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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벌 2
1화
1장 : 선전포고
VIP들을 위한 관람석.
그 자리를 독점한 인물이 있었다.
열 명이 넘는 호위들이 둘러싼 VIP석 중앙의 자리. 다리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비스듬히 걸터앉은 근육질의 남성은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둑, 우두둑!
남자는 티본 스테이크를 통째로 입안에 집어넣고 뼈까지 씹어 부쉈다.
탁한 금발을 짧게 깎은 그의 얼굴에는 관자놀이에서 볼까지 이어지는 긁힌 흉터가 도드라져 있었다.
“식사 중이신데 죄송합니다. 보스.”
그 옆에, 쥐 면상의 남자가 진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코를 감싸듯이 붕대를 감고 있는 그 남자는, 불과 하루 전에 핸드에게 맞고 나가떨어졌던 작자였다.
“수리곰이 격투장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고, 씹다 만 뼈를 뱉었다.
“퉤! 후후후. 대단한 놈이군. 나이프 좀 쓴다는 녀석들을 열 명도 넘게 보내고, 안전장치로 떨거지 수준이긴 하지만 암살자까지 고용했는데…… 손해가 막심한걸?”
“하, 하지만 격투장 근처의 골목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답니다. 수리곰도 부상을 입은 것 같습니다.”
“흐음…… 찌꺼기 같은 놈이지만 그래도 상처는 입힌 모양이군. 그나저나 수리곰 녀석, 체력이 대단한데. 독에 당하고도 경기를 할 정신이 남아 있다니.”
비웃는 것처럼 말했지만, 남자는 내심 불편함을 느꼈다. 수리곰의 존재 자체가 껄끄러운 것이다.
‘무서운 정신력이다. 입바른 소리나 지껄이는 놈이, 어떻게 그만한 정신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수리곰은 비겁한 수법 때문에 궁지에 몰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를 치르려고 한다.
이득만으로 움직이는 놈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 이미 수를 써 놨지. 다음 수리곰이 상대할 투사는 우리가 집어넣은 녀석이니까 말이야. 소문은 제대로 흘려놨나?”
“그렇습니다. 보스. 수리곰이 비겁한 수작을 부려서 승부를 조작하고 있다는 소문은 충분히 퍼졌습니다. 이번에 경기에서 지려고 할 거란 점도요. 전승(全勝)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벌써 믿는 놈도 많더군요. 흐흐흐. 이제 놈은 끝장입니다. 독에 당한데다, 상대가 그놈의 상태까지 알고 있으니 너덜너덜 당하다 지고 말 겁니다.”
그리고 패배하면, 투사 자리에서 추방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비겁한 짓을 미워하는 격투장 주인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되리라.
남자는 그 꼴이 되었을 때, 수리곰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러운 돈 놀음에는 끼지 않는다고? 흥, 밑바닥 투사 놈이 잘도 그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하지만 현실은 이거다. 네놈이 아무리 고상한 척해도, 그 더러운 돈의 힘 앞에서는 무력한 벌레에 불과하지!’
남자는 어떤 험담을 들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만큼 오랜 뒷세계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애송이인 수리곰의 말은 마치 뜨겁게 달군 인두처럼 그의 뱃속을 지졌다. 너무나 우직한 자세 때문일까? 잘못한 일을 들킨 것 같은 뜨끔함을 느낀 것이다.
그 느낌을 지우기 위해, 남자는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오늘의 경기는∼ 방어자에 황동 리그에 올라와서도 승승장구 하고 있는 투사, 수리곰! 그리고 도전자에 베테랑인 푸른 전갈입니다!」
수리곰은 황동 리그에 올라와서는 계속 방어 경기였다. 청동 리그일 때는 경기를 계속 신청하는 도전자 역할을 했지만, 그 기세의 예봉을 꺾기 위해 기존의 파이터들이 나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리곰은 아직 전적에 패배를 기록하지 않은 상태! 그러나 도전자 푸른 전갈은 무서운 투지를 자랑하는 투사입니다. 자기보다 높은 평가를 받던 투사를 쓰러뜨린 전적도 있는 실력파 중의 실력파……! 흥미진진한 경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푸른 전갈이 무적의 실력을 선보인 수리곰에게 첫 패배를 기록하게 할 수 있을지?」
그그그그긍.
