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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연대기 1권(20화)
제6장 전란전야(戰亂前夜)(5)
지척의 오른쪽에 보이는 저택이 불타고 있는 것이 아마 이방원이 기거하던 거처였을 것이다. 저쪽으로도 이미 군사들이 가고 있을 터이나 아마 수색해 봐야 이미 도망치고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칠성문 나가는 길을 이 잡듯이 뒤지며 성문 밖까지 나섰지만 막상 도망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성문을 나서자마자 안정재 정위와 마주쳤을 뿐이었다.
“참장 어르신!”
안정재도 놀란 듯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역도 방원은 못 보았느냐?”
“방원은커녕 그 새끼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저희 예상과는 다르게 다른 퇴로를 택한 모양입니다.”
“남쪽으로는 우리 군이 쥐 잡듯이 들쑤시고 있고, 서로는 내가 너를 매복시켜 놓았으며 북쪽은 그 산세가 협소하고 나갈 곳도 없는데, 그럼 대동강이라도 타고 올라갔단 말인가?”
고상온은 막상 말해 놓고 보니 성벽이 공략당하는 아수라장을 틈타 공격군이 전개해 있지 않은 대동강에 주선(舟船)을 띄워 상류로 올라가 숨어 버린다면 이렇게 당하고 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에 매복병을 미리 두지 않은 것이 생각이 짧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병사 하나가 말을 허겁지겁 달려와 부복하고서는 말했다.
“모란봉 아래 전금문에서 멀리 배를 타고 달아나는 한 떼의 무리를 발견하였나이다. 이미 그 거리가 멀어져 강중(江中)으로 사라지니 쫓아갈 수 없어 우선 보고를 아뢰러 왔나이다.”
“두어라. 지금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파발병은 당장 안주성의 조사의 장군에게 연락하여 북쪽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고 혹여나 이방원 일가와 그가 이끄는 간신들이 도망치는 것을 발견하거든 즉시 압송하여 달라 전하라.”
“예!”
이내 고상온의 말을 받들고 파발이 사라지자, 안정재 정위는 허탈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귀한 전공을 세울 참이었는데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우선은 평양성만을 무너뜨린 것만 해도 공적일세. 고구려가 망국(亡國)할 때 이래로 무너진 적 없는 성을 우리가 무너뜨린 것이니 말이네. 거란군도 몽골군도 쉬이 무너뜨리지 못한 성이야.”
“대포의 위력이 대단하나이다.”
“그렇네. 앞으로 칼과 활의 시대는 점점 저물어 갈 것이네. 오늘 보총과 대포의 위력을 똑똑히 보았으니 앞으로 적들도 이것을 우습게 여기지 않을 테지.”
평양 을밀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좌우로 펼쳐진 넓은 들 사이로 성곽을 감싸는 대동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고, 멀리서 피어오르는 구름은 평원 저편에서 뭉쳐서 흘러 올라오니 언덕 위로 퍼져 나가는 겨울바람이 그 구름을 끌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아래의 성은 포화(砲火) 자욱이 아직도 타오르고 있었고 죽은 자들의 원혼은 달랠 길 없으니 고상온은 문득 전중의 감상이 다 부질없는 일이라 느끼고 있었다.
1405년 계동(季冬)
조선국 평안도 안주목(安州牧).
서북면도절제사 이빈과 안주도절제사 이천우는 평안도 병마절도사의 주재지인 안주목을 방비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고작 5천의 군세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방원이 패퇴해 서북면으로 쫓겨 올라온 다음에는 가급적 가능한 병력은 평양부로 모았던 것이었다.
이빈과 이천우는 처음 조사의의 난이 일어났을 때부터 혹여 서북면으로 넘어와 휘젓고 다닐지 모를 조사의군을 막기 위해 안주로 임면되어 보내졌었다.
그러나 생각 외로 탐라에서 거병한 김세훈이 파죽지세로 밀고오자 조사의에게 쫓겨 강화도로 몽진한 이방원을 군세를 끌고 직접 평양으로 모셔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는 혹여 서북면으로 넘어올지도 모르는 조사의를 방비하기 위해 안주에 있는 병사를 쪼개 덕천과 석주(石州, 지금의 강계)로 보냈다.
