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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현재 위치는 아스란 왕국의 초보자 마을입니다.]
[퀘스트는 NPC는 물론이고, 발견물이나 습득물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스킬은 NPC의 전수와 스킬 북의 구입, 특수 조건을 만족시켜서 스스로 획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관에서 숙박(로그아웃)하면 HP와 MP, SP가 최대치로 회복되며 이로운 효과의 버프가 랜덤으로 하루 동안 유지되니 많이들 이용해 주세요!]


심장의 작은 떨림과 함께 발을 내딛었다.
주위를 감싸던 빛 무리들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소이의 캐릭터인 라이프뿐이다.
어제 하루 동안 뻔질나게 돌아다녀서 익숙해진 남루한 마을의 거리에는 나름의 정취가 있었다.
“여우 사냥하러 가실 분. 레벨 5 이상으로 모집 중입니다.”
“토끼 가죽 수집 퀘스트 같이하실래요? 골드 노가다 중인데, 같이하시죠.”
“전 다른 퀘스트 하고 있어서…….”
거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NPC들을 압도하는 많은 숫자의 플레이어들.
사냥을 위한 파티를 모집하는 인원부터 시작해서 벌써 장사를 하는 플레이어도 있었다.
어제보다 한층 더 북적거리는 분위기.
그걸 보며 라이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징조였다.
이런 열성적인 플레이어들이 많다는 것은 소드 앤 매직의 차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과 같았으니까.
‘인기가 많은 게임은 시세 또한 높은 법.’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라이프는 마을의 남쪽으로 향했다.
초보자 마을의 남쪽은 필드가 좁고 지형도 험해서 사냥감들의 개체 숫자가 적었다.
그래서 사냥 효율이 별로였고, 플레이어들도 어제 하루 동안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파악을 하곤 오늘은 처음부터 동쪽이나 북쪽을 공략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비교적 한적해진 마을의 남쪽 입구에는 소이를 비롯한 소수의 플레이어들만 눈에 띄었다.
‘경험치 노가다가 아니라 일단은 가상현실 게임에서의 사냥 시스템에 대해 감을 잡으려는 거니까.’
라이프는 걸어가면서 아이템 창을 살폈다.
거기에는 ‘녹슨 철검’이라는 명칭을 가진 아이템이 있었는데, 최초 접속 시 지급 받은 초보자 전용 ‘아이템 박스(일반)’을 열어서 나온 랜덤 아이템이었다.

[녹슨 철검]

등급 : 노멀(Normal)
제한 : 근력[1], 체력[1]
공격력 : 12
옵션 : 無
내구력 : 40(40)
설명 : 제법 실력이 괜찮은 대장장이가 만든 물건이지만, 오랫동안 방치되고 관리를 하지 않아 날이 무뎌지고 전체적으로 좋지 못한 상태다.


그 외에도 총 열 칸이 존재하는 아이템 창에는 SP를 회복시킬 수 있는 음식인 ‘딱딱한 보리빵’ 다섯 개와 돈 주머니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어제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획득한 50브론즈가 담겨져 있었다.
‘100브론즈가 1실버, 100실버가 1골드니까…… 모으려면 한참 걸리겠네.’
즐기는 것도 좋지만, 라이프는 현실에서의 생활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의 사냥은 그러한 부분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아직 낮은 레벨이긴 하지만 사냥을 통해 얼마나 게임 머니를 벌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이봐, 애송이! 마을 밖으로 나갈 때는 조심하라고.”
“그래. 이불 밖은 위험해!”
“…….”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와중에 마을 남쪽의 입구를 지나쳤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은 동물 가죽 위에 금속 고리를 꿰어 만든 체인 메일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겹쳐 입은 코트까지해서 초보자의 시선에는 상당히 강해 보였다.
‘저런 썰렁한 농담만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경비병들의 데이터를 설정한 프로그래머의 형편없는 유머 감각에 남몰래 항의를 하면서 마을을 완전히 벗어나는 라이프였다.
띠링!

[전투 필드에 진입하셨습니다.]
[착용 중인 모든 장비들의 외형이 드러납니다.]