철창이 올라가며 방어자인 수리곰이 걸어 나왔다.
「수리곰, 오늘은 몹시 조용합니다. 방어자일 때도 훌륭한 쇼맨십과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던 수리곰…… 피 묻은 붕대까지 두르고 있습니다. 부상 중인 걸까요?」
검붉은 피가 배어 나온 붕대를 두른 핸드를 확인하자, 웅성거림이 커졌다.
“뭐냐, 수리곰∼! 자신 없는 거냐!”
“패배의 변명을 하려고 붕대를 감은 거다!”
몇몇 사람들이 야유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핸드는 묵묵하게 걸어서 원 앞에 섰다.
팔짱을 끼거나,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는다. 불꽃을 품은 눈으로 도전자 측을 노려보고 있을 뿐!
도전자 측의 철창이 올라갔다.
투사 푸른 전갈은 이름 그대로의 인물이었다.
어깨에 푸른 전갈의 문신이 새겨져 있고, 보통 사람보다 길쭉한 팔과 다리를 가졌다. 어쩐지 독기를 품은 것 같은 날카로운 인상까지.
푸른 전갈은 원 반대편에 선 뒤,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낮은 소리로 웃었다.
“흐흐흐. 무적의 수리곰? 아직 상대를 못 만난 거지. 네 전적에 확실히 패배를 새겨 주마.”
“…….”
핸드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대꾸가 아니라 약간의 반응조차 없었다.
‘흥! 완전히 맛이 갔군. 제법 주먹을 쓰는 놈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상처를 노릴 필요도 없겠어. 어쨌든 이걸로 시원스럽게 이겨서 한 탕 해야겠지?’
푸른 전갈은 자세를 취했다.
그는 경기 시작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날카로운 상단 차기를 먹여 수리곰을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크크크. 금방 끝나겠군.”
“아아…….”
「어떤 말을 하는지는 들을 수 없지만 두 사람의 신경전이 치열하군요! 자, 그러면 경기를 준비하겠습니다. 양자는 경기장 중앙으로…….」
사회자가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 시작해서, 푸른 전갈은 핸드가 뭔가 중얼거렸다는 사실밖에 알 수 없었다.
“금방 끝내 주지.”
「경기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모래가 솟아올랐다.
파앗!
치고 들어가며 번개같이 뿜어낸 상단 차기. 길쭉한 다리가 그림 같은 자세로 뻗어 나간다.
푸른 전갈이 최대 장기로 삼는 발차기 기술!
그의 팔다리는 보통 사람보다 길고, 누구보다 날렵했다. 그래서 근육의 양을 키우기보다, 하드트레이닝으로 근육을 압축시켜 몸을 날쌔게 만들었다.
쉬익!
발차기는 핸드가 절묘한 타이밍으로 몸을 숙였기 때문에 떠오른 머리카락을 스쳤을 뿐이었다.
‘역시 동작이 느리군!’
아슬아슬한 회피.
평소보다 컨디션이 저조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푸른 전갈은 발차기가 끝나자마자, 물이 흐르듯이 중단 차기를 이어서 날렸다.
순간 엄청난 격통이 푸른 전갈을 덮쳤다.
“커억!”
뿌드드득.
중단 차기는 완벽하게 잡혀 있었다.
놀랍게도 핸드는 팔꿈치와 무릎으로 끼워서 발차기를 막아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의 발은 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힘으로 짓눌리고 있었다.
「수리곰―!! 날카로운 발차기를 막아 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방어술입니다!」
‘그래. 평소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 평소였다면 이걸로 부러뜨려서 끝냈을 테니까.’
핸드는 더욱 힘을 주며, 공격에 대비했다.
“이, 이 자식!”
푸른 전갈은 다리를 놓아두고 긴 팔로 핸드를 후려갈겼다. 목을 노린 공격이었다.
그러나 핸드는 짓눌러 막았던 다리를 풀어 주고 푸른 전갈에게 바짝 붙었다.
디딤이 불안한 상태에서 날린 데다, 가뜩이나 가까워져서 타점이 어긋난 공격은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
“헉!”
핸드는 주먹으로 정확히 푸른 전갈의 안면 중앙을 노려 왔다. 그것도 단순한 펀치가 아니라, 손가락 중간 관절을 세워 인중을 찌르는 타격이었다.
