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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4장 : 혈전


“뭐라고? 놓쳤단 말이냐? 게다가 무사히 돌아온 추살조가 절반밖에 안 된다고?!”
짧게 깎은 금발. 도드라진 흉터. 장대한 체구.
검은 전갈단의 보스, 검은 전갈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진다. 언제나 여유 있는 척 보스의 카리스마를 연출했던 그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쥐 면상의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며, 면목이 없습니다. 보스.”
“증거품 처리는?”
“그게, 경비대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몸만 빼 오는 게 한계였다고…….”
검은 전갈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런 미친놈!”
그는 들고 있던 청동 술잔을 집어 던졌다.
뻑!
술잔을 맞은 쥐 면상의 남자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버렸다.
검은 전갈은 괴력으로 유명한 보스다.
무거운 청동 술잔을 전력투구하면 사람을 죽일 정도의 위력이 나온다. 쥐 면상의 남자가 눈치 빠르게 몸을 돌리지 않았으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긴 세월 충성한 네놈의 능력을 믿고, 추살조면 놈을 잡을 수 있다고 해서 모두를 동원할 수 있도록 해 줬다. 그런데 가진 무력의 3할을 날려 버려?”
“보, 보스…… 끄억!”
콰직!
검은 전갈은 쓰러진 쥐 면상의 머리를 밟았다. 그가 지그시 힘을 주자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쥐 면상의 목이 꺾여 버렸다.
“배신자를 골라 낼 기회라 여겨 참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겠군. 전 단원을 소집해라! 이번 기회에 쿠도르프의 암흑가를 접수한다.”
검은 전갈의 눈에서 야망과 광기의 불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 * *

“헉…… 헉……!”
로크는 숨이 턱에 닿은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핸드는 이미 호흡을 정리했다. 핸드의 체력은 74나 되고 지구력도 중급이다. 일반적인 캐릭터와 비교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의 감각으로는 전력질주조차 아니었다. 가죽갑옷을 입은 로크와 발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핸드와 로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크크크큭.”
핸드는 치고 올라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로크 역시 지쳐서 땀투성이인데도 입매만은 웃음을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런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재미를 느끼다니! 정말 어처구니없군. 저 녀석 영향인가?’
가능한 신중하게 필요한 싸움만을 선택해 온 로크는 이처럼 터무니없이 불리한 상황에 몰린 적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적들에게 치명적 타격을 주고 마침내 몸까지 빼낸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재미있었다.
“휴, 정말 위험천만한 일에 뛰어들었군.”
호흡을 고른 로크가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덕분에 공은 제대로 세웠지.”
“공? 검은 전갈이 여기서 찌그러지면 그렇게 되겠지만, 놈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어서 보고를 해야겠군. 아니, 그 녀석들이 했을지도 모르지만…….”
냉정함을 되찾은 로크는 앞으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로크는 밤에 주로 영업하는 퇴폐적인 술집을 찾더니, 바텐더의 멱살을 잡고 뭐라 떠들었다.
아마 도둑 길드의 연락책인 것 같은데, 정해진 암구호 따위 쓸 시간도 아까운 모양이었다.
바텐더는 사정 설명을 듣더니 표정이 변해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도둑 길드는 단속 대상인 사업체들을 관리하므로 거미줄 같은 연락책을 정비한다. 만약 경비대나 그 외의 적이 나타났을 때 숨거나 반격하기 위해서다.
길드 전체에 소문이 퍼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추살조 전력의 반이 투사 수리곰과 도둑 길드의 스파이들의 함정에 의해 처리되었다는 것. 그리고 놈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황은 알 수 없다는 것까지.
그제야 퀘스트 창이 갱신되었다.

검은 전갈단의 반격(D급 퀘스트)
『당신은 도둑 길드의 스파이들과 손을 잡고 함정을 파서, 자신을 습격한 검은 전갈단의 추살조들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믿을 수 없는 전과는 검은 전갈단 보스를 자극했습니다.
