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5화


출근 전 서희가 예상했던 대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오전에 수혁이 챙겨 온 도시락이 아니었다면 오전을 무슨 힘으로 보냈을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생각보다 길어진 회의 때문에 비서실 직원들은 도시락을 주문해 사무실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주문을 할 때 제희가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더니 평소보다 반찬 가짓수가 많았다. 네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막 식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 인터폰이 울렸다. 그러자 민경이 재빠르게 수화기를 들었다.
“네, 회장님.”
- 거기 최 실장 같이 있습니까?
“네. 이제 막 식사하시려고 해요.”
- 그럼 최 실장한테 다음 회의팀 준비 자료하고 도시락 들고 들어오라고 해요. 시간이 없으니 먹으면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전하고.
“네,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야?”
인터폰을 끊자마자 박 대리가 민경에게 물었다.
“실장님, 다음 회의 자료 챙겨서 회장실로 가 보셔야겠어요.”
“어, 실장님 식사 전이신데?”
“도시락 가지고 들어오시래요. 시간이 촉박하니 식사하면서 말씀 나누자고 하시던데요.”
민경의 말에 서희는 벌써 서류를 챙기고 있었다. 그러자 제희가 옆에서 서희 몫의 도시락 뚜껑을 다시 닫아 주었다.
“정말 회장님은 너무하셔.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니에요.”
“오전 회의가 너무 늦게 끝나서 그런 걸 어떡해. 민경 씨, 미안하지만 앉기 전에 두 분 드실 차 좀 부탁해.”
박 대리의 말에 민경이 준비실로 들어가 매실차 두 잔을 타서 서희 뒤를 따라 회장실로 들어갔다.
수혁이 소파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서류를 보고 있었다. 서희와 민경이 들어오자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쳐다봤다.
“편하게 식사해야 되는데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서희가 맞은편 자리에 앉고 민경이 차를 내려놓고 나가자 수혁과 서희는 식사를 하며 회의를 시작했다.
고급 도시락이기는 했지만 밥 먹을 때조자 사무실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을 정도로 바쁜 하루였다. 그나마 밥심으로 남을 오후 회의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고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모두들 녹초가 되었다.
그 와중에 서희는 오늘 있었던 회의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 서희의 서류를 민경이 빼앗으며 말했다.
“실장님, 내일 하셔도 되잖아요.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고 시원하게 맥주나 한잔 먹으러 가요, 네?”
평상시 그녀에게 사적으로는 말을 거는 일이 별로 없던 민경이 애교를 부리며 말하자 서희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네? 실장님. 같이 가서 맥주 한잔해요.”
일 외에는 직원들과 어울려 본 적이 없는 서희가 망설이자 박 대리가 거들고 나섰다.
“직원들과도 어울리고 하세요. 오늘 너무 바쁜 날이었잖아요. 이런 날 실장님이 사 주시는 맥주 한잔 먹고 싶어요.”
평소 그녀의 성격을 잘 아는 박 대리까지 나서자 서희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요. 그럼.”
“와!”
그녀의 말에 직원들이 사무실인 것을 잊고 소리를 쳤다.

수혁이 먼저 퇴근을 하고 사무실 정리를 끝낸 직원들이 회사 근처에 있는 호프집으로 향했다. 네 사람은 둥근 테이블에 자리하고 앉아 식사 겸 안주가 될 만한 것과 맥주를 주문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서희는 영 어색하기만 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어리둥절해할 때 점원이 맥주와 안주를 날라 왔다. 그 모습에 서희가 다시 술자리에 집중을 하자 목이 말랐는지 먼저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들이켠 제희가 서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실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일을 잘하세요?”
“그냥 하는 거지…….”
며칠째 이어지는 제희의 칭잔에 서희가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에이, 그냥이 아닌 것 같은데요?”
조명이 어두운데도 서희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본 제희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야.”
거듭된 제희의 질문에 서희가 다시 대답했다.
“그래도 뭔가 노하우가 있을 거 아니에요?”
“글쎄…… 나도 생각을 안 해 봐서 모르겠어. 그냥 습관이라고 해 두자. 자연스럽게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럴 거야. 큰회장님 모시면서 김 비서님에게 배운 게 많아. 김 비서님이 워낙 유능하시잖아.”
서희의 말에 민경과 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전화만 잘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외모만 보고 무시했던 서희를 왜 다른 회사에서 서로 스카웃을 하려고 하는지 이번에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그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나태했었는지 깨달았고 조금 부끄러워졌다.
처음으로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는 세 여자를 보던 박 비서가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방향의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 그는 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네, 회장님. 저 박 대립니다.”
- 네. 무슨 일이죠?
“저희 사무실 식구들끼리 회사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하고 있는데 오시겠습니까?”
- 호프집?
“네. 실장님이 오늘 한잔 사신다고 해서 다들 모여 있습니다.”
- 최 실장도 같이 있습니까?
“네.”
- …….
박 대리의 대답에 수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저기, 박 대리…….