푸른 전갈이 일부러 쓰러진 다음 몸을 굴려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파악!
모래가 거세게 튀었다.
푸른 전갈은 욕설을 내뱉기 위해 입을 벌렸다가 도로 다물며 뒤로 물러났다. 핸드가 구르는 푸른 전갈을 놓치지 않고 발길질을 가했던 것이다.
그것도 발꿈치로 찍는 기술!
이 역시 평소에는 그다지 쓰지 않는 기술이었다.
핸드는 어지간히 불리하지 않는 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기술은 쓰지 않았다.
핸드는 적의 공격을 간파한 뒤 빈틈을 노려 강력한 타격을 꽂아 넣는, 이른바 볼거리를 제공하는 스타일이었다. 짧은 기간 안에 인기를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기술은 평소보다 날카로웠다.
“……크으!”
한 번 밀리자 승기를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푸른 전갈은 힘과 속도, 리치에서 이기고 있는데도 자신이 밀리자 분노를 토해 냈다. 그는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서라도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쩌억!
날카로운 푸른 전갈의 발차기를 한쪽 팔로 받아 낸 핸드는 일부러 걸음을 미끄러뜨렸다.
충격 때문에 상처가 욱신욱신 아파 왔다.
「어…….」
사회자가 놀라 입을 벌렸다. 야유를 날리던 관중석의 몇몇도 조용해졌다.
배에 감아 놓은 붕대가 더욱 붉게 물들며, 피가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커억!”
푸른 전갈은 토사물을 뿌리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핸드는 공격을 받아 내면서 파고 들어가, 주먹을 아래서 위로 올려쳐 그의 위(胃)에 강한 타격을 주었다. 평소에 이런 식으로 타격을 가했다면, 철권 스킬 때문에 내장 손상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독에 당해서 힘이 약해졌으므로 바닥을 구르는 정도로 끝난 것이다.
퍼억!
푸른 전갈은 토사물을 뿌리면서도, 핸드가 날린 발차기를 방어하며 정신없이 물러났다.
「다릅니다! 뭔가가 다릅니다. 수리곰은 쓰러진 상대에게 공격을 가한 예가 없습니다! 오늘의 그에게서는 살기마저 느껴지는군요!」
사회자가 흥분해서 떠들어 대건 말건, 핸드는 착실하게 푸른 전갈을 박살 내고 있었다.
푸른 전갈은 충격을 해소하고 일어났다.
그는 상당히 전의를 잃었지만, 자신이 왜 밀리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만큼 혼란에 빠진 상태. 그저 감정대로 싸우고 부딪칠 뿐이었다.
“크앗!”
이번엔 단순한 발차기가 아니었다.
핸드가 공격을 가한 순간을 이용하여, 측면으로 돌아가 낮은 자세로 찔러 넣은 차기!
당연히 핸드는 가볍게 물러나 그 공격을 피했지만, 그것이 속임수였는지 푸른 전갈은 스프링처럼 몸을 일으키며 복부의 상처를 노리고 차기를 날렸다.
‘시시한 놈…….’
핸드는 중지 관절을 약간 접어 돌출시킨, 흔히 말하는 용두권으로 종아리의 한 곳을 가격했다.
퍽!
방어가 아닌 반격이었기에 타격은 확실히 당했다. 배의 상처가 아니라 다른 곳에 맞았을 뿐이다. 찔린 상처는 더욱 벌어져 흘러내린 피가 모래와 엉겨 붙었다.
그러나 푸른 전갈의 타격은 더욱 심각했다.
그는 이미 소리조차 되지 못하는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끌어안고 나뒹굴고 있었다.
용두권으로 정확히 신경의 결절(結節)을 관통시켜 버렸으니, 종아리 전체의 통각 신경에 전극을 꽂아 넣은 것 같은 아픔을 느꼈으리라.
룽 노사에게 받은 수련 중, 마지막 한 달째에는 양팔의 신경 손상이 더욱 악화되지 않도록 결절을 자극하는 비법을 배웠다.
완전히 죽지 않은 신경 일부를 다시 깨어나게 만들었기에, 명일은 전보다 나은 상태가 된 것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며칠에 한 번은 그 고통을 수십 분이나 받아야 한다. 그것도 스스로!
그 통한을 담아 만들어진 기술이 바로 이 신경 결절을 타격하는 방법이었다.
