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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어릴 적 학교에 가면 무척이나 얄미운 급우가 있었다.
입만 열면 가족 자랑에 겉보기에도 번지르르한 고가의 외제 학용품을 모나미 볼펜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습게 여기던 녀석.
그뿐인가.
씀씀이가 커서 어딜 가나 추종자들을 몰고 다녔고,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도 그 친구의 배경 때문인지 편의를 많이 봐주곤 했다.
있는 집 자식, 선생들의 편애, 재수 없는 성격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갖춘 녀석은 멈출 줄 모르고 폭주하는 기관차를 보는 듯했고, 학기 말이 될 때쯤에는 ‘왕’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반 친구들을 괴롭히는 것은 예삿일에 사적인 심부름도 내키는 대로 시켜 댔다.
그런 녀석의 시선에 ‘소이’가 고깝게 느껴진 것은 당연한 일일 터였다.
자기에게 굽히고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동년배들에 비해 덩치도 크고 묘하게 어른스러워서 마음처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녀석은 결심했다.
소이를 손봐주기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형들에게 돈을 주고 부탁을 했다.
소이를 아주 고분고분해지도록 교육시켜 달라고.
그리고 그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선택이었다.
***
쏴아아아!
“……비가 오네.”
이른 아침이다.
‘게임 폐인’이라는 단어 하나로 소이의 평소 생활 패턴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가 뜨자마자 기상하는 것은 무척이나 드믄 경우였다.
‘오랜만에 일찍 잠든 덕분인가?’
아마도 어제부로 기존에 했던 온라인 게임을 모두 정리했기 때문에 이른 취침의 효과로 얻게 된 결과일 것이다.
각설하고, 아침부터 귓가를 간질이는 빗소리에 소이는 창가에 달라붙었다.
두터운 커튼을 옆으로 밀어서 시야를 확보한다.
투득, 투드득―!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의 기분 좋은 리듬감.
소이는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소이는 빗소리를 좋아했다.
더불어서 비가 오는 날에는 컨디션도 최고였고.
하지만 언제부턴가 비가 오늘 날에 마냥 웃고만 있지는 못하게 되었다.
‘이 빌어먹을 기억들…….’
욱신거리는 통증이 미간 사이를 자극한다.
소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미약한 통증과 함께 신경이 분산되어 질척거리며 달라붙은 불쾌함이 조금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리창에 비친 눈 아래의 작은 흉터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자세히 보지 않고서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그토록 좋아했던 빗속에서 얻게 된 상처다.
그리고 폭주…….
‘그때 이성을 잃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미 지나간 일이다.
하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저 어린애들 사이의 다툼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잔인했던 폭력과 그로 인한 감정의 폭발.
그 사건으로 인해 소이의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그건 늘 주위를 맴돌던 귀신들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먹잇감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의 아웃이라…….’
더 이상 학교를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등교 시간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태양의 빛이 약해지는 하교 시간에는 결코 안심할 수 없었기에…….
게다가 낮이 짧고 밤이 길어지는 동절기(冬節期)에는 그 위험이 더욱 커졌다.
기본적으로 음기가 많은 존재인 귀신들은 빛을 싫어하긴 하지만, 본신의 힘이 강하다면 몇 분 정도는 태양 아래에서도 너끈히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몇 분의 시간은 소이에게 너무도 위험했다.
생기를 빼앗길 수도 있고, 더욱 심한 경우에는 빙의(憑依)가 되어서 잠시 동안이나마 신체의 자유까지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발생한 사건, 사고들.
친구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준 상처만 해도 적지 않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가족들에게까지…….
결코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신체를 빼앗은 귀신은 주위의 생자들을 증오하며 온갖 패악질을 부렸고, 결국 소이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게임밖에 없었지.’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상처를 입히는 것도…… 받는 것도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철저하게 외톨이이자 겁쟁이가 되어서 방 안에 틀어박혀 온라인 세계 속에서만 살게 되었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금전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으면 염치없이 미성년자인 것을 방패 삼아 부모에게 기대거나 게임 아이템을 팔아서 해결했다.
곪아 터진 마음의 상처들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는 유일한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맺은 미약한 관계들로나마 외로움을 달랬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약한 존재기 때문에…….
그런 과거를 가지고 살아왔던 소이는 무엇보다 ‘게임’에 집착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유일한 수입원이 되어주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유흥거리에 불과하더라도 소이에게는 ‘게임’이 곧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고통에 신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소이는 지금 이 순간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세계은행 예금주 ‘강소이’ 잔액 67,650,000원]
거래 사이트에 올린 판매 건들을 모두 정리한 다음 생긴 통장의 변화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800만 원을 제하면 자그마치 5,900만 원의 수입이 발생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높은 가격인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소이는 입금액 확인이 끝나기 무섭게 ‘가상현실 접속기’를 판매하는 사이트로 이동했다.
