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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연대기 1권(3화)
제1장 탐라여일(耽羅麗日)(1)
「제주 성주(星主) 고봉례가 철괴 300근, 비누 800포, 양마(良馬) 100필, 발화기 100개를 가져다 바쳤다. 고봉례가 말하기를 제주의 토산이 근시에 풍족해져 진상을 늘였으니 이 모든 것이 도내(都內), 제주만호(濟州萬戶) 김세훈의 공이라 하였다. 김세훈은 경상도 진량 사람으로 제주로 표랑했으나 그 기재가 탁월하여 고봉례가 사위를 삼았다. 주상이 그 물품들에 탄복하고 고봉례에게 쌀 백 섬과 콩 백 섬, 비단과 술을 주어 내려 보냈다.
○濟州星主高鳳禮貢 鐵塊三百斤, 石H八百, 良馬一百頭, 發火器一白. 鳳禮曰:“至近日, 土産於東瀛, 此以成豊, 屬邦增貢, 其是都內濟州萬戶金世勳之功也.” 世勳是慶尙津梁人, 前日漂浪於濟州, 其奇才卓越, 鳳禮以世勳爲壻. 上歎, 賜鳳禮米豆各白石, 繭, 酎等.」
―태종실록 제1권 2년 11월 8일
1400년 맹춘(孟春)
조선국 전라도 제주목.
세훈이 제주에 흘러들어 와 탐라 성주 고봉례 밑에서 일을 한 지도 어느덧 반년 가까이 흘러 새해의 정월이 되었다.
전조 고려 때에 제주가 본토에 복속되면서 기존의 지배층은 토관(土官)의 지위를 인정받아 바다 바깥에서 부임해 오는 명목상의 외관(外官)을 도와 실질상으로 제주를 지배해 왔는데 제주를 본관으로 삼고 있는 고(高)·양(梁)·부(夫) 세 성씨는 여말선초 제주 지역에서 강력한 토착 세력 집단이었다.
여기에 복성현의 향리였던 문씨(文氏)가 제주 고씨 집안의 사위로 들어온 것을 계기로 제주 지역에서 삼성(三姓) 다음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때의 고씨 가문의 당주(堂主)인 고봉례가 성주의 자리 외에도 여말에 받은 제주축마 겸 안무별감의 지위를 지니고 있었고, 문충세(文忠世)가 왕자의 자리를 지니고 있었다. 원래 양씨에게 돌아가야 할 왕자의 자리가 문씨에게 세습되고 있는 것은 이즈음 들어서 제주에서 고씨 다음으로 힘을 떨치고 있는 것이 문씨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성주와 왕자, 그리고 유명무실한 도내의 자리 아래에는 몽골 지배 이래 내려오는 도천호(都千戶), 상천호(上千戶), 부천호(副千戶)라는 직위가 있었고 그 아래에 백호(百戶)들이 있었는데, 처음 세훈이 받게 된 자리는 그런 백호의 자리 중 하나로 힘이 있거나 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저 고봉례의 뒤를 봐 주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세훈 같이 출신도 불분명한 외지인에게 그 정도 토관직만 해도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세훈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덜컥 자리를 받아 놓고 보니 일이 생각만큼 잘 돌아가지 않았다.
외관, 그러니까 제주목사가 부임해 오지 않은 지도 꽤 되어서 육지로 나가는 공물을 모두 고봉례가 전담해 왔기 때문에 말고기 따위를 올려 보낼 때 진상문을 짓거나 제주도의 읍향(邑鄕)들에서 처결을 바란다고 올라오는 일들에 대해 문서를 쓰거나 하는 일이 전부였다.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럭저럭 잘해 보이고 있는데 머릿속에 든 지식으로 뭔가 원대한 일을 추진해 보겠다는 소기의 성과는 전혀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8개의 학사와 3개의 석사 학위를 지니고 있었던 22세기의 우수 인재라고 하더라도, 산업혁명을 거치며 수세기를 거듭해 발전해 온 현대 과학의 성과를 처음부터 혼자서 일궈 나가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 공. 장사에 한 번 손대 보지 않겠나?”
계속 이러고 있어도 되나 세훈이 고민을 거듭할 즈음에 고봉례가 해 온 제안은 솔깃한 것이었다.
행정 잡무를 시켜 세훈의 됨됨이를 지켜보던 고봉례가 신뢰를 준 것이다.
실제로는 장사꾼이 아니라 우주 비행사였던 세훈이지만, 전에 고봉례에게 이력이라고 소개했던 것이 장사인지라 고봉례는 그런 줄 알고 장사를 한 번 맡겨 보려 했던 것이다.
“장사라 하옵시면?”