1화
1장 : 선전포고
VIP들을 위한 관람석.
그 자리를 독점한 인물이 있었다.
열 명이 넘는 호위들이 둘러싼 VIP석 중앙의 자리. 다리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비스듬히 걸터앉은 근육질의 남성은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둑, 우두둑!
남자는 티본 스테이크를 통째로 입안에 집어넣고 뼈까지 씹어 부쉈다.
탁한 금발을 짧게 깎은 그의 얼굴에는 관자놀이에서 볼까지 이어지는 긁힌 흉터가 도드라져 있었다.
“식사 중이신데 죄송합니다. 보스.”
그 옆에, 쥐 면상의 남자가 진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코를 감싸듯이 붕대를 감고 있는 그 남자는, 불과 하루 전에 핸드에게 맞고 나가떨어졌던 작자였다.
“수리곰이 격투장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고, 씹다 만 뼈를 뱉었다.
“퉤! 후후후. 대단한 놈이군. 나이프 좀 쓴다는 녀석들을 열 명도 넘게 보내고, 안전장치로 떨거지 수준이긴 하지만 암살자까지 고용했는데…… 손해가 막심한걸?”
“하, 하지만 격투장 근처의 골목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답니다. 수리곰도 부상을 입은 것 같습니다.”
“흐음…… 찌꺼기 같은 놈이지만 그래도 상처는 입힌 모양이군. 그나저나 수리곰 녀석, 체력이 대단한데. 독에 당하고도 경기를 할 정신이 남아 있다니.”
비웃는 것처럼 말했지만, 남자는 내심 불편함을 느꼈다. 수리곰의 존재 자체가 껄끄러운 것이다.
‘무서운 정신력이다. 입바른 소리나 지껄이는 놈이, 어떻게 그만한 정신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수리곰은 비겁한 수법 때문에 궁지에 몰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를 치르려고 한다.
이득만으로 움직이는 놈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 이미 수를 써 놨지. 다음 수리곰이 상대할 투사는 우리가 집어넣은 녀석이니까 말이야. 소문은 제대로 흘려놨나?”
“그렇습니다. 보스. 수리곰이 비겁한 수작을 부려서 승부를 조작하고 있다는 소문은 충분히 퍼졌습니다. 이번에 경기에서 지려고 할 거란 점도요. 전승(全勝)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벌써 믿는 놈도 많더군요. 흐흐흐. 이제 놈은 끝장입니다. 독에 당한데다, 상대가 그놈의 상태까지 알고 있으니 너덜너덜 당하다 지고 말 겁니다.”
그리고 패배하면, 투사 자리에서 추방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비겁한 짓을 미워하는 격투장 주인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되리라.
남자는 그 꼴이 되었을 때, 수리곰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러운 돈 놀음에는 끼지 않는다고? 흥, 밑바닥 투사 놈이 잘도 그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하지만 현실은 이거다. 네놈이 아무리 고상한 척해도, 그 더러운 돈의 힘 앞에서는 무력한 벌레에 불과하지!’
남자는 어떤 험담을 들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만큼 오랜 뒷세계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애송이인 수리곰의 말은 마치 뜨겁게 달군 인두처럼 그의 뱃속을 지졌다. 너무나 우직한 자세 때문일까? 잘못한 일을 들킨 것 같은 뜨끔함을 느낀 것이다.
그 느낌을 지우기 위해, 남자는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오늘의 경기는∼ 방어자에 황동 리그에 올라와서도 승승장구 하고 있는 투사, 수리곰! 그리고 도전자에 베테랑인 푸른 전갈입니다!」
수리곰은 황동 리그에 올라와서는 계속 방어 경기였다. 청동 리그일 때는 경기를 계속 신청하는 도전자 역할을 했지만, 그 기세의 예봉을 꺾기 위해 기존의 파이터들이 나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리곰은 아직 전적에 패배를 기록하지 않은 상태! 그러나 도전자 푸른 전갈은 무서운 투지를 자랑하는 투사입니다. 자기보다 높은 평가를 받던 투사를 쓰러뜨린 전적도 있는 실력파 중의 실력파……! 흥미진진한 경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푸른 전갈이 무적의 실력을 선보인 수리곰에게 첫 패배를 기록하게 할 수 있을지?」
그그그그긍.
