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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연대기 1권(17화)
제6장 전란전야(戰亂前夜)(2)


1405년 계추(季秋)
조선국 한성부.

“전하. 명나라에서 양영을 동정장군으로 삼아서 정안군 이방원이 청한 바대로 정안군의 복위(復位)를 돕고자 10만 대군을 출병시켰다고 하나이다.”
익안군의 아들로 멋도 모르고 김세훈에 의해 왕위에 옹립되어 그저 내전에서 술과 여자로 시간을 소일하던 이석근(李石根)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몸을 벌벌 떨며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식을 고해 바친 김세훈은 눈을 찌푸리며 이석근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대로라면 사직이 위태로울 일이나이다. 전하께옵서는 대전으로 드시어 이 대책을 함께 논하시고 군사의 태세를 점검하시어 이에 맞설 방책을 다잡으셔야 할 줄 아옵니다.”
“그, 그러나 과인은 그런 일을 알지 못하오. 게다가 천조(天朝)에서 병력을 내어 보낸다 하니, 이 어찌하여야 좋소이까? 이제 모든 것이 끝났소. 과인은 그저 방원 삼촌에게 가서 엎드려 싹싹 빌고 왕위를 내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김세훈은 슬슬 노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그러기엔 너무 늦었나이다. 그런 허황된 말씀을 유하실 참이면 차라리 내전에 계십시오. 제가 대신들과 논의하여 이 대사(大事)를 타개하도록 해 보겠나이다.”
“저, 정말 괜찮겠소? 섭정공이 내 짐을 덜어 준다면 나는 잠시나마 천조의 병력을 잊고 자, 잠이라도 제대로 청할 수 있을 듯하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제가 앞장서 적들을 막아낼 방법을 강구해 보겠나이다.”
“고, 고맙소.”
왕이 된 뒤로 포식을 일삼아 살이 찐 이석근을 뒤돌아보고 나오는 김세훈은 그저 한숨이 날 노릇이었다.
물론 이 무능함이 이석근을 왕으로 올리는데 큰 공을 세운 셈이었으나, 최소한 왕의 자리에 올라 있는 이상 최소한의 의연함만큼은 보여 주길 바랐다. 이방원에게 치여 있던 선왕 이방과도 이렇게 구차한 모습까지 보이지는 않았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세훈은 전시에는 왕의 처분을 따로 바라지 않고 직접 명을 내려 진두지휘할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어차피 이런 마당이고 보니 누가 국사를 농단하는 일이라 외칠 수도 없을 터였다. 지금 세훈을 도와 나라를 운영하는 대신들은 죄 그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자들로, 세파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다 안전한 자리를 찾아 모인 이들이 태반이었다.
물론 이들이 명나라에서 이방원에게 주었다는 십만 대군의 소식에 동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안심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세훈은 다음 날 날이 밝자 조정대신을 모두 삼개나루[麻浦] 인근의 들판으로 불러 모았다.
그곳에는 이번에 새롭게 신식군대로 설치된 시위대(侍衛隊) 소속의 2만 병력이 도열해 있었다.
2만의 병력 중 5천은 구 탐라군 소속으로 가장 강맹하고 조련이 잘되어 있는 정예였으며, 나머지 1만 5천은 작년 말부터 군적을 조사하여 선발하고, 구식 군대를 흡수하여 훈련시켜 신식군으로 거듭나게 만든 병력이었다.
이중 1만은 보병, 7천은 기병, 나머지 3천은 포병 및 취식 등을 담당하는 잡병(雜兵)이었는데, 기병, 포병, 잡병 또한 보총을 불출받아 훈련을 받고 전시에는 소지하고 있다가 필요시에 언제든지 보총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은 무장 병력이었다.
대신들은 무슨 시위인가 하여 놀란 표정이었지만, 세훈은 개의치 않고 공조판서 최해산과 병조전서 양은계를 불러다가 조용히 이르고는 이내 이들로 하여금 도열하게 한 다음에 한강을 향해 보총의 집단 사격을 지시했다.
타다다다당!
이내 큰소리로 총알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며 한강 저 너머에 설치되어 있던 표적지들이 찢겨 나가는 모습이 대신들의 눈에 보였다.
그리고서는 그간 최해산을 독려하여 준비한 천자총통 50포, 지자총통 100포, 신기전 100대, 소포(小砲), 불랑기 200포, 그 외에도 비격진천뢰를 끌어와서 다시 한강 건너편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이내 천지가 울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강 너머의 둔덕 하나가 쓸려 나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대신들이 그 위세에 깜짝 놀라면서도 어쩐 영문들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세훈은 병사들과 같은 신식군복을 입고 단위에 올라가 말했다.
“다들 이 무슨 영문인지 얼떨떨해 있을 줄 압니다만, 여(予)가 이런 훈련 시범을 보이게 된 것은 다 연유가 있소. 소식이 빠른 분들은 벌써 다 알고 있겠지만, 폐주(廢主) 이방원이 감히 조정을 뒤엎고자 명나라에 군세를 요청하여 십만 대군이 지금도 시시각각 조선을 향해 오고 있다 하오이다.”