하나 갑작스레 명군이 도우러 온다더니 김세훈군이 평양을 두드리고 그 사이를 틈타 조사의가 서북면으로 넘어와 덕천을 쉽게 격파하고 안주로 질타하니, 청천강 하구에 있는 안주목까지 덕천을 뚫고 채 3일이 지나지 않아 육박해 2만 군세로 시위하니, 결국 이빈과 이천우는 백기를 내걸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사의는 기세등등하게 아들 조홍과 강현, 변현 등을 이끌고 안주목 읍성으로 들어와 병마 절도사의 군영을 장악하고 2만 군세를 주둔시킨 다음, 이빈과 이천우를 포승으로 묶어다가 꿇어앉히고서는 심문하기 시작했다.
“이천우. 그대 나와는 악연이 깊어 오늘 또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소.”
이천우로서는 정말이지 눈앞이 깜깜한 일이었다. 처음 조사의가 난군을 일으켰을 때 처음으로 진압하러 갔던 그는 패퇴하여 가까스로 목숨만 건져 도성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이방원은 크게 질책하지 않고 안주도절제사(都節制使)를 맡겨 병력을 내어 주어 여태까지 잘 버텨 왔는데, 이제 와서 무슨 괴사인지 김세훈은 평양을 두드리고 조사의는 천리를 답파해 안주로 들어와 자신을 사로잡고 이렇게 겁박하니 그저 한숨만 나올 따름이었다.
“내가 맡은 바가 부족하여 이렇게 또 패하고 말았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소. 수급을 탐하거든 얼른 베고, 관용을 베풀려거든 이 포박부터 풀어 주시오.”
조사의는 그저 코웃음만 치고서는 옆에 똑같이 포박되어 꿇어 앉아 있는 이빈을 바라보았다.
이천우보다는 윗줄의 사람이라 그 대우가 좀 더 좋다는 것이 병졸들이 포승줄을 꽁꽁 부여잡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라 부쩍 힘이 든 듯 표정에서는 지친 기색이 여실히 드러나 보였다.
“이 공은 오랜만이외다. 어찌하여 폐주(廢主)를 따라 종군하여 이런 험한 꼴을 보시오.”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 조사의도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그저 비꼬는 말만 던졌다.
이빈은 허실한 웃음만 짓고서는 잔뜩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하나, 내 이미 전조에서 벼슬하다 지금의 왕가를 섬기게 되었으니 섬기는 주군을 바꾼다 하여도 더 이상 누가 될 것이 무엇 있겠소만, 나는 내가 안주로 명을 받아 올 때의 한성에 계신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아 왔으므로 그 명을 지키는 수밖에 없소이다. 따로 내게 명한 이 없으니 그것을 따르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소이까. 이제 목숨을 다 해 가는 나이에 내 스스로 발 벗고 나서 새 주군을 찾기라도 하리이까.”
조사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빈이라는 노장은 기개가 있는 사람이었다. 전날에 동북면부원수로서 요동 정벌에 원정군으로 출전하였다가 태상왕이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을 단행하자 이에 가담하여 조선을 건국하는데 일조하고 중추원판사까지 올랐던 인물이었다. 많은 개국공신들이 그렇듯 기개하나로 삶을 살아온 인물이었다.
조사의는 이빈을 존중해 더 이상 지저분하게 조롱하지 않기로 하고서는 이빈과 이천우의 포박을 풀어 주라 이르고서는 술과 음식을 조금 내어다가 함께 들기를 청했다.
이미 패장인지라 기개 좋게 목숨을 버릴 수도 있으나, 한때는 함께 조정에서 태상왕을 섬기며 벼슬하던 사이인지라 더 이상 혈기를 돋우지 않고 식사를 들었다.
“두 공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이오만, 내 오늘 받은 전갈에 따르면 이미 평양부는 섭정공의 손에 함락되어 폐주(廢主)는 가솔들과 하륜 등 신하를 이끌고 도주했다 하오. 명나라 군대가 이제 압록강에 육박해 건너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니, 아마 그곳에 있는 양녕군과 합류하려 도망친 것이 아니겠소이까. 나는 이미 태상왕 전하를 개경으로 모시고 그 몸을 한성으로 의탁하여 폐주를 척결하는 일에 앞장서기로 하였소. 이렇게 된 바, 이제 평양부에서 부탁하는 전갈이 오기를 폐주의 퇴로를 수색하여 명군과 합류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오. 두 공은 과연 폐주가 어디로 갔을 것 같소이까?”
