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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연대기 1권(18화)
제6장 전란전야(戰亂前夜)(3)
1405년 맹동(孟冬)
조선국 함주목.
조사의는 지금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2만 군사가 여전하나 산중의 사찰에다 유폐시켜 놓은 태상왕의 존재는 여전히 불안하기 짝이 없고, 동북면의 호족들은 언제고 사실을 알게 되면 조사의를 뒤에서 후려치려고 덤벼들 것이 뻔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이방원에 의해 안변부사로 보내지자마자 태상왕의 찾아가 계책을 꾸미고 병사를 모았던 것이기에 실제로 조사의의 사병이라고 할 만한 자들은 없다고 보아도 좋을 일이었다.
변에 쓸 만한 지장(知將)도 없으니 논해 봐야 부질인 일이었다.
시름 깊어 그저 밖에 걸린 달만 보고 있자니 이제는 겨울이라 북쪽의 바람은 차갑기 짝이 없었다. 소매를 접고 들어가려는 차에 아래쪽에서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조홍(趙洪)이 조사의를 찾아온 것이다.
“홍이 왔느냐?”
“아버님. 전해드릴 소식이 있나이다.”
조사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야심한 밤에 직접 찾아와 전할 소식이라면 그렇게 만만한 이야기는 아닐 터였다.
조사의는 두뇌가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많지 않은 군세를 이끌고 동북면에서 살아남기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조사의는 그 정도의 판단력은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님, 폐주 이방원이 아들을 명나라로 보내어 군사를 끌어온다고 하나이다. 이미 출발한 지 한 달여가 지나 요동 경내로 들어서 압록을 넘어 들어올 채비를 하고 있다고 하나이다.”
조사의는 머리가 욱신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이 무슨 괴사란 말인가.
“군세가 얼마나 된다고 하더냐?”
“이곳 동북면까지 들려오는 이야기는 거기까지이나이다. 다만 얼마 전 건주위(建州衛)로 다녀왔던 여진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족히 수만은 훨씬 넘는 숫자라고 하나이다.”
“지척까지 왔다니 안 될 일이다. 물론 방원이 놈은 김세훈을 노리고 있겠으나 우리 또한 시간문제이니라.”
“한성의 김가는 보총을 만들어다가 새로 병사를 확충하여 훈련시키고 있다고 하나이다. 보총을 쥔 5만 정병을 만들어 명에 대항한다고 하니 전란이 쉬이 끝나진 않을 듯하나이다.”
“그래, 알았다. 우선은 물러가 있거라. 명군이 당장 이 외진 동북면으로 들어오지는 않을 터이니 잠시 계책을 궁리해 보는 것이 좋겠다.”
아들 조홍이 물러가자 밤늦게 조사의는 같이 모반을 획책해 여기까지 온 강현(康顯)을 불러들여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결국 내린 결론은 동북면에서 버티며 독자적인 생존을 하긴 힘들다는 것이었다. 땅은 척박했고 고을마다 호족들이 각기 제 위신을 뽐내며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태상왕의 이름으로 일시적으로 뭉쳐져 있다고 하지만 태상왕의 뜻을 어기고 사찰에 가둔 것이 알려지게 되면 어차피 조사의는 산목숨이 아니었다.
“역시 김세훈에게 붙는 수밖에 없나…….”
“방원이 놈이 명나라 천군을 끌어들이지만 않았다면 이대로 우선 버티는 게 가능할지 모르나, 지금으로 봐서는 먼저 들어다 바치는 것이 현명하외다. 김세훈은 분명히 태상왕을 요구할 것이고, 태상왕도 이제 기력이 빠져 개경 수창궁에다 모시면 분명히 그저 불사만 도우며 여생을 보낼 것이나이다. 김세훈과 함께하여 방원에게 맞서는데 공을 세우면 혹시 아시오, 창업지공(創業之公)을 쌓게 될지.”
“자네는 괜찮겠나? 어쨌든 우리 모두 왕후마마의 은덕을 갚고자 시작한 일인데 너무 먼 길까지 와 버린 듯하오.”
“태상왕 전하께서 더 이상 무심하시니 어쩔 수 없소이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으니 더 생각해 무엇하겠소. 일이 이만큼 왔으니 되돌릴 수 없는 일이외다. 구명줄이 보였으니 잡으시오.”
