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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푸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멀티퍼포스 캡슐의 덮개가 오픈했다.
소이는 뻐근한 팔근육을 주무르며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흐으…….”
접속 제한 시간을 풀로 채우고 나왔더니, 머리가 살짝 띵하다.
고개를 몇 번 흔들어서 선명한 시야를 되찾은 소이는 바로 자리를 옮겨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타닥, 타다닥!
자판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
지금 소이가 하고 있는 작업은 오늘 하루 소드 앤 매직을 플레이하면서 얻어낸 정보를 종합하여 문서화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엄연히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기록을 하는 습관은 상당히 중요했다.
해당 기억의 경중(輕重)에 따라서 무의식적인 ‘망각’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신중을 기하는 소이의 행동은 무척이나 바람직한 종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다솜은 전혀 동의하지 못하고 있지만.
[바보, 바보, 바보, 바보야!]
“윽! 뭐, 뭐야?”
한창 문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머릿속을 강타하는 날카로운 외침에 소이는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소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잔뜩 볼을 부풀린 채 눈을 흘기는 다솜이었다.
“야, 야, 그런 표정 짓지 말랬지?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 가지고…….”
[이씨! 하루 종일 누워만 있을래? 난 심심해. 심심하다고!]
“음…… 심심하다. 형용사로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유의어로는 담담하다, 무료하다 등이 있지.”
[……?]
“아니, 혹시나 뜻이 궁금할까 봐.”
[크앙!]
분노한 다솜이 날아 차기를 시전했다.
이건 정말 문자 그대로 ‘날아 차기’다.
허공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소이의 얼굴부터 시작해서 전신에 시원하게 발차기 세례를 퍼붓는다.
과거 오락실에 있던 인기 대전 격투 게임의 공중 콤보도 이 정도로 현란하고 끝도 없이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컥! 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이러다가 감기 걸린다.”
얼굴빛이 새하얗게 변한 소이가 다급하게 손사래 치며 외쳤다.
물리적인 충격은 없지만, 다솜이 가지고 있는 음기가 계속해서 침투하여 소이의 양기를 흔들어놓는 형국이다.
의식이 멀쩡한 상태에서 가위에 눌릴 것 같은 기분이랄까?
거기에 오싹한 느낌이 쉬지 않고 엄습해 오니, 이건 농담이라도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꾸 약속 안 지킬래? 하루 한 시간은 놀아주기로 했잖아.]
“그러긴 했지.”
소이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이 철없는 소녀 귀신을 어떻게 구슬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태어난 연도로 따지면 소이보다 다솜의 나이가 많았다.
다솜이 94년생이고, 소이는 2002년생이었으니까.
하지만 다솜의 정신연령은 죽을 당시였던 중학생 수준에서 멈춰 버렸고, 그것은 둘의 관계에서 소이가 우위에 설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크흠! 그럼 같이 TV 볼까? 어린이 채널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할 시간인데.”
[내, 내가 어린애인 줄 알아? 씨이…….]
다솜은 흔히 말하는 고양이상[猫像]의 소유자였다.
날카로운 눈매를 보유했다는 소리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특유의 눈 흘김에 소이는 당황해서 외쳤다.
“뽀, 뽀로로 할 시간인데, 정말 안 볼 거야?”
[…….]
고민한다.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이다.
소이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TV는 틀어주기만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때울 수 있어서 다솜을 떼어낼 수 있는 최고의 패라 할 수 있었다.
반드시 유혹에 성공해야 한다.
소이는 추격의 고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느새 외워 버린 뽀로로 주제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히잉…….]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다솜은 이제 거의 울먹거리는 지경이었고, 소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성공이다.
이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승리의 순간이 바로 눈앞이었다.
[아, 아냐. 난 중학생인걸. 뽀로로 볼 나이는 지났어.]
그런 것치고는 눈가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데?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소이였지만, 이번에는 다솜이 한 수 앞섰다.
[너 이제 만날 가상현실 게임만 할 거지? 그러면 나도 이거 하나 사 줘. 같이 하자.]
“……넌 못한다니까.”
소이도 사실 알고 있었다.
다솜이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에 무척이나 집착한다는 것을.
그건 다솜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오랜 시간 겪어온 고독과 외로움이 만들어낸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 너도 이거 하지 마. 컴퓨터로 게임해.]
