 ‘그레이’를 인식한 다음, 전리품을 획득하겠다고 선언했다.
클릭을 끝내자 사라지는 반투명한 선택 창.
중상인 패스는 물론이고, 레빗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이 정도의 여유는 충분했다.
[플레이어 ‘그레이’가 잃어버린 소지금 1실버 35브론즈를 획득합니다.]
[플레이어 ‘그레이’가 잃어버린 딱딱한 육포x2를 획득합니다.]
‘생각보다 돈이 많네.’
소지금의 10%인데 1실버 35브론즈면, 가지고 있던 재산이 라이프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는 거였다.
역시 PK가 돈 좀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슬쩍 레빗과 패스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카오스 상태였던 그레이와 다르게 둘은 머더러 플레이였다.
직접적으로 PK를 저질러서 성향 수치가 -100을 넘어선.
그렇기에 게임 오버의 페널티도 더욱 컸다.
‘머더러 플레이어는 가중처벌을 받으니까, 잡기만 하면 착용하고 있는 장비 아이템도 하나씩 얻을 수 있다는 게 사실이겠지?’
먼저 공격도 당했고 이미 적대 관계인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라이프는 더 이상의 과도한 능력 사용으로 고통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레빗은 순수한 실력으로 상대해 주었다.
캐릭터 자체의 능력치는 레빗 쪽이 우위에 있지만, 이미 기세에서 밀렸고 직관 능력을 제외하고도 ‘시각’에 관한 라이프의 신체 능력은 탁월했다.
침착하게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며 틈을 놓치지 않고 반격을 가함으로써 약간의 시간을 소비한 끝에 무난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마지막은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들어하는 패스를 향한 최후의 일격!
그 뒤로는 달콤한 수확의 시간이 이어졌다.
띠링!
[‘머더러’ 상태의 플레이어 ‘레빗’을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250을 습득합니다.]
[‘머더러’ 상태의 플레이어 ‘패스’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250을 습득합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체력, 지능, 집중, 행운, 소울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획득량이 해당 레벨의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덕분에 레벨 업을 하고도 경험치가 30% 정도까지 치솟았다.
‘능력치도 최대치로 올랐고.’
격렬했던 전투의 보상인지, 레벨 업을 할 때 얻을 수 있는 최대 수치인 능력치 5가 상승했다.
[라이프] ― [Lv. 7]
클래스 ― [초보자]
명성 ― [5] / 성향 ― [20]
HP ― [180] / MP ― [100] / SP ― [82%]
근력 ― [5] / 민첩 ― [6] / 체력 ― [8]
지능 ― [3] / 집중 ― [3] / 행운 ― [2]
소울 ― [4]
Point ― [0]
‘깎인 근력은 그대로네.’
차라리 행운이 깎일 것이지.
게임 오버의 페널티로 잃어버린 근력 수치 1은 너무도 아쉬웠다.
물론 복구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초반이다 보니 잠시 잃어버리게 된 능력치 수치 1도 아쉬운 라이프였다.
‘다음은 아이템하고 돈을…….’
경험치보다는 이게 메인이다.
머더러는 게임 오버의 페널티를 가중해서 받기 때문에 아이템을 두 개 드롭한다.
그중 하나는 자그마치 착용하고 있는 장비 아이템!
라이프는 바닥에 누워 빛으로 변해 반짝이고 있는 패스와 레빗의 흔적을 연속으로 인식하고는 전리품 습득을 선택했다.
[플레이어 ‘패스’가 잃어버린 소지금 1실버 70브론즈를 획득합니다.]
[플레이어 ‘레빗’이 잃어버린 소지금 2실버를 획득합니다.]
[플레이어 ‘패스’가 잃어버린 딱딱한 육포x2를 획득합니다.]
[플레이어 ‘패스’가 잃어버린 ‘조잡한 단검’을 획득합니다.]
[플레이어 ‘레빗’이 잃어버린 딱딱한 보리빵x1을 획득합니다.]
[플레이어 ‘레빗’이 잃어버린 ‘초보 사냥꾼의 반지’를 획득합니다.]
‘무기와 반지!’
기대했던 것보다 결과가 좋았다.
단검은 무기류 중 가격이 가장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허름한 초보자용 의복보다는 훨씬 값어치가 있었다.
