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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연대기 1권(4화)
제1장 탐라여일(耽羅麗日)(2)


세훈이 살던 현대의 관념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고봉례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고 능력도 있는 청년을 자신의 아래에 잡아 두기 위해서 가장 유용한 수단을 제시한 것이다.
때마침 고상희도 혼사를 치를 나이가 되었고 당시의 풍습대로 결혼은 나이가 차면 미루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원래 제주의 호족들 사이에는 서로 간의 혼사를 치르는 일이 빈번했고, 고봉례도 작년까지만 해도 양씨나 부씨, 아니면 문씨 집안으로 택일해 시집을 보낼 생각이었으나 세훈이 오고 난 뒤로 그 생각이 바뀐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조금 당황스럽긴 했으나 세훈의 입장에서도 거절할 처지는 아니었다. 과거에 홀로 떨어진 뒤로 결혼 같은 것은 생각도 해 보지 않고 있었는데, 어쩌면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상 언젠가는 치러야 할 관문이었다.
어차피 연애혼이 힘든 시기이니 중매를 맺어 결혼하는 수밖에 없는데, 크게 신세를 지고 있는 고봉례가 직접 딸을 내어 주겠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몸을 맡기고 있는 처지라 거절하는 것은 결례일 뿐더러, 방금 본 고상희의 자태도 15세기의 조선 여자에게서 느끼기 힘든 현대적인 매력까지 느껴져서 마음이 이내 동했다.
그러나 세훈은 잠시간의 유예를 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적어도 고상희라는 여자에 대해서 조금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신변이 정리가 되는 대로 확답을 드리겠나이다. 거절코자 하는 말은 아니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세훈의 말에 고봉례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사윗감이니, 이 정도 기다려 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1400년 맹하(孟夏)
조선국 전라도 제주목.

멀리서 밀려오는 바닷바람에 곱게 흔들리던 버들잎이 때 아닌 소나기에 쓸려 갔다.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느릿한 구름이 한라산을 넘어 쏟아지듯 몰려왔다. 봄비였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습기가 얼굴을 간질였다.
세훈은 마루로 난 문을 닫고 아랫목에 누웠다. 방 안에는 정적 위로 비가 땅을 때리는 소리만 남았다. 조금 있으면 여름이 저 남쪽에서 너울거리며 밀려올 것이다. 이곳에 온 지도 어느덧 1년이 가까워져 가는 것이다.
세훈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이제 자신의 존재로 인해 역사가 달라지기 시작했으니, 그가 원래 있었던 22세기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 같이만 느껴졌다. 돌아갈 수 없기에 이제는 홀로 있으면 그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미래의 물건이라고 처음 남아 있었던 것은 세훈 자신이 입고 있던 우주복뿐이었다. 그나마도 고봉례의 아래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정리해 바다에 떠내려 보냈다. 그렇게 해류를 따라 떠다니다 보면 언젠가 그 질긴 우주복도 미래의 물건이란 것을 알아볼 수 없게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란 것이 얼마나 간사한 동물인가. 처음에는 낯선 세상에 떨어져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고 도무지 살아 나갈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졌지만, 운 좋게 고봉례를 만나 일을 시작하고 이곳의 생활이 적응되자 그냥저냥 지낼 만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슬슬 생존의 문제는 조금 뒤로 물러나고,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굳이 그런 딴생각이 동한 원인을 따지자면, 비누를 바치러 고봉례의 집에 들어갔다 보게 된 그 여식이 문제긴 했다.
그녀가 눈에 들어와 쉬 잊혀지지가 않았고, 거기에 고봉례가 혼사를 제안했으니 세훈은 도무지 그녀를 생각지 않을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부지런히 집안의 일을 돕고 있었다.
본래 주인집 딸이니 규방(閨房)에서 물레나 돌려도 족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직접 마당으로 나서 몸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의 대소사를 직접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얗고 깨끗했을 손에 굳은살이 붙었지만, 그녀는 그런 것은 별로 아랑곳 않는 듯 보였다.
굳은 제주의 바람을 아무리 맞아도 어딘가 모르게 청아하고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가진 예쁜 얼굴은 색을 바래지 않았다.
괜스레 혼사 이야기가 오고 간 뒤로는 말 한 줄 붙여 보기가 되레 쑥스러운 일이었지만, 봄이 지나가기 전에 세훈은 어렵사리 그녀와 말을 텄다. 의외로 수줍음을 잘 타고 말이 없는 여자였다. 녹두향이 진한 머리카락이 바람이 불면 한 가닥 풀어져 나와 곱게 흔들렸다.
세훈은 애써 말을 시키려 하진 않았다. 그냥 한 발짝 떨어져 앉아 그녀가 부엌에서 차려 나온 주안상 하나 객상 위에 걸쳐 놓고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혼자 물끄러미 보고 있다 가끔 고상희가 자신에게 시선을 줄 때면 왠지 모를 따뜻함에 마음이 편해졌다.
