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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하늘은 파랬다.
다양한 종류의 구름들이 여보란 듯 무리를 지어 떠다닌다.
코를 자극하는 짙은 흙냄새.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현대의 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한 기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태양이 한 줄기 빛을 내려 눈을 깜빡이게 했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온 싱그러운 바람.
무의식중에 손을 들어 이마께를 훑게 한다.
소이…… 라이프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남자는 한 줄기 빛과 함께 그곳에 나타났다.

[현재 위치는 아스란 왕국의 초보자 마을입니다.]
[최초의 직업은 10레벨이 되면 얻을 수 있답니다.]
[SP는 일반 모드와 전투 모드일 때 소모되는 비율이 다릅니다. 회복을 시키고 싶으시면 아이템 창에 있는 딱딱한 보리빵이라도 먹어보시는 것이 어떠신지.]


시끄러운 시스템 음성과 함께 떠오른 도움말 창들을 취소시킨 라이프는 기대 섞인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이곳이 바로 가상현실의 세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유럽의 중세 시대에 소작농들이 살았다던 롱 하우스였다.
나무로 된 틀에 벽은 흙으로 바르고 지붕은 밀짚으로 씌워져 있었는데, 낡고 허름하다는 느낌보다는 게임에서의 보정 덕분인지 운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건물들이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냈고, 그 뒤로 살짝 고개를 내민 2층 건물들도 있었다.
단순히 배경으로 쓰이는 건물이 아닌, 상점이나 길드 건물 등 플레이어들이 이용할 건축물이어서 차별화를 두는 것이라 짐작되었다.
‘마을이군. 생각보다 디자인이 괜찮은데.’
라이프는 지금껏 수많은 게임들을 플레이해 왔고 평가 및 분석을 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소드 앤 매직에 접속한 순간, 자연스럽게 기존의 게임들과 비교하고자 하는 마음이 솟았다.
‘일단 인터페이스부터 확인을 해…… 음!’
그것은 무심결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에게 호흡이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까.
차이를 깨달은 순간, 숨을 좀 더 깊게 들이켰다.
시원한 바람이 입천장과 혀 위를 맴돈다.
현실에서는 너무도 익숙해서 아무런 감흥도 없는 행위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이건 대박이다!’
PC 따위로 플레이하는 기존의 온라인 게임과는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모독’이었다.
왜 이러한 사실을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아무리 그래픽이 화려해도 모니터라는 네모난 박스 안을 들여다보는 것과 뇌의 ‘착각’이라고 할지라도 실제 두 눈으로 보는 것 같은 감각은 엄연히 비교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급이 다르다고나 할까?
집중을 하니 좀 더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현재 캐릭터가 착용하고 있는 기본 가죽 상의가 지닌 약간의 까끌까끌함과 가죽 신발을 통해 전해져 오는 지면의 단단함까지.
진정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감정이 고조됨에 따라서 조금씩 커져 가는 심장의 박동 소리가 라이프의 입가에 지울 수 없는 미소를 만들고 있었다.
정말 최고다.
지금껏 수많은 게임을 해왔지만, 그것들은 말 그대로 어설픈 대리 만족에 그칠 뿐이었다.
컨트롤은 하고 있지만 현실의 ‘나’와 게임의 ‘캐릭터’ 사이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기 때문에…….
하지만 가상현실 게임인 소드 앤 매직은 달랐다.
물론 이것도 현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데이터로 만들어진 거짓된 세계…….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동안은 뇌의 ‘착각’을 이용해서 현실과 같은 감각을 만들어낸다.
더불어서 현실의 ‘나’와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캐릭터’를 움직여 보니 몰입감이 장난 아니다.
거기에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은 라이프가 이용하고 있는 최신 기종의 멀티퍼포스 캡슐 성능이었다.
최대 80%까지 지원되는 싱크로율을 통해 느껴지는 선명한 감각이 ‘부르르’ 몸을 떨게 만든다.
이러한 높은 싱크로율은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것들을 접할 때 거부감이나 정신적인 부담으로 작용하는 ‘양날의 검’이지만, 당장은 크게 만족할 수 있는 요소였다.
“으어어! 이거 진짜야?”
“우왓! 가상현실 쩔어.”
주위에서 연속으로 빛의 기둥들이 출몰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각양각색의 베타테스터 플레이어들.
그들의 감상은 라이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나같이 놀라워하고 이내 만족감을 드러내며 흥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반응을 보니 라이프와 마찬가지로 가상현실 게임을 처음 접해보는 플레이어들 같았다.