“으, 비싸. 빌어먹을 정도로 비싸네.”
소이가 고민하고 있는 건 바로 가상현실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접속기 구매 건이었다.
“저번에 봐뒀던 상품이 어디 있더라?”
대한민국에서 가상현실 게임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기술 자체의 개발은 군사적인 목적이나 의료, 교육, 금융 등의 분야에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상당 부분 진척된 상태였다.
낮은 보급률이긴 하지만 일반 가정집에서도 서서히 가상현실 접속기를 구매하는 추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소이가 지금 가상현실 접속기의 구매를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국내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인 ‘소드 앤 매직’ 베타테스터의 필요조건 때문이었다.
가장 절대적인 조건이 하루 평균 ‘다섯 시간’ 이상의 게임 플레이였지만, 그 외에도 조건은 많았다.
설문 및 정보 제공에 응할 것, 게임사와 상의 없이 방송 및 언론 취재에 응하지 말 것 등등…….
기껏 합격한 베타테스터의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으려면 개인적으로 가상현실 접속기를 구매해서 게임에 접속하거나, 아니면 게임사에서 제공하는 장소에서 다른 테스터들과 옹기종기 모여 접속 시간을 채워야 했다.
외부 활동이 힘든 소이에게 후자는 고려할 가치도 없으니, 선택할 방법은 당연히 전자뿐이었다.
베타테스트 서버의 오픈일은 바로 내일!
입금이 늦어졌다면 감도가 떨어지긴 해도 어쩔 수 없이 저가형 접속기인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ead Mount Display)라도 구입해서 플레이를 해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이제 돈은 충분하니까. 초고가형 접속기인 멀티퍼포스 캡슐(Multipurpose Capsule)도 구입할 수 있긴 한데.’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급형으로 제작되는 멀티퍼포스 캡슐의 가격만 해도 700~800만 정도 나가는 비싼 상품인데, 현재 소이가 군침을 삼키고 있는 제품은 그보다 훨씬 더 고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로도 접속을 할 수 있긴 하지만…….’
헬멧과 고글을 합쳐 놓은 모양새.
자주포나 전차에 탑승할 때 착용하는 승무원 헬맷과 흡사하게 생긴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휴대성이 높다는 장점을 가진 접속기였다.
하지만 가상현실 시스템을 이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싱크로율’에서 멀티퍼포스 캡슐과 압도적으로 성능 차이가 나기 때문에 예비용 접속기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여행을 가거나 외부에서 급하게 사용하게 되어 멀티퍼포스 캡슐 사용이 불가할 때 주로 이용되었다.
‘역시 성능을 생각하면 접속기는 멀티퍼포스 캡슐이지.’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가 현실 감각의 30% 정도를 구현해 낸다면, 멀티퍼포스 캡슐은 평균적으로 70%에 육박하고, 고액의 최신 기종은 80%까지도 가능하다고 하니, 가격 때문에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이미 소이의 마음은 후자를 향하고 있었다.
‘일단 사긴 살 건데, 가상현실 게임…… 과연 거기에서도 온라인 게임 때처럼 잘할 수 있을까?’
게임은 소이의 현실이자 돈을 벌기 위한 직장이기도 했다.
만약 가상현실 게임에서 실패한다면 비싼 접속기의 가격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약한 생각은 무슨……. 그래, 자신감을 갖자. 어차피 퇴로는 없으니까.’
가상현실 게임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해도 온라인 게임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돌아갈 곳은 없었다.
배수진을 칠 각오로 앞만 보고 나아가야 했다.
‘어차피 쓸 돈이라면 다른 부분에서 아끼더라도 최신 기종으로 가자.’
10%의 싱크로율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였다.
일반 플레이어 사이에서는 약간의 체감 차이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미세한 컨트롤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고수’들 간에는 멀티퍼포스 캡슐의 성능 차이가 격세지감(隔世之感)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건 싱크로율이 떨어지고…… 음, 이건 바이탈 컨트롤 기능이 부족한데…….’
한참을 이리저리 고민하던 소이는 고심 끝에 하나의 제품을 선택했다.
이쪽 분야에서는 명품이라 분류되는 미국 제조사의 제품이었는데, 최신형으로 그 가격이 자그마치 1,500만 원이나 했다.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소이는 곧 과감하게 제품을 결제했다.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환경도 큰 도움을 주기 마련이다.
이건 투자였다.