거기에 장신구 아이템인 반지는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지급되지 않은 품목으로, 지금 라이프가 지니고 있는 어떤 아이템보다도 가치가 높을 것이다.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를 매달고 아이템의 세부 정보를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이제 중요한 일은 다 끝났지? 나쁜 놈들도 다 해치웠으니까.]
“응? 아아, 그렇긴 한데…….”
[그러면 양보해 줘. 나도 움직이고 싶어. 응?]
라이프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솜의 염(念)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그래, 해결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었지.”
머더러 플레이어에 대한 분노 해소에 정신이 팔려서 순간 잊고 있었다.
갑자기 일어난 시스템 오류라고 해야 할까?
분명 게임 오버 상태였는데 되살아났다.
‘도대체 넌 뭘 숨기고 있는 거니? 애초에 귀신이 가상현실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이번에는 게임 내의 시스템까지 관여를 하다니.’
[이이잉! 나도 움직일래. 아까 정말 기분 좋았단 말이야. 안 해주면 나 운다? 울 거야. 정말이야!]
“…….”
순간, 다솜을 두고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 본인이 ‘바보’는 아닌지 깊게 고찰하게 된 라이프였다.
‘……돌아버리겠네.’
강제 로그아웃을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일은 주위의 머더러 플레이어를 살피는 것 정도였다.
그렇게 얻어낸 정보의 결과. 아쉽게도 패스는 게임 오버를 당하지 않았다.
레빗의 부축을 받고 있는 걸 봐서는 거동조차 힘든 중상인 보이긴 하지만, 중요한 건 휴식을 취함으로써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경험치나 능력치, 스킬 숙련도의 하락을 겪은 라이프와는 다르게.
‘최소 다섯 번 이상은 능력치를 떨어트려 주마.’
시시각각 원한이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꺄악! 주, 죽었어. 정말 죽었어…….]
‘……?’
갑작스레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주위를 휩쓴다.
원래도 하얀 편인 얼굴빛이 이제는 창백해 보이는 주인공…… 바로 다솜이었다.
‘그래, 졌으니까 맘껏 비웃어라. 에휴.’
하지만 다솜이 보여주는 행동은 라이프가 예상한 것과 달랐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라이프의 캐릭터를 보더니, 문자 그대로 대성통곡을 하는 다솜이었다.
‘야, 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후우, 게임 오버 정도는 설명을 안 해도 알아야지. 무슨 진짜로 죽은 줄 아나.’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내쉬는 사이, 다솜은 아예 고개를 라이프의 가슴팍에 처박은 채 울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진한’ 스킨십.
낯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리려는데, 갑자기 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
[훌쩍! 에? 이건…….]
회색빛의 화면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태창의 HP가 조금씩 차올랐다.
아니, 그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라이프와 접촉한 다솜에게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원래도 반투명하던 다솜의 몸이 점점 더 흐릿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마치 빛의 산란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 시작점은 바로 다솜이 안타깝게 붙잡고 있는 라이프의 오른손.
사실 형체가 없기에 그냥 겹쳐져 있을 뿐이지만, 놀랍게도 다솜의 몸이 빛으로 변해서 캐릭터 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만둬!’
[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이게 갑자기…… 꺄악!]
짧은 비명 소리를 끝으로 머릿속을 울리는 다솜의 염(念)이 사라져 버렸다.
화들짝 놀란 라이프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애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다솜이 사라져 버렸다.
투명해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시야에서 자취를 감췄다.
“헤에…… 이게 뭐야?”
다시 화면이 밝아진다.
선명하게 돌아온 가상현실 세계의 시야.
게임 오버를 당했음에도 황당하게 필드에서 접속했을 때의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을 스쳤다.
라이프는 무심결에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캐릭터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입에서 내뱉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목소리는 분명 본인의 것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별개인…….
“우왓! 몸이 움직여. 대박, 대박!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라이프가 움직인다.
하지만 그걸 조종하는 주체는 ‘소이’가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되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야! 너 가만히 있어. 움직이려고 하지 마. 말도 하지 말고.’
“히잉! 진짜 기분 좋은데, 나 조금만 움직일게. 응?”
‘으으, 그만…… 그만!!’
