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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5장 : 검은 전갈의 죽음


싸움은 격렬하고, 또 사나웠다.
어둠 속에서 불꽃과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괴물처럼 뒤엉켰다. 피비린내를 풍기는 그 거대한 괴물이 움직일 때마다 비명과 칼부림 소리가 처절하게 쏟아져 나왔다.
시작한 지 불과 십여 분.
쓰러지는 자가 늘어날수록 기세가 잦아들기는커녕 싸움의 흉험함이 도드라졌다.
듀란 형제와 지스 대 용병들의 대결.
검은 전갈단 소속의 폭력배들과 쿠도르프 시 본토박이들의 대결, 거기에 도둑 길드의 조직원들까지.
추살조가 전멸함으로써 이 가운데 상대가 없는 것은 오직 핸드와 로크 두 사람뿐이었다.
로크는 반쯤 무너진 건물의 담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누더기로 가려진 건물 안에서 누가 떨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석궁에 화살을 먹이고, 신중하게 아군과 가깝지 않은 적들을 골라 저격했다.
핸드는 본격적으로 날뛰고 있었다.
그에게는 즉각적으로 자신의 동작을 미세하게 수정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기술은 날카롭고 정교해져 가는 것이다.
검은 전갈단은 참으로 고맙게도 전갈 문양이 그려진 옷을 걸치고 있다. 구분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푸슉!
누군가와 싸우느라 정신이 팔린 녀석을 뒤에서 급습해 입을 틀어막고 목을 그어 버린다.
파악!
그것을 눈치채고 누군가 습격해 오면, 근처에서 싸우고 있는 적의 팔을 잡고 끌어당겨 방패로 삼았다.
우드득!
목을 노리고 휘둘러진 나이프를 고개 숙여 피하고, 안으로 파고들어 가 힘차게 땅을 밟고 왼손으로 찌르기!
제대로 발휘된 강격 스킬로 상대의 목에 아래서 위로 비스듬히 펀치를 꽂아 넣었다.
“커억!”
목을 붙잡고 캑캑거리는 상대.
핸드는 무너지는 상대의 무릎을 밟으며 뛰어올라 지나가면서 목을 옆에서 그어 놓았다.
경동맥이 끊어져 피가 거세게 뿜어져 나온다.
핸드는 그렇게 몇 명을 연달아 쓰러뜨리며, 로크가 저격을 하고 있는 건물에 적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빙빙 돌며 방어진을 만들었다.
강적을 쓰러뜨릴수록 핸드는 빠르고 날카로워졌다.
그는 놀라운 힘과 스피드로, 한 줄기의 바람처럼 적진을 유린했다.
노리는 곳은 모두 혈관과 힘줄.
요골동맥, 상완동맥 등을 주로 노리고, 기회가 생기면 경동맥도 끊어 놓는다.
얻은 지 얼마 안 되는 페인트 스킬이 생각 외로 도움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어지럽게 춤추는 횃불의 빛과 그림자는 그의 간파 스킬도 방해하지만, 적이 어설픈 페인트에 걸려들게 만들어 주었다.
페인트의 요령을 깨달을수록 스킬 레벨도 급격히 증가. 벌써 페인트는 견습 4레벨에 도달했다.
중급이 된 후 몇 번의 경기를 치러야 한 번 오를까 말까 한 간파도 중급 5(25)레벨이 되었을 정도다.
대난전!
핸드는 정신없이 적들을 죽이고 베었다.
싸우는 동안 500이 넘는 경험치를 추가로 받았고 투지와 시각 스테이터스까지 소폭 증가했다.
듀란 형제나 지스에 비하면 박력은 부족하지만, 붙잡는 적이 없기에 성과는 압도적으로 높았다.
“크윽……!”
무아지경에 가까운 감각.
몸 안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이 숨결이 뜨거운데, 사지는 조금씩 차가워져 간다.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를 흘렸고, 배의 상처도 터져서 복부가 붉었다.
그런데도 몸은 기계적으로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을 풀어내며 벌써 열 명이 넘는 적을 죽였다.
그때, 핸드에게 뭔가 날아들었다.