좌중은 일순 침묵에 휩싸였다. 마침 한성에 있던 경기도 관찰사 황희가 침묵을 뚫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대명(大明)의 십만 대군은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합하, 거기에 폐주 방원의 군세 3만여가 더해진다면 지금의 태세로는 터진 둑을 막는 것과 다를 바가 없나이다.”
주변에서 그 말에 동조하는 듯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 공의 말이 그르지 않소이다. 단, 지난 폐주가 도망치고 조사의가 철령 이북으로 군대를 물릴 때 보았듯이 전쟁은 꼭 머릿수로 하는 것은 아니외다. 이에 언젠간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방금 견식한 것처럼 강병들을 조련시켜 놓았소이다. 명의 십만 대군이 비록 강맹하다 하나 수천 리 길을 돌아 겨울이 되어야 이 조선 땅에 입경(入境)할 것이오. 이미 소식이 들려온 즉, 우리는 군세를 조금 더 늘리고 그 태세를 강맹히 방어하되, 이 십만 대군이 먼저 오기 전에 폐주를 공격하여 선수를 치고 압록강에서 명군을 맞이하려 하오.”
“합하께서 말씀하신 계책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서(李舒)였다. 확실히 이방원 때부터 벼슬을 하던 이들이라 더 이상 모험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눈에 보였다.
“말해 보시오.”
“폐주가 우리 군세에 패퇴하여 참살되고 나면 명군은 물러서지 않고 그대로 들어와 적법하게 왕사를 이을 군주가 없다 단언하고서는 천조(天朝)에 병합하겠노라 으름장을 노을 수도 있나이다. 만약에라도 패하여 실제로 그리하게 된다면 이 나라의 사직이 모두 무너지고 나라가 사라지는 일이 되니 무섭지 아니할 수 없나이다.”
이서 또한 벼슬할 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아직까지 이들은 세훈의 가신이라기보다는 그저 조정에서 벼슬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세훈의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걱정도 달래 줄 필요가 있었다.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내게 들어온 이야기에 따르면 폐주의 아들 양녕이 사절단에 동행해 지금 명군과 함께 돌아오고 있다고 하오. 폐주가 사라진다면 명군은 양녕을 보위에 세우려고 할 것이고, 우리는 그전에 그 일을 막아서 사직을 보전할 수 있소. 경이 걱정하는 바처럼 우리가 지더라도 양녕이 왕위에 오를 테니, 사직이 없어지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경의 명줄을 구명할 방법이나 강구해 보도록 하시오.”
세훈의 쏘아붙임에 이서는 그저 땀만 비죽이 흘리고서는 뒤로 물러섰다. 세훈은 좌중을 돌아보더니 말을 이었다.
“주상께서는 이런 공전의 위기에 깊은 침통함을 느끼시고 곡기를 끊으시고 침중해 계시며 이 일을 타개하기 위해 조정신료들과 백성의 힘을 모아 난국을 이겨내라고 윤허하셨소. 이에 내게 전권이 내려졌으니 병제(兵制)를 일시 개혁하여 이 방비의 초석을 삼으려 하오.”
임금이 곡기를 끊고 침중해 있지 않은 것은 여기 모인 이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세훈이 군제를 개혁하여 전쟁에 돌입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이왕지사 이런 모양새가 되었으니 우선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함께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었다.
황희, 이서 등도 이내 긴장한 표정으로 세훈의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더 이상 논쟁하고 말 것도 없는 일이 된 것이다.
“우선, 기존의 시위대는 일시 해산하고 이를 재편하여 제1진위대(鎭衛隊)로 편성하고 풍해도 해주로 보내어 그곳을 병참으로 삼은 뒤, 이 2만의 병력으로 서북을 쳐 폐주를 처단하겠소. 그리고 해산된 시위대에 갈음하여 한성, 개성과 경기의 군적에 따라 2만의 병력을 다시 뽑아 1개월간 훈련시킨 뒤 다시 시위대를 편성하여 도성을 단단히 방비케 하고, 강원에서 1만의 군적을 뽑아 원주에 제2진위대를 설치하고, 충청, 경상, 전라에서는 2만의 군적을 뽑아 각각 공주, 대구, 전주에 진위영을 설치하고 제3, 4, 5진위대를 편성하여 주둔시키도록 하겠소. 이들은 아무래도 군적의 조사와 선별이 늦어지면 조련 또한 부족할 터이니 우선은 지방에 주둔된 바대로 각 군읍(郡邑)을 지키고 훈련을 계속하여 유사시에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소. 제주에는 1천의 군대가 있으니 우선은 이것으로 인원이 부족하나 제6진위대를 편성하여 방비를 하도록 하겠소.”
모두가 우선은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세훈의 말이 끝나자 병조전서 양은계가 나섰다.
“새 병력이 입을 보총과 군복 그리고 새로이 편제는 어찌하실 요량이시나이까?”
확실히 아직까지 병조를 맡고 있는 양은계와도 상의를 나눈 일은 아니었다. 이것은 세훈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편제였는데 갑작스레 명군의 출병이라는 난재를 맞아 구체화된 것이다.
