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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연대기 1권(9화)
제3장 자강불식(自强不息)(3)
세훈은 최해산에게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단기적으로 탐라를 조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해 산업을 도모하고 바다를 경영한 다음, 그 힘으로 장기적으로 조선을 도모해 조선팔도 전체를 일신해 새로운 국가를 세울 생각을 하고 있었던 세훈에게, 병력을 길러 왜구를 잡았더니 기껏 돌아온 게 화약과 보총을 가져다 바치고 일개 공납이나 받아가는 변방 취급을 하는 것이 고깝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왜구를 격퇴한 공을 화약을 밀제조했다는 명목으로 상쇄시켜 버리고 치사하지 않은 것은 세훈에게 큰 배신감으로 다가왔던 터였다.
다른 이 시대의 사람들과 다르게 22세기에서 건너온 세훈에게는 조선 왕조에 대해 과거에 대한 향수(鄕愁) 비슷한 느낌 외에 어떤 충정이 있을 턱이 없었고, 오히려 한양의 조정이 세훈이 갈 길을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그러니 바로 그 임금이 보낸 최해산이 고까울 수밖에.
“하명받으신 대로 화약과 보총을 생산하는 것을 감독하고 공납품을 수거하는데도 바쁘실 텐데 어이 이까지 오셨습니까?”
세훈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공납품이란 명목으로 수탈해 가기도 바쁠 것인데 뭣하러 예까지 왔냐는 소리였다.
“그… 조정의 일로 저를 달가워하지 않으신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루신 일들을 보고 꼭 뵙고 싶어서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계속해서 찾아뵈었습니다.”
최해산은 잔뜩 주눅 든 목소리였다. 세훈은 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뾰족해져 있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어 조금 기세를 가라앉혔다.
세훈의 표정이 한층 차분해지고 나서야 최해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 아버지가 자식이 늦어 막둥이로 태어난 덕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겨우 나이가 고작 열다섯이었습니다. 아직 배움이 많이 부족한 시기라 어렵사리 아버님께서 남겨 놓으신 「화약수련법(火藥手練法)」, 「화포법(火砲法)」이라는 책 두 권으로 혼자 배워 아직도 그 깨달음이 부족한데, 이제 제 배움을 이끌어 주실 분을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에 조금 들떠 있었습니다. 마음에 좀 차지 않으시더라도 가르침을 주셨으면 합니다.”
갑작스레 큰절하며 문하(門下)되기를 청하는 최해산의 표정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세훈은 그저 당황해서 혀를 차다가 안 되겠던지 최해산의 어깨를 부여잡고 일으켜 앉혔다.
“자세한 것은 나도 비전(秘傳)으로 지니고 있으니 알려 줄 수 없네. 다만 화약을 좀 더 안정화시키고 보총을 만드는 원리 정도는 알려 주겠네.”
어차피 강철을 생산하는 비법을 모르니 당장은 방법을 알려 주어도 최해산이 본토에서 보총을 생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훈이 직접 일을 추진하며 느낀 것이지만 기술의 발전은 하나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기술들이 수반되어야 했다. 보총의 설계나 원리만 가지고는 강철로 스프링을 만드는 핵심 기술이 없으면 보총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저,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최해산은 그 정도에도 정말 뛸 듯이 좋아하는 듯했다.
그때부터 세훈은 오전에는 군복을 생산하는 일을 감독하고, 오후에는 화학소와 제총소에서 최해산에게 좀 더 안정된 형태의 화약 제조법, 관리법을 알려 주는 한편 이 시대에는 없는 기초적인 화학 상식을 에둘러 일러 주었다.
그러는 한편 보총을 직접 한 자루 가져와 분해해 가며 그 제작법과 작동 원리를 알려 주곤 했는데 일부러 용수철을 만드는데 강철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정말 가르침이 크십니다. 배울 때마다 스승님의 그 탁월한 혜안에 놀라움이 큽니다.”
최해산은 이제 아예 김세훈을 스승님이라 불렀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최해산에게 김세훈은 어쩐지 그 그림자를 느끼게 해 주는 존재였다. 기술에 대한 의지와 탁월한 식견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한층 응용하고 발전시키는 태도는 쉬이 귀감 삼을 만한 일이었다.
최해산은 아버지에게서 늘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자라왔기에 비록 나이는 얼마 차이나지 않으나 훨씬 앞서 나가 있는 세훈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물론 이 어린 청년이 세훈에게서 얻어갈 것만 챙긴 것은 아니었다. 그 자신은 보총을 만드는 기술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으나, 대장군포(大將軍砲), 이장군포(二將軍砲), 삼장군포(三將軍砲), 육화포(六花砲), 석포(石砲) 등의 제작 기술을 일러 주어 세훈에게 포를 만들어 볼 생각을 심어 주게 되었다.