“일전 주신 비누를 잘 사용하고 있나이다. 향이 좋아 몸을 단장하는데 쓰니 좋기만 합니다.”
고상희도 세훈이 마음에 없지만은 않았다.
괜스레 비누를 핑계 삼아 세훈에게 와서 말을 걸거나 좋은 술을 내다가 주안상을 차려 주거나, 이래저래 핑계 삼아 얼굴을 곱게 붉히고서는 부끄러운 듯 다가와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그녀도 아버지가 세훈을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고, 세훈도 그것을 거절하지 않은 것을 들어서 알고 있는 터라 내심 남편감으로 생각하고 나니 괜히 한 번 더 눈이 가고,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 옆에 자꾸 붙어만 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둘의 연애 아닌 연애에 서로 간의 생각하는 마음은 점차 깊어져 갔다. 더 이상 고봉례의 제안을 미뤄 둘 수도 없고 고상희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제는 진실된 것이라고 느껴지자 세훈은 더 이상 혼례를 미루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청혼만큼은 스스로 할 생각이었다. 가문의 이름을 빌어 중매혼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사랑해서 이뤄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터였다.
세훈은 늦은 밤, 몰래 월장(越牆)해 고상희가 지내는 규방의 마루에 걸터앉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고상희는 그를 보고서는 깜짝 놀라서 새된 목소리로 다그쳤다.
“어쩌자고 이 야심한 밤에 이리 넘어오셨습니까?”
아무리 혼사를 치르기로 약조된 사이지만 남이 보면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훈은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를 생각하니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아서 말이오. 내 꼭 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이렇게 찾아오고야 말았소.”
“무슨 말씀이시기에…….”
세훈의 말에 짐작이 가는지 고상희가 약간 기대하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세훈은 말없이 웃음을 지어 보이고서는 안 입는 속치마와 지필묵을 내어달라 청했다.
고상희가 부끄러운 듯 그것을 내오자 세훈은 주저 하지 않고 칼로 팔을 따 피를 내어 벼루에 풀어냈다. 핏물이 발갛게 물을 타고 번지자 달빛을 등잔 삼아 그는 시 한 구절을 적었다.

蘇州滿月夜 소주에 만월이 걸린 밤에
소주만월야
春花落長江 봄 꽃은 장강에 떨어지고
춘화락장강
心愰於汝項 마음은 네 목덜미에서 들뜬다.
심황어여항
薄鏡映戀糖 엷은 거울은 사랑의 달콤함을 비추누나
박경영연당

“내 마음이 이러하오. 집안에서 중신을 세워서가 아니라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것을 꼭 직접 전하고 싶었소. 나와 결혼해 주시오.”
속치마를 건네받은 고상희는 그저 수줍게 웃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한서(漢書)를 읽을 줄 알았지만 그 뜻을 알고도 말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혼이라니, 직접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터에 가슴이 뛰었다.
세훈은 그녀의 귓가에 시의 뜻을 속삭여 주었다. 한시를 짓기에는 부족한 실력이나마 밤을 세워 가며 궁리한 시구였다. 자신의 숨결이 얄밉게 그녀의 귓가를 간질이고 있는 것이 세훈에게도 느껴졌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고, 고봉례에게 중신을 받아들일 것을 말해 결정이 내려지자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4월이 되어 여름이 시작일 때 길일을 잡아 김세훈과 고상희의 혼례가 치러졌다.
신방은 김세훈이 고봉례의 집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결정하고 데릴사위처럼 들어와 살게 되었다. 명실상부하게 제주의 거족(巨族)인 고씨 가문의 일원이 된 것이다.
세훈은 고봉례 한 사람의 은덕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될 수 없었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혈혈단신인 그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것이다.
가족을 꾸리고 나니 다른 일도 술술 잘 풀리기 시작했다.
여름 들어 처음 육지에 내다 팔기 시작한 비누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기생들과 양반가를 위주로 크게 팔리기 시작했고, 좀 더 지방을 많이 얻기 위해 염소를 많이 들여와서 한라산 중턱에 목장을 만들고 키우기 시작했다. 부수적으로 염소 젖을 짜다가 제주 민간에 돌려 먹이기도 했는데, 염소젖은 소젖보다 영양분이 많고 어린아이들의 발육을 돕는데도 좋았다.
다만 동양인은 선천적으로 나이가 들면 유당 분해 효소가 유전적으로 나오지 않아 유당을 많이 섭취하게 되면 설사가 나오고 흡수를 하지 못하게 되는데, 예전에 몽골인이 들어와 있을 때의 영향으로 제주도 사람들의 유당 섭취는 괜찮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 제주 특산품과 비누의 판매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세훈은 다른 것을 계획했다.
