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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연대기 1권(22화)
제7장 결전지로(決戰之路)(2)


1406년 맹춘(孟春)
조선국 평안도 안주목(安州牧).

“적의 병세(兵勢)가 강 맞은편의 정주(定州)에 이르러 성을 취하고 주둔에 들어갔나이다.”
척후(斥候)를 나갔던 병사의 보고에 조사의는 침음성을 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일이 썩 골치 아프게 된 모양이다.
8만이 넘는 명군의 군세가 정주에 육박했다는 말은 곧 조사의 자신이 있는 안주가 최전방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였다.
명군의 공격을 막아낼 만한 보총으로 무장한 2만의 제1진위대는 백 리 밖 평양에 있었고, 이곳 안주에 지금 주둔해 있는 동북면의 기마병과 보병들은 안주를 공격하느라 손실을 입어 이제 1만 6천 남짓 남아 있을 뿐이었다.
물론 적세(賊勢)와는 청천강이라는 자연 방벽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고, 적군이 강을 넘어오더라도 농성할 수 있는 요건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겨울이 막 물러가는 참이었고, 이 계절의 청천강은 수심이 얕고 물이 적어 마음먹고 넘고자 한다면 충분히 진격해 들어올 수 있을 터였고, 겨우 1만 7천의 병력으로 8만이 넘는 군세가 공성을 하고 들어오면 조사의로서는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실제로 이빈과 이천우도 겨우 수천의 병력밖에 없었기에 조사의의 2만 병력에 못 이기고 성문을 열고 말지 않았던가. 게다가 안주성 자체가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우선은 다른 방책을 강구(講究)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조사의는 변현을 불러다가 전갈을 쥐어 주며 말했다.
“변 공께서는 평양으로 가셔서 고 참장에게 이 형세를 알리고 병력의 지원을 요청하시오. 성이 적들에게 떨어지기 전까지만 이곳 안주에 도달할 수 있으면 될 일이오.”
“알겠습니다. 호군(護軍) 서넛만 붙여 주시면 지금 당장 출발해 저녁 무렵까지는 평양으로 들어가 서찰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겠소.”
변현은 그 길로 바로 안주성을 나와 평양을 향해 말을 내달렸다. 두어 고을을 지나치면 바로 평양인지라 쉬지 않고 달리니 변현이 조사의에게 말한 대로 저녁 무렵에는 평양에 당도할 수 있었다.
포와 총으로 성을 두드리며 함락시켰기에 평양성의 외성은 아직도 여기저기 허물어져 있고 보수를 다 마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변현은 남문(南門)으로 들어서 정령(正領)의 품계를 찍은 목패(木牌)를 보여 주고서는 외성 안에 들어선 진중(陣中)으로 찾아가 고상온을 뵙길 청했다. 안주의 조사의에게서 급보가 왔다기에 고상온은 지척을 두지 않고 바로 변현을 독대했다.
“명군이 이미 정주를 점령하고 청천강을 넘을 시기만 보고 있단 말이오?”
고상온은 생각보다 빠른 명군의 진격에 과히 놀랐다.
이제 막 봄으로 들어섰으니 보급선을 정비하고 북쪽에서 장기전을 수행할 기반을 굳히고 날씨가 풀리면 남쪽으로 진격하리라 생각했는데, 빠른 속도로 진격해 일찌감치 승기를 잡고 전쟁을 끝낼 요량인 듯싶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불안한 보급선과 병력의 소모를 계산치 않고 이렇게 행동할 수 없으니 그만큼 조선군을 빠르게 진압하고 이 전쟁을 일찌감치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었다.
“동정장군 양영이 강수를 둔 것 같소.”
고상온이 미간을 좁혔다.
변현은 숨을 고르고서는 말을 이었다. 먼 길을 말을 달려온지라 아직도 몸이 죄 편치 않았다.
“군세가 들어왔다는 10만보다 준 것으로 보아 분명히 정주 이북에 배후 진지를 하나 구축해 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어쩌면 폐주의 일당이 이미 그곳에 합류해 있는지도 모를 일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폐주의 신병을 확보했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것 없이 거침없이 내려온 것이 설명이 되나이다.”