성공을 위한 과감한 투자!
비싸긴 하지만 최신형의 접속 장비라면 가상현실 게임을 이용하는 데 숨은 조력자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설치 끝났습니다. 작동도 이상 없으니, 바로 이용하시면 됩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위쪽에 있는 빨간색 버튼을 누르시고요.”
“누르면 바로 수리 기사님이 방문하는 겁니까?”
“하하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대기 시간 없이 바로 접수되어서 상담원이 연락을 드릴 겁니다. 최신 기종을 이용하시는 고객님들을 위한 작은 서비스죠.”
“괜찮네요.”
비싼 제품은 역시 그 값을 했다.
오후에 주문을 했는데, 늦은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셋이나 되는 인원이 몰려와서 배달 및 설치를 끝냈다.
간단한 조작법 설명을 끝으로 설치 기사들이 사라지자, 소이는 본격적으로 멀티퍼포스 캡슐에 대한 관찰을 시작했다.
“이게 멀티퍼포스 캡슐…….”
2m의 길이에 넓이는 1m에서 조금 부족했다.
타원형의 형태를 가진 멀티퍼포스 캡슐은 공상 과학 영화에 등장할 것 같은 비주얼을 지니고 있었는데, 반짝거리는 외부의 은빛 색상이 그런 느낌을 주는 주된 원인이었다.
[이게 뭐야?]
“가상현실 접속기.”
[가상현실?]
사람들이 사라지자마자 가까이 다가온 다솜이 멀티퍼포스 캡슐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내에서 가상현실 기술이 실용화된 것은 고작 2년에 불과했다.
사망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솜의 기억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우와! 대단해. 그런 건 영화로만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상현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 소이는 입을 다물었지만, 다솜은 이미 황당한 기대감을 갖게 된 상태였다.
[나도! 나도 가상현실 하고 싶어.]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계속 헛소리할 거면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성불이나 해라.”
[우씨…… 가상현실 게임은 키보드나 마우스로 하는 게 아니라며? 나도 사고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는데, 될 수도 있지. 안 그래?]
“너, 안에 들어가서 누울 몸은 있냐?”
[헤헤! 그건 좀 빌려주면 안 될까?]
“꺼져.”
소이의 칼 같은 거절에 다솜은 시무룩해져서 벽 너머로 사라져 갔다.
새벽녘의 복수를 다짐하면서.
어릴 적 학교에 가면 무척이나 얄미운 급우가 있었다.
입만 열면 가족 자랑에 겉보기에도 번지르르한 고가의 외제 학용품을 모나미 볼펜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습게 여기던 녀석.
그뿐인가.
씀씀이가 커서 어딜 가나 추종자들을 몰고 다녔고,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도 그 친구의 배경 때문인지 편의를 많이 봐주곤 했다.
있는 집 자식, 선생들의 편애, 재수 없는 성격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갖춘 녀석은 멈출 줄 모르고 폭주하는 기관차를 보는 듯했고, 학기 말이 될 때쯤에는 ‘왕’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반 친구들을 괴롭히는 것은 예삿일에 사적인 심부름도 내키는 대로 시켜 댔다.
그런 녀석의 시선에 ‘소이’가 고깝게 느껴진 것은 당연한 일일 터였다.
자기에게 굽히고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동년배들에 비해 덩치도 크고 묘하게 어른스러워서 마음처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녀석은 결심했다.
소이를 손봐주기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형들에게 돈을 주고 부탁을 했다.
소이를 아주 고분고분해지도록 교육시켜 달라고.
그리고 그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선택이었다.
***
쏴아아아!
“……비가 오네.”
이른 아침이다.
‘게임 폐인’이라는 단어 하나로 소이의 평소 생활 패턴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가 뜨자마자 기상하는 것은 무척이나 드믄 경우였다.
‘오랜만에 일찍 잠든 덕분인가?’
아마도 어제부로 기존에 했던 온라인 게임을 모두 정리했기 때문에 이른 취침의 효과로 얻게 된 결과일 것이다.
각설하고, 아침부터 귓가를 간질이는 빗소리에 소이는 창가에 달라붙었다.
두터운 커튼을 옆으로 밀어서 시야를 확보한다.
투득, 투드득―!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의 기분 좋은 리듬감.
소이는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소이는 빗소리를 좋아했다.
더불어서 비가 오는 날에는 컨디션도 최고였고.
하지만 언제부턴가 비가 오늘 날에 마냥 웃고만 있지는 못하게 되었다.
‘이 빌어먹을 기억들…….’
욱신거리는 통증이 미간 사이를 자극한다.