본인과 동일한 목소리로 내뱉어지는 소녀의 말투를 듣자니 전신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치이…… 그럼 다음에는 양보해 줘야 해? 알았지?”
‘……차라리 날 죽여.’
직관(直觀)이라는 능력은 상당히 탁월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본인의 모습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상하게 해주었으니까.
비록 그 모습이 본인과 완벽히 닮은 캐릭터, ‘라이프’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귀여운 척하고 있던 중이었다는 게 큰 문제겠지만.
“뭐, 뭐야?”
“저게 뭐야!”
갑자기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머더러 플레이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버그인가?
그래, 버그야.
버그가 확실하겠지.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 전부였다.
방금 전, 그들의 손으로 PK를 했고, 성공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까지 확인했다.
동료인 패스의 부상을 돌보느라 아직 전리품을 챙기진 못했지만, 분명 모든 상황은 종료되어야 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개자식들!”
“헉!”
라이프는 망설이지 않았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HP와 스태미너가 충분히 회복된 상태였다.
반면, 머더러 플레이어들은 방금 전의 격렬했던 전투로 인해 지쳐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었다.
“허억!”
헛바람을 들이켜는 레빗의 가슴팍에 검을 찔러 넣었다.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본능은 살아 있는지, 몸을 비틀어서 피해내는 녀석이지만,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한 바였다.
그대로 검의 궤적을 비틀어서 비어 있는 레빗의 옆구리를 길게 베어주었다.
촤악―!
무리한 동작으로 인해 순간 손목에서 시큰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통증에 신음하는 레빗에게 앞차기를 선물해 주고는 잽싸게 뒤로 돌아서 그레이의 방패 공격을 피해냈다.
얍삽한 자식.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재회까지…… 머더러 세 명 중 가장 비호감인 놈이다.
“어, 어떻게 살아난 거야? 씨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겁을 먹게 된다.
미지에 대한 공포!
동료가 당하자 반사적으로 움직여서 기습을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나자 스멀스멀 다리를 붙잡고 기어 올라오는 두려움에 그레이의 눈동자가 쉬지 않고 좌우로 움직였다.
“이벤트야, 이벤트.”
“뭐?”
“지금 이거 이벤트라고. 다시 살아나는 거.”
“……?”
그레이의 표정이 더욱 혼란스럽게 변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라이프는 신속하게 지면을 박찼다.
“허엇!”
당황한 상태임에도 굳어 있지 않고 즉각 방패로 전면을 가리는 움직임을 보면 그 숙련도를 알 수 있다.
과연 플레이어들과의 전투에 익숙한 머더러라는 건가.
하지만 라이프는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해 온 플레이어들과는 달랐다.
“흡!”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차가운 빛이 맴돌다가 사라진다.
동그란 형태의 라운드 실드가 충실히 급소를 가리고 있지만, 미묘하게 흔들리는 틈새를 라이프의 눈은 놓치질 않았다.
푹―!
“크흑!”
방패 위를 때릴 것 같던 라이프의 검이 부드럽게 비껴 가며 미끄러지듯 그레이의 허벅지를 찔렀다.
깊게 파고든 검날을 통해 추가 대미지가 주어졌다.
검을 회수하자 찔린 상처에서 혈액이 흘러나왔다.
“씨, 씨발, 더러운 버그 플레이어.”
“……할 말은 그게 끝이야?”
그레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다시 살아난 건 그렇다 쳐도 자기보다 레벨도 낮은 녀석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분명히 완벽하게 방어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귀신처럼 생각지도 못한 틈새를 찔러온다.
“이, 이게 끝이라고 생각 마라. 네 등 뒤를 노릴 동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얼마든지 덤비라고 해.”
촤악―!
이미 전의를 상실한 녀석에게 거창한 검 놀림은 필요 없었다.
무방비 상태의 목덜미를 깨끗하게 베어 넘기자 처음으로 세 종류의 시스템 메시지가 터져 나왔다.
띠링!
놀라운 전투 결과를 통해 이름을 날립니다.]
털썩!
시체라고 표현해야 할까?
게임 오버가 되어버린 캐릭터 ‘그레이’를 인식한 다음, 전리품을 획득하겠다고 선언했다.
클릭을 끝내자 사라지는 반투명한 선택 창.