“변 공의 말처럼 그럴 수도 있겠소이다.”
고상온은 이 변현이라는 자가 지모가 꽤나 뛰어난 편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김세훈이 특별히 조사의에게 붙여 주었을 것이고, 조사의도 그걸 알기에 이렇게 들어다 쓰는 것이다.
고상온은 바로 이 변현으로 하여금 계책을 하나 주어 명군을 상대로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평양은 경기와 삼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가장 중요한 성읍이라 이곳을 비우고 병력을 쉬이 이동시킬 수는 없었다.
적어도 강원도의 제2진위대가 출진할 수 있는 준비가 될 때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그 준비가 완료되어 제2진위대가 북상한다면 평양성을 인계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견벽청야(堅壁淸野)의 책(策)을 쓸 수밖에 없겠소.”
고상온의 말에 변현이 잠시 놀란 눈을 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견벽청야의 책이라는 것은 소위 청야전술이라 불리는 것으로 보급선이 길어 곤란한 적이 깊숙이 들어오면 주변에서 혹여 얻을 수 있는 곡식을 모두 파기하고 소민(小民)들은 모두 성채나 산중으로 피신해 들어가 방비가 단단한 성을 공략하지 못하면 군세를 움직이며 소모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하는 계책이었다.
“이 전란으로 인해 올해의 서북면은 소출을 기대할 수 없게 될 일이니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돌아가시는 길에 각 고을의 판관(判官)들로 하여금 평양 이북에서 안주에 이르는 모든 읍락의 전답과 가택을 비우고 남은 곡식을 충분히 챙겨 주변의 농성 가능한 성이나 여의치 않거든 산중으로 숨어 있으라 하시오. 명군을 막아내는 대로 바로 안전히 식읍으로 돌아오게 조치할 터이니 최대한 철저히 일대를 비워야 할 것이오.”
“옛 글을 보면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이 술책을 사용하여 우문술(宇文述)을 물리쳤고 전조에서도 거란과 몽골이 진격해 들어올 때 이 계책으로 효용을 보았으니, 모두 지금 명군이 들어오는 것과 같은 서북면의 길이올시다. 지금에 있어서는 고 참장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계책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변현은 쉬이 납득했다.
“우선은 평양부중을 함부로 비울 수가 없소. 지금 성의 방비를 마치지 못하고 이곳을 버린 뒤 안주로 가게 되면 혹여 패했을 경우에 뒷일을 전혀 방비할 수 없소. 이곳이 뚫리면 개성까지 명군을 막아설 아무런 군세가 없소이다. 우선은 강원도의 제2진위대가 올 때까지 성벽의 비중을 단단히 하고 버티는 수밖에 없소.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우선 비축해 둔 보총 500정과 천자총통 5문,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숙련된 병사 백여 명도 돌아가는 길에 같이 보내겠으니 우선은 이 계책대로 실행하여 시간을 좀 벌어 주시오.”
고상온의 말에 변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알겠나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적의 병세가 강하니 안주성을 감싸고 공격하기 시작하면 아마 사흘을 버티기 힘들 것입니다. 고 참장께서도 부디 안주를 염려하여 조정에 상계해 빨리 대처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염려 마시오. 나라의 존명이 달린 일인데 어찌 염려치 않겠소이까. 오늘은 늦었으니 하룻밤 머물고 내일 일찍 출발하도록 하시오.”
“아닙니다. 적이 안주성 지척에 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정한 바대로 계책을 행하고 알려야 할 터이니 저는 이만 물러가 바로 출발하겠나이다.”
변현은 단호했다.
고상온은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가기에 밤이 다가오는 시간이나 변현을 내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변현은 돌아가는 길에 강서(江西), 증산(甑山), 숙천(肅川), 영유(永柔), 순안(順安), 개주(价州)의 고을들을 들르며 지방관을 만나 이른바대로 계책을 시행하도록 독촉하고서는 서둘러 안주를 향했다.