비록 포의 역사로 보아 이제 걸음마 단계의 기술이었으나 여기서부터 세훈이 알고 있는 지식을 곁들어 개량해 나가면 머지않아 제대로 된 근대식 대포를 만드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세훈도 이 어린 청년이 조금씩 마음에 들어가고 있었다.
1404년 입춘(立春)
조선국 전라도 제주도호부.
해가 바뀌자 고상희가 두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 이번에도 아들이었다. 세훈은 이번엔 직접 아들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현진(玄珍)이라 하였다.
“또 이렇게 건강하게 아이를 낳아 주어 정말 고맙소.”
세훈은 그저 아내인 고상희가 예쁠 뿐이었다.
어린 나이에 바쁜 남편을 얻어 마음이 고생일 텐데도 이렇게 아이를 둘이나 순산해 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아이도 아이지만 지금처럼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아이를 낳다 혹여 아내가 잘못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세훈이었기에 아내의 건강한 모습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서방님을 똑 닮은 아들이에요.”
고상희가 둘째 현진을 안아들고서는 말했다. 세훈은 아이 놓을 때 상투채라도 잡게 해 줬어야 하는데 고생이 많았다 싶어 그녀를 꼭 안아 주며 말했다.
“내 꼭 그대에게 좋은 시절을 보내도록 해 주겠소. 부귀와 영화를 모두 줄 수 있도록 말이오.”
세훈의 호언장담에 고상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한테는 지금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가절(佳節)이나이다. 너무 심신을 상하게 일하지는 마세요.”
세훈이 또 득남을 하자 장인인 고봉례는 기뻐서 잔치를 열어 사람들에게 대접을 크게 하고 비누와 발화기 장사의 몫을 받아 크게 쌓인 곡식 창고를 열어 제주 전역에 인심을 풀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세훈의 득남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뒤숭숭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본토에서의 압력이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사관 권진(權軫)을 제주로 보내와 궁사(宮司), 창고(倉庫)에서 보유한 노비의 적(籍)을 만들게 해 본토로 보고하게 하고, 군병(軍兵) 및 말과 총의 상태까지 꼼꼼히 점검시켰다.
그리고 해가 바뀌자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박석명(朴錫命)을 전라도 제주 도체찰사(全羅道濟州都體察使)에 임명하여 제주도호부의 방비가 위태하니 그 기율을 일신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만들어 내려 보낸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도호부사 위에 하나의 자리를 더 만들어 감하(瞰下)하겠다는 소리에 다름없었다.
특히 권진이 시찰을 내려왔을 때 과히 색을 밝혀 기녀를 요구하고 미색이 좋은 동녀(童女) 서른을 궁중에 바칠 요량으로 진상을 하라 하여 제주 일대가 그에 대해 쑥덕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임금이 어찌하여 저런 자를 보내어 살림을 괴롭게 하느냐는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권진이 올라간 뒤에도 지의정부사 박석명이라는 자가 내려온다 하니 외지인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터질 듯이 수면 위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고봉지, 고상온, 문충세, 양은계, 오상복이 세훈을 찾아온 것은 대보름밤의 야심한 시각이었다. 삿갓을 쓰고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여 밤을 틈타 세훈을 남몰래 찾은 이들은 측방에 모여 세훈이 오자 이야기를 꺼냈다.
“조카사위. 이제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하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고봉지였다. 결단이라는 것은 조선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습니다. 매제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이 일은 할 수가 없소. 우리는 다 매제를 믿고 벌이고자 하는 일입니다.”
처남 고상온도 거들었다. 세훈은 내심 조선의 영향권을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고, 공공연히는 아니나 평소에 마음이 맞는 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은연중에 비춰 보이곤 했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 그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이었고, 또 대대로 제주에서 특권을 누려 오던 세습층의 일원들이라 권력을 잠식해 들어오는 조정에 대해 힘이 없을 때는 복종하고 소극적인 불만만 늘어놓았을 뿐이지만, 보총의 위력을 보고 군사력이 확충되기 시작하자 충분히 섬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항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훈은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장인어르신은 알고 계십니까?”
세훈의 물음에 문충세가 고개를 저었다.
“성주 어르신께는 아예 이런 일을 일절 말씀드리지 않았네. 아직까지 조정에 대한 충성심과 두려움이 마음에 크게 남아 계신 분이네. 혹여 심려하시거나 일을 그르치게 하실 것 같아 말씀 드리지 않았네.”
“휴…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세훈은 내심 힘들겠다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어 보였다.
