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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연대기 1권(2화)
서장 회귀과거(回歸過去)(2)


원나라 총관부도 물러가고 전조인 고려도 문을 닫은 지 몇 년 째인 지금, 제주목에는 목사가 부임해 오지 않고 있었고 탐라의 대소사는 일단 이렇게 성주인 고봉례에게 찾아오고 있었다.
성품이 박하지 않은 고봉례는 양노인과 표류했다는 청년을 불러다가 제주에서는 구하기 힘든 쌀밥으로 저녁을 든든히 먹이고서는 따로 일러 양노인을 하루 유숙시킨 뒤 돌려보내고, 청년만 남겨 별채에 일단 머무르게 했다.

1399년 계하(季夏)
조선국(朝鮮國) 전라도 제주목(濟州牧).

세훈은 지난 3일간 겪은 일들에 도무지 당황스러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명히 토성으로 가는 탐사선이 발사되었을 때 중력 가속으로 인해 의식을 잃은 것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전설 속의 탐라국이란 말인가. 도무지 납득도 되지 않고 꿈인가 싶었다.
처음에 양씨라 불리는 노인에게 구함을 받았을 때, 그는 민속촌에서나 보던 제주의 전통가옥에 누워 있었다. 그때만 해도 뭔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어이없는 지경에 처하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22세기인 지금 정말로 사람이 살 것 같지도 않은, 말 그대로 민속촌에나 남아 있는 집에서 상투를 틀고 갈옷을 입은 노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 제주 사투리라고만 생각되는) 말로 뭔가를 물어오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는 상복이라는 사내가 들어와 뭔가 말을 통해 보겠다고 말을 시작했을 때는 더욱 질겁했다. 세상에, 중세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라니.
세훈은 순간적으로 지금 자신을 놀리나 싶어 기가 막혔지만,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리 장난이라 해도 이렇게 그럴싸하게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퍽퍽한 조밥을 먹고 갈옷을 받아 입었을 때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분명히 중국 명의 연호를 쓰고 있었고, 홍무에서 건문으로 바뀐 해라면 홍무제(洪武帝)의 주원장(朱元璋)의 손자이자 두 번째 황제인 주윤문(朱允?)이 등극한 해였다. 건문 원년으로 연호를 쓰기 시작한 1399년임이 분명했다. 원나라 탐라 총관부가 멀지 않은 이야기고 고려를 일러 전조 운운하는 것이 바로 지척인 일인 것이다.
그때까지도 사실 긴가민가한 일이었으나 세훈은 다음날 한라산을 넘어가며 이게 사실이구나 하고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우뚝 솟은 한라산은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해 주고 있으나, 그 주변 풍경은 자신이 알던 22세기의 것이 아니었다.
철근 콘크리트나 유리창은 아무리 보려 해도 보이지 않았고, 억새풀을 엮어 바람이 날리지 않게 돌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토막 같은 집들만이 돌담을 줄줄이 끼고 바다를 향해 서 있을 뿐이었다.
거기에 제주읍성에 들어서 처음으로 보는 기와집에 들어가 탐라 성주라 하는 사람을 대면했을 때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착용하던 원나라풍의 흑립(黑笠)을 입은 남자가 나왔을 때 결국 올 것이 왔구나 싶었던 것이다.
‘도대체 1399년이라니. 과학적으로 시간 여행이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 거였나. 토성으로 가려다가 7백년을 거슬러 올라오다니.’
세훈은 그저 당황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도무지 사흘이 지나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체 모를 외지인이라고 성주라는 남자가 잡아 가두지 않고 별채에 데려다 놓고 입을 만한 옷도 주고 쌀밥이라도 먹여 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이리 앉으시오.”
하루를 그렇게 쉬엄쉬엄 보내고 나서야 성주는 세훈을 불러다 앉혔다.
며칠간 이곳에서 머무르다 보니 역사학과 언어학을 전공한 이력도 있고 중세국어에 관한 짧은 논문을 쓴 적도 있는 세훈의 귀에는 이제 마치 현대어처럼 들릴 정도로 쉽게 귀에 익었다. 물론 아직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지만 대충 말이 통하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불러 계셨나이까.”