강현의 말에 조사의는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책은 김세훈밖에 없었다. 두 번 말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나, 이방원과는 불구대천의 척을 졌으니 갈 곳은 한성의 김세훈뿐이다.
시기가 늦으면 군세를 들어 바친다 해도 받지 않겠으나 아직은 적절한 시기였다.
한성에서도 급하게 군사를 조련하고 대비하느라 어수선할 일이었다. 이때에 태상왕을 모시고 들어가 명분을 세우고 김세훈에게 군세를 바치겠다고 하면 적어도 홀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해관계가 맞으니 서로 의심하고 염려할 필요도 없다. 우선 명나라와 싸우면서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더라도 조사의의 존재가 확실해질 것이다.
조사의는 아들 조홍에게 백여 기의 기병을 붙여 주어 한성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한성에 도착한 조홍은 바로 대신들이 모인 비변사 회의에 동북면절도사를 대리하여 온 것으로 인정받아 참여를 허락받았다.
이미 조홍이 온 이유를 아는 김세훈은 그를 반역군 취급하지 않았다.
“태상왕의 신병은 꼭 개경으로 인도해야 한다. 자세한 연유를 동북면의 호족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면 변방이 위태롭게 된다.”
“아버님도 잘 알고 계십니다.”
세훈의 말에 조홍은 부복했다.
과연 비범한 인물이었다. 남들보다 머리가 하나는 높아 보이는 훤칠한 키에 생긴 것 또한 헌헌장부였다. 이 사람 밑에서 미래를 도모한다면 그것은 아버지에게나 자신에게나 나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이미 조홍은 내리고 있었다.
“내가 주상 전하께 아뢰어 적절한 벼슬을 제수하고 동북면의 군사에 대하여 전권을 위임할 것이니, 조 공은 그것을 받아 돌아가 부친께 전하고 앞일을 잘 부탁드린단 말도 옮겨 주시게.”
“여부가 있겠나이까, 합하.”
이틀 뒤에 다시 조홍이 천 리 길을 내달려 동북면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는 조사의를 영흥공(永興公)에 봉작(封爵)하고 종2품 영길도병마절제도사(永吉道兵馬都節制使)에 임면하고, 조사의의 2만 병력에게 동북군(東北軍)이란 이름을 내리고 부장(副將)의 지위를 내렸다. 이를 추인하는 교지가 조홍의 손에 들려 있었다.
조사의뿐만 아니라 강현을 길주백(吉州伯)에, 그리고 정령(正領)에 원천부원군(原川府院君) 변안렬(邊安烈)의 아들로 원주백(原州伯)이 된 변현(邊顯)를 조홍과 함께 보내며 역시 정령(正領)의 품계를 내렸다.
조홍은 아직 나이가 어리고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는다는 이유로 정위(正尉)의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이렇게 조홍이 보따리를 싸안고 돌아오자 조사의는 진심으로 기뻐했는데, 자신을 공후(公侯)의 자리에 올려 주고 넉넉히 대접해, 한때 한성에 있으면서 자신을 도와주었던 변현(邊顯)까지 함께 보내 주니 그저 기쁠 따름이었다.
조사의는 어찌 되었든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이제는 이방원만 주살(誅殺)하면 그의 거병은 부족할 것이 없을 듯싶었다.
그러나 우선은 군세를 이끌고 서북면을 홀로 도발할 수는 없었다.
변현이 세훈에게 지시받은 대로 조사의에게 일러 준 것은 곧 병력의 조련이 끝나는 대로 명군이 서북면으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평양을 토평하여 이방원을 역적폐군(逆賊廢君)으로 징계할 것이라 하니, 그때에 함께 합세하여 덕천(德川)과 안주(安州) 방면을 맡아 이방원이 함부로 준동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조사의가 들어보니 과연 그 계책이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조사의 스스로 마음은 앞서나 병력의 무장이나 훈련된 것이 한성의 군대에는 밀리는 것이 당연하니, 주공(主攻)은 그곳에 미뤄 두는 편이 조사의 스스로도 마음이 편안 일이었다.