“끄응…….”
컴퓨터로 게임을 했을 때는 집중을 하다가도 다솜에게 신경을 써줄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가상현실 게임은 다르다.
완전히 그곳 세계에 올인해야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일단 접속을 하고 나면 다솜과는 완전히 단절된다.
“지금은 바빠서 그래. 내일 같이 놀자.”
[으그…….]
울먹거리려고 하는 다솜을 애써 외면하며 소이는 오늘 하루 동안의 플레이 기록들을 정리했다.
[에드윈 ― 편지 전달 퀘스트]
―> 대장장이 하쿤에게 돈과 편지를 전달하고 물건을 받아 온다.
―> 경험치 30, 10브론즈.
―> 추가 퀘스트가 예상되지만, 레벨 제한으로 받지 못함.
[하쿤 ― 철광석 수집 퀘스트]
―> 대장장이 하쿤에게 철광석을 10개 구해다 준다.
―> 수행하지 않음.
[우기르 ― 가죽 수집 퀘스트]
―> 우기르에게 토끼 가죽 10개를 구해다 준다.
―> 경험치 70, 50브론즈.
―> 수행하지 않음.
[아만다 ― 약초 채집 퀘스트]
―> 아만다에게 라벤더와 캐모마일을 구해다 준다.
―> 수량 제한이 없고, 개수에 따라 보상이 달라짐.
[엘빈 ― 촉매제 제작 퀘스트]
―> 수련 마법사인 엘빈에게 촉매제를 제작해서 가져다준다.
―> 경험치 70, 1실버.
―> 수행하지 않음.
[룬다 ― 애완동물 찾아주기 퀘스트]
―> 룬다 아줌마의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자.
―> 경험치 30, 20브론즈.
[소나 ― 랜덤 퀘스트]
―> 점술사 소나에게 물건 가져다주자.
―> 특이한 퀘스트.
―> 추가 정보가 필요함.
[에밀리아 ― 봉사 퀘스트]
―> 수련 신관 에밀리아가 지정해 준 NPC를 돌봐주자.
―> 경험치 70, 신성 공적치 15.
―> 수행하지 않음.
하루 동안 알아낸 퀘스트들의 내용을 기록한 마지막 페이지였다.
총 2페이지에 걸쳐서 적혀 있는 열네 개의 퀘스트.
그중 클리어한 것은 가장 간단한 난이도의 퀘스트 세 종류뿐이었다.
이 정도로는 많이 부족하다.
소이는 묘한 갈증을 느끼며 소드 앤 매직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어쩌면 뜻밖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에 자유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집중해서 살펴보았다.
“음, 이건…….”
두 페이지 정도를 뒤적거렸을까?
처음으로 소이의 시선을 잡아끈 글이 있었다.
제목은 가상현실 게임 접속 시간 제한에 대한 꿀팁.
소이는 조용히 마우스를 두 번 클릭했다.
모두들 안녕.
이 글을 쓴 플로우라고 해.
반말로 사용하는 건 이해 좀 해줘. 이렇게 쓰는 게 편하니까.
잡설이 길었고, 본격적으로 내가 연구한 접속 시간 제한에 대한 팁을 알려줄게.
지금 소드 앤 매직의 접속 제한 시간은 12시간이야. 다들 아는 사실이지?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이건 사실 가상현실 게임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 ‘가상현실 시스템’에 대한 규정을 그대로 가져다 쓴 거야.
다들 알잖아, 공무원이 얼마나 일처리가 느린지.
이미 베타테스트는 시작했는데 관련 규정이나 법안도 없다니.
아마 제대로 갖춰지려면 한참 걸릴 거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당분간 가상현실 게임에 대한 규정들도 웬만하면 ‘가상현실 시스템’에 관한 규정을 따라갈 거야.
이 정도 말하면 대충 느낌이 오는 사람들이 있겠지?
맞아. 기존에 가상현실 시스템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접속 시간 제한의 카운트는 여섯 시간을 기준으로 올라가기 시작해.
그리고 한 시간의 휴식을 취하면 초기화되는 방식이지.
이 정도면 나머지도 눈치챘겠지?
이게 바로 내가 주는 꿀 팁이야.
가상현실 게임도 여섯 시간을 플레이하고 한 시간을 쉬었다가 다시 접속을 하면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도 문제없이 플레이를 할 수 있어.