“이 제주 땅에서 나오는 산품에 대해 수매권(收買權)을 내가 줌세. 나를 대신해서 이 물건을 받아다가 육지에 내다 팔아 주게. 일이 좀 편하도록 내 자리도 부천호로 올려 주겠네. 마침 부씨가 도내의 자리를 청했으니 그리로 올려 주고 자네가 부천호를 맡으면 되겠지. 말총이나 귤, 해산물들이 넉넉하니 그걸 가져다가 육지에 팔고 육지 물건을 사들여 오는 일이니 어렵지 않을 것일세. 가끔 조정에 보내는 진상품을 전라도 감사에게 보내는 일도 해 주고. 육지와 거래가 드문드문해진 지 벌써 여러 해니 장사로 겨룰 사람도 없고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으이.”
고봉례가 흰 수염을 쓸며 말했다. 이제 슬슬 인생의 만년(晩年)에 접어드는 노인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세훈은 감읍하고 일을 받아들였다.
“맡겨만 주신다면 성심을 다해 일을 하겠나이다.”
“그럼 부탁함세. 장사 밑천으로 내가 쌀 백 석을 내어 줄 테이니 그것으로 먼저 물건을 구하도록 하게.”
고봉례는 다음날 쌀 백 석을 내어 주었다. 화폐가 아직 공통되지 않는 시대였다. 쌀이나 면직물은 그래서 주요한 화폐 대용이었고, 백 석이라면 쌀이 귀한 제주에서는 아주 큰돈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돈을 고봉례는 세훈에게 믿고 맡겨 준 것이다.
세훈은 우선 제주 읍내에다가 처마 올린 창고를 하나 들여놓고서 제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육지에 나가면 돈이 될 것 같은 물건들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말은 큰 재산에 국가에 헌납되는 물건이라 함부로 매매할 수는 없었지만, 말총은 육지에서 고급 갓을 짜는데 사용되기에 육지로 나가면 비싼 값에 팔리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한랭한 육지에서 나지 않는 제주의 귤과 유자, 그리고 잠녀(潛女)들이 잡아오는 해산물 또한 잘 말려서 소금 간을 한 뒤 육지에 팔았다.
부패하기 쉬워 해산물의 유통이 어렵고, 그것을 부득이 오래 저장하기 위해서는 소금을 간하는 수밖에 없는데 소금도 비싸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 육지로 나가면 그 값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야말로 세훈에게는 힘들이지 않고 그저 주워 먹는 장사나 다름없는 노릇이었다. 대보름이 지나고 바다에 배를 띄워 전라도 나주며 경상도 진주 같은 좀 큰 성읍으로 나가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여러 달에 걸쳐 서너 번을 오고 가니 백 석이 삼천 석으로 불어나 있었다.
“부천호가 장사에 참 소질이 있구만.”
삼천 석 중에 이천 석을 고봉례에게 올려 바치니 고봉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이렇게 세훈의 객주(客主) 노릇이 시작된 셈이었다.
“무얼 그리 열심히 하시나이까?”
“아, 오 서방 왔는가?”
세훈이 장사를 시작한 뒤 슬슬 돈이 쌓이자 처음 한 일은 예전 목숨을 구해 준 인연이 있는 서귀포의 양노인에게 쌀 오십 석으로 은혜를 갚고, 오상복을 불러다가 일을 돕게 한 것이다.
제주의 토호 집안 출신도 아니고 그저 외지에서 흘러들어 온 양인인 오상복은, 나이가 거의 열 살은 어린 세훈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썼다. 세훈은 그것이 내심 불편했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이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그래야 자신도 오상복도 불편하지 않을 일이었다.
“비누를 만들고 있네.”
“비누라는 것이 뭡니까?”
오상복에게는 비누라는 이름 자체가 엄청 생소한 것이었다. 세훈과 지내면서 그가 독특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산에서 잡아온 염소 가죽을 헤집어다가 지방을 꺼내 끓이고 있는 모습은 이상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비누라는 것은 몸을 단장하기 위해 씻거나 옷가지를 세탁할 때, 때를 지우는 물건이네.”
“그게 염소 지방에서 나온답니까?”
“두고 보면 알 걸세. 하하!”
제주의 물건을 받아다가 육지에 팔고, 제주에 필요한 물건을 다시 육지에 사오는 장사는 말 그대로 쉬운 장사였지만, 세훈은 그걸 반복하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올해가 1400년, 명나라 연호로 건문 2년, 곧 정종은 이방원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앉게 될 것이었다.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면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시도하게 되고, 1402년이 되면 자신이 지금 의탁하고 있는 성주 고봉례는 한성으로 올라가 그 지위를 반납하고 좌도지관(左都知官)이라는 유명무실한 관직을 받아 오고 제주목에 목사가 부임해 오면서 제주의 독립성도 차츰 사라지게 될 시기였다.