소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미약한 통증과 함께 신경이 분산되어 질척거리며 달라붙은 불쾌함이 조금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리창에 비친 눈 아래의 작은 흉터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자세히 보지 않고서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그토록 좋아했던 빗속에서 얻게 된 상처다.
그리고 폭주…….
‘그때 이성을 잃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미 지나간 일이다.
하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저 어린애들 사이의 다툼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잔인했던 폭력과 그로 인한 감정의 폭발.
그 사건으로 인해 소이의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그건 늘 주위를 맴돌던 귀신들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먹잇감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의 아웃이라…….’
더 이상 학교를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등교 시간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태양의 빛이 약해지는 하교 시간에는 결코 안심할 수 없었기에…….
게다가 낮이 짧고 밤이 길어지는 동절기(冬節期)에는 그 위험이 더욱 커졌다.
기본적으로 음기가 많은 존재인 귀신들은 빛을 싫어하긴 하지만, 본신의 힘이 강하다면 몇 분 정도는 태양 아래에서도 너끈히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몇 분의 시간은 소이에게 너무도 위험했다.
생기를 빼앗길 수도 있고, 더욱 심한 경우에는 빙의(憑依)가 되어서 잠시 동안이나마 신체의 자유까지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발생한 사건, 사고들.
친구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준 상처만 해도 적지 않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가족들에게까지…….
결코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신체를 빼앗은 귀신은 주위의 생자들을 증오하며 온갖 패악질을 부렸고, 결국 소이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게임밖에 없었지.’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상처를 입히는 것도…… 받는 것도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철저하게 외톨이이자 겁쟁이가 되어서 방 안에 틀어박혀 온라인 세계 속에서만 살게 되었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금전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으면 염치없이 미성년자인 것을 방패 삼아 부모에게 기대거나 게임 아이템을 팔아서 해결했다.
곪아 터진 마음의 상처들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는 유일한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맺은 미약한 관계들로나마 외로움을 달랬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약한 존재기 때문에…….
그런 과거를 가지고 살아왔던 소이는 무엇보다 ‘게임’에 집착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유일한 수입원이 되어주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유흥거리에 불과하더라도 소이에게는 ‘게임’이 곧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고통에 신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소이는 지금 이 순간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거래 사이트에 올린 판매 건들을 모두 정리한 다음 생긴 통장의 변화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800만 원을 제하면 자그마치 5,900만 원의 수입이 발생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높은 가격인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소이는 입금액 확인이 끝나기 무섭게 ‘가상현실 접속기’를 판매하는 사이트로 이동했다.
“으, 비싸. 빌어먹을 정도로 비싸네.”
소이가 고민하고 있는 건 바로 가상현실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접속기 구매 건이었다.
“저번에 봐뒀던 상품이 어디 있더라?”
대한민국에서 가상현실 게임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기술 자체의 개발은 군사적인 목적이나 의료, 교육, 금융 등의 분야에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상당 부분 진척된 상태였다.
낮은 보급률이긴 하지만 일반 가정집에서도 서서히 가상현실 접속기를 구매하는 추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소이가 지금 가상현실 접속기의 구매를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국내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인 ‘소드 앤 매직’ 베타테스터의 필요조건 때문이었다.
가장 절대적인 조건이 하루 평균 ‘다섯 시간’ 이상의 게임 플레이였지만, 그 외에도 조건은 많았다.
설문 및 정보 제공에 응할 것, 게임사와 상의 없이 방송 및 언론 취재에 응하지 말 것 등등…….
기껏 합격한 베타테스터의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으려면 개인적으로 가상현실 접속기를 구매해서 게임에 접속하거나, 아니면 게임사에서 제공하는 장소에서 다른 테스터들과 옹기종기 모여 접속 시간을 채워야 했다.
외부 활동이 힘든 소이에게 후자는 고려할 가치도 없으니, 선택할 방법은 당연히 전자뿐이었다.
베타테스트 서버의 오픈일은 바로 내일!
입금이 늦어졌다면 감도가 떨어지긴 해도 어쩔 수 없이 저가형 접속기인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ead Mount Display)라도 구입해서 플레이를 해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이제 돈은 충분하니까. 초고가형 접속기인 멀티퍼포스 캡슐(Multipurpose Capsule)도 구입할 수 있긴 한데.’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급형으로 제작되는 멀티퍼포스 캡슐의 가격만 해도 700~800만 정도 나가는 비싼 상품인데, 현재 소이가 군침을 삼키고 있는 제품은 그보다 훨씬 더 고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로도 접속을 할 수 있긴 하지만…….’
헬멧과 고글을 합쳐 놓은 모양새.