대충 세훈의 그늘로 들어가 명줄을 도모하는 것이 성공했다고 생각되자, 다음 할 일은 단단히 부탁받은 바대로 태상왕을 개경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그것은 조사의 스스로도 바라는 바였다. 태상왕이 동북면에 계속 있으면 그 자신이 불안한 일이었다. 차라리 개경으로 보내 버리고 태상왕이 노욕(老欲)을 그만 세우고 살아 있는 아들들 중 맏이인 상왕 이방과와 함께 지내려 개경 수창궁으로 돌아갔다고 하면 그만일 일이었다. 나머지는 세훈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그러면 조사의 자신은 동북면의 군세를 이전보다 확실히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태상왕이 없어도 이제는 한성의 정부를 등에 업고 정당하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사의에게 생긴 것이었다.
1405년 맹동(孟冬)
조선국 개경부.
태상왕 이성계가 개성부중으로 들어온 것은 음력 10월 17일의 일이었다.
이성계는 상왕 이방과와 이방원에게 패한 뒤로 은인자중(隱忍自重)하고 있는 회안군 이방간에게 문안을 받은 다음 수창궁으로 모시려는 이방과의 말을 거절하고서는 예전 고려에서 벼슬 살 때 기거하던 옛 집인 목청전(穆淸殿)으로 들어가길 고집했다.
왕이 기거하던 집이라 이제는 가호(家號)에 전(展)이 붙어 목청전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이제는 태상왕이 정말 돌아오게 되었으니, 진정 궁궐이 된 셈이었다.
이성계는 그곳에다가 왕후 강씨의 위패를 모셔다 놓고 뒤뜰에는 불전(佛殿)을 만들어 매일 조석으로 공양하며 죄업을 참외하며 지내고 있었다.
세훈은 태상왕이 개성부에 모셔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단출한 시중을 이끌고서는 목청전에 찾아가 뵙기를 청하였으나 이성계는 문 안으로 들여 주지를 않았다. 그렇게 찾아가기를 세 번째가 되어서야 겨우 문안을 받아 주었다.
“명군을 막아내는 준비를 하느라 바쁘기 짝이 없을 요량인데 어인 일로 이 늙은이의 집까지 찾아왔는가?”
비록 이리 내몰리고 저리 내몰려 부쩍 늙은 모습이었으나 군주로서의 패위(覇威)는 여전했다.
얼굴은 주름져 이제 검버섯이 피어오르고, 근골(筋骨)이 쇠약함이 여실했으나 깊게 깔리는 목소리와 그 자용(姿容)은 여전히 용상에 앉아 있을 때 그대로인 듯 보였다.
세훈은 주눅이 들지는 않았으나 내심 속으로 감탄했다. 이성계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나, 역시 전해 들은 바대로의 걸물이었다.
“태상왕 전하께서 옛 도읍으로 돌아오셨다 하니 어찌 신하된 바로 찾아뵙기를 주청하지 않겠나이까.”
“나와 말장난을 하려는 것이면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이네. 차나 들게.”
“주시는 차라면 사양하지 않고 들겠나이다.”
뜨거운 물에 푹 담긴 찻잎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퍼져 오르고 있으나 세훈과 마주 앉은 이성계의 눈은 그저 매섭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자네가 밉네.”
“…….”
“얼굴을 보면 화가 나서 심신이 다스려지지 않을 것 같아 굳이 보지 않기로 하여 몇 번을 거절했건만 끝내 이렇게 찾아와서 늙은이를 불러 세우는구만.”
이성계의 눈가에 잡힌 주름 가득히는 회한이 스멀스멀 맴돌고 있었다. 세훈은 그 행간에서 삶에 대한 무상(無常)함을 은연히 느끼고 있었다.
“나는 젊은 시절을 쉴 새 없이 보냈네. 싸우고, 부딪히고, 물리치고, 이겨내다 보니 나를 따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권세가 생기고, 어느덧 임금의 자리에 올라와 있더구만.”