세훈은 그전에 중앙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제주에서 키워서 세력을 구축할 생각이었다. 이왕 과거로 떨어진 것 역사의 흐름 속에서 부평초처럼 떠밀려 다니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저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단순한 장사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 이 비누였다. 예전에 화학을 배울 때 간단한 알칼리성 비누를 만들던 과정을 떠올려 보니 여기서도 복잡한 설비 없이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중세에도 자연 성분으로 만든 비누를 널리 쓰고 있었다. 만들고자 한다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만드는 방법을 자네에게도 일러 주겠네. 옆에서 잘 보아 두었다가 나중에는 직접 사람을 부려서 만들어야 할 것이야.”
세훈의 말에 오상복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선 옆에 와서 들여다봤다.
먼저 수산화나트륨이나 수산화칼륨을 써서 양잿물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런 화학 결정체를 지금 대량으로 구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냥 잿물로 넉넉하게 만든 다음에, 말만큼이나 제주에 많은 염소를 잡아다가 지방을 끓여 불순물 없이 거른 다음 잿물을 천천히 붓는다. 지금 막 하려던 작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렇게만 만들어도 때를 벗겨 내는 데는 일품이지만, 이렇게 녹두 빻은 것을 같이 넣어 향을 내게 할 수도 있네.”
아침부터 열심히 빻아 둔 녹두 가루를 잿물과 함께 뿌려 지방에 흡수시켰다. 지방이 염기성이 강한 잿물과 만나면 덩어리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것을 저어 준 다음에 이레간 말리면 비누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만 해도 되지만 세훈은 그냥 비누를 아무렇게나 만들어다 팔 생각은 없었다. 이것을 위해 만들어 둔 사각으로 칸이 나뉘어진 판에다가 저어낸 지방을 넣어 말렸다.
칸마다 아래쪽에는 제주의 옛 이름인 동영(東瀛)이라는 한자 두 자가 마르면서 찍혀 나오도록 전각을 파 두었다. 처음부터 녹두를 넣어 향을 내고 상표라고 할 만한 것까지 찍어 팔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레가 지나고 비누가 마루는 것을 지켜보던 오상복이 달려와 다 말라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고하자, 세훈은 버선발로 달려 나가 비누의 상태를 보았다.
비록 22세기에는 각종 효과 좋은 화학 세제에 밀려 아무도 쓰지 않는 원시적인 비누이건만, 여기서 이것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샤워는커녕 대충 멱 감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15세기 초의 삶이 세훈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상품으로서도 상품이지만 우선 자신부터 이 비누를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세훈은 들떴다.
“오 서방, 자네 손 좀 줘 보게.”
비누를 만들기 위해 세훈을 거들어 재를 가져다가 잿물을 게속 만들던 오상복의 손은 검댕이 잔뜩 묻어 얼룩덜룩했다. 세훈은 물을 한 동이 받아 오게 한 다음 오상복에게 비누를 쥐어 주며 말했다.
“손을 물에 조금 적신 다음에 손에 쥔 비누를 힘차게 문질러 보게.”
“어, 어, 이런 거품이 납니다요.”
오상복은 정말로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생전 이런 괴상한 물건은 처음 본다는 표정이었다.
“그 거품이 나야 때가 벗겨지는 것이네. 손에 검댕이 묻은 곳마다 힘 줘서 빡빡 문지른 다음에 물로 헹궈 보게나.”
오상복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한참을 문지르더니 물에 손을 헹궈 보았다.
그랬더니 그 검댕이 물에 다 씻겨 나가면서 깨끗한 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손에는 기분 좋은 녹두향까지 나고 있었다.
“어어? 이게 다 뭐답니까, 정말 기묘합니다. 손이 이렇게 쉽게 깨끗해집니까, 어째.”
“그것 보세. 내가 쓸모 있는 물건이라 하지 않았는가. 하하! 어서 그걸 열댓 개만 추려 보도록 하게. 성주 어르신께 보여 드리고 물건을 팔 상담(商談)을 해 보야 하지 않겠나.”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하!”
오상복은 아직도 신기한지 녹두 냄새가 나는 손에 코를 가져다대고 킁킁거리며 비누를 주섬주섬 챙겨 세훈을 따라나섰다.
“성주 어르신, 세훈입니다.”
“어서 들어오게.”
세훈을 맞이하는 고봉례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세훈이 장사를 잘해 준 덕분에 고봉례의 창고에는 쌀이 계속해서 쌓여 가고 있었다.