자주포나 전차에 탑승할 때 착용하는 승무원 헬맷과 흡사하게 생긴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휴대성이 높다는 장점을 가진 접속기였다.
하지만 가상현실 시스템을 이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싱크로율’에서 멀티퍼포스 캡슐과 압도적으로 성능 차이가 나기 때문에 예비용 접속기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여행을 가거나 외부에서 급하게 사용하게 되어 멀티퍼포스 캡슐 사용이 불가할 때 주로 이용되었다.
‘역시 성능을 생각하면 접속기는 멀티퍼포스 캡슐이지.’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가 현실 감각의 30% 정도를 구현해 낸다면, 멀티퍼포스 캡슐은 평균적으로 70%에 육박하고, 고액의 최신 기종은 80%까지도 가능하다고 하니, 가격 때문에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이미 소이의 마음은 후자를 향하고 있었다.
‘일단 사긴 살 건데, 가상현실 게임…… 과연 거기에서도 온라인 게임 때처럼 잘할 수 있을까?’
게임은 소이의 현실이자 돈을 벌기 위한 직장이기도 했다.
만약 가상현실 게임에서 실패한다면 비싼 접속기의 가격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약한 생각은 무슨……. 그래, 자신감을 갖자. 어차피 퇴로는 없으니까.’
가상현실 게임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해도 온라인 게임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돌아갈 곳은 없었다.
배수진을 칠 각오로 앞만 보고 나아가야 했다.
‘어차피 쓸 돈이라면 다른 부분에서 아끼더라도 최신 기종으로 가자.’
10%의 싱크로율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였다.
일반 플레이어 사이에서는 약간의 체감 차이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미세한 컨트롤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고수’들 간에는 멀티퍼포스 캡슐의 성능 차이가 격세지감(隔世之感)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건 싱크로율이 떨어지고…… 음, 이건 바이탈 컨트롤 기능이 부족한데…….’
한참을 이리저리 고민하던 소이는 고심 끝에 하나의 제품을 선택했다.
이쪽 분야에서는 명품이라 분류되는 미국 제조사의 제품이었는데, 최신형으로 그 가격이 자그마치 1,500만 원이나 했다.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소이는 곧 과감하게 제품을 결제했다.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환경도 큰 도움을 주기 마련이다.
이건 투자였다.
성공을 위한 과감한 투자!
비싸긴 하지만 최신형의 접속 장비라면 가상현실 게임을 이용하는 데 숨은 조력자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설치 끝났습니다. 작동도 이상 없으니, 바로 이용하시면 됩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위쪽에 있는 빨간색 버튼을 누르시고요.”
“누르면 바로 수리 기사님이 방문하는 겁니까?”
“하하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대기 시간 없이 바로 접수되어서 상담원이 연락을 드릴 겁니다. 최신 기종을 이용하시는 고객님들을 위한 작은 서비스죠.”
“괜찮네요.”
비싼 제품은 역시 그 값을 했다.
오후에 주문을 했는데, 늦은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셋이나 되는 인원이 몰려와서 배달 및 설치를 끝냈다.
간단한 조작법 설명을 끝으로 설치 기사들이 사라지자, 소이는 본격적으로 멀티퍼포스 캡슐에 대한 관찰을 시작했다.
“이게 멀티퍼포스 캡슐…….”
2m의 길이에 넓이는 1m에서 조금 부족했다.
타원형의 형태를 가진 멀티퍼포스 캡슐은 공상 과학 영화에 등장할 것 같은 비주얼을 지니고 있었는데, 반짝거리는 외부의 은빛 색상이 그런 느낌을 주는 주된 원인이었다.
[이게 뭐야?]
“가상현실 접속기.”
[가상현실?]
사람들이 사라지자마자 가까이 다가온 다솜이 멀티퍼포스 캡슐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내에서 가상현실 기술이 실용화된 것은 고작 2년에 불과했다.
사망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솜의 기억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우와! 대단해. 그런 건 영화로만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상현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 소이는 입을 다물었지만, 다솜은 이미 황당한 기대감을 갖게 된 상태였다.
[나도! 나도 가상현실 하고 싶어.]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계속 헛소리할 거면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성불이나 해라.”
[우씨…… 가상현실 게임은 키보드나 마우스로 하는 게 아니라며? 나도 사고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는데, 될 수도 있지. 안 그래?]
“너, 안에 들어가서 누울 몸은 있냐?”
[헤헤! 그건 좀 빌려주면 안 될까?]
“꺼져.”
소이의 칼 같은 거절에 다솜은 시무룩해져서 벽 너머로 사라져 갔다.
새벽녘의 복수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