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4화


아주 우스운 단어가 하나 있었다.
재능(才能).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을 뜻하는데,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과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획득한 것을 모두 이르는 단어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소이에게는 아주 독특한 재능이 있었다.
사람들을 속여서 쉽게 돈 좀 벌어보려고 하는 사이비 무당들 따위와는 확연히 다른, 영(靈)을 볼 수 있는 능력!
어릴 적 그러한 재능의 발현으로 큰 사고를 겪은 적이 있었다.
덕분에 병원 신세도 제법 졌는데, 그때 받은 검사 결과 중 특이한 내용이 있었다.
후두엽, 일명 뒤통수엽이라고도 불리는 대뇌의 일부분.
사물의 위치, 모양, 운동 상태 등을 분석하는 뇌의 기관인데, 병원에서는 소이의 후두엽 발달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학회에 보고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한 케이스라나?
진료비를 무상으로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혜택을 내세워 교섭을 하려던 병원 측이지만, 단호하게 거부한 부모님 덕분에 모르모트처럼 다뤄지는 경험은 피할 수 있던 소이였다.
후두엽의 발달.
사실 소이는 관련된 내용 같은 건 아무것도 몰랐다.
뇌의 구조나 기능 같은 것을 공부했던 것도 아니고.
다만,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본인의 ‘눈’이 남다르다는 것.
영(靈)을 볼 수 있는 능력뿐만이 아니었다.
정신을 집중하는 순간, 시야에 감지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정보 전달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고나 할까?
남들이 눈으로 봐서 구분하는 데 2, 3초 걸리는 것들도 소이는 시야 안에만 들어온다면 보는 순간 파악을 끝낼 수 있었다.
놀라운 수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복잡한 계산식을 간단하게 머릿속으로 암산해 버리는 것처럼 소이의 눈도 그러한 기능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재능이 처음으로 펼쳐진 분야는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바로 게임이었다.
현실에서의 활동이 제한된 탓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의외로 소이의 ‘눈’은 게임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1초 남짓한 시간 동안의 순간적인 판단과 컨트롤이 필요로 할 때 누구보다 빠르게 그것을 ‘인지’하고 ‘반응’할 수 있었다.
프로 게이머로 활동한 것은 아니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 같은 소이의 플레이들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같은 길드나 최상위권의 랭커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토끼나 여우 따위에게는 사용할 필요가 없어서 자제를 했지만…….’
흔히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한다.
등가교환(等價交換).
동일한 가치를 교환하는 세계의 법칙.
소이가 가진 ‘눈’은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사용할 때마다 진한 피로감을 동반했다.
그리고 그 피로감은 한계를 넘어선 순간부터는 ‘통증’으로 변화했다.
함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드는 제약.
그렇기에 소이는 지금껏 ‘직관(直觀)’이라고 이름 붙인 이 능력을 일반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때만 사용해 왔다.
바로 지금처럼.
까가가각―!
숏 소드와 녹슨 철검이 격렬하게 엉켜든다.
힘 싸움을 하려는 것인지, 숏 소드의 각도가 기울어지면서 검신을 할퀴고 지나가는 소리가 매서웠다.
“크으, 죽기 전에…… 발악하는 거냐!”
“말이 많아.”
퍽!
검을 마주한 채로 시끄럽게 쫑알거리는 녀석의 복부를 걷어차 줬다.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러서는 녀석의 뒤에서 기다렸다는 듯 몽둥이를 든 머더러가 튀어나와 기습을 가해왔다.
‘직관(直觀)!’
갑작스럽게 생긴 능력이 아니다.
이제는 익숙해질 정도로 사용해 온 능력.
그 순간, 라이프의 눈에서 기묘한 빛이 번쩍였고, 시야 속의 모든 것이 속속들이 파악되어 버렸다.
‘복부를 얻어맞은 놈이 회복되기까지 3초, 몽둥이가 내게 도착할 때까지 2초…… 마지막으로 공격 위치는 머리!’
길게 생각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1초 남짓한 순간이었다.
판단이 내려지자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우선은 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적을 움츠러들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속임수. 라이프의 몸이 민첩하게 측면으로 이동하면서 뒤쪽에 있던 머더러 플레이어와의 거리를 좁혔다.
“이 자식이!”
휘둘러진 몽둥이는 검과 부딪칠 것 같은 절묘한 타이밍에 라이프가 궤적을 바꿔 버리자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이 모든 것이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움직임과 동시에 실현되었다.
상대의 공격을 완벽하게 예측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절묘한 흘리기!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라이프는 다시 한 번 가속하며 복부의 충격에 비틀거리고 있던 녀석에게 옆차기를 가했다.
퍽!