그는 이번의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이 밤에 모든 일이 시작되고 끝나게 됩니다. 서둘러 조력자를 찾으십시오.
퀘스트 진행 경험치로 480의 경험치를 받았습니다.』
『- 스킬 보상이 있습니다.
격투기 +1, 도발 +1, 도약 +1』

“……가야겠군.”
핸드는 로크가 나오기 전에, 전력으로 차력사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도착하면 납 벨트는 풀어 놔야겠군.’
그는 지금까지 납 벨트를 풀지 않았다. 30kg을 다 두르지는 않았지만 그 절반 정도는 장비한 상태였다. 어설프지만 방어용으로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납 벨트가 없는 쪽이 편할 것이다.
전력으로 달려 차력사단에 도착했더니, 처음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전쟁터라도 다녀왔냐?”
“…….”
볼은 베어졌지, 종아리에도 상처가 났지, 옷은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 적과 자신의 피로 물들어 있으니 그런 소리를 들을 만했다.
실제로 4대 30이라는 전쟁을 하고 왔던 것이다.
핸드는 대략 사정 설명을 했다.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사정을 들어서 알고 있는 지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흠, 미안하네. 자네 신분을 놈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했어야 하는데…… 적들이 이렇게 그 정도 전력을 동원할 줄은.”
단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바로 싸움을 준비해야만 했다.
실제로 핸드가 도착한 지 몇 분 지나자 도둑 길드의 전령이 와서 차력사단의 조력을 요구했다.
전령으로 온 것은 로크!
그의 표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체력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령이 오자 핸드는 몸에 두른 납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차력사들마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걸 두르고 싸운 거야?”
“방어구도 되고, 버리고 오기 아까워서요.”
“…….”
검과 석궁, 그리고 갑옷으로 무장한 30명과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납 벨트를 풀지 않았다니!
“이젠 별로 가르칠 게 없겠는걸?”
지스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기술적인 면이나 간접 경험이라면 전수할 수 있겠지만, 이미 핸드는 싸움에 적응이 끝났다.
무장한 상대를 적으로 주먹 하나만 믿고 싸울 수 있다면, 이미 한 사람의 무도가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한참 멀었죠.”
핸드는 전술이나 꼼수를 쓰지 않아도 혼자서 저놈들을 다 때려 죽일 정도로 강해지고 싶었다.
“준비는 끝났나? 그럼 출격하지.”
지스, 그리고 쌍둥이 듀란 형제. 마지막으로 핸드.
차력사단의 전력은 이 네 명이 전부다.
뮬란 단장의 검술은 보이는 것조차 부담이 된다. 시체를 처리하더라도 혹시 슈탈바르트 검술을 목격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토룬이나 카담 등은 싸우지 못해 분한 것 같았지만, 그들이 나서면 단순한 싸움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듀란 형제만 나가도 상관없어. 저 두 사람은 엄청 세거든.”
“……그래요?”
아직도 이길 수 없는 지스 입에서 엄청 세다는 말이 나오자, 핸드는 예측하고 있던 듀란 형제의 실력을 더 상향 조정했다.
듀란 형제의 무장은 형이 채찍, 동생이 사슬낫.
둘 다 기병(奇兵)이다.
블러드 콜로세움에서 다양한 무기를 다루어 본 핸드조차 어떻게 다룰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채찍과 사슬낫 모두 써 본 적이 없는 무기였다.
채찍은 그나마 감이 잡히지만, 쌍둥이 형의 채찍은 형태부터 기묘했다.
새까만 가죽에 금속 테를 두른 철 채찍!
끝 부분은 몇 가닥으로 갈라져 있는데다 그 끝에 작은 발톱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저걸로 사람을 후려치면 피부가 찢어지겠지만, 갑옷을 입은 자에게는 큰 피해를 줄 수 없다. 그런데도 채찍을 전장에 들고 나간다면, 그만한 자신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준비를 하는 동안 핸드도 준비를 했다.