아직까지 이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할 참된 사람들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을 벌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금 탐라에는 외지 병력이 들어와 있지 않다.
다만, 한양 조정에서 반역을 토벌한다고 병력을 보내기 시작하면 문제였다. 섬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잘 살려 총포로 적군을 막아내면 될 일이긴 했다. 그러나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통하는 이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오, 모두 물리쳐 낸다 한들 기존의 세습 직위를 누려 오던 이들이 서로 권력을 내놓으려 하지 않으면 탐라를 새로운 나라로 일신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될 터였다.
세훈은 그런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조카사위. 우리는 마음을 정했네. 자네가 우리의 군주(軍主)가 되어 주게. 이미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네를 우선 탐라대도독(耽羅大都督)으로 추대하기로 했네. 누가 주인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데에 마음을 모았네.”
“매제. 자리를 가납해 주시오. 이 탐라 성주의 후계로서 부탁하오이다. 대도독이 되어 우리를 이끌어 주시오. 원한다면 칭왕(稱王)하여 나라를 세워도 좋을 일이오. 우리 중에는 논공(論功)하여 우열을 정하고자 하는 이는 없으니 믿어도 좋소이다. 다만 이제 이렇게 탐라의 거족(巨族)들이 뭍의 사람들 손에 쇠락해 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오.”
탐라의 호족들 중 가장 힘을 지니고 있는 성주의 후계자이자 세훈의 처남인 고상온까지 그렇게 이야기하자 세훈도 결심이 조금 서는 듯했다.
어차피 언젠간 부딪혀야 할 일이었다. 세훈도 딱히 왕위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좀 더 힘 있는 자리가 필요했기에 이들이 이렇게 주청해서 그런 자리에 올라달라 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세훈은 심약한 장인 고봉례가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일이 벌어지고 나면 되돌릴 수 없게 될 일이었다. 또한 이미 제주의 유지들은 뜻이 하나로 된 듯 보였다.
세훈이 가져다 준 부와 무력이 아니었다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지만, 세훈이 보여준 가능성으로 말미암아 이들도 고려와 몽골, 조선으로 이어지는 사슬을 끊고 제 뜻을 한번 도모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좋소이다. 그 자리를 내가 가납하겠소. 나는 이 사실을 연판장(連判狀)으로 만들어 피로 이름을 써 그 상처를 볼 때마다 마음을 다져 뜻을 굽히지 않게 하고자 하오.”
“대도독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고봉지가 먼저 엎드려 절하며 말하자 이내 뒤에 도열한 4인이 그 뒤를 따랐다.
“따르겠나이다.”
이렇게 늦은 밤 고씨가(家)의 한켠, 김세훈의 침소에서 시작된 연판장과 항전의 의지는 제주의 믿을 만한 유지들과 호족들 사이를 돌아 300여 명이 뜻을 함께하는 뜻이 담겨 돌아왔다. 이들 300이 동참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모든 제주가 뜻이 하나되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제주의 행정과 군사를 모두 장악하고 있는 호족집단들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훈이 만든 신식군대의 천부장, 백부장들은 모두 연판장에 이름을 기명했고, 군율이 잘 다져진 신식군대의 병졸들은 이들 천부장과 백부장들의 명령을 의심 없이 수행할 것이다. 더욱이 전부가 제주 사람으로 구성된 군대임에야.
모든 의지가 모아지자 세훈은 일시에 병력을 동원하여 거병을 선포하였다. 제주 3읍의 성과 주요 관청을 모두 신식병력으로 점거한 뒤, 외지인을 한곳에 모아 위리안치(圍籬安置)했다.
그중에는 영문도 모른 채 밤에 끌려나와 갇힌 최해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김세훈을 찾았으나, 세훈은 안타깝지만 지금은 최해산을 돌봐줄 시기가 아니기에 우선은 다른 외지인들과 함께 꼼짝하지 못하도록 격리된 가옥에 가둬 두었다.
그렇게 제주의 전반적인 장악이 끝나자, 뭇 인중(人衆)의 추대를 받아 탐라대도독의 자리에 오르고 제주도호부와 아래의 두 군을 폐지한 다음 탐라국군정처(耽羅國軍政處)를 설치하여 정부로 삼고 이를 일방적으로 한성의 조정에 통보했다.
제주는 일시 소란했으나 이내 호족들의 노력으로 이내 잠잠해졌다.
“이미 일이 벌어졌으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고봉례는 깜짝 놀라 일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나 회복한 뒤에는 아들인 고상온에게 성주자리를 물려주고는 뒤로 물러나 앉았다.
거사가 있었던 날은 1404년 음력 2월 초하루로, 한성 조정에 이 소식이 닿은 것은 보름여가 지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