[플레이어 패스 ― 기본 대미지 5!]


“컥!”
이번에는 아까의 견제 정도가 아닌, 제대로 된 정타였다.
비틀거리는 머더러 플레이어에게 무기를 이용한 일격을 먹여주고 싶었지만, 뒤에서 뻗어오는 섬뜩한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서 후방을 살핀 라이프는 다시 한 번 직관 능력을 사용했다.
‘몽둥이를 든 녀석이 날 타격하기 위한 시간은 2초……. 그사이 내가 패스란 놈을 끝장낼 수 있는 가능성은?’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지자마자 라이프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후방의 머더러 플레이어와 마주했다.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자신을 농락하고 동료에게 공격을 가한 라이프의 행동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는지,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 몽둥이를 휘둘러 온다.
‘젠장…… 직관!’
척 보기에도 스피드와 파워가 심상치 않았다.
6레벨 캐릭터의 능력만 믿고 맞서기에는 턱도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 연속해서 눈을 부릅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몽둥이가 그리는 궤적을 판단하고 몸을 날린다.
그 순간, 다시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아니, 사실 그건 착각이다.
찰나(刹那)의 시간 동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속된 뇌의 능력이 수십, 수백의 연산 과정을 처리해 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고도로 발전된 정밀 기계처럼 조금의 실수도 없이 최적의 움직임으로 몽둥이를 피해낸 라이프가 녀석의 심장을 목표로 검을 찔러갔다.
‘됐다!’
까강!
“……!”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려고 한 바로 그때, 지켜만 보고 있던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숲의 입구에서 라이프에게 거짓된 파티 신청을 했던 머더러 플레이어의 끄나풀.
녀석이 나무 방패로 전면을 가려서 라이프의 공격을 방어해 낸 것이다.
띠링!

[플레이어 ‘그레이’ 님이 전투에 개입하였습니다.]
[적에게 도움을 주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시스템상 적으로 인식됩니다.]

[플레이어 ‘그레이’ 님이 ‘카오스’ 상태가 되었습니다.]
[‘카오스’ 상태의 플레이어를 공격할 때는 아무런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스태미너가 50% 이하입니다. 약간의 휴식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반투명한 시스템 메시지가 그레이의 몸 주위에서 터져 나왔다.
머릿속으로 취소라는 생각을 떠올림과 동시에 반투명한 창들이 사라졌고, 라이프는 이제 완전한 전력을 갖춘 적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으으, 이 새끼가!”
몽둥이를 사용하는 플레이어 ‘레빗’은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PK가 처음도 아니고, 벌써 소드 앤 매직을 플레이하면서 세 번이나 성공시킨 경험자들이었다.
그런데 한 명을 상대로 이렇게 휘둘리다니.
게다가 적은 완전한 상태도 아니었다.
여우를 사냥하느라 HP와 스태미너를 소비했고,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야, 정신 차려! 이기지 못할 놈이 아니야. 당황하지 말라고.”
생각이 많아지고 있는 레빗의 어깨를 두드린 건 그레이였다.
방패 너머로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 그레이는 레빗을 질책하며 말했다.
“따로따로 싸우지 말고 제대로 집중해서 동시에 덤벼들란 말이야. 반격할 여유와 틈을 주지 마.”
“…….”
그레이의 주장 그대로였다.
사실 라이프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레빗과 패스가 기죽어 있는 상황이지만, 방심하지 않고 제대로 합공을 한다면 승기는 머더러 플레이어들에게 있었다.
직관의 능력을 통해 시야 내의 모든 것을 파악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공격은 보이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 그러한 한계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머더러 플레이어들은 아주 유리했다.
개개인이 라이프보다 레벨과 능력치가 높았으니까.
그레이의 질책을 통해 본인들의 전투 방식이 안일했다는 것을 깨달은 레빗과 패스의 표정이 잔뜩 굳어버렸다.
더 이상 상대의 방심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
라이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레벨과 능력치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아니, 최소 HP와 스태미너만 완전했더라도.’
아쉬움을 곱씹을 시간도 없었다.
잔뜩 흥분한 패스와 레빗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라이프는 숙련된 투우사처럼 능력을 사용해서 그들을 이끌었지만, 금방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기회를 노린 반격은 그레이의 방패로 인해서 봉쇄되었고, 방어를 도외시한 채 달려드는 레빗과 패스의 저돌적인 공격은 능력치의 열세로 인해 점점 부담스러워져 갔다.
서걱―!