바로 라이터였다. 처음에는 성냥을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 기술로는 원료가 되는 염소산칼륨을 전기 분해로 얻어내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오히려 라이터가 더욱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상에 소요되는 기술력은 오히려 이쪽이 경제성이 있었다.
1400년인 지금으로부터 먼 이야기지만 22세기에서 보았을 때 큰 기술적 차이가 없는 1772년의 일본에서도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內)가 기초적인 라이터를 발명했었다. 부싯돌에 용수철을 건 다음 작은 망치를 부딪쳐 점화하는, 약쑥을 연료로 사용한 것이었다.
플린트록[燧石] 방식 총의 점화 기구와 유사한 것이다. 이 기술력만 확보하면 다음에는 1600년대 초가 되어야 등장하는 플린트록 방식 총을 제조할 기술을 확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제 막 명나라에서 화승총 기술이 등장하고 유럽에서는 아직 실용화되지도 않은 점을 감안할 때 그보다 한 단계 앞선 플린트록 방식의 총을 대중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큰 유혹이었다.
총이 전장식이라는 점에서는 화승총이랑 다를 것이 없지만, 화승에 불을 당겨 점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에 비해 플린트록 방식은 설치한 격철이 방아쇠에 의해 작동되고 부싯돌이 이에 따라 철과 스쳐 불꽃을 발한다. 동시에 그 충격으로 약실 뚜껑이 열리지만 용수철에 의해 순간적으로 그 뚜껑이 닫혀져 약실 내에서 불꽃이 갇혀 점화되는 구조였다. 상대적으로 화약의 손실이 적고 우천시에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총이었다.
그러나 다른 것보다 이 라이터와 총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기술적 난제는 용수철이었다. 코일 형태의 용수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강철이 필요했는데, 지금 이곳의 제련술로 쓸 만한 강철을 얻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철광석과 숯, 그리고 공기를 용광로 안에서 섞어 선철을 뽑아내는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현대에서야 숯 대신 코크스를 사용하긴 하지만, 이 제주라는 한정된 섬에서 코크스를 구한다는 것은 무리였고, 비교적 초기 방식대로 철광석과 숯 그리고 공기를 사용하는 방식은 시도해 볼 만했다.
문제는 철광석의 수매였다. 제주도는 화산지형이라 철광석을 구할 수가 없었으니 천상 밖에서 들여오는 수밖에 없었다.
세훈은 비누를 판 대금을 모두 철광석으로 바꾸는데 투자하여 철광석을 대량 확보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조선의 국가권력이 성장한 시기라면 말도 안 될 일이었지만, 정종이 한성에서 송도로 다시 재환도한 뒤의 정세는 어지럽기 짝이 없어서 소위 방간의 난이라 불리는 제2왕자의난이 일어나 방간과 방원이 서로 왕위 계승을 놓고 다투는 골육상쟁의 난중이었던 것이다.
이런 시대의 어지러움을 이용해 세훈은 철광석을 매수해서 제주도로 무사히 가져올 수 있었다. 세훈은 필요한 재료가 확보되자 오상복에게 상단의 운영을 맡기고서는 철강을 우선적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철강이 개발되면 용수철을 만들 수 있고, 그 다음은 라이터와 플린트식 소총의 개발이 가능했다. 세훈은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내에 이것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해안가 한적한 곳에 고로를 만들어 놓고 연일 실험을 거듭하는 세훈을 둘러싼 주위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고봉례는 독수공방하는 딸을 보니 사위가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다. 장사야 세훈에게서 배운 오상복이 의외로 상재가 있어 어떻게 굴러 가고는 있지만, 뭔가 만들어 보려는 의지에 비해서 진척이 안 나니 세훈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주위 사람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그사이에 송도에서는 방원이 방간을 누르고 권력을 탈취하여 왕세제(王世弟)의 자리에 올라 이내 상왕의 둘째 아들이자 지금 왕위에 올라 있는 방과로부터 왕위를 양위받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고 있었다.
배다른 형제를 척살코자 왕자들이 난을 벌인 지가 몇 년 되지 않아, 한 때 같은 편에 섰던 왕자들끼리 다시 왕위를 놓고 골육상쟁을 하는 것에 좋은 이야기가 따라붙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먼 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중앙의 관심으로부터 한참은 벗어난 이 남해의 외딴 섬에서는 앞으로 세계의 역사를 뒤집을 중요한 발견들이 속속히 진행되고 있었다. 모두 실제보다 100여 년에서 300여 년은 빠른 기술들이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세훈은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 결국 고로를 완성해 선철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것을 잘 제련하면 강철이 되는 것이었다.
임시 고로에서 만들어낸 강철로 도검을 지어다 고봉례에게 갖다 바치니 고봉례의 입이 헤벌죽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 철이 귀한 탐라에서는 탐도 못내 볼 훌륭한 도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