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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과연 무슨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이건 결코 설렁설렁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였다.
‘늦어도 내일이면 10레벨을 달성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은 그리 머지않았다.
만약 다솜과의 황당한 사건이 없었다면 소이는 무리 없이 소드맨이나 파이터로 전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플레이해 온 대부분의 게임을 검을 휘두르는 캐릭터와 함께했기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이유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라이프] ― [Lv. 6]

클래스 ― [초보자]
명성 ― [0] / 성향 ― [0]
HP ― [170] / MP ― [100] / SP ― [100%]

근력 ― [6] / 민첩 ― [6] / 체력 ― [7]
지능 ― [2] / 집중 ― [2] / 행운 ― [1]
소울 ― [3]

Point ― [0]

손톱 아래 박힌 가시처럼 자꾸 신경이 쓰이는 소울 능력치.
이 능력치가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도 모르는데 섣부르게 근접 전투 클래스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만약 소울 능력치가 마법이나 생산 등에 관련된 능력치라면 그대로 스텟 하나를 버리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홈페이지에도 소울 능력치에 관한 정보는 전무한 상태고.’
쉽게 결정 내리기 난감한 상황에서 소이가 내린 선택은 잠시 동안의 ‘외면’이었다.
아직 첫 번째 전직이 가능해지는 10레벨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내릴 수 있는 선택.
일단은 사냥에 좀 더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앉아서 고민만 한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건 아니니까, 일단 레벨도 올리고 돈이나 벌고 있자.’
소이는 짜릿했던 사냥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얼른 성장해서 전율이 일어날 정도의 굉장한 전투를 겪어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토끼는 졸업해야지, 이 야만인아.]
“그거 가짜라고. 시끄럽게 비명 지르기는.”
귀여운 생김새의 토끼를 사냥할 때마다 옆에서 비명을 질러 대던 다솜이었다.
어떻게 이런 사랑스러운 동물을 학대할 수 있냐고 하면서.
레벨 업에 목말라 있는 소이로서는 황당한 노릇일 뿐이었다.
“준비 끝났어?”
[응. 빨리 가자.]
그렇게 한동안 시답지 않은 주제의 노닥거림으로 시간을 때운 둘은 휴식 시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소드 앤 매직의 세계로 향했다.
지금까지 토끼는 지겹게 사냥을 했으니, 이제 다음 목표로 향할 차례였다.
띠링!

[전투 필드에 진입하셨습니다.]
[착용 중인 모든 장비들의 외형이 드러납니다.]