[플레이어 라이프 ― 기본 대미지 12!]


“큭!”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차가운 금속의 감촉과 달리 남겨진 상처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제대로 적중한 첫 공격을 보며 머더러 플레이어들은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HP가 20% 이하입니다. 회복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스태미너가 30% 이하입니다. 휴식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위험을 경고하는 것인지, 숫자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최초로 당할지도 모르는 게임 오버의 순간이 조금씩 다가옴을 체감한다.
검을 피하고 몽둥이를 비껴 막는다.
하지만 그 뒤에 다가온, 가슴팍을 강타하는 방패와의 충돌은 직관을 사용했음에도 완전히 피할 방법이 없었다.
“좋아!”
“그래, 이거야! 잘하고 있어!”
“아주 조져 버리라고!”
기세가 살자 머더러 플레이어들이 더욱 신을 냈다.
지금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굴욕, 치욕, 모욕?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머더러 플레이어들 머리 위에서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을 떨어트릴 것 같은 다솜의 모습이 보인다.
그걸 보니 심장 근처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치솟는 느낌이다.
결국 라이프는 결단을 내렸다.
‘이런 식으로 버텨봐야 뭔 소용이야. 망할, 슬슬 머리도 아파오는 것 같은데……. 그래, 이렇게 된 거, 하나 정도는 데려가야지.’
계속된 직관의 사용으로 눈 주위를 비롯한 머리의 통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더 이상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결국 결심이 선 라이프는 이를 악물고 놈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래그래, 이제 포기할 때도 되…… 헛!”
더 이상 방어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패스의 숏 소드가 거칠게 갈리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밀려 나갔다.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라이프의 녹슨 철검!
푸욱―!

[플레이어 패스 ― 기본 대미지 15!]

[플레이어 패스 ― 크리티컬 대미지 67!]


손끝의 느낌이 남달랐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뭔가가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은 감각!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그 상쾌한 감각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퍼억―!

[플레이어 라이프 ― 기본 대미지 17!]

[플레이어 라이프 ― 추가 대미지 10!]


“컥!”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공격에 올인하는 건 곧 방어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뒤통수를 가격한 레빗의 몽둥이질은 라이프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주었다.
완벽한 후방 공격의 성공으로 인한 추가 대미지까지.
라이프의 시야가 거칠게 흔들리다가 순간 새하얗게 탈색되어 버렸다.
띠링!

[게임 오버 되었습니다.]

[경험치가 89.7% ―> 79.7%로 하락합니다.]

[소지금의 10%를 잃어버렸습니다.]

[3급 여우 가죽x1을 잃어버렸습니다.]

[근력 1을 상실합니다.]

[잃어버린 능력치는 특수한 아이템이나 퀘스트 등을 통해서 복구할 수 있습니다.]

[스킬 숙련도가 하락합니다.]

[보유한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재접속 가능 시간까지 59분 59초가 남았습니다.]


‘하…….’
가상현실 게임에서 겪는 최초의 게임 오버.
하얗게 변했던 시야는 조금씩 원래의 색을 찾아가는가 싶더니, 회색빛에서 그대로 멈춰 버렸다.
마치 6, 70년대 흑백 TV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10초 뒤, 강제 로그아웃이 진행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진한 아쉬움을 곱씹었다.
더불어서 그에 버금가는 분노의 감정까지도.
‘이번 일…… 절대로 잊지 않아.’
회색빛 화면으로도 가리지 못한 라이프의 얼음장 같은 시선이 머더러 플레이어들을 직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