이 고을들은 모두 적에게 패해 안주를 잃게 되면 곧장 평양으로 향하는 방향에 있는 고을들이라 혹여 이곳에서 명군이 보급을 취하게 되면 전황(戰況)에 좋지 않을 일이었다. 거기에 평야를 끼고 있어 서북면에서 나오는 소출이 거의 이 고을들에서 충당되는지라 적들을 지치게 만들려면 이 고을들을 비워야만 했다.
“강 참장이 이른바대로 돌아오는 길에 조치를 취하고 왔나이다.”
변현이 안주로 500의 보총과 몇 문의 포를 들고 오자 조사의는 기대했던 평양 주둔의 병력은 오지 않았으나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김세훈에게 한성과 개성을 내어 줄 때 이 보총의 위력을 실감했던지라 우선은 수성하는 일에 조금은 자신이 생겼다.
“그러나 병력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니 큰일이오.”
그러나 조사의는 과연 자신들의 힘만으로 명군을 언제까지 막아낼 수 있을지는 계산이 서지 않았다.
그 염려하는 마음은 변현도 마찬가지이나 지금은 조사의를 다독여 장기간이라도 버틸 수 있는 의지를 북돋아 줄 필요가 있었다.
“우선 적들이 청천강을 넘기 전에 성 안에 식수와 식량을 충분히 비축해 두시고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성벽을 보강하고 수성하는 데에 만전을 기하면 될 일입니다. 혹여 지원군이 늦더라도 적군은 계속 이곳 안주에 붙들려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니 성을 포기하고 평양을 향해 들어설 수도 있나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방이 깨끗이 비워졌으니 가는 길에 아무런 식량도 취할 수 없고 평양으로 가면 성벽을 끼고 수만의 보총병과 수십 문의 대포가 기다릴 뿐이니 너무 심려치 말고 이 곳 안주를 방비하는 일에만 신경 쓰시면 될 일이나이다.”
조사의는 그렇게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변현으로 참모(參謀)를 삼아 성을 지킬 자세한 계책을 궁리토록 하고, 강현을 불러다가는 고상온이 보내 준 500의 보총을 병사들에게 주어 훈련시키도록 하고, 함께 보내 준 100명의 숙련된 병사들은 포를 만지고 강현의 훈련을 돕도록 지시했다.
조사의 그 자신은 아들 조홍과 함께 동북면에서부터 함께해 온 병사들을 독려하며 항전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렇게 안주성에서의 준비가 이루어지는 동안 명군도 정주 일대를 단단히 하고 청천강을 넘을 준비를 해 일부는 좀 더 수심이 얕은 상류로 돌아오고, 일부는 부교를 놓아 넘어오니 안주성에서 포와 총을 쏘고, 활을 질러 막아 보려 하여도 명군에게 큰 손실은 끼칠 수 없었다.
이들이 모두 넘어와 안주성 앞에 진을 치고 공격할 준비를 마치니, 이것이 1406년 음력 정월 대보름의 일이었다.

1406년 맹춘(孟春)
대명국(大明國) 섬서성(陝西省) 서안부(西安府).

고읍(古邑) 서안은 결국엔 염화(炎火)에 휩싸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퇴로는 보이지 않고 서북으로부터 내려온 강맹한 외군(外軍)은 한 치의 명도 허락하지 않고 서안부 성내를 샅샅이 파괴하고 약탈했다.
그해 정월, 새해를 맞아 한껏 들떠 있던 서안부중은 감주(甘州)의 변을 듣고서는 그 대책을 구상해 보았으나 죄 헛일이었다.
이미 티무르의 군세는 그 시간 촌각을 아껴 가며 인주, 형양 등의 고을에 설치되어 있던 명군의 위(衛)를 모두 쳐부수고 서안을 향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선봉대에 있던 샤로흐가 서안 부중에 경고 차 보낸 것은 이전 오스만의 바예지드 1세와의 전쟁에서 가차없이 천 명의 목을 베어 이른바 천살귀(千殺鬼)라는 별명이 붙은 바미야르(Vamiyr)였다.