오늘도 경비병 NPC들의 시답지 않은 농담을 뒤로한 채 소이는 전투 필드에 진입했다.
오늘도 북적거리는 초보자 마을 근처의 사냥터들.
라이프는 여전히 남쪽 출입구를 선택했다.
사냥감의 개체 수는 적지만 그만큼 경쟁자도 줄어들기 때문에 크게 사냥의 효율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번에는 사슴이나 여우를 노려볼까? 6레벨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사슴과 여우는 토끼와 마찬가지로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 ‘비선공’ 동물이지만, 공격을 받는 순간부터 반격을 가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일방적으로 샌드백이 되어주는 토끼와 다르게 제대로 된 전투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았다.
조금은 긴장되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흥분되는 느낌.
라이프는 허리춤에 생성된 녹슨 철검을 강하게 움켜쥐며 ‘폴짝폴짝’ 정신 사납게 뛰어다니는 토끼들 사이를 지나쳐서 멀리 보이는 숲 지형으로 향했다.
“저기요.”
“……?”
막 숲과 평지의 경계에 도착하여 그걸 넘어서려고 할 때, 조금 다급하게 느껴지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암만 주위를 둘러봐도 근처에는 본인을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선 라이프의 눈에 이쪽을 향해 뜀박질해 오는 플레이어 하나가 들어왔다.
“후우, 후우…… 안녕하세요. 혹시 숲 안쪽으로 사냥하러 가시나요?”
“그렇긴 한데, 무슨 일이죠?”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지급 받는 기본 셔츠와 바지에 무기로는 짧은 단검이 전부다.
평범한 체구에 실실 웃고 있는 입매가 조금은 거슬리는 스포츠머리의 남성 플레이어.
라이프는 예상하지 못한 만남에 조금은 경계심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하하하, 혼자시면 파티 사냥을 부탁드리려고요. 좀 전까지 숲 속에서 사냥을 하던 파티가 해산되어 아쉬운 상태였거든요. 어떠세요?”
“…….”
조금 의외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다.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방식의 게임에서 파티 사냥이란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이니까.
혼자서 사냥을 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도 좋았다.
그런 이유에서 타인과 벽을 하나 친 것처럼 거리를 두는 라이프로서도 기존에 플레이했던 게임에서 파티 사냥은 종종 하곤 했다.
높은 수준의 사냥터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여러 명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했으니까.
그러한 플레이 방식이 가상현실 게임인 소드 앤 매직에서라고 딱히 달라질 이유는 없었다.
필요에 의해서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파티 사냥. 하지만 지금 눈앞의 사람은 아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혼자가 편할 것 같네요. 파티 사냥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함께하도록 하죠.”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라이프의 단호한 거절에 남성 플레이어는 더 이상 말을 붙여볼 여지도 얻지 못하고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그걸 본 라이프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서 숲 속으로 들어섰다.
‘초반에 등장하는 약한 사냥감들은 파티 사냥이 필요 없지. 혼자서도 충분히 사냥이 가능할 만큼 약한 개체들이니까.’
파티 사냥의 이유는 혼자서 사냥을 할 때보다 경험치나 안전성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이익이 있을 때다.
그렇기에 현재 목표인 사냥감들을 생각해 본다면 당장 파티 사냥을 할 필요는 없었다.
기껏해야 사슴이나 여우 정도인데 무슨 위험이 있을까.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처음 본 사람이다.
신뢰의 문제도 있고, 처음 마주칠 때부터 실실거리며 긴장감 없는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위아래로 날 훑어보던 그 눈빛은…….’
[재수 없었지? 바싹 마른 무말랭이 같은 게 감히 어디서 끼어들려고 하는 거야? 사냥은 우리 둘이면 충분한데.]
“…….”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다솜의 독설에 살짝 의구심이 들지만, 적대감으로 맹렬하게 불타오르고 있는 그 눈빛을 보아하니 말을 붙이지 않는 게 상책일 듯했다.
조금은 썰렁해진 분위기.
라이프는 어서 사냥감이 등장하길 바라며 바쁘게 걸음을 떼었다.
[저쪽이야! 앞으로 30m 정도?]
“OK. 이동하면 계속 알려줘.”
다솜의 능력은 단순히 약초 채집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시야가 제한되는 숲 속에서도 자유롭게 허공을 부유하며 라이프 외의 존재들을 재빠르게 찾아냈다.
탐색을 넘어서 정찰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킨 다솜의 기세는 그야말로 위풍당당(威風堂堂)!
그녀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한 마리 여우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지는 않고, 그냥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후우…….”
짧은 호흡을 내뱉으며 검을 고쳐 쥐고 자세를 점검했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 건지.
라이프는 수풀 사이의 여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홀쭉한 체형에 길고 뾰족한 주둥이를 가졌다.
귀의 뒷부분과 네 다리의 아랫부분은 털의 빛깔이 살짝 어둡고 꼬리는 굵고 길었는데, 겉모습만 보자면 더 말할 것도 없는 초보자의 성장을 위한 잡스러운 사냥감이었다.
위험이나 위압감 따위는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토끼 때와는 달리 쉽게 달려들 수가 없는 이유가 있었다.
토끼와 달리 ‘반격’을 해온다는 것.
그 사실 하나가 라이프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온라인 게임이 아닌 이곳에서라면 뭔가 굉장한 게 느껴질 것 같단 말이지.’
드래곤의 최종 단계 공격이라는 ‘브레스’라 해도 온라인 게임에서는 그저 강력한 공격 스킬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대미지는 어느 정도고, 그러한 상황에서는 무슨 스킬을 사용하고 어떤 패턴으로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전부. 하지만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달랐다.
‘내가 직접 겪는 일이니까.’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드래곤의 브레스보다 한가로이 수풀을 헤집고 다니는 여우의 물어뜯기가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
“후우…… 가자!”
타닥!
HP와 스태미너는 충분하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지면을 힘차게 박차고 달려 나가는 라이프의 움직임.
옆으로 조금 처져 있던 여우의 양쪽 귀가 그 순간 ‘쫑긋’하고 바짝 서버렸다.
‘반응 빠른데?’
시선까지 이쪽을 향한다.
그사이 라이프가 뗀 걸음은 세 걸음째.
이제 여우와의 거리는 마찬가지로 크게 보폭을 하면 세 걸음 정도 남았다.
속으로 ‘하나’라고 외치면서 검을 어깨 높이로 치켜든다.
‘둘’ 하는 순간에 크게 내딛으며 여우를 사정거리 안에 담는다.
낮게 낮춘 자세와 경계심 어린 눈동자.
‘이미 늦었어!’
쒜에엑―!
최단 거리의 선을 긋는 날카로운 검 놀림.
공격을 인식한 여우가 회피하고자 몸을 날렸지만, 이미 지척까지 도착한 철검은 그 녹슨 끄트머리로 여우의 옆구리를 매섭게 할퀴었다.
서걱―!