우웅―!
마을 안에서는 불편하기 때문에 설정을 통해 감춰놨던 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빛으로 일렁거리다가 오른손에 잡혀 드는, 뚜렷한 금속 형태의 검.
군데군데 이가 나가고 녹이 슬어 있는 볼품없는 외형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라이프에게 가장 든든한 도구이자 용기의 근원이 되어주었다.
“하앗!”
퍼억!
“끼익!”
“거, 거기 잡아! 도망간다!”
다른 방향에 비해서 인기가 적다는 것이지, 남쪽에도 플레이어들은 엄연히 존재했다.
토끼를 향해 몽둥이나 검, 작은 손도끼 등을 휘두르는 플레이어들이 보인다.
겨우 초보자 사냥터지만, 제법 박진감이 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소드 앤 매직은 가상현실 게임이다.
단순히 마우스를 움직이고 키보드를 클릭해서 컨트롤하는 것이 아닌, 사람의 ‘의지’와 ‘생각’이 캐릭터를 조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감각은 현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받아라!”
부웅―!
검을 무슨 야구방망이라고 생각하는지 힘껏 풀스윙을 하는 플레이어도 있고, 몽둥이를 수직으로 내리찍다가 토끼가 그걸 피해내자 지면과 부딪친 반발력에 손을 붙잡고 ‘낑낑’대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느낌일까?’
라이프는 손에 들린 녹슨 철검의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며 생각했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마주하는 첫 번째 사냥의 시간이다.
검을 휘두르는 느낌, 그것이 사냥감의 살을 베어가는 감촉, 이어질 묵직한 손맛까지…….
‘기대되네.’
사실 가상현실 게임의 감각이란 무척이나 예민하고 복잡한 문제였다.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구현하면 그 우수한 기술력에 극찬을 받겠지만, 반대로 게임 내에서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상황에 그대로 노출되어 버린다면 그 정신적인 충격이 현실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방화벽 시스템이다.
시각, 청각, 후각부터 시작해서 고통을 느끼는 통각(痛覺)까지도 일정한 수치 이상으로 올라가면 프로그램이 자동 차단을 실시한다.
그건 정신적인 충격도 마찬가지다.
가상현실 게임이 서비스 허가가 나려면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 반대로 너무 과하게 안정성에만 집중하면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흥미를 잃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물체의 질량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했던 천칭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다.
양쪽 끝에 올라가 있는 물건은 ‘안정성’과 ‘재미’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테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얼마나 잘 맞추는지가 게임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점이니까.’
소이는 그것을 만끽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작은 심호흡.
그리고 한층 날카롭게 변한 눈빛으로 주위의 사냥감을 살폈다.
그 순간, 눈에 띈 것은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 갈색 토끼였다.
지면과 몸통을 바싹 붙인 채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녀석은 상당히 귀여운 외형을 하고 있었다.
녹이 슬었다고는 하지만 충분한 살상력을 가지고 있는 철검을 휘두르기가 순간 망설여질 정도로.
토끼는 라이프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귀를 쫑긋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초보들을 위한 사냥감답게 도망가거나 먼저 공격을 해오는 경우는 없었다.
그 자리에서 계속 자라나고 있는 풀을 뜯어 먹는 것이 전투 전 토끼가 보여주는 행동 패턴의 전부였다.
‘……깔끔하게 가자.’
비어 있는 왼손은 겨냥을 하듯 살짝 앞으로 내밀고, 검을 든 오른손은 어깨에서 대각선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시킨다.
만날 키보드와 마우스로만 컨트롤하다가 직접 몸을 움직여서 무기를 휘두른다고 생각하니, 어색하고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현실에서 검도를 비롯하여 기타 무기를 다루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해야만 한다.
마른침을 삼키며 크게 심호흡을 한 라이프는 ‘핫!’ 하고 작게 기합 소리를 뱉으며 갈색 토끼의 등 부분을 향해 검을 내려 베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몰입한 찰나의 순간.
숙련자들의 눈에는 어설프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라이프가 시도한 가상현실 게임에서의 첫 번째 공격은 빗나가지 않고 훌륭하게 대상에 적중했다.
콱!
끼잉!
“……!”

[토끼 ― 기본 대미지 15!]