이성계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그저 옛 사람들이나 추억하며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노인이 되어 버렸네. 어젯밤 왕건 태조가 꿈속에 나왔네. 용포를 치렁치렁 드리우고 면류관을 쓰고서는 높은 단위의 옥좌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면서 꾸짖는데, 감히 몸 둘 바를 모르고 꿇어앉아서 그저 빌기만 했네. 날더러 천하의 역적질을 하였으니 이제 그 죄업의 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 하더군.”
세훈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태상왕 이성계가 했던 것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수천의 왕씨를 데려다가 남해 바다에 수장시켰으니 그 원혼이 구천을 떠돌며 내가 세운 사직을 허물기 위해 오늘도 배회하고 있을 것이네. 나이가 들수록 덧없음만 느끼니 이제는 갈 때가 다 되었나 보지. 옛말에 수신하고 제가하여 치국평천하라 하였으나, 나는 수신(修身)하여 제가(齊家)하고 나서 비로써 치국(治國)에 이르렀노라 생각했었건만 지금 보니 제 몸가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집안은 더더욱 다스리지 못했으며, 나라는 결국 건사하지 못하고 내 집안의 식솔들과 신하들이 사분오열 찢어 놓았으니 이것이 무슨 군왕의 덕치(德治)라 하겠는가.”
“사람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나이다. 어찌 그걸 헤아려 모든 일을 행하겠나이까.”
세훈의 대답에 이성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질없는 이야기네. 군자는 그저 오늘 할 일을 할 따름이라고 하나 그것은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하는 것이네. 나는 이태까지 그걸 몰랐어. 그저 욕심 가는 대로 행하다 보니 결국 이런 모습이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자네도 나와 다르지 않아. 자네가 도대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목적도 없이 그저 내키는 대로 가고 있지 않은가?”
태상왕은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들어가 버렸다.
세훈은 목청전을 나와 다시 한성으로 돌아가는 내내 이성계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그른 말이 아니었다. 세훈은 그의 말대로 스스로가 아무런 목적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에는 살아남고자 했고 일이 풀리다 보니 자신의 하는 일에 훼방이 되는 한성의 임금과 대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탐라를 좀 자유롭게 만들어 바다로 나가 보거나 산업을 일구어 볼 요량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한성으로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섭정한다는 자리를 차지하고 이제는 명나라 군대와 맞서려고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래 왔던 것인가?
세훈은 좀체 해답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자신은 22세기에서 온 사람이다. 굳이 이런 전쟁과 전란을 선택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얼마든지 해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 자신이 민족의식이 투철해 만주며 세계를 호령하고자 하는 꿈에 사로잡힌 것도 아니었다.
세훈은 21세기 초반부터 큰 흐름이었던 탈 민족주의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이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세대였다. 민족이라는 개념도 흩어지고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도 어느새 세기를 건너 밀려나 역사 속의 단락이 되었다. 22세기에서 세훈은 그런 일들에 무감각한 사람이었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성으로 돌아올 때까지 세훈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경행저로 돌아와 자신의 두 아이를 보았을 때 세훈은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 세훈은 그동안 바빠 아이들을 볼 때마다 훌쩍 커 있곤 했는데, 벌써 첫째 현도는 나이가 다섯이나 되어 천자문을 배우고 있었다. 둘째 현진도 이미 돌이 지난 나이었던 것이다.
“아버님. 소자가 오늘 배운 것을 들어보시겠사옵니까?”
집으로 돌아온 세훈에게 아들 현도가 찾아와 혀 짧은 목소리로 자랑하듯이 물어보았다.
“그래, 도야. 한 번 들어보도록 하자.”
“천지현황, 우주홍황, 일월영측, 진숙렬장.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사옵니다.”
짐짓 배 위에 손을 가져다대고 뽐내듯이 말하는 모양새가 귀엽기 짝이 없었다. 세훈은 웃으며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그 뜻은 아느냐?”
“하늘은 그 위에 있어 그 빛이 검고, 하늘과 땅 사이는 넓어 끝이 없도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지니, 별들은 하늘에 넓게 벌려져 있구나, 라고 배웠사옵니다.”
“네가 총명하구나. 앞으로 집안의 홍복이 될 것이다.”
세훈은 그때서야 뭔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다해야 될 것은 별것이 아니었다. 평천하(平天下)한다는 것도 시와 때가 맞으면 저절로 주어질 것이나 수신하고 제가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