이건 내가 어제 직접 테스트 해보고 확인까지 했으니까, 헛소리나 어그로꾼은 코멘트 하지 마라.
형은 카이트란 왕국 초보자 마을에서 활동 중이니까, 마주치면 인사들 하고.
‘유익한 정보네.’
소이처럼 가상현실 자체가 처음인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던 중요 정보였다.
그 뒤로 현재 게임사에서 접속 시간 제한에 대한 부분을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로비 중이다’ 등등 여러 가지 코멘트들이 달려 있었다.
사실인지, 아니면 그냥 관심을 끌려는 헛소리인지 파악하기가 힘드니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다.
소이는 조용히 ‘좋아요’ 버튼을 한 번 누르고 나서 다음 정보를 찾아 나섰다.
사실 이렇게 유익한 정보를 주는 글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쓸모없거나 시간 낭비를 유도하는 어그로성 글이 더욱 많아서 짜증을 유발했다.
‘침착하게 가자. 어차피 시간은 충분하니까.’
정식 오픈이 되면 레벨이나 아이템 등 닉네임을 제외한 모든 것이 초기화되기 때문에 이 시간에 게임 접속을 해서 미친 사람처럼 사냥에 몰두해 봐야 크게 남는 부분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식 오픈이 된 다음에도 가져갈 수 있는 머릿속의 ‘정보’들.
소이는 차분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게시판의 글들을 읽어 내렸다.
그러다가 문뜩 다솜에 대한 생각이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
삐쳤는지 모습조차 보이질 않는다.
곤란한 상황.
소이는 멋쩍어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정신적인 연령을 따지면 한참 예민한 나이의 사춘기 여중생이 아닌가.
‘좀 달래줄 걸 그랬나.’
잠시 마음의 갈등이 일어난다.
하지만 간사한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소드 앤 매직에 대한 글들을 읽고 있으려니, 금방 무뎌지고 다시 이쪽에 집중하게 된다.
쓸 만한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게시판을 샅샅이 뒤지는 소이의 모습.
그 뒤쪽 창문 너머에서 다솜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푸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멀티퍼포스 캡슐의 덮개가 오픈했다.
소이는 뻐근한 팔근육을 주무르며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흐으…….”
접속 제한 시간을 풀로 채우고 나왔더니, 머리가 살짝 띵하다.
고개를 몇 번 흔들어서 선명한 시야를 되찾은 소이는 바로 자리를 옮겨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타닥, 타다닥!
자판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
지금 소이가 하고 있는 작업은 오늘 하루 소드 앤 매직을 플레이하면서 얻어낸 정보를 종합하여 문서화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엄연히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기록을 하는 습관은 상당히 중요했다.
해당 기억의 경중(輕重)에 따라서 무의식적인 ‘망각’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신중을 기하는 소이의 행동은 무척이나 바람직한 종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다솜은 전혀 동의하지 못하고 있지만.
[바보, 바보, 바보, 바보야!]
“윽! 뭐, 뭐야?”
한창 문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머릿속을 강타하는 날카로운 외침에 소이는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소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잔뜩 볼을 부풀린 채 눈을 흘기는 다솜이었다.
“야, 야, 그런 표정 짓지 말랬지?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 가지고…….”
[이씨! 하루 종일 누워만 있을래? 난 심심해. 심심하다고!]
“음…… 심심하다. 형용사로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유의어로는 담담하다, 무료하다 등이 있지.”
[……?]
“아니, 혹시나 뜻이 궁금할까 봐.”
[크앙!]
분노한 다솜이 날아 차기를 시전했다.
이건 정말 문자 그대로 ‘날아 차기’다.
허공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소이의 얼굴부터 시작해서 전신에 시원하게 발차기 세례를 퍼붓는다.
과거 오락실에 있던 인기 대전 격투 게임의 공중 콤보도 이 정도로 현란하고 끝도 없이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컥! 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이러다가 감기 걸린다.”
얼굴빛이 새하얗게 변한 소이가 다급하게 손사래 치며 외쳤다.
물리적인 충격은 없지만, 다솜이 가지고 있는 음기가 계속해서 침투하여 소이의 양기를 흔들어놓는 형국이다.