철창이 올라가며 방어자인 수리곰이 걸어 나왔다.
「수리곰, 오늘은 몹시 조용합니다. 방어자일 때도 훌륭한 쇼맨십과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던 수리곰…… 피 묻은 붕대까지 두르고 있습니다. 부상 중인 걸까요?」
검붉은 피가 배어 나온 붕대를 두른 핸드를 확인하자, 웅성거림이 커졌다.
“뭐냐, 수리곰∼! 자신 없는 거냐!”
“패배의 변명을 하려고 붕대를 감은 거다!”
몇몇 사람들이 야유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핸드는 묵묵하게 걸어서 원 앞에 섰다.
팔짱을 끼거나,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는다. 불꽃을 품은 눈으로 도전자 측을 노려보고 있을 뿐!
도전자 측의 철창이 올라갔다.
투사 푸른 전갈은 이름 그대로의 인물이었다.
어깨에 푸른 전갈의 문신이 새겨져 있고, 보통 사람보다 길쭉한 팔과 다리를 가졌다. 어쩐지 독기를 품은 것 같은 날카로운 인상까지.
푸른 전갈은 원 반대편에 선 뒤,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낮은 소리로 웃었다.
“흐흐흐. 무적의 수리곰? 아직 상대를 못 만난 거지. 네 전적에 확실히 패배를 새겨 주마.”
“…….”
핸드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대꾸가 아니라 약간의 반응조차 없었다.
‘흥! 완전히 맛이 갔군. 제법 주먹을 쓰는 놈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상처를 노릴 필요도 없겠어. 어쨌든 이걸로 시원스럽게 이겨서 한 탕 해야겠지?’
푸른 전갈은 자세를 취했다.
그는 경기 시작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날카로운 상단 차기를 먹여 수리곰을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크크크. 금방 끝나겠군.”
“아아…….”
「어떤 말을 하는지는 들을 수 없지만 두 사람의 신경전이 치열하군요! 자, 그러면 경기를 준비하겠습니다. 양자는 경기장 중앙으로…….」
사회자가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 시작해서, 푸른 전갈은 핸드가 뭔가 중얼거렸다는 사실밖에 알 수 없었다.
“금방 끝내 주지.”
「경기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모래가 솟아올랐다.
파앗!
치고 들어가며 번개같이 뿜어낸 상단 차기. 길쭉한 다리가 그림 같은 자세로 뻗어 나간다.
푸른 전갈이 최대 장기로 삼는 발차기 기술!
그의 팔다리는 보통 사람보다 길고, 누구보다 날렵했다. 그래서 근육의 양을 키우기보다, 하드트레이닝으로 근육을 압축시켜 몸을 날쌔게 만들었다.
쉬익!
발차기는 핸드가 절묘한 타이밍으로 몸을 숙였기 때문에 떠오른 머리카락을 스쳤을 뿐이었다.
‘역시 동작이 느리군!’
아슬아슬한 회피.
평소보다 컨디션이 저조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푸른 전갈은 발차기가 끝나자마자, 물이 흐르듯이 중단 차기를 이어서 날렸다.
순간 엄청난 격통이 푸른 전갈을 덮쳤다.
“커억!”
뿌드드득.
중단 차기는 완벽하게 잡혀 있었다.
놀랍게도 핸드는 팔꿈치와 무릎으로 끼워서 발차기를 막아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의 발은 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힘으로 짓눌리고 있었다.
「수리곰―!! 날카로운 발차기를 막아 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방어술입니다!」
‘그래. 평소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 평소였다면 이걸로 부러뜨려서 끝냈을 테니까.’
핸드는 더욱 힘을 주며, 공격에 대비했다.
“이, 이 자식!”
푸른 전갈은 다리를 놓아두고 긴 팔로 핸드를 후려갈겼다. 목을 노린 공격이었다.
그러나 핸드는 짓눌러 막았던 다리를 풀어 주고 푸른 전갈에게 바짝 붙었다.
디딤이 불안한 상태에서 날린 데다, 가뜩이나 가까워져서 타점이 어긋난 공격은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
“헉!”
핸드는 주먹으로 정확히 푸른 전갈의 안면 중앙을 노려 왔다. 그것도 단순한 펀치가 아니라, 손가락 중간 관절을 세워 인중을 찌르는 타격이었다.