[여우 ― 기본 대미지 16!]

캥, 깨갱!
‘아직 멀었어.’
비록 토끼가 상대였긴 하지만 검의 손잡이를 타고 전해져 오는, ‘뭔가를 베는’ 감각은 충분히 익숙해진 상태였다.
전투를 시작한 이상 망설임은 독이다.
라이프는 재차 거리를 좁히며 옆구리에서 핏줄기를 흘려 대고 있는 여우를 향해 검을 찔러갔다.
푹―!

[여우 ― 기본 대미지 17!]
[여우 ― 추가 대미지 10!]

벌어진 거리를 단숨에 좁히기 위해 선택한 찌르기였는데, 제대로 먹혔다.
상처 부위를 더욱 깊숙하게 파고든 녹슨 검날을 회수하기 전, 옆으로 휘두르며 상처 부위를 더욱 길게 벌려놓았다.
조금의 자비도 느껴지지 않는 잔혹한 손속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이기도 했다.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출혈 대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대로 하면 앞으로 두 번 정도면 끝을 볼 수 있……!’
하지만 그때, 일방적인 공격에 맥을 못 추고 굴복하리라 여겼던 여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지면을 박차는 신속한 움직임.
작은 체구의 녀석이 몸 전체로 부딪쳐 오자 대응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건!’
살갗이 조금 따끔따끔해지는 느낌이었다.
이것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상대의 적의를 품은 매서운 시선?
아니면 말로만 듣던 살기(殺氣)?
‘이런 감각을 잘도 구현해 냈네.’
나쁘지 않았다.
긴장감을 불러오는 이런 느낌이라면.
라이프는 붉게 물든 여우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검을 휘둘렀다.
부딪쳐 오는 적이라면 더욱 강한 힘으로 박살을 내줄 것이다.
촤자자작―!
‘이런!’
하지만 드러난 결과는 마음 같지 않았다.
작은 체구라고 무시했는데, 강한 돌진력이 합해지자 검날이 여우의 어깨춤을 긁어내며 비껴 나갔다.
라이프의 오른손이 가진 힘만으로는 여우가 가진 체중과 돌진력을 모두 감당해 내지 못한 것이다.
‘저렇게 무식하게 달려드는 것을 정면에서 상대해 줄 필요는 없었는데.’
후회는 늦었다.
정면을 지키던 검은 옆으로 비껴졌고, 여우는 어느새 방어벽을 돌파하여 품 안에 이르렀다.
맹수와 같지는 않아도 제법 날카로운 이빨이 서늘한 빛을 발했다.
콱―!
“큭!”

[플레이어 라이프 ― 기본 대미지 5!]

미리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허벅지를 깨물린 통증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현실에서였다면 비명을 지르면서 야단법석을 떨었겠지만.
정작 상처를 받은 것은 숙련된 게임 플레이어로서의 자존심이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재미있지.’
라이프는 손아귀의 검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허벅지를 깨물었던 여우 녀석은 어느새 뒤로 물러나서 다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출혈은 여전했지만 처음처럼 맥없이 당하지 않겠다는 듯, 눈동자에서는 짙은 적의가 오래된 물감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어디 한 번 재롱 좀 떨어봐.”
깽, 깨갱!
라이프와 여우……. 여유로움과 절박함을 담은 각자의 태도는 다르지만, 동일한 건 누구 하나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것!
숲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