의식이 멀쩡한 상태에서 가위에 눌릴 것 같은 기분이랄까?
거기에 오싹한 느낌이 쉬지 않고 엄습해 오니, 이건 농담이라도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꾸 약속 안 지킬래? 하루 한 시간은 놀아주기로 했잖아.]
“그러긴 했지.”
소이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이 철없는 소녀 귀신을 어떻게 구슬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태어난 연도로 따지면 소이보다 다솜의 나이가 많았다.
다솜이 94년생이고, 소이는 2002년생이었으니까.
하지만 다솜의 정신연령은 죽을 당시였던 중학생 수준에서 멈춰 버렸고, 그것은 둘의 관계에서 소이가 우위에 설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크흠! 그럼 같이 TV 볼까? 어린이 채널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할 시간인데.”
[내, 내가 어린애인 줄 알아? 씨이…….]
다솜은 흔히 말하는 고양이상[猫像]의 소유자였다.
날카로운 눈매를 보유했다는 소리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특유의 눈 흘김에 소이는 당황해서 외쳤다.
“뽀, 뽀로로 할 시간인데, 정말 안 볼 거야?”
[…….]
고민한다.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이다.
소이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TV는 틀어주기만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때울 수 있어서 다솜을 떼어낼 수 있는 최고의 패라 할 수 있었다.
반드시 유혹에 성공해야 한다.
소이는 추격의 고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느새 외워 버린 뽀로로 주제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히잉…….]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다솜은 이제 거의 울먹거리는 지경이었고, 소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성공이다.
이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승리의 순간이 바로 눈앞이었다.
[아, 아냐. 난 중학생인걸. 뽀로로 볼 나이는 지났어.]
그런 것치고는 눈가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데?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소이였지만, 이번에는 다솜이 한 수 앞섰다.
[너 이제 만날 가상현실 게임만 할 거지? 그러면 나도 이거 하나 사 줘. 같이 하자.]
“……넌 못한다니까.”
소이도 사실 알고 있었다.
다솜이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에 무척이나 집착한다는 것을.
그건 다솜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오랜 시간 겪어온 고독과 외로움이 만들어낸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 너도 이거 하지 마. 컴퓨터로 게임해.]
“끄응…….”
컴퓨터로 게임을 했을 때는 집중을 하다가도 다솜에게 신경을 써줄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가상현실 게임은 다르다.
완전히 그곳 세계에 올인해야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일단 접속을 하고 나면 다솜과는 완전히 단절된다.
“지금은 바빠서 그래. 내일 같이 놀자.”
[으그…….]
울먹거리려고 하는 다솜을 애써 외면하며 소이는 오늘 하루 동안의 플레이 기록들을 정리했다.
[에드윈 ― 편지 전달 퀘스트]
―> 대장장이 하쿤에게 돈과 편지를 전달하고 물건을 받아 온다.
―> 경험치 30, 10브론즈.
―> 추가 퀘스트가 예상되지만, 레벨 제한으로 받지 못함.
[하쿤 ― 철광석 수집 퀘스트]
―> 대장장이 하쿤에게 철광석을 10개 구해다 준다.
―> 수행하지 않음.
[우기르 ― 가죽 수집 퀘스트]
―> 우기르에게 토끼 가죽 10개를 구해다 준다.
―> 경험치 70, 50브론즈.
―> 수행하지 않음.
[아만다 ― 약초 채집 퀘스트]
―> 아만다에게 라벤더와 캐모마일을 구해다 준다.
―> 수량 제한이 없고, 개수에 따라 보상이 달라짐.
[엘빈 ― 촉매제 제작 퀘스트]
―> 수련 마법사인 엘빈에게 촉매제를 제작해서 가져다준다.
―> 경험치 70, 1실버.
―> 수행하지 않음.
[룬다 ― 애완동물 찾아주기 퀘스트]
―> 룬다 아줌마의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자.
―> 경험치 30, 20브론즈.
[소나 ― 랜덤 퀘스트]
―> 점술사 소나에게 물건 가져다주자.
―> 특이한 퀘스트.
―> 추가 정보가 필요함.
[에밀리아 ― 봉사 퀘스트]
―> 수련 신관 에밀리아가 지정해 준 NPC를 돌봐주자.
―> 경험치 70, 신성 공적치 15.
―> 수행하지 않음.