지금 세훈의 입장에서 이 탐라 성주라는 고봉례는 이 세계와 일면식 없는 자신의 목숨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자였다. 세훈은 깍듯이 몸을 낮추며 복배했다. 지금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이 남자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귀인에게는 마땅히 돌아가야 할 대접뿐이었다.
“이제 말이 많이 익으신 것 같구려.”
“원래 쓰던 말이 크게 다르지 않아 쉬이 익혔나이다.”
“손을 앉혀 놓고 인사가 늦었소이다. 나는 옛 탐라국왕의 사손(嗣孫)으로 성주라 불리는 고가의 봉례라 하오이다.”
“귀한 분께서는 말씀을 편히 하십시오. 김해 김의 세훈이라 하나이다. 경상도 진량 사람이나이다.”
세훈은 일단 원래 세계에서 알고 있던 본관 본적을 대었다. 일단 조선 사람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 앞으로 편할 노릇이었다. 고봉례는 일단 크게 의심을 하지 않는 듯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지역 간의 말이 크게 달라 그렇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표준어라는 것이 없고 미디어가 없는 지금 시대에는 말의 전범(典範)이라 불릴 만한 것이 없었고, 당연히 방언이 제각기 융성하는 때인 것이다.
“공도 품을 보아하니 공경대부(公卿大夫)의 후손이라 하여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데 어찌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외지에서 사고를 당해 온 손에게 함부로 대하겠소. 이 탐라도의 성주래야 다 옛것을 못 잊어 칠칠치 못하게 아직 달고 사는 직책이지.”
고봉례는 약간 씁쓸하다는 투로 말했다. 세훈은 뭔가 크게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어차피 과거로 떨어진 마당에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차피 돌아갈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어떻게든 몸을 비벼 살아남기로 결심했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같은 토성 탐사선에 타 있던 다른 세 명의 행방이었다. 특히 이승찬 함장이 곁에 있다면 큰 힘이 되어 주었을 거라고 세훈은 생각했다.
“혹시 저를 제외하고 바다에 떠내려 온 이를 발견하지 못하셨나이까?”
“근래에 표류한 사람은 김 공이 다이외다. 이 섬의 크고 작은 일들이 본인의 귀에 다 모이게 되는 일이오만, 아마 김 공이 쓸려 온 날 태풍이 천지를 진동하고 파도가 드셌으니, 그런 날 난파를 당했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오. 김 공이 특별히 운이 좋았었다고 생각하시오. 산 사람이라도 살아 나가는 것이 세상사는 묘리 아니겠소이까.”
세훈은 고봉례의 말에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제주도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닐까 하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무런 아는 이 없이, 더군다나 도움 될 만한 미래의 물건 하나 없이, 그저 미래에 대한 지식만 있는 좀 쓸 만한 머리랑 튼튼한 몸뚱어리밖에는 지금 세훈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에 있는 탐라 성주 고봉례의 마음에 차야 했다.
“저를 어찌 처분하실 요량이나이까.”
“뭘 처분씩이나 하겠소이까. 여름 태풍도 슬슬 지나갈 무렵이니 곧 육지로 나가는 배가 하나쯤은 뜰게요. 배 가는 길로 모실 터이니 뜻하는 곳으로 가시면 될 것이오. 배가 뜰 때까진 이곳에 머물러 계시오. 이 성주가 섭섭하지 않게 대접하리다.”
고봉례는 호의를 베푼다는 양 껄껄대며 웃었지만 세훈에게는 생각보다 좋지 않은 제안이었다. 경상도 진량 사람이라 둘러대긴 했지만, 21세기의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세훈에게 경상도로 가 보아야 아무런 비빌 연고가 없었다.
물론 그렇기는 이곳 제주도 매한가지였지만, 왕조 교체기의 권력 공백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이 외딴 섬에서라면 뭔가 제약 없이 앞으로 행동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남아야만 했다.
“염치없지만 섬에 흘러들어 온 자들은 추쇄(推刷)토록 되어 있나이까.”
“그렇지는 않소. 섬의 인구가 늘어나고는 있으나 밖에서 외지인이 흘러들어 올 정도로 가까운 섬은 아니외다.”
“그렇다면 소인이 이곳에 근거를 잡고 살아도 되겠나이까.”