그도 이번 싸움에서는 무기를 써야 한다.
아까는 건물 내에서의 난전이었으므로 주먹이 더 유효했지만, 넓은 공간이 존재하는 때야말로 무기의 진면목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핸드는 단검과, 암살자에게서 전리품으로 얻은 펀칭 나이프를 빼서 허리에 찼다.
그 전에 전리품의 하나인 독이 든 약병을 꺼냈다.
“……내키진 않지만.”
아무리 실전적이라도 격투장의 그것은 ‘시합’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할 것은 실전이었다.
핸드는 자신이 중독되는 일이 없도록 펀칭 나이프 끝으로 약물을 찍어 단검의 날 부분에 발랐다. 그리고 단검으로 약을 찍어 펀칭 나이프에도 묻혔다.
사탕 같은 것을 썼는지, 점성이 강하고 끈적끈적해서 휘두르거나 해도 약물이 튀지 않았다.
“그거 독이냐? 어디서 난 거야?”
“절 죽이려던 암살자를 패 죽이고 빼앗았죠.”
“……너도 참 어지간하다.”
지스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가 이렇게 잡담을 할 수 있는 건 장비가 가장 간편했기 때문이다. 가죽이 아니라 질긴 천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그 위에 가죽옷을 걸치면 끝.
핸드 역시 같은 장비를 지급 받아 걸쳤다. 너덜너덜해진 옷만으로는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상태에서 카담에게 배운 파지법과 쥐는 법을 바꾸는 연습을 몇 번 해 보았다.
동작에 별 방해를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배에 난 상처인데, 이미 상태가 악화된 것이 틀림없지만 싸움만 끝나면 며칠은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갈까?”
지스는 길쭉한 봉(棒)으로 땅을 굴렀다. 봉이라 해도 끝과 중간에 금속 테가 붙어 있는 훌륭한 무기였다.
그들은 로크의 안내에 따라 전장으로 향했다.
도둑 길드와 검은 전갈단.
그들은 서로가 충돌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커다란 싸움을 거쳤기에, 서로의 전력을 알고 몸을 사리고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
검은 전갈단은 시간이 필요했고, 도둑 길드는 전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언젠가 싸울 때를 대비하여 탐색전을 계속했다. 자잘한 싸움과 다른 진짜 싸움이 어디서 벌어질지는 서로가 잘 알았다.
바로 빈민가!
곧 전장이 될 빈민가에 도착하자 도둑 길드의 전력은 모두 집결한 상태였다.
쿠도르프 시의 폭력 조직은 별 볼일 없는 수준.
이번 싸움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개중 가장 싸움에 능숙한 자들을 파견했다. 그들도 여기서 도둑 길드가 당하면 다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도둑 길드는 그들과 타 도시에서 파견 받은 전력을 합쳐서 포진을 마쳤다. 싸움이 벌어질 것을 알았는지, 빈민가의 주민들은 낡고 더러운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흉흉한 분위기가 어두운 빈민가를 점령했다.
“놈들은 거점 하나를 공격 중이라는군. 그 싸움이 끝나면 이곳으로 올 거야.”
그러나 핸드는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강렬한 원한을 불사르고 있었던 것이다.
‘제길…… 이제 그 여관에서 머무는 건 무리겠지?’
패닉 상태의 여관 주인을 을러서 숨어 있게 했지만, 냉정해지고 나면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것이다.
게다가 경비대들이 여관에 도착하면 지하실에서 나올 텐데, 여관 홀은 난장판인데다 피투성이의 시체나 무기까지 흩어져 있는 상태!
여관 주인이 혼절한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 원인 중 하나인 핸드는 사태가 잘 마무리된다 해도 거기 남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요리사 보조 자리와 안온한 숙소가 날아간 셈이다.
‘잃어버린 직장의 원한! 반드시 갚아 주마!’
핸드가 분노로 이를 가는 동안, 싸움이 시작되었다.