검은 등가죽을 가르고 그 안의 장기들을 노렸다.
고통에 찬 토끼의 비명 소리와 함께 라이프는 손을 타고 전해져 오는 둔탁한 느낌에 ‘움찔’하고 몸을 굳혔다.
단단한 통나무에 도끼를 박아 넣은 느낌이랄까?
초보자의 공격을 버티기에 토끼 등뼈의 강도는 차고도 넘쳤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 가장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은 아쉬움.
왜 한 번에 끝내지 못했을까?
이렇게 공격했으면 더욱 완전한 피해를 입힐 수 있지 않았을까?
덧없는 후회와 미련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손잡이를 타고 전해지는, 섬뜩한 감각이었다.
자연스레 그 오싹함에 몸서리쳤다.
엄청 ‘신’맛의 레몬을 단숨에 섭취하면 종류는 조금 다르겠지만 비슷한 반응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마냥 불쾌한 느낌만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정말 무엇인가를 ‘벤다’는 생각을 자연히 떠오르게 만드는 현실성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라이프는 짧게 전율하며 새삼스레 검을 다잡았다.
끼잉, 끼잉…….
등짝을 짓이기고 지나간 검의 일격에 토끼가 신음하기 시작한다.
마음 약한 여성 플레이어라면 어쩔 줄 몰라 하며 돌아설지도 모를 만큼 애처로운 울음소리.
아니면 싱크로율을 내려서 감각을 조금 무디게 하고 사냥을 진행할지도 모른다.
‘조금 안타깝기는 한데…… 난 지금이 딱 좋아.’
하지만 라이프는 현재 설정한 80%의 싱크로율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가상의 세계지만 진실로 이곳에 존재하는 것 같은 강렬한 현실감에 사로잡혔다.
비틀거리며 이동하는, 상처 입은 토끼를 응시하며 재차 검을 들었다.
이미 머릿속은 크게 고양되어 있어서 어설픈 동정심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게 이번 공격으로 끝내줄 테니까.’
사냥 설정에서 출혈이나 부상 부위에 대한 모자이크 처리를 체크하지 않았기 때문에 흘러나오는 붉은 선혈이나 벌어진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건 아직도 많은 논란이 되는 부분이었는데, 무조건 모자이크를 적용하거나 흘러내리는 피 효과를 없애라는 의견이 다수이긴 했다.
반대로 현실성을 최대한 살리자는 취지에서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어느 한쪽 의견이 과반수가 될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런 의견 대립을 거쳐서 현재 채택된 방식이 도출되었다.
바로 사용자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자는 것!
라이프는 본인의 의지로 후자를 선택했다.
바닥을 적시는 핏방울과 몸부림치는 사냥감의 미약한 저항은 남성으로 하여금 묘한 흥분을 느끼게 하는 면이 있었다.
오랜 과거, 수렵 생활을 하던 때부터 전해져 온 DNA라고 할까?
물론, 개인 차는 있겠지만.
아무튼 라이프는 마무리를 위해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매서운 검 놀림이 쩍 벌어진 토끼의 등허리를 재차 파고들었다.
콰직!
“……!”
그다지 예리한 맛이 없는 녹슨 철검이기에 베었다기보다는 부숴 버렸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토끼의 등뼈가 거친 단면을 남긴 채 꺾여 나갔고, 라이프는 걸리적거리는 가죽을 피해 천천히 검을 회수했다.
게임의 설정으로 인해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은 녹슨 철검의 모습이 언밸런스하지만, 이런 부분은 아무도 현실성을 가지고 지적하지 않았다.
귀찮은 건 누구나 귀찮은 법이니까.
‘토끼 한 마리에 경험치 5면…….’
어제 퀘스트를 통해 80의 경험치를 올려놔서 앞으로 토끼 세 마리면 레벨 업이었다.
의욕이 솟는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난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토끼 시체의 처리였다.
간단하게 처리하자면 게임의 ‘소각’ 기능을 이용하면 된다.
그러면 얻어낼 수 있는 아이템 중 하나가 랜덤으로 들어온다.
토끼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가죽과 고기가 랜덤으로 들어올 만한 아이템이 될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실행하고 있는 방법.
그 외에 다른 경우는 번거롭고 귀찮긴 하지만 직접 습득물을 처리하는 것이다.
동물의 가죽 같은 경우 ‘도축’ 스킬을 통해 고기 및 가죽을 획득할 수 있고, 몬스터들이 착용하던 무기나 장비 같은 경우는 ‘분해’ 스킬을 이용해서 광석 및 특수 아이템으로 바꿀 수 있었다.
만약 스킬이 없으면 직접 노가다를 하면 된다.
걸레짝을 만들더라도 토끼 시체에 열심히 칼질을 하고 도축하는 시늉이라도 한다면 게임 시스템이 판단해서 노력과 성과만큼의 습득물을 추가로 획득하게 해주는 것이다.
“…….”
라이프는 물끄러미 토끼 시체를 바라보다가 작은 한숨과 함께 곁에 쪼그려 앉았다.
어차피 저레벨 몬스터이고 큰 이익은 없겠지만, 이것도 다 정보고 경험이었다.
어색하긴 하지만 녹슨 철검으로 도축을 시작했다.
이미 등이 가로로 길게 베어져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복부 쪽을 향해서 내리그었다.
피슉!
“헙!”
가죽 아래 고여 있던 핏줄기가 터져 나온다.
더불어서 검의 손잡이 부분을 타고 전해져 오는 서늘한 감촉.
처음에는 생경하여 어색함으로 가득했지만, 스팸이나 삼겹살 같은 걸 자르고 있다 생각하니 조금씩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비위가 좋다고 자화자찬하며 마무리한 도축의 결과는 3급 토끼 가죽 하나와 3급 토끼 고기 하나!
‘들인 노력에 비해서는 별로지만, 도축이나 분해 스킬이 있으면 또 모르는 일이니까.’
아직 속단할 수 없었다.
스킬을 사용해서 최대의 효율을 확인한 것이 아니니까.
라이프는 아이템 창을 열어서 내부의 변화를 살폈다.
총 열 개의 칸 중에서 네 개의 칸이 채워져 있었다.
차례로 딱딱한 보리빵, 토끼 가죽, 토끼 고기, 돈주머니였다.
그중에서 돈주머니는 제쳐 두고, 딱딱한 보리빵에는 ‘x5’라고 개수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이와 같은 재료나 소모성 아이템은 한 칸에 99개까지 보유가 가능했다.
‘급소를 노리면 크리티컬 공격이 터지려나?’
크리티컬 공격을 한글로 표현하자면 치명적인 공격 정도라 해석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게임의 설정대로라면 최소 두 배에서 최대 다섯 배까지의 대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근처를 천천히 걸어가는 회색 토끼가 보인다.
처음이 어렵다고 이번에는 별다른 준비 없이 지면을 박차고 달려가서 검을 내리그었다.
서걱!
끼잉!