불꽃과 그림자 사이에서 튀어나온 작은 다트. 핸드는 비어 있는 왼손으로 그것을 낚아챘다.
카담과 수천 번 이상 날 선 단검을 주고받으며 익힌 감각이 진가를 발휘한 셈.
수천 번도 넘게 동작을 반복하고 수정한 결과, 한정적인 방어나 반격에 한해서는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커다란 그림자가 불꽃 사이에 서 있었다.
그림자는 아직 불이 붙지 않은 나무 수레를 양팔로 움켜잡더니 가볍게 들어 올렸다. 무게만 40kg 정도는 나갈 것 같은 수레를 들어 올린 그는 핸드와 자신의 사이에 있는 불길에 그것을 집어 던졌다.
콰직!
수레가 날아와 부서지며, 불꽃의 기세를 잠깐 죽였다. 거구의 그림자는 수레의 잔해를 밟고 불꽃을 뛰어넘어, 핸드의 수 미터 앞에 착지했다.
“……!”
짧게 깎은 탁한 금발. 관자놀이에서 볼까지 이어진 흉터가 인상적이다.
몸에는 가죽에 징이 박힌 갑옷을 둘렀고, 허벅지에는 단검과 다트가 끼워진 벨트가 보인다. 양팔에는 하박까지 올라오는 금속 장갑을 끼고 있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얼굴. 드러난 피부는 밧줄 같은 근육으로 휘감겨 꿈틀거린다.
불꽃 속에서 나왔기 때문인지 남자의 몸에서는 수증기 같은 열기가 피어올랐다.
삐죽삐죽한 스파이크가 박힌 장갑은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되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을 짓이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수리곰…… 네놈을 계속 설치게 놔둘 수는 없지.”
남자는 무겁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그의 눈은 살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녀석이지만, 핸드는 눈앞의 상대가 심상치 않은 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스의 냄새가 풀풀 나는군.’
“검은 전갈인가?”
“흥, 내 얼굴도 모르고 조직에 싸움을 건 거냐? 하룻강아지 같은 풋내기 녀석!”
검은 전갈은 코웃음을 쳤다.
두터운 졸참나무 줄기 같은 팔뚝이 움직인 순간 핸드에게 다트 두 개가 날아들었다.
거구인데다 손에 금속 장갑까지 끼고 있음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재빠름이다.
그러나 핸드는 다트의 궤적을 읽어 내 하나는 낚아채고 나머지는 천 갑옷을 믿고 몸으로 받았다. 그렇게 한 것은 필요 이상의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검은 전갈은 무서운 기세로 핸드에게 달려들었다.
공간을 압축이라도 하는 것처럼 날아드는 펀치!
단순히 덩치와 힘이 아니었다. 속도 역시 무시무시하고 동작도 절제되어 있었다.
핸드는 아슬아슬하게 위빙(복싱의 테크닉, 고개를 젖히는 회피 기술)으로 피했다.
스파이크 끝에 걸린 볼이 살짝 찢어졌다. 조금만 옆이었다면 얼굴 한쪽이 걸레처럼 찢겨져 나갔을 것이다.
훅을 피하자 두 번째 펀치가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단검으로 반격하려 했지만 정작 오른손으로 공격을 방어하며 더킹을 구사해 주저앉아야 했다. 검은 전갈이 입에 물고 있던 바늘을 뱉어서 핸드의 눈을 노렸기 때문이다.
단검에 맞은 바늘이 튕겨져 나가고, 주먹은 머리 위로 지나갔다. 그 리치에 핸드는 경악했다.
‘단검을 쥐고 있는 내 팔과 사정거리가 비슷하다고?’
검은 전갈은 엄청난 거구였다.
신장도 핸드보다 머리 반 정도는 더 컸고, 체구 역시 장난이 아니다. 완전히 곰이다.
‘추정 완력은 100 이상…… 괴물이군.’
게다가 민첩도 50 이상은 되어 보였다.
통나무 같은 무릎이 핸드의 머리를 박살 낼 기세로 뻗어 왔다. 펀치를 피하자 무릎으로 공격!