이빈과 이천우는 묵묵부답 말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되긴 하였으나 한때 모셨던 임금을 팔아 목숨을 도모하기는 도무지 염치가 없었고, 실제로 어디로 갔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조사의는 그런 둘을 보더니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도 기대를 하고 말한 것은 아니올시다. 허허!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폐주는 이제 다시 복위할 길이 요원하다는 말씀이오. 십만의 명군이 들어온다고 하나, 전쟁의 승패를 떠나 폐주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소이다. 혹여 명의 군대가 이 조선을 샅샅이 점령한다고 한들, 그들이 돌아가면 폐주는 무슨 면목으로 나라를 다스리겠소? 귀공들도 그곳에서 벼슬을 해 봐야 무엇이 남겠소이까? 태상왕을 비롯한 종친의 일가는 폐주의 식솔을 제외하고는 전부 개성과 한성에서 익안대원공의 자제 되시는 새 상감을 받들어 모시고 있는데, 이런 마당에 폐주를 받들어 봐야 남는 명분이 없소. 내가 귀공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연유는 구원(舊怨)을 잊고 조정에 함께 출사하여 정사를 일신하는 일을 새롭게 떠받치자는 것이오. 주상 전하와 섭정공께옵서도 그간의 일의 연유는 묻지 말고 새로이 출사하고자 하는 이들은 그 연력(年歷)을 묻지 말고 받아들이라 하셨으니, 나 또한 그렇게 되어 오명을 씻고 공후(公侯)의 자리에 올라 지금 여기 있는 것이외다. 어떻소이까? 새롭게 몸을 씻어 출사하는 것 또한 나라를 위한 일이라 여기면 말이오?”
난을 일으킨 이후로 목석같이 뻣뻣했던 조사의도 변술이 늘어나 말이 청산유수였다.
이빈과 이천우 또한 그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이 혹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방원은 암군(暗君)은 아니었으나 이제는 땅 한 조각 남지 않은 그야말로 폐주(廢主) 신세에 다름 아니었다.
정당히 집권한 군주도 아니고, 그 스스로 모략과 반정으로 일어섰다가 똑같이 당하여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도망만 치고 있으니 조정에서 섬겼던 임금과 신하 이상의 의리가 없는 그들로서야 새로운 임금이 들어서서 그 과오를 묻지 않는다 하면 섬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외다.”
“정통(正統)을 받은 임금이 계시는데 어찌 폐주를 모시겠소. 나 또한 조정에 출사하겠소.”
처음에는 일이 그른듯하여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으름장 놓던 이들이었으나, 목숨을 구명할 뿐만 아니라 다시 벼슬을 받아 조정에 출사할 수 있다는 말에 더 이상 이방원에 대한 충성을 내세우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은 이성계와 함께 건국을 한 공신(功臣)들이기에 태상왕의 적법한 가손(家孫)이 왕위를 이으면 이제는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우선은 3백의 병사와 군마를 조금 내어 드릴 테니 두 분은 개성으로 가서 송거신 대장을 만나시오. 비변사의 군막(軍幕)이 개성에 설치되었으니 가면 공들에게 알맞은 일을 맡겨 줄게요. 어차피 공들을 처결하려거든 내 손으로 이 자리에서 했을 터이니 추호 딴 맘을 먹지 말고 바로 개성으로 가 백의종군(白衣從軍)하여 새롭게 공적을 쌓아 볼 궁리나 하시오.”
이렇게 이빈과 이천우, 두 장수를 개성의 군영으로 보내 놓고 나서 조사의는 이방원을 사로잡을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굳이 섭정공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이방원만큼은 자기 손으로 잡아서 직접 국문(鞠問)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방원에게 처참히 굴욕을 당해 전라도에서 노잡이로 부역하고 있을 때는 목숨을 끊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차마 그 모욕을 잊지 못해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 그것을 돌려줄 때가 왔다고 생각하니 조사의는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이 느껴졌다. 조사의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방원을 친히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서는 아들 조홍과 측근 강현, 변현의 두 사람을 불러들여서 지시했다.
“분명히 이 안주와 덕천 사이 어딘가의 임도(林道)를 따라 북쪽으로 잠행(潛行)하고 있을 것이오. 폐주 방원이 놈은 내가 병력을 움직여 이곳 안주를 손에 넣은 사실을 모르니 우선 이곳으로 피해 올 가능성이 높소이다. 그러니 나는 이곳 안주와 근방 백여 리를 맡아서 이놈들이 올 만한 길을 샅샅이 지키고 있겠소. 홍이는 개주(价州, 지금의 개천) 일대를 막아서고, 강 공과 변 공, 두 공은 덕천과 대흥 일대를 막아 감히 어느 쪽으로도 넘어가지 못하도록 샅샅이 수색하여 색출하여 주시오.”
이렇게 조사의가 끌고 온 2만의 병력이 동원되어 이 잡듯이 평안도 일대의 관도와 임도, 모든 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동강을 타고 올라가 사라졌다는 이방원 일당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