검은 전갈단은 마치 침략하는 군대 같았다.
횃불을 치켜든 채 미처 피하지 못한 빈민가의 주민들을 벌레처럼 밟아 뭉개며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심야이기 때문인지 함성은 지르지 않았지만 뽑아 든 무기들이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쏴라!”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 모르게 양측의 석궁이 화살을 토해 냈다. 도시 내에서 살상력이 높은 무기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죽느냐 죽이느냐의 대결!
핸드 역시 갖고 있던 석궁을 발사했다. 거리는 30미터가 넘었지만 경석궁으로도 충분히 유효한 사거리다.
시각 스테이터스를 개방했다 해도 석궁을 쏘는 훈련을 받지 못한 핸드는 먼 거리에서 정확한 사격을 가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물 반, 고기 반. 핸드의 화살은 횃불을 든 녀석의 어깨를 맞췄다.
씨잉!
핸드의 옆을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20명이 채 안 되는 추살조가 우익―핸드들이 있는 곳―을 형성한 채 덮쳐 오고 있었다.
당연히 달리면서 석궁을 장전할 재주를 가진 사람이 있을 리 없으므로 첫 발이 끝이었다. 그나마도 부정확한 공격이었지만 근처의 도둑 길드원들 중 몇 명이 팔다리나 몸통에 화살을 꽂은 채 쓰러졌다.
“썅, 또 저놈들이냐!”
로크가 욕설을 내뱉으며 뒤늦게 석궁을 발사했다.
퍽!
화살은 약간 지그재그로 움직이던 추살조의 한 명의 머리를 꿰뚫어 쓰러뜨렸다. 거리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가능한 정확성이다.
그 공격이 끝나자 로크는 석궁을 버리고, 소검을 뽑아 들었다. 근접전은 그다지 자신이 없었지만 그대로 당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차르륵.
그때, 듀란 쌍둥이의 동생이 사슬을 풀어내 무서운 속도로 끝에 달린 낫을 집어 던졌다.
시미터를 들고 있던 추살조의 우두머리는 날아드는 낫을 쳐 내려 했지만, 순간 사슬의 움직임이 뱀처럼 변했다.
팔의 미묘한 움직임!
듀란 형제의 동생이 팔을 움직이자 공중에서 사슬의 궤적이 바뀌더니, 시미터의 방어를 무시하고 정확하게 낫의 끝이 우두머리의 이마에 박혔다.
게다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듀란 동생의 팔이, 옷으로 덮였는데도 알 수 있을 만큼 부풀어 오르더니 힘차게 사슬을 당겼다.
촤악!
낫이 뽑혀서 돌아오며, 한 명의 팔을 잘라 버렸다. 사슬은 맹렬하게 요동치며 다른 한 명의 목을 둘둘 감았다. 그리고 목을 부러뜨렸다.
이것이 고작 호흡 한 번 할 시간 동안 벌어진 일!
핸드는 그 무시무시한 위용에 경악했다.
‘뭐야, 이 인간은? 사슬로 저게 가능하단 말이야?!’
그사이 다른 추살조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지스와 듀란 형제의 형이 그걸 막았다.
“와하하하하! 나를 지나갈 순 없을 걸?”
지스는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 묵직한 봉을 붕붕 휘두르며 적들을 향해 돌격했다.
당연히 소검의 무리가 그를 난도질하려 덤벼들었지만, 봉이 짧은 원을 그리자 달려들던 칼들이 모조리 튕겨져 나갔다. 아니, 단순히 튕겨진 것이 아니었다.
처음 한 자루는 박살이 났고, 다음 무기들은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주인의 손에서 벗어났다.
지스는 그 후려치기 이후 몸을 회전시키며, 더욱 가속한 채 두 번째 공격을 내질렀다.
드드드드득!
정확하게 네 명의 머리를 후려치는 봉 끝!