핸드는 뒤로 넘어가며 굴러서 빠져나왔다. 뒤로 재주넘기를 하려 했지만, 검은 전갈의 부츠에는 칼날이 붙어 있어 재수 없으면 당하게 생겼으므로 구른 것이다.
거구의 검은 전갈은 힘과 기술에 더하여, 온갖 무기도 자유롭게 다루는 전사였다.
바닥을 구른 핸드는 벌떡 일어나 거리를 벌렸다.
“제법이군.”
핸드가 자신의 맹공을 피하자, 검은 전갈은 솔직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상대했던 놈들은 대부분 바늘에 맞아서 빈틈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무릎에 맞아 죽었다. 좀 솜씨가 있는 자도 부츠의 칼날은 피하지 못했다.
‘집중력 스킬이 없었으면 골로 갔겠군.’
핸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싸우지 않을 수도 없다. 로크란 놈은 사냥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꼼짝없이 난적과 일대일 대결이다.
핸드는 단검을 거꾸로 쥐고, 무게 중심을 낮춘 다음 왼손으로 전방을 가리는 자세를 취했다.
“호오……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할 테냐? 용기는 가상하다만.”
순간 검은 전갈은 다트를 던졌다.
양손으로 한꺼번에 두 개씩, 네 개나 되는 다트가 날아들었다. 노리는 곳은 전부 급소!
핸드의 양팔이 맹렬한 속도로 움직였다.
채챙!
날아든 다트는 모두 방어되었다.
두 개는 튕겨졌고, 두 개는 왼손으로 잡아챈 것이다. 그런데 검은 전갈은 달려들지 않았다.
“크오오오오!”
놈은 괴성을 지르며 부서진 수레의 잔해를 발로 찼다.
콰드득!
충격음과 함께 불붙은 나무 조각들이 핸드에게 날아든다. 검은 전갈은 그와 함께 쿵쾅대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핸드는 불붙은 수레의 파편들을 피하지 않았다. 펼친 왼손으로 얼굴을 가려 눈을 보호하고, 파편 세례가 끝난 순간 검은 전갈을 노려보았다.
‘자세를 무너뜨리는 수법은 이제 안 통해!’
아래에서 위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발차기! 칼날이 붙은 부츠로 몸통을 걷어차면 무사할 리 없다.
그러나 핸드는 흘려보내듯 발차기를 피하며 놈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당연히 핸드를 노리고 펀치가 작렬했다. 그러나 이번에 핸드는 피하거나 방어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미끄러뜨리며 더욱 안으로 파고들었다.
퍼억!
펀치가 정확히 핸드의 몸에 작렬했다.
“쿨럭!”
아니, 파고들며 몸을 비틀었기에 절반의 힘은 흘려보낼 수 있었지만 숨결에 피 냄새가 섞였다.
세스투스(Cestus)를 주먹에 끼고 있기에 상대의 주먹은 말 그대로 철권이다. 스파이크가 천 갑옷에 막혀 피부를 찢지는 못했지만 단검에 찔렸던 상처가 터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우욱!”
그러나 당황한 것은 검은 전갈이었다.
핸드는 그 팔을 잡고, 검은 전갈에게 바싹 달라붙은 다음 발로 놈의 반대쪽 발을 걷어찼다. 그리고 팔의 관절을 잡은 채, 단검을 역수로 쥔 오른손을 축으로 삼아 그 엄청난 거구를 던져 버렸다.
핸드는 돈까지 지불하며 다양한 격투기 경기를 보며 다양한 기술들을 연구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쓸 수 있을 법한 기술들을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훈련하여 격투장에서 실현시켰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던지기!
핸드 그 자신의 힘만으로 해낸 것이 아니었다.
검은 전갈이 뿜어낸 파워가 강했기 때문에, 그것을 흘려보내며 어긋난 무게 중심의 축. 지지대를 붕괴시키며 내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부웅!
검은 전갈의 거구가 빙글 돌며 단숨에 나가떨어졌다. 낙법도 하지 못한 검은 전갈은 스스로의 체중이 원수가 되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커억!”
천지가 역전되고 내장이 뒤흔들리는 대충격!