[토끼 ― 기본 대미지 15!]
[토끼 ― 추가 대미지 10!]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단단한 등뼈 쪽을 피해 측면을 공격했다.
운이 좋게 갈비뼈를 피해 파고든 검이 깊숙하게 들어가서 회색 토끼의 내부를 헤집었다.
크리티컬 공격은 아니지만, 중요 신체 기관에 피해를 입히는 순간 추가 대미지가 주어졌다.
다람쥐 등과 더불어서 가장 약한 사냥감인 토끼로서는 버틸 수 없는 강력한 대미지!
부들거리면서 몸을 떨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춘다.
한 방에 처리가 된 것이다.
‘대충 이런 느낌이구나.’
아직도 손끝에서 전해져 온 느낌이 남아 있는 듯했다.
기분 좋은 고양감.
하지만 아직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일방적으로 공격만 하는 게 아니라 방어도 하고 어떤 돌발 상황이 있을지 모르는 박진감 넘치는 전투…… 거기에 적이 내 생명을 노리고 있다는 스릴까지 합쳐진다면.’
본인도 모르게 전신을 휩쓰는 흥분감에 몸을 부르르 떨게 된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약해 빠진 토끼다.
하지만 언제까지 토끼만 상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흉측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괴물.
올려다보기만 해도 목이 아플 정도로 거대한 거인.
감히 대적할 엄두조차 내기 힘든, 전설이라 불릴 정도의 용족까지도.
‘모조리 사냥해 주지.’
기존 온라인 게임 등에서 온갖 레이드 보스들을 휩쓸었던 라이프의 강렬한 기세가 전신에서 일렁거렸다.
던전을 지배하고 전투 필드를 평정한 카리스마.
“하지만 그전에…….”
슥, 스스슥―!
라이프는 쪼그려 앉아 녹슨 철검을 바쁘게 놀리기 시작했다.
전투가 종료된 시점부터 도축, 소각 등을 선택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60초 내로 시체가 자동 소멸되기 때문에 멍 때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위대한 드래곤 슬레이어를 꿈꾸는 라이프의 현 위치!
한 장의 토끼 가죽이라도 더 뽑아내고자 가자미눈을 뜨고 신중하게 검을 움직이는 플레이어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