금속이 붙은 무거운 봉의 끝은 머리를 부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혼을 빼 놓기에는 충분했다.
지스가 봉을 폭풍처럼 휘두르며 적들의 무기를 쳐 내고 빼앗으며 날뛰는 동안, 듀란 형은 그 동생 못잖은 살벌한 위용을 뽐내기 시작했다.
“괴, 괴물 같은 놈들!”
“피, 피해랏!”
철 고리가 마디마디 붙은 채찍이 공기를 무참하게 찢어발겼다. 갑옷을 입었다고 안심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끝에 스치면 가죽 갑옷이 버터처럼 갈라졌고, 몸통에 맞으면 해머로 맞은 충격이 그들을 덮쳤다.
재수 없게 채찍에 팔이나 목이 감기면 탈구는 기본이요, 껍질이 벗겨지는 것은 옵션이다.
그야말로 피보라가 몰아친다는 말이 적절하다.
“……저 인간들 뭐야?”
로크의 경악이 핸드의 심사를 대변해 주었다.
지스가 적들이 몰리지 못하도록 틀어막으면, 듀란 형제의 채찍과 사슬낫이 톱니바퀴처럼 교차하며 적들의 살점을 뜯어냈다.
바로 그때였다.
채찍을 베어 버릴 것처럼 날카로운 빛살 몇 가닥이 듀란 형제를 덮쳤다.
한참 추살조를 죽이던 듀란 형제들은 맹공을 거두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어디 숨어 있나 했더니 이런 곳에 있었나?”
추살조 뒤쪽에서 튀어나온 3인조!
한 명은 활, 한 명은 검과 방패, 마지막 한 사람은 커다란 양손검을 쥐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비슷한 걸로 봐서 형제인 것 같았다.
“잘 만났다. 듀란 형제! 막내의 원수를 갚겠다!”
“네놈들을 추적하기 위해 시시껄렁한 폭력배와 손을 잡았지만 이제 필요 없어. 네놈들만 처리하면 이 시시한 곳과도 작별이다.”
그들은 듀란 형제에게 달려들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실력 자체는 듀란 형제에 비하면 모자란 것 같지만, 세 명의 콤비 플레이가 보통이 아니었다.
덕분에 다 죽어 가던 추살조들은 지스를 묶어 둘 수 있게 되었고, 핸드 역시 남은 추살조들과 싸워야 했다.
“칫!”
역시 공간이 충분한 상태에서 검을 든 자와 싸우는 것은 어렵다. 게다가 핸드가 든 무기는 단검!
리치가 너무 차이 난다.
스피드라면 핸드가 더 빠르지만, 상대는 핸드의 몸놀림을 알기 때문에 견제하며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핸드의 움직임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카담과의 훈련에서 배운 것을 실전에 적용하면서 빠른 속도로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전 못잖은 훈련을 거듭하고 몇 번에 걸친 실전을 겪지 못했다면 이렇게 적응할 수는 없었으리라.
푸슉!
핸드는 상대의 소검을 비껴 보내고 안으로 파고든 뒤 미끄러지듯이 단검을 놀려 요골동맥을 끊어 버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단검을 쥐는 법을 바꾼 뒤, 역수로 당기며 반대편 상완동맥까지 베어 버렸다.
고기는 푸줏간에서 질릴 만큼 잘라 보았다. 그 경험이 손에서 묻어 나오며, 숙련된 백정처럼 뼈를 피해 근육을 절개하고 혈관을 자른 것이다.
인체 파괴술!
격투장에서 깨달은 기술이 풀려 나오기 시작했다.
핸드의 민첩은 현재 65!
보통 사람 3배 이상 가는 정밀한 동작이 가능하여, 손놀림도 엄청나게 빨랐다.
반면에 추살조들은 가죽갑옷을 입었고 무기도 소검.
이미 격투전을 통해 영거리에서의 난투에 익숙해진 핸드의 감각과, 중급 간파의 장벽을 뚫을 실력자는 없었다.