중상인 패스는 물론이고, 레빗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이 정도의 여유는 충분했다.
‘생각보다 돈이 많네.’
소지금의 10%인데 1실버 35브론즈면, 가지고 있던 재산이 라이프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는 거였다.
역시 PK가 돈 좀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슬쩍 레빗과 패스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카오스 상태였던 그레이와 다르게 둘은 머더러 플레이였다.
직접적으로 PK를 저질러서 성향 수치가 -100을 넘어선.
그렇기에 게임 오버의 페널티도 더욱 컸다.
‘머더러 플레이어는 가중처벌을 받으니까, 잡기만 하면 착용하고 있는 장비 아이템도 하나씩 얻을 수 있다는 게 사실이겠지?’
먼저 공격도 당했고 이미 적대 관계인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라이프는 더 이상의 과도한 능력 사용으로 고통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레빗은 순수한 실력으로 상대해 주었다.
캐릭터 자체의 능력치는 레빗 쪽이 우위에 있지만, 이미 기세에서 밀렸고 직관 능력을 제외하고도 ‘시각’에 관한 라이프의 신체 능력은 탁월했다.
침착하게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며 틈을 놓치지 않고 반격을 가함으로써 약간의 시간을 소비한 끝에 무난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마지막은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들어하는 패스를 향한 최후의 일격!
그 뒤로는 달콤한 수확의 시간이 이어졌다.
띠링!
경험치 획득량이 해당 레벨의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덕분에 레벨 업을 하고도 경험치가 30% 정도까지 치솟았다.
‘능력치도 최대치로 올랐고.’
격렬했던 전투의 보상인지, 레벨 업을 할 때 얻을 수 있는 최대 수치인 능력치 5가 상승했다.
[라이프] ― [Lv. 7]
클래스 ― [초보자]
명성 ― [5] / 성향 ― [20]
HP ― [180] / MP ― [100] / SP ― [82%]
근력 ― [5] / 민첩 ― [6] / 체력 ― [8]
지능 ― [3] / 집중 ― [3] / 행운 ― [2]
소울 ― [4]
Point ― [0]
‘깎인 근력은 그대로네.’
차라리 행운이 깎일 것이지.
게임 오버의 페널티로 잃어버린 근력 수치 1은 너무도 아쉬웠다.
물론 복구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초반이다 보니 잠시 잃어버리게 된 능력치 수치 1도 아쉬운 라이프였다.
‘다음은 아이템하고 돈을…….’
경험치보다는 이게 메인이다.
머더러는 게임 오버의 페널티를 가중해서 받기 때문에 아이템을 두 개 드롭한다.
그중 하나는 자그마치 착용하고 있는 장비 아이템!
라이프는 바닥에 누워 빛으로 변해 반짝이고 있는 패스와 레빗의 흔적을 연속으로 인식하고는 전리품 습득을 선택했다.
‘무기와 반지!’
기대했던 것보다 결과가 좋았다.
단검은 무기류 중 가격이 가장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허름한 초보자용 의복보다는 훨씬 값어치가 있었다.
거기에 장신구 아이템인 반지는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지급되지 않은 품목으로, 지금 라이프가 지니고 있는 어떤 아이템보다도 가치가 높을 것이다.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를 매달고 아이템의 세부 정보를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이제 중요한 일은 다 끝났지? 나쁜 놈들도 다 해치웠으니까.]
“응? 아아, 그렇긴 한데…….”
[그러면 양보해 줘. 나도 움직이고 싶어. 응?]
라이프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솜의 염(念)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그래, 해결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었지.”
머더러 플레이어에 대한 분노 해소에 정신이 팔려서 순간 잊고 있었다.
갑자기 일어난 시스템 오류라고 해야 할까?
분명 게임 오버 상태였는데 되살아났다.
‘도대체 넌 뭘 숨기고 있는 거니? 애초에 귀신이 가상현실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이번에는 게임 내의 시스템까지 관여를 하다니.’
[이이잉! 나도 움직일래. 아까 정말 기분 좋았단 말이야. 안 해주면 나 운다? 울 거야. 정말이야!]
“…….”
순간, 다솜을 두고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 본인이 ‘바보’는 아닌지 깊게 고찰하게 된 라이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