전형적인 투르크인으로 예전 일 한국의 궁정에서 벼슬을 살던 공족(公族)의 후손인 바미야르는 티무르의 속하로 들어간 뒤로 잔인한 손속으로 그 이름을 날렸다.
이번에도 서안으로 다가오면서 몇 개의 고을을 함락시키며 읍중(邑中)의 저항하는 이들의 목을 죄 베어다가 줄에 매단 다음, 말의 허벅지에 묶고서 달려왔는데, 수천의 기병이 각기 그 뒤에 수십의 수급을 묶고 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보는 이들을 질겁하게 만들기에 차고도 넘치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보고 가장 질겁 놀란 것은 서안에 있던 섬서성의 승선포정사사(丞宣布正使司)의 수장인 좌포정사(左布正使) 악현승(岳炫昇)이었다.
감주에서 온 장계를 받고서는 응천부의 조정에다가는 그저 변경 오랑캐의 준동 정도로 섬서와 사천, 산서의 병력을 모아다가 방위를 단단히 한 뒤 징계하면 될 것이라고 주청(奏請)했었는데 막상 그 실체를 마주하니 오금이 저려올 정도였다.
그것은 섬서의 군대를 일괄하는 섬서 도지휘사(都指揮使) 정석(鄭晳)도 마찬가지였다. 대략 지금 그의 휘하에 5만의 병력이 있다고는 하나 도무지 저 기세등등한 16만의 대군을 보니 막아낼 자신이 서지 않았다.
처음 감주에 들이닥쳤을 때는 20만의 대군이었다고 하나, 감주성 전투와 그 이후 이어진 노략전에서 군세를 조금 잃은 듯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성을 끼고 있다 한들 5만의 병력으로 16만을 방어하기는 무리수가 있었다.
악현승과 정석은 급한 대로 안찰사 (按察司) 장익기(張益基)와 참정(參政) 상약(尙躍) 등을 모아다가 급히 회의를 주재해 보았으나 도무지 회의에서 얻은 것은 없고 죄 헛물만 켜다가 결국 파하고 말았다.
섬서라는 성 하나를 맡아 조정에서 출사해 나온 방백(方伯)들이 부끄럽게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우선은 막아 보는 수밖에 없는데 패배는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응천부에다 파발을 날려 조정에서 군대를 내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는데, 상비(常備)로 가용 가능한 병력인 10만의 군세는 지금 조선으로 넘어가 있으니 지방에서 병력을 충원해 이곳으로 올 즈음이면 모든 것은 끝나 있을 터였다.
“결사(決死)로 맞서는 수밖에 없소. 지원 병력에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우선은 막아내도록 합시다.”
도지휘사 정석이 씁쓸한 듯 말했다.
좌중은 침묵에 휩싸여 그저 묵언(默言)의 동조만을 보내고 있었다. 야전(野戰)에서 패해 퇴각하는 것은 나중에 도망친 것에 대한 변명거리라도 있으나 성을 끼고 앉아 있다 적에게 놀라 성채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은 그저 문책감밖에 되지 않았다.
수성하는 자가 어찌 밖의 군세를 겁낸다고 성을 버리고 도망치겠는가. 이제 와서는 다 부질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우선은 최대한 주어진 병력으로 더 이상 내륙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티무르군을 막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첩목아(帖木兒, 티무르)라는 적의 수괴(首魁)는 근래에 들어 서역제방(西域諸邦)에 이름을 떨치고 무릎을 꿇린 괴수라 하오. 그 군세가 막서(漠西) 전역에 등등하더니 그 병력을 모두 이끌고 온 듯하오.”
악현승은 말을 삼키려다 말고 이내 이었다.
“그러니 이곳 섬서의 병력으로 서안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을 듯하오. 이렇게 뒤늦게 방책을 세우는 우리는 이미 부끄러운 꼴을 면하기 힘들게 되었으니 이곳 서안은 섬서에서도 가장 동남에 있어 이미 적의 군세가 지척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섬서의 주현(州縣)들이 모두 고립되거나 무너졌다는 이야기올시다.”
좌중은 침묵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