세훈은 양은계를 바라보았다. 그는 세훈이 목숨을 구함받은 양노인의 손자로, 세훈이 확실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공조판서는 군수품의 생산 대강을 말씀해 주시오.”
뒤에 물러나 있던 최해산이 세훈의 말에 따라 양은계를 비롯한 좌중에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기적으로 군세를 보총을 든 신식군으로 재편할 계획으로 꾸준히 군복과 보총을 생산해 왔소이다. 그러나 이것을 지금 생산 가능한 곳이 아직까지 탐라밖에 없는지라 지난 1년간 생산한 군복이 총 3만 장정을 입힐 수 있고, 보총은 조금 더 넉넉해 추가로 4만의 병력을 무장시킬 수 있소이다.”
최해산의 말에 이어 세훈이 보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공조판서가 이른바 말해 준 대로 군복은 새롭게 편성될 시위대 병력과 강원도의 제2진위대에 우선 지급하겠소. 그 다음의 보총 역시 시위대와 제2진위대에 우선 지급하고, 남은 1만은 3천씩 삼남의 진위대로 보내어 우선적으로 보총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하고, 그러고 남은 천 개의 보총은 전방에 결손이 발생할 시 바로 보충할 수 있도록 비축해 두도록 하겠소.”
좌중은 바야흐로 전운이 감도는 것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세훈은 그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선 사태가 이렇게 되었으니 이에 따라 기존의 서반(西班)의 관직을 일시 폐지하고 새로운 군직을 부여하겠으니 이 시간부로 설치될 비변사(備邊司)에 참예하게 될 의정부의 재상들과 육조(六曹)의 대신들, 그리고 변방 관찰사들은 남아서 이 일을 마지막으로 합의하도록 하시오.”
이에 따라 문무가 함께 모여 일을 처결할 수 있도록 비상시 국정기구인 비변사가 설치되었는데, 이것은 임진과 병자의 영란을 거치면서 조선에서 실제로 설치되었던 기구였다.
이 비변사는 안 좋게 말하면 밀실 회의로 정치를 하는 기구에 다름 아니었으나, 이런 전시에는 군국(軍國)의 사무를 일통시켜서 재빠른 처결이 가능하게 한 유용한 기관이었다.
이 비변사가 설치되어 처음한 일은 병조전서 양은계의 직급을 판서로 올려 병조의 권한을 크게 하고, 서반(西班), 즉 무관직의 계급을 새롭게 개신하는 것이었는데, 김세훈의 안 대로 정했는데, 대신들은 알 수 없는 일이나 시위대, 진위대의 명칭과 군제의 계급은 바로 20세기 말의 대한제국의 계급을 빌려 온 것이었다.
가장 위에 대원수(大元帥)를 두어 명목상이나마 국왕인 이석근에게 주고, 그 아래의 원수(元帥)자리에 김세훈이 올라 비변사의 수장이 되는 동시에 군무의 총 책임을 맡는 가장 높은 계급에 올랐다.
이 아래로 대장, 부장, 참장의 장급, 대령, 부령, 참령의 영급, 정위, 부위, 참위의 위관급, 특무정교, 정교, 부교, 참교의 사관급, 상등졸, 일등졸, 이등졸의 병급으로 나누었다.
그런 다음 그간의 전방의 군무를 담당해 오던 여산백 양면토평부사 송거신으로 하여금 정1품 대장(大將)의 위를 삼아 비변사 아래에 참모부(參謀部)를 두고 휘하의 병속을 전담케 하고, 병조판서 양은계로 정2품 부장(副將)을 삼아서 사단급인 제1진위대와 앞으로 창설되게 될 시위대와 제2진위대를 합쳐 1군단을 만들고 경사군(京師軍)이라 이름하고 그 책임자로 보임시켰다.
나머지의 삼남에 설치될 후속 진위대들은 군단을 편성하지 않고, 전방의 시위대와 진위대에는 각각 사단급으로 삼아 종2품 참장(參將)을 임명하니, 기존 탐라군이었던 제1진위대는 고상온이, 새롭게 편성될 시위대는 황희가, 강원도의 제2진위대는 고봉지가 맡아 사단장이 되었다.
그 아래로 연대장에는 정3품의 정령(正領), 혹은 종3품의 부령(副領)을 보임시키고, 그 아래의 대대에는 종4품의 참령(參領), 그리고 중대에는 종5품의 정위(正尉)를 임직시켰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무관들로 충당하였으나 정식으로 사관 및 하사관의 교육을 받은 장교나 하사관이 아직까지 없었기에, 우선은 기존의 병사들 중 뛰어난 이들로 하여금 참위(參尉)에 보임시키고, 신식군에 대한 적응 능력이 뛰어나고 전투 경험이 있는 탐라군 출신의 병졸들 중에 하사관 후보생을 뽑아 1개월간 훈련시킨 후 참교(參校)에 보임시켜 소대장과 분대장을 삼도록 조치를 취했다.
이른바 전쟁의 준비는 한성에서도 이렇게 차근차근 이루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