“왜 돌아가시잖고.”
고봉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느긋이 세훈을 바라보았다. 뭔가 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하라는 투였다.
“본인은 원래 전조의 척신(戚臣)의 후손으로 조부가 일찍 죽어 가산이 몰락한 후에 태어났나이다. 어릴 적에는 어렵게 문리를 틔우려 공부했으나 갑작스레 나라가 바뀌어 붓을 꺾고 출사치 않기로 맹세하였나이다. 그 뒤로는 부끄럽사오나 장사를 조금 배워 경상, 전라를 오가며 미곡(米穀)을 매매하는 일을 했나이다. 이번에도 이곳 제주에 쌀을 좀 팔아 볼까 하여 가진 것을 정리하여 바다를 건너는 와중에 모든 걸 잃고 이렇게 떠내려 왔으니 돌아가 보아야 부모도 없고 가산도 없는 땅에 무슨 애착이 있겠나이까. 어차피 이리되어 목숨만 건짐 받아 홀로 여기 남게 된 것을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새롭게 이곳에서 살아보려 하나이다. 그러니 귀한 어르신께옵서는 조금 은혜를 베푸셔서 이 못난이를 헤아려 주시옵소서.”
“그러나 나도 공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집이나 땅, 장사할 밑천을 내어 줄 수는 없소이다. 공부를 하셨다니 글은 아시오?”
세훈은 한숨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제주를 다스리는 입장에 있는 성주이다 보니 섬의 대소사를 혼자 처리하기는 버거움이 있을 것이다. 밑에서 보좌를 봐 줄 머리가 하나 있으면 좀 든든하긴 할 터였다.
혹시나 그런 사람이 필요치 않을까 싶어 버텨 보았던 것인데, 역시 글을 아냐 물어보니 예상이 얼추 맞아 들은 듯싶었다.
세훈은 이때만큼은 진심으로 자신의 머리가 좋은 것에 감사했다. 한문이라면 당률(唐律)에 맞춰 한시를 척척 뽑아낼 정도는 아니라도 전적(典籍)을 읽고 사무를 보는 데는 지장 없을 정도였다.
22세기의 컴퓨터공학과 심리학 그리고 교육학의 융합 수준은 놀라워 직접 뇌에 자극을 하는 방법으로 학습 시간은 기존의 1/5가량으로 단축되어 있었다. 가장 효율적인 커리큘럼에 효과 있는 교수 방법으로도 모자라 뇌가 잘 잊지 않게 뇌파로 시청각적인 자극을 줘 가면서 공부를 시키는 것이다.
거기에 세훈처럼 머리가 좋은 이는 의지만 있다면 모든 것에 대한 배움의 길이 쉽게 열려 있는 셈이었다. 어쨌든 교양 삼아 배워 둔 한문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알았다면 좀 더 열심히 해서 두보나 이백처럼 시 좀 뽑아낼 정도로 만들었을 것이다.
“문자라면 읽고 쓰는 데는 지장 없나이다.”
“역시 김 공은 선비시구려. 이 섬에는 글을 아는 이가 많지 않아 내 밑에서 일을 돌봐 주던 늙은이도 이두문(吏讀文) 나절만 쓸 따름이었소. 이제 그 노인도 나이가 차 뒷방에 들어가 앉으니 일을 돌봐줄 사람이 없구려. 김 공이 정 이곳에 머무르고 싶으시다면 내 일을 좀 도와주시구려. 먹고 자는 것은 내 해결해 드리리다.”
섬에 인재가 부족하겠지만 이렇게 쉽게 쓰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세훈은 조금 놀랐다. 하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맡기는 것도 아니긴 했다. 현대로 치면 문서 기안을 할 줄 아는 행정 보조 정도의 의미랄까. 이두문을 쓰는 요령도 곁다리로 알고는 있었기에 크게 힘들 것 같지는 않았다.
‘정 안 되면 아직 정종 즉위년이니 내가 수십 년 앞서서 한글을 만들어다가 보급시켜 버리던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어쨌든 세훈은 우선 이 고봉례 밑에서 일을 좀 거들기로 결심했다. 우선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고, 살아남아 기반을 다지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
“그리하겠나이다. 잘 봐 주시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