일본과 미국에서 가상현실 게임을 서비스한다고 해도 국내에서 그것을 이용하기에는 제한이 많아 너무 고가가 되어버렸으니까.
웬만한 자산가가 아니라면 사실 가상현실 게임을 처음 접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우웅, 우웅!
그러는 동안에도 빛의 기둥들이 계속해서 솟아났다.
캐릭터를 만들고 접속하는 플레이어들이었다.
그제야 라이프는 가상현실 게임에 대한 감탄을 멈추고 서둘러 발걸음을 떼었다.
지금 등장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바로 잠재적인 경쟁자들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여야 앞서 나갈 수 있었다.
‘베타테스터가 총 만 명이니까, 아스란 왕국에서 1,500명 정도 시작하려나?’
지금껏 수많은 게임을 플레이해 온 라이프다.
베타테스터 경험도 여럿 있고, 그런 만큼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략적인 예상이 가능했다.
‘스타트 지점 근처에서 사냥하는 것은 꿈도 못 꾸겠지. 바퀴벌레 무리들처럼 몰려들 테니까.’
라이프는 걸어가면서 미리 준비했던 계획을 점검했다.
마음은 급하지만 소드 앤 매직의 정식 오픈이 아닌, 테스트 기간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어차피 레벨이나 아이템 같은 것은 정식으로 오픈할 때 초기화가 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테스트 기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라이프는 그걸 ‘정보’라고 판단했다.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소드 앤 매직이 정식 오픈 했을 때 누구보다도 앞서 나가리라.
‘정보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마음 같아서는 사냥터와 보스 몬스터 공략법과 같은 정보를 얻고 싶지만…….’
라이프는 빠르게 멀어져 가고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살폈다.
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곳은 바로 사냥터였다.
초보자 마을 주위에 돌아다닐 약하디약한 몬스터들.
사냥을 통한 레벨 업이야말로 RPG 게임의 정석이요, 빠르게 강해지는 정도(正道)다.
하지만 라이프는 과감하게 그 길을 포기했다.
가장 크고 달콤한 과실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거기에 합류해 봐야 남는 건 찌꺼기와 부스러기 정도일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의외로 그쪽 정보는 나중에 쉽게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흔히 있는 일이다.
테스트 기간 동안 본인이 얻은 정보를 자유 게시판에 자랑하듯 업로드하는 녀석들.
사냥에 몰두하는 인원들의 숫자가 많을 테니, 그 확률도 자연히 올라간다.
제 살 깎아 먹는 멍청한 짓이지만, 어차피 얼굴도 모르는 타인이고 라이프는 그 부분에 대해 지적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만약 소드 앤 매직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감사히 받아먹으면 된다.
물론, 본인이 얻어낸 정보는 꽁꽁 숨겨둔 채로.
‘초보자 마을에서 얻을 수 있는 퀘스트를 모조리 파악하는 게 첫 번째.’
게임에서 퀘스트란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어차피 사냥을 할 거, 그와 관련된 퀘스트를 받고 사냥을 한다면 같은 시간 동안 동일한 노력으로 추가적인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사냥 못지않게 중요한 퀘스트의 가치를 알고 있는 플레이어들도 제법 수가 될 것이기에 라이프는 눈에 불을 켜고 비중 있어 보이는 NPC를 찾아다녔다.
NPC는 ‘Non―Player Character’의 약어로,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게임 제작자가 프로그램해 놓은 게임 속 도우미들인데, 상점 주인이나 마을의 촌장, 경비대 등이 이에 해당했다.
‘찾았다.’
열심히 마을을 헤매고 다닌 보답일까, 라이프는 큰 집의 마당에서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는 노인 NPC를 발견할 수 있었다.
‘NPC들의 인공지능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혹시 모르니 정중하게 가는 게…….’
NPC들은 게임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다.
당연히 이에 대한 정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라이프는 최대한 많은 표본을 얻어내기 위해 우선은 공손한 태도로 노인 NPC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음? 허허, 처음 보는 젊은이로군. 여행자인가?”
“그렇습니다. 방금 전 이곳에 도착했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눈의 깜빡거림과 자연스러운 표정 변화가 일순 실제 사람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추가로 화자에 집중하는 시선 처리까지도 디테일하다.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NPC의 인공지능에 라이프는 놀라움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정도였다.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예의가 바르구먼. 마음에 들어. 나는 이 마을의 촌장인 ‘에드윈’이라고 하네. 궁금한 게 뭔가?”
띠링!