핸드의 움직임은 점점 날카롭고 여유로워졌다.
로크는 핸드를 따라다니며 그가 포위당하거나 하는 것을 막거나 기습을 차단하며 제 몫을 했다.
푸슉!
핸드의 단검에 목을 베인 녀석이 무기를 놓치고 목을 부여잡은 채 쓰러졌다.
정확하게 경동맥만 끊어 놓는 공격이다.
실전을 통해 핸드의 단검 숙달은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벌써 2단계나 증가한 것이다.
스킬이 증가하면서 핸드의 손놀림은 더욱 정교해졌다.
그리고 순간, 핸드의 공격을 막아 내는 자가 나타났다.
“수리곰! 이 자식, 계속 날뛰게 놔두진 않겠다!”
“붉은 전갈…….”
핸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격투장에서 ‘전갈’의 이름을 사용하는 또 다른 투사. 철혈 리그의 붉은 전갈이었다.
가볍고 표홀한 스타일의 격투를 하고 있지만, 핸드는 그의 동작을 보고 본래 격투 기술보다 무기를 든 싸움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핸드는 조용히 단검을 쥐고 녀석을 노려보았다.
붉은 전갈 역시 핸드를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채앵!
단검이 스치며 불꽃을 튀겼다.
본래 나이프 파이팅에서 단검이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견제 혹은 방어를 할 때는 이따금 스치기도 한다. 몸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을 받아치기 위해 상대의 팔이나 급소를 역으로 찌를 때, 급히 회수하며 마주치는 일이 있었다.
맹렬하게 급소를 노리고 칼날을 뿜어내는 붉은 전갈의 공격! 핸드는 그것을 일일이 차단했다.
단검에 능숙한 자들은 서로가 어딜 노릴지, 어떤 부분이 치명적이지 않은지 잘 알고 있다.
급소가 아니면 문제없다.
가죽갑옷이 아니라 천을 겹쳐 만든 갑옷만 입어도, 단검으로 그 방어를 뚫는 것은 힘들다.
물론 펀칭 나이프로 구멍을 뚫거나, 틈새를 노려 벨 수는 있지만 죽음으로 몰고 가기는 어려워진다.
핏!
순간 붉은 전갈의 빠른 손놀림에 단검을 시야에서 잃어버렸다. 핸드는 단검으로 대응하는 대신 발차기로 붉은 전갈의 다리를 걷어차 거리를 벌렸다.
붉은 전갈은 휘청하며 물러났지만 손해를 본 것은 핸드였다. 팔이 따끔하며 피가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붉은 전갈이 한 수 앞선 것이다.
“칫! 조금만 더 들어갔어도 힘줄을 끊어 놨을 텐데.”
뇌까리는 붉은 전갈. 핸드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밤만 아니었으면……!’
사방에서 횃불이 켜지고, 어떤 건물에는 불까지 붙었다. 하지만 낮과 달리 시야에 제한이 걸리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간파 스킬에 제한이 걸린 것이다.
나이프 파이팅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핸드지만, 극한의 미세동작을 실시하는 감각으로 빠른 속도로 싸움에 적응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경험의 장벽이 있었다.
붉은 전갈은 자신이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핸드에게 달려들었다.
‘집중해라! 녀석의 속임수를 읽어야 해!’
핸드는 필사적으로 붉은 전갈의 공격을 받아치며 회피했다. 시간마저 느려진 것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면 막기 어려울 만큼 붉은 전갈의 속도가 오르고 있었다.
힘이라면 핸드가 위지만, 스피드에서 붉은 전갈이 앞서고 있었다. 차라리 맨손으로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붉은 전갈은 철혈 투사, 근거리의 전투에 대한 센스가 뛰어나다. 아무리 핸드라도 빈틈을 찌르기는 쉽지 않다.
‘아니, 읽을 수 없다면……!’
툭!