검은 전갈은 세상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으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핸드는 그 틈을 노려 공격하고 싶었지만, 검은 전갈의 펀치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나름대로 방어하고 흘려보냈는데도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헉…… 헉……!”
쓰러졌던 두 사람이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으, 으윽…… 수리곰, 이 개자식!”
검은 전갈의 오른팔은 탈구되어 있었다.
핸드는 놈을 던지면서, 반대편 방향으로 비스듬히 팔을 비틀었다. 말하자면 회전력을 이용해 근육에 뒤덮인 검은 전갈의 오른팔 관절을 뽑아 버린 것이다.
“크아아아악!”
검은 전갈은 왼팔로 뽑힌 관절을 당겼다가 강하게 힘을 주어 맞추었다. 뿌드득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관절이 도로 끼워졌다.
핸드는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히죽 웃었다. 복부의 상처는 기어이 터져 바지까지 붉게 물들었지만 이젠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잘못하면 과다출혈로 뒈지겠군. 그 전에 끝내 볼까? 확실히 강한 놈이긴 하지만…….’
검은 전갈은 관절을 끼웠지만, 그런다고 오른팔이 멀쩡하게 되지는 않았다.
놈은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다트를 찾았지만, 왼쪽 허벅지에 묶어 놓은 벨트는 비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른손을 움직여 비도를 뽑아 들었다.
오른손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이 핸드에 대한 분노를 부채질하는지, 그의 표정은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핸드가 입을 열었다.
“싸운다는 건 좋은 거야.”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검은 전갈이 으르렁거렸지만 핸드의 입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연마한 육체와 기술만으로 당당하고 자유롭게 눈앞의 적과 싸운다. 규율이나 질서 같은 걸 상관하지 않고, 그저 싸운다는 거. 상황이나, 세력…… 그런 건 싸움 앞에서는 아무 상관 없지. 안 그래?”
피를 흘리면서도 핸드는 양팔을 벌리고 말했다.
그러나 검은 전갈은 차갑게 비웃었다.
“웃기지 마라. 그런 소리는 대등한 자 앞에서나 하는 말이다. 압도적인 힘과 세력 앞에서 그런 말은 아무 가치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해!”
“호오, 그런 것 치고는 제법 말을 섞어 주잖아?”
그러자 검은 전갈은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흐흐. 물론이지. 그럴 필요가 있었거든. 쳐랏!”
그때, 뒤에서 화살이 발사되었다.
본능적으로 공격을 느낀 핸드는 몸을 움직여 회피 동작을 취했다. 그런데도 화살은 옆구리에 박혔다.
“크윽……!”
처음에는 싸늘한 뭔가가 느껴졌다. 그 감각은 불로 상처를 지지는 감각으로 바뀌었다.
지나친 고통은 신호로 변화되기에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데미지를 받은 것이다.
‘제길. 배 전체에 붕대를 두껍게 감아 둬서 망정이지.’
천 갑옷과 가죽옷, 그리고 붕대를 뚫은 석궁은 복근을 관통하지 못하고 막혔다. 수준 높은 내구 스테이터스가 없었다면 이걸로 내장까지 관통됐을 것이다.
“크하하하! 당했구나. 멍청한 놈! 싸움에 수단과 방법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거다! 죽어라, 수리곰!”
웃음을 터뜨리며 검은 전갈이 달려들었다.
부웅!
주먹이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닥쳐왔다.
핸드의 머리가 박살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한 힘이 실린 훅이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
그런데도 핸드는 뒤쪽에서 자신에게 석궁을 쏜 녀석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한가롭게 보고 있었다.
시야 구석에, 건물 위에 서 있는 로크가 보였다.
그가 쏜 석궁이 핸드를 암습했던 녀석의 목을 관통하며, 화살촉이 살을 찢고 쑥 튀어나왔다.
한없이 느리게 느껴지는 감각.
핸드는 다시 고개를 젖혀, 다가온 펀치를 상대했다.
그는 끈질기게 쥐고 있던 단검을 냅다 검은 전갈의 얼굴을 향해 집어 던졌다.
스냅을 더한 단검 투척.
검은 전갈은 한 손을 들어 올려 단검을 막았다. 하지만 펀치의 기세가 약간 주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