“회장님. 저 눈치 없는 놈 아닙니다. 그동안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입도 무거운 놈입니다.”
- …….
박 비서의 말에 수혁은 할 말이 없었다. 그가 뭔가를 눈치챈 듯이 말했고, 그것이 뭔지 자신도 알아챘다. 수혁은 자신의 행동에서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는지 생각을 했다. 대답 없이 조용한 수혁의 반응에 박 비서가 말을 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몰라도 하루 8시간 이상을 붙어 있는 저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아니라고 우기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실장님 아프시고 난 뒤에 회장님 행동이 변한 거 보면서 대충 짐작했습니다. 큰회장님 닮으셔서 식사를 편하게 하셔야 한다는 것도 알고,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 안 드신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 분이 늦은 밤 도시락 가게를 찾으실 때 조금 의아했었습니다.”
- 박 대리…….
박 대리의 말에 수혁이 당황해 그를 불렀다.
“사장님께서는 아니라고 하고 싶으시겠지만 도시락이 온전히 실장님을 위한 것이라는 거 눈치챘습니다. 여직원들에겐, 실장님과 큰회장님의 일만 이야기했으니 챙기시는 모습을 이상하게는 보지 않을 겁니다.”
자신도 잘 몰랐던 습관들을 예로 들며 박 비서가 조목조목 짚어 주자 수혁은 할 말을 잊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수혁이 대답했다.
- 알았어요. 일단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장소가 어디예요?
수혁에게 호프집 위치를 가르쳐 준 박 대리는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수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박 대리가 불러 준 장소로 나가기 위해 외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봤을 때 비친 모습에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서희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본인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수혁은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박 대리가 일러 준 장소에 도착하니 편하게 앉아 있던 비서실 직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회사 근처라 그런지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다른 부서의 직원들도 있었다.
“회장님, 여긴 어떻게?”
“일 때문에 박 대리하고 통화하다 알았어요. 오늘 바빴는데 술값은 당연히 내가 내야죠.”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네 사람에게 말한 뒤 수혁이 직원을 불렀다. 그리고 홀에 있는 손님 중에 BS그룹 직원인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술값을 받지 말라고 전했다. 옆 테이블에서 그 소리를 들은 직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먹고 즐기세요. 대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합시다.”
“네!”
환호하는 직원들에게 간단한 목례를 한 뒤 수혁이 자리에 앉아 있는 비서실 직원들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여기 있는 직원들이야 매일 나하고 부딪히는 사람들이니 덜할 테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내가 있는 게 스트레스일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장소를 옮겨서 마십시다.”
수혁의 말에 네 사람은 자리를 옮기기 위해 일어섰다. 수혁이 제안한 장소로 옮기기 위해 택시로 움직이기로 했다. 한꺼번에 탈 수는 없어 두 팀으로 나누었는데 어쩌다 보니 서희와 수혁이 같이 움직이고 나머지 직원들이 다른 택시로 움직이기로 했다.
택시 뒷좌석에 수혁과 나란히 앉게 된 서희는 불편했다. 외근으로 함께 움직일 때도 그녀는 항상 조수석에 앉았기 때문에 수혁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의식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나란히 앉아 있으니 어색하고 불편한 게 사실이었다.
그런 서희의 기분을 알 리 없는 수혁은 곁눈질로 서희를 살피기 바빴다. 무릎 위에 올려 둔 가방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두 손은 지난번에 본 것처럼 통통하면서도 길게 뻗어 있었고 차창 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그늘이 진 속눈썹은 마스카라로 올리지 않았음에도 예쁘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한참을 그녀를 훔쳐보던 수혁의 핸드폰이 울리자 서희가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고개를 돌리는 그녀에게 들킨 것 같아 괜히 헛기침을 하며 수혁이 전화를 받았다.
“흠흠. 여보세요. 박 대리 무슨 일입니까?”
- 저기, 회장님. 2차는 두 분이서 가셔야겠습니다.
“아니, 갑자기 왜요?”
서희의 눈치를 살피며 수혁이 물었다.
- 저기…… 민경 씨가 클럽에 가자고 졸라서요. 두 분도 가시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물어 오는 박 대리에게 수혁이 대답했다.
“그런 자리까지 내가 같이 가면 제대로 놀 수나 있겠습니까? 세 사람만 가세요. 이렇게 된 거 전 최 실장하고 술이나 한잔하고 들어가야겠습니다.”
수혁의 통화 내용을 듣던 서희가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오늘 비용 신경 쓰지 말고 놀아요. 대신 내일 지각은 아무도 없는 겁니다. 제희 씨한테 꼭 전해요.”
싹싹하고 성격 좋은 제희가 은근히 지각을 자주 한다는 것을 아는 수혁이 말했다.
-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박 대리와의 전화를 끊은 수혁이 서희를 보며 말했다.
“세 사람 클럽에 간다고 합니다. 민경 씨가 박 대리한테 졸랐나 봐요.”
“그럼 저희도 그냥 들어가죠.”