[초보자 마을의 촌장 ‘에드윈’이 당신의 공손한 태도에 만족스러워합니다.]
[호감도 3이 상승합니다.]

“흠…….”
라이프는 머릿속으로 ‘인터페이스’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러자 눈앞에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크기의 동그란 형태를 한 아이콘들이 생성되었다.
원 내부에 각자의 특징을 드러낸 문양들이 자리한 아이콘들.
‘신분증 같은 게 그려진 아이콘이 능력치 창이고…….’
그 이후로 검과 지팡이가 그려진 스킬 창, 돈주머니 하나가 심플하게 그려진 아이템 창의 순서를 지나 찾고 있는 아이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라이프가 클릭한 아이콘은 두 명의 사람이 악수를 하고 있는 그림의 것이었는데, 선택하자마자 친구 목록 및 관심 NPC의 정보를 표시해 주는 반투명한 창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에드윈]
레벨 : 농부(17) / 하급 관리(5)
직책 : 아스란 왕구 ‘초보자 마을 3’의 촌장
관계 : 호감(3) [도움말]
설명 : 초보자들을 위한 도우미
―> 현재의 호감도로는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습니다.
―> 대화를 통해 소드 앤 매직을 플레이하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얻어보세요.

‘초보자 마을 3의 촌장? 아무래도 초보자 마을은 월드 맵과 조금 동떨어진 장소에 있는 건가?’
마을의 이름 뒤에 숫자가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초보자 마을은 일반 맵과는 다른 별개의 공간에 있음이 짐작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정보.
거기에 자극 받은 라이프는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뚫어져라 읽어 내리다가 눌러 달라고 유혹이라도 하는 것처럼 반짝거리는 도움말 부분을 클릭했다.
그러자 NPC와 플레이어의 관계에 대한 도움말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졌다.

[호감] ― 기본적으로 NPC가 플레이어들에게 갖는 감정입니다.
[신뢰] ― NPC에게 믿음을 얻었습니다. 특별한 퀘스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충성] ― NPC가 대상을 경외하고 따르기 시작합니다.
[경멸] ― NPC가 플레이어를 무시하고 대화를 거부합니다. ‘적대’ 상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적대] ― NPC가 플레이어를 위협합니다. 적대 수치가 높아지면 공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호오…….”
생각 이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이었다.
‘기본적으로 호감 수치 0부터 시작하는 건가? 신뢰나 충성, 경멸, 적대 등은 퀘스트나 사건, 아니면 NPC들과의 상성이나 관계에 따라서 변경되는 항목인 것 같고…….’
아직까지는 추측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재밌겠네.’
NPC들에게 이 정도로 신경을 썼다면 이들이 주는 퀘스트는 물론이고, 게임의 스토리, 그 외의 다양한 설정에서도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결과들을 보여줄 것이다.
‘퀘스트와 NPC들…… 우선은 이쪽부터 공략해 볼까?’
마을은 넓고 아직도 만나야 할 NPC는 한가득이다.
소드 앤 매직의 베타테스트 1일 차.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