순간 발치에 돌이 걸렸다. 그의 몸이 균형을 잃고 뒤로 기울어지는 순간 붉은 전갈이 눈을 빛냈다.
“죽어라!”
붉은 전갈은 매섭게 덮치며 단검을 찔러 왔다.
그러나 핸드는 쓰러지면서 돌을 차 올려 정확하게 단검을 맞추었다.
쨍!
어지간히 강한 힘으로 맞았는지, 붉은 전갈은 손아귀를 해머로 맞은 느낌과 함께 단검을 놓치고 말았다.
“뭣!”
그의 손에서 단검이 사라진 순간, 핸드는 반쯤 기울어진 자세에서 용수철로 튕겨진 것처럼 일어나더니 팔꿈치로 붉은 전갈의 턱을 갈겨 버렸다.
콰득!
“으, 으윽!”
녀석이 비틀거린 순간 핸드는 단검을 놓고 쓰러진 붉은 전갈의 뒤로 돌아가 목을 잡았다.
우두둑!
붉은 전갈의 경추가 부러져 나가며 목이 비틀렸다.
“꾸르륵!”
목이 부러진 붉은 전갈은 혀를 빼물고 피거품을 토하며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핸드는 창백하게 질린 채 일어나며 버렸던 단검을 다시 챙겨 들었다. 승리는 얻었지만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헉…… 헉…… 위, 위험했다. 약점을 노출시키는 건 확실히 쓸 만한 수법이기는 한데 재수 없으면 죽겠군.’
그는 돌을 밟고 균형을 잃은 게 아니었다. 돌을 밟는 척하면서 차올리기 좋은 곳까지 끌어당겼을 뿐.
원래는 팔을 맞춰서 급소를 피할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감각 덕분에 단검을 튕겨 낸 것이다.
승리의 보상이 귓가를 울렸다.
경험치 160! 게다가 흉험한 대결이었기 때문인지 또 단검 숙달이 1 증가했다.

패시브 스킬 습득
『핸드가 페인트(Feint)를 깨달았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패시브 스킬 상세 설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스킬 획득 보정으로 지혜가 1 증가했습니다.』

파라미터 스킬 습득
『핸드가 집중력을 얻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파라미터 스킬 상세 설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스킬 획득 보정으로 지혜와 의지가 각각 1 증가했습니다.』

페인트 - 견습 1/10(패시브 스킬)
당신은 전투 도중 미세한 동작이나 실수를 위장함으로써 적을 함정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흉험한 전투는 도박과 다를 바 없는 것!
페인트는 약점을 드러냄으로써 목숨을 백척간두에 던지는 베팅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수준을 파악하지 못하고 페인트를 건다면 오히려 당할 수도 있습니다.
- 이 스킬은 지능이 5 이하인 대상이나 의지를 가지지 않는 존재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조건 : 허세 견습(or 간파 초급), 지혜 30 이상
상세 : 상대의 방어도(회피 보정)를 떨어뜨림. 성공 시 스킬 레벨당 치명타 확률 +1%, 실패 시(간파당했을 때)는 역으로 적용. 비 유사인종일 경우 성공률 페널티.

집중력 - 견습 1/10(파라미터 스킬)
당신은 날카롭게 연마한 정신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점에 모아진 의지는 모든 분야에서 크게 적용됩니다.
강력한 염(念)으로 식물을 말려 죽였다는 일화처럼, 한계를 넘은 집중력은 때로 한계를 초월하게 만듭니다.
조건 : 인내 스테이터스 개방, 의지 스테이터스 개방
상세 : 행동의 효율을 높여 줌. 위험 상황에서의 스킬 실행 시 실패율 감소.

『집중력 파라미터 스킬을 얻었습니다. 명상 스킬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마나를 다루기 위한 조건 하나를 만족했습니다.』

의지 스테이터스를 개방한 뒤 또 하나 마나에 대한 조건이 만족되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빈민가는 사방이 격전지.
핸드는 순식간에 싸움의 물결에 말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