“아뇨. 이렇게 된 거 둘이서 술이나 한잔합시다.”
더 이상 거절을 못하게 단호하게 말한 수혁이 앞을 보자 서희도 한숨을 쉬며 바로 앉아 고개를 숙였다.
수혁이 안내한 곳은 한적한 바였다. 회원제인지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한 분위기에 인테리어가 꽤 고급스러웠다. 수혁이 자주 오는 곳인지 반갑게 맞이하는 직원의 안내로 두 사람은 조용한 창가로 자리를 잡았다.
소파의 등받이가 높아 앉으면 다른 좌석에서는 잘 볼 수 없어 얼굴이 잘 알려진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수혁이 직원에게 바로 주문을 했다. 술이라고는 회식 때 마시는 맥주가 전부인 서희는 수혁이 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간단한 안주가 나오고 수혁이 주문한 술이 나오자 그가 서희에게 술을 권했다. 그런 뒤 자신의 술잔에는 그가 직접 술을 부었다. 앞에 놓인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서희를 한 번 바라본 수혁은 자신의 술잔을 비웠다.
그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서희가 제 앞에 보이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흠! 흠!”
급하게 마시다 사레가 걸린 것인지 서희가 잔기침을 하자 수혁이 물 잔을 내밀었다.
자신이 건네는 잔을 받아서 물을 마시는 서희를 바라보던 수혁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이런 감정이 생겼는지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이 서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하루 종일 서희가 신경 쓰였다.
그녀의 작은 손짓 하나에 괜히 몸이 간질거렸고, 도우미에게 아침 도시락을 부탁할 땐 서희의 건강을 위한 메뉴 위주로 부탁했다.
철없는 나이에 연애를 할 때도 상대에게 이런 설렘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3년을 옆에 붙어서 자신을 보좌해 온 서희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자 수혁도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서로가 안 보고 살 수도 없는 입장이라 수혁은 어떻게든 자신의 감정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 비서까지 자신의 마음을 눈치챘다면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희에게 마음이 많이 건너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혁은 술잔을 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서희를 바라봤다.
아무 말 없이 생각에 빠져 있는 수혁을 바라보던 서희가 갑자기 고개를 드는 수혁의 눈길을 피해 들어올 때 이미 둘러본 실내 인테리어를 둘러보는 척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어두운 조명에서도 확연히 붉어진 얼굴을 본 수혁이 마음을 다잡았다.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서희는 수혁이 상상할 수도 없는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런 서희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도 했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다시 자신과 눈이 마주친 서희가 고개를 숙이자 수혁은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최 실장.”
“네.”
“이제부턴 그냥 서희라고 부를게요.”
“……네?”
“솔직히 우리 두 사람,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어릴 때부터 오빠 동생으로 지냈을 수도 있었어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남매처럼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생각나는 대로 말을 뱉은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놀라지 않게 천천히 다가가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마음에 상처가 많은 서희에게 갑자기 마음을 고백한다면 놀라서 또다시 자신만의 세계의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혁의 말에 서희는 아무 말 못 하고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서희 걱정 많이 하셔. 나도 그렇지만 혼자인 서희가 애틋하신 것 같아. 이미 그분들한테는 서희가 손녀야. 우리 둘 잘 지내는 모습 보여 드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서희 생각은 어때?”
수혁은 서희와 편하게 지내고 싶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들먹였다. 그리고 은연중에 말도 편하게 놓았다. 그리고 서희를 빤히 쳐다봤다.
임 회장 부부의 이야기가 나오자 서희도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했다.
“네.”
“참 짧게도 대답한다.”
수혁의 말에 서희의 고개가 더 아래로 떨구어졌다.
일할 때에는 매사에 똑 부러지고 야무지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물러 터진 서희를 보니 수혁은 한숨이 나왔다.
술을 못하는 것인지 안 마시는 것인지 서희의 술잔이 도통 비워질 기미가 없자 수혁이 직원을 불렀다. 남은 술은 키핑을 부탁하고 계산도 끝냈다.
“가자. 너무 늦었어. 너도 쉬어야지.”
수혁의 말에 서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서희를 택시로 집까지 바래다준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들어온 서희는 샤워를 한 뒤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은 뒤 침대 옆 협탁에 올리고, 침대에 누웠다. 이 모든 일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던 서희의 머릿속에 문득 수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녀를 이렇게 살갑게 챙겨 준 사람이 없어 서희는 솔직히 얼떨떨했다.
물론 임 회장 부부가 그녀를 챙겨 주시기는 했었다. 하지만 항상 같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이렇게 옆에서 살뜰하게 챙겨 준 것은 수혁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회사 일에 차질이 생길까 봐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회식 자리에서도 그렇고, 아침 도시락까지 챙기는 그 때문에 서희는 사실 요즘 난감했다. 게다가 오늘 난데없이 오빠 동생을 하자니, 더더욱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서희였다.
머릿속은 복잡하나 무거운 눈꺼풀을 이길 수가 없어 서희는 저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