처음에 그를 거둬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부쩍 하고 있던 차였다. 한 번 찾아올 때마다 쌀을 몇 백 석씩 가져오니 고봉례는 그저 세훈의 얼굴만 봐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보여드릴 것이 있어 찾아뵈었나이다.”
“우선 들어오게. 때마침 딸아이가 차를 달이고 있으니 함께 들도록 합세.”
세훈은 웬 딸인가 싶어 의아했지만 이내 별로 개의치 않고 사랑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고봉례에게는 맏아들인 고상온(高尙溫) 외에도 여러 자녀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딸도 둘이 있었다. 그중 열여섯 된 둘째 딸 고상희(高尙喜)가 아버지의 예쁨을 독차지하고 그 수발을 모시고 있었는데, 아마 그녀가 차를 달이고 있다는 것일 터였다.
“그래, 보여 주겠다는 것이 뭔가?”
“비누라는 것이온데, 앞으로 제주의 산품 삼아서 팔아 볼 생각이나이다.”
“비누라. 무엇하는데 쓰는 물건인고?”
세훈에게 건네받은 비누를 이모저모 살펴본 고봉례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네모나고 미끌거리는 덩어리에 동영이라는 두 자가 찍혀 있는 것 외에는 도무지 그 용도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나 옷의 때를 벗기는 물건이나이다.”
“이것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흠, 냄새는 좋구만.”
오상복이 그랬던 것처럼 냄새가 신기한지 고봉례도 비누를 코에 가져다가 킁킁거리고 있었다. 때마침 딸 고상희가 차를 달여서 들어오길 청했다.
“아버님. 손님과 함께 드실 차를 달여 왔나이다.”
“그래, 어서 들어오거라.”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온 것은 묘령의 여자였다. 고봉례의 딸인 고상희가 틀림없었다. 크고 망울진 눈과 그림같이 휘어진 눈썹을 보니 재색을 겸비했다 소문난 것이 과장이 아닌 듯싶었다.
세훈은 잠시간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열여섯이면 현대의 기준으로는 아직 미성년인 학생이지만 지금의 조선에서는 한창의 결혼 적령기였다. 그녀는 풋풋한 매력이 한창이었고, 키는 160cm가 넘어 보여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는 큰 편이었으나, 22세기의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자신의 키도 187cm에 가까운 세훈이 보기에는 전혀 크지 않은 키였다.
세훈이 멀뚱히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느끼자 고상희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새치름하게 붉히고서는 시선을 피했다. 그런 고상희의 모습을 보자 세훈은 잠시 장난기가 돌았다.
“따님이 미인이시라는 소문을 들었사온대, 그 말이 허언이 아닌가 봅니다.”
“그래, 그래. 내 딸이지만 참 참하긴 하지. 허허!”
고봉례는 딸 칭찬에 얼굴에 화색이 돌며 껄껄 웃었다.
제 자식 자랑하는데 좋아하지 않을 부모가 있으랴. 다만 고상희는 외간 남자의 미색 칭찬에 괜히 얼굴이 더 붉어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세훈은 그 모습을 보고선 속으로 웃음을 삼키고는 놀림은 그만두고 찾아온 목적을 다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따님이 오셨으니 물 한 동이 부탁드려도 되겠나이까?”
“그래. 뭐 어려울 것이 있는가. 상희야, 손님께 물 한 동이 가져다 드려라.”
“예, 알겠사옵니다.”
고상희는 이내 밖으로 나가 물을 한 접시 받아 왔다.
세훈은 그 접시를 고봉례에게 내밀어 아까 오상복에게 시켜 보았던 것처럼 한 번 사용해 보게 했다. 이내 고봉례와 고상희의 눈이 활짝 놀랐다. 특히 여자인 고상희는 그 진가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이게 정말 김 공께옵서 만드신 것입니까?”
“예, 아가씨. 그렇나이다. 앞으로 제주에서 이것을 많이 만들어 육지에다 내다 팔 생각이나이다.”
“아녀자들이 참으로 좋아할 물건 같사옵니다. 몸단장은 물론이거니와 빨래하는 데도 요긴하겠지요.”
“앞으로 필요하신 대로 보내드릴 터이니 얼마든지 부탁하십시오.”
고상희는 정말로 순순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좋아하는 그녀를 보니 왠지 모르게 세훈은 계면쩍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고봉례는 짐짓 비누 때문이 아니라 다른 것 때문에 웃고 있었다. 고상희가 물러나고 나서 고봉례는 거두절미하고 세훈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내 딸 어떤가? 색시감으로 부족하지 않은가 모르겠네.”
한마디로 혼담을 제의하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