하루 동안 알아낸 퀘스트들의 내용을 기록한 마지막 페이지였다.
총 2페이지에 걸쳐서 적혀 있는 열네 개의 퀘스트.
그중 클리어한 것은 가장 간단한 난이도의 퀘스트 세 종류뿐이었다.
이 정도로는 많이 부족하다.
소이는 묘한 갈증을 느끼며 소드 앤 매직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어쩌면 뜻밖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에 자유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집중해서 살펴보았다.
“음, 이건…….”
두 페이지 정도를 뒤적거렸을까?
처음으로 소이의 시선을 잡아끈 글이 있었다.
제목은 가상현실 게임 접속 시간 제한에 대한 꿀팁.
소이는 조용히 마우스를 두 번 클릭했다.
모두들 안녕.
이 글을 쓴 플로우라고 해.
반말로 사용하는 건 이해 좀 해줘. 이렇게 쓰는 게 편하니까.
잡설이 길었고, 본격적으로 내가 연구한 접속 시간 제한에 대한 팁을 알려줄게.
지금 소드 앤 매직의 접속 제한 시간은 12시간이야. 다들 아는 사실이지?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이건 사실 가상현실 게임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 ‘가상현실 시스템’에 대한 규정을 그대로 가져다 쓴 거야.
다들 알잖아, 공무원이 얼마나 일처리가 느린지.
이미 베타테스트는 시작했는데 관련 규정이나 법안도 없다니.
아마 제대로 갖춰지려면 한참 걸릴 거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당분간 가상현실 게임에 대한 규정들도 웬만하면 ‘가상현실 시스템’에 관한 규정을 따라갈 거야.
이 정도 말하면 대충 느낌이 오는 사람들이 있겠지?
맞아. 기존에 가상현실 시스템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접속 시간 제한의 카운트는 여섯 시간을 기준으로 올라가기 시작해.
그리고 한 시간의 휴식을 취하면 초기화되는 방식이지.
이 정도면 나머지도 눈치챘겠지?
이게 바로 내가 주는 꿀 팁이야.
가상현실 게임도 여섯 시간을 플레이하고 한 시간을 쉬었다가 다시 접속을 하면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도 문제없이 플레이를 할 수 있어.
이건 내가 어제 직접 테스트 해보고 확인까지 했으니까, 헛소리나 어그로꾼은 코멘트 하지 마라.
형은 카이트란 왕국 초보자 마을에서 활동 중이니까, 마주치면 인사들 하고.
‘유익한 정보네.’
소이처럼 가상현실 자체가 처음인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던 중요 정보였다.
그 뒤로 현재 게임사에서 접속 시간 제한에 대한 부분을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로비 중이다’ 등등 여러 가지 코멘트들이 달려 있었다.
사실인지, 아니면 그냥 관심을 끌려는 헛소리인지 파악하기가 힘드니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다.
소이는 조용히 ‘좋아요’ 버튼을 한 번 누르고 나서 다음 정보를 찾아 나섰다.
사실 이렇게 유익한 정보를 주는 글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쓸모없거나 시간 낭비를 유도하는 어그로성 글이 더욱 많아서 짜증을 유발했다.
‘침착하게 가자. 어차피 시간은 충분하니까.’
정식 오픈이 되면 레벨이나 아이템 등 닉네임을 제외한 모든 것이 초기화되기 때문에 이 시간에 게임 접속을 해서 미친 사람처럼 사냥에 몰두해 봐야 크게 남는 부분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식 오픈이 된 다음에도 가져갈 수 있는 머릿속의 ‘정보’들.
소이는 차분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게시판의 글들을 읽어 내렸다.
그러다가 문뜩 다솜에 대한 생각이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
삐쳤는지 모습조차 보이질 않는다.
곤란한 상황.
소이는 멋쩍어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정신적인 연령을 따지면 한참 예민한 나이의 사춘기 여중생이 아닌가.
‘좀 달래줄 걸 그랬나.’
잠시 마음의 갈등이 일어난다.
하지만 간사한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소드 앤 매직에 대한 글들을 읽고 있으려니, 금방 무뎌지고 다시 이쪽에 집중하게 된다.
쓸 만한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게시판을 샅샅이 뒤지는 소이의 모습.
그 뒤쪽 창문 너머에서 다솜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