푸른 전갈이 일부러 쓰러진 다음 몸을 굴려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파악!
모래가 거세게 튀었다.
푸른 전갈은 욕설을 내뱉기 위해 입을 벌렸다가 도로 다물며 뒤로 물러났다. 핸드가 구르는 푸른 전갈을 놓치지 않고 발길질을 가했던 것이다.
그것도 발꿈치로 찍는 기술!
이 역시 평소에는 그다지 쓰지 않는 기술이었다.
핸드는 어지간히 불리하지 않는 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기술은 쓰지 않았다.
핸드는 적의 공격을 간파한 뒤 빈틈을 노려 강력한 타격을 꽂아 넣는, 이른바 볼거리를 제공하는 스타일이었다. 짧은 기간 안에 인기를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기술은 평소보다 날카로웠다.
“……크으!”
한 번 밀리자 승기를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푸른 전갈은 힘과 속도, 리치에서 이기고 있는데도 자신이 밀리자 분노를 토해 냈다. 그는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서라도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쩌억!
날카로운 푸른 전갈의 발차기를 한쪽 팔로 받아 낸 핸드는 일부러 걸음을 미끄러뜨렸다.
충격 때문에 상처가 욱신욱신 아파 왔다.
「어…….」
사회자가 놀라 입을 벌렸다. 야유를 날리던 관중석의 몇몇도 조용해졌다.
배에 감아 놓은 붕대가 더욱 붉게 물들며, 피가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커억!”
푸른 전갈은 토사물을 뿌리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핸드는 공격을 받아 내면서 파고 들어가, 주먹을 아래서 위로 올려쳐 그의 위(胃)에 강한 타격을 주었다. 평소에 이런 식으로 타격을 가했다면, 철권 스킬 때문에 내장 손상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독에 당해서 힘이 약해졌으므로 바닥을 구르는 정도로 끝난 것이다.
퍼억!
푸른 전갈은 토사물을 뿌리면서도, 핸드가 날린 발차기를 방어하며 정신없이 물러났다.
「다릅니다! 뭔가가 다릅니다. 수리곰은 쓰러진 상대에게 공격을 가한 예가 없습니다! 오늘의 그에게서는 살기마저 느껴지는군요!」
사회자가 흥분해서 떠들어 대건 말건, 핸드는 착실하게 푸른 전갈을 박살 내고 있었다.
푸른 전갈은 충격을 해소하고 일어났다.
그는 상당히 전의를 잃었지만, 자신이 왜 밀리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만큼 혼란에 빠진 상태. 그저 감정대로 싸우고 부딪칠 뿐이었다.
“크앗!”
이번엔 단순한 발차기가 아니었다.
핸드가 공격을 가한 순간을 이용하여, 측면으로 돌아가 낮은 자세로 찔러 넣은 차기!
당연히 핸드는 가볍게 물러나 그 공격을 피했지만, 그것이 속임수였는지 푸른 전갈은 스프링처럼 몸을 일으키며 복부의 상처를 노리고 차기를 날렸다.
‘시시한 놈…….’
핸드는 중지 관절을 약간 접어 돌출시킨, 흔히 말하는 용두권으로 종아리의 한 곳을 가격했다.
퍽!
방어가 아닌 반격이었기에 타격은 확실히 당했다. 배의 상처가 아니라 다른 곳에 맞았을 뿐이다. 찔린 상처는 더욱 벌어져 흘러내린 피가 모래와 엉겨 붙었다.
그러나 푸른 전갈의 타격은 더욱 심각했다.
그는 이미 소리조차 되지 못하는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끌어안고 나뒹굴고 있었다.
용두권으로 정확히 신경의 결절(結節)을 관통시켜 버렸으니, 종아리 전체의 통각 신경에 전극을 꽂아 넣은 것 같은 아픔을 느꼈으리라.
룽 노사에게 받은 수련 중, 마지막 한 달째에는 양팔의 신경 손상이 더욱 악화되지 않도록 결절을 자극하는 비법을 배웠다.
완전히 죽지 않은 신경 일부를 다시 깨어나게 만들었기에, 명일은 전보다 나은 상태가 된 것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며칠에 한 번은 그 고통을 수십 분이나 받아야 한다. 그것도 스스로!
그 통한을 담아 만들어진 기술이 바로 이 신경 결절을 타격하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