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6화

11장 : 충돌


아직 청동 투사인데도 핸드의 경기는 매번 보러 오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번 경기는 황동 투사를 상대로, 아직 무패인 투사 수리곰이 도전하는 경기이므로 더욱 흥행이다.
수리곰은 등장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거의 데미지를 받지 않고, 9연승을 해치웠다.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
하지만 이번에 핸드가 상대할 황동 투사, 백상어도 만만치 않은 존재였다.
전적 18승 6패!
게다가 스타일도 잘 갖추어진 파이터로, 전적이 더 쌓이면 충분히 철혈 투사를 넘볼 만한 실력자다.
스트레칭을 한 뒤,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지 않고 핸드는 수리곰 가면을 덮어썼다.
‘전체 능력치 확인.’

기본 능력치
완력 : 66 민첩 : 59 체력 : 69 지능 : 35
지혜 : 50 매력 : 29 행운 : 27
확장 능력치
내구 : 35 인내 : 40 의지 : 11 시각 : 15
후각 : 5 미각 : 5

최근에야 알게 된 것인데, 이 게임은 스테이터스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원하면 경험치 바만 본다거나 하는 것도 가능했다.
어차피 이 게임은 스테이터스 확인을 그리 자주 하지 않아도 별문제가 없었다.
핸드는 능력을 보며 흐뭇함을 느꼈다.
게임 시간으로 5개월 동안 수련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해설자가 떠들어 대고 있지만 신경도 안 쓰였다. 진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그그그긍.
철창이 열리자, 핸드는 완전한 수리곰이 되었다.
이미 익숙해진 격투장.
백상어와 핸드는 중앙의 원 끝에 나누어 섰다.
핸드는 상대의 근육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백상어는 약간 마른 느낌이 들지만, 지금까지 상대해 온 청동 투사들과는 근육의 형태가 질적으로 달랐다.
‘상반신을 위주로 단련됐어. 하반신은 날렵한 근육. 스텝을 잘 밟을 것 같군. 이 스타일은…….’
「경기 시작!」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백상어는 무서운 풋워크로 파고들며 번개처럼 주먹을 뻗어 내었다.
붕대가 감긴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볼을 스쳤다.
스쳤을 뿐인데도 피부가 아려 왔다.
천연소금으로 단련하지 않았다면 찢어졌을 것이다.
‘역시, 복싱(Boxing)!’
최초로 만나는 복서였다.
그러나 당황하거나 놀라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레프트 펀치가 실패하자마자 낮게 치고 올라오는 어퍼컷! 팔로 막아 냈지만 짜릿하게 아팠다.
‘패링을!’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스트레이트! 팔로 그걸 쳐 냈지만, 놀라운 반사 동작으로 약간 타이밍을 늦추더니 방어를 뚫고 멋지게 핸드의 얼굴을 때렸다.
‘……!’
펀치를 날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어서, 데미지의 상당 부분을 흘려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피부가 찢어져서, 볼을 타고 입술까지 스며들었다.
“……대단한 놈! 정신없이 몰린 상황에서 피하다니. 게다가 반격까지 시도할 줄이야.”
백상어는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면서 물러났다.
자기도 모르게 발차기를 날려서 견제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한 방 먹고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그건 백상어도 마찬가지. 너무 파고들면 다리나 복부에 발차기를 먹을 것이다.
‘위험하다. 스피드도 위력도 아주 균형이 좋아.’
지금까지 만난 상대들은 균형이 너무 나쁘거나, 밸런스는 있어도 실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백상어는 균형도 실력도 뛰어났다.
핸드는 입술에 흘러든 피를 빨며, 비린 맛이 퍼지자 자기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한 번 당하면 좌절하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며 일어난다. 핸드의 기질이 발동되었다.
9연승을 하면서 그는 차츰 격투장의 분위기에 빠져 들어갔고 승리에 열광했다.
중독!
싸운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적과 가까이 붙어서 호흡까지 낱낱이 읽으면서, 마음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한 채 싸운다.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최후에는 쓰러뜨린다.
핸드는 양팔을 끌어당겨 가드(Guard)를 하고, 무게 중심을 낮춘 채 빠른 풋워크가 가능한 자세를 잡았다.
「수리곰이…… 백상어의 자세를 흉내 내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게 무슨 도발입니까! 한 번 궁지에 몰렸으면서도 상대와 같은 방식의 싸움을 하겠다는, 그런 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발 스킬이 1 올랐다. 하지만 핸드는 단순히 도발을 할 생각으로 이 자세를 취한 것이 아니었다.
백상어는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이 새끼…… 무슨 생각이냐?”
핸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쥐었던 주먹을 들어 손가락을 까닥였다.
“죽고 싶나? 신참 주제에 기고만장해 가지고는!”
제대로 흥분한 백상어는 전과 같이 빠른 풋워크로 파고들며, 좌측에서 핸드에게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핸드는 고개를 젖혔지만, 이번에는 펀치를 흘려보내지 못하고 제대로 맞아 버렸다.
“으윽……!”
그리고 치고 올라오는 어퍼컷을 가드로 방어!
위력 때문에 몸이 젖혀졌지만, 가드만은 지켰다.
‘아직 아니야. 아직……! 이놈의 펀치는 위력은 있지만, 그렇게까지 무겁지는 않아! 모든 기술을 봐야 한다.’
핸드는 일방적으로 맞으면서도 최대의 타격을 피했다.
스트레이트는 위력과 스피드 모두 우수하지만, 직선적이고 도착지가 정해져 있다.
잽은 아주 빠르지만 내구 스테이터스가 높은데다 차력 스킬도 초급인 핸드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진 못했다.
턱만 피하면 잽은 무섭지 않다.
어퍼컷과 훅. 두 종류는 스피드에서 우수한 백상어도 상당한 위력을 자랑한다. 맞으면 핸드도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가장 읽기가 쉬웠다.
핸드는 날아든 펀치를 피했다.
훅처럼 느린 펀치를 피한 게 아니다. 턱을 노린 잽을 고개 젖히기로 흘린 것이다.

『상대의 모든 공격 패턴을 간파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간파 스킬과 격투기 레벨이 1 오릅니다.』
『민첩과 시각 스테이터스가 1 올랐습니다.』

변화를 눈치챈 백상어는 갑자기 멈춰 섰다.
“이, 이 자식…… 설마! 믿을 수 없다!”
백상어는 기세를 올려 소나기처럼 펀치를 퍼부었다.
몇 발은 맞기도 했지만, 차츰 공격 패턴이 읽히면서 패링이나 비껴 맞기로 공격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몇몇 공격은 완전 회피!
“큭큭큭…… 하하하하하!”
핸드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유쾌했다.
그는 가볍게 공격을 피해 낸 다음, 발로 가볍게 차기를 날려 백상어의 배에 적중시켰다.
이미 회피 패턴조차도 읽어 낸 상태다.
밀려났던 백상어는 이를 갈아 대기 시작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는 것이 보였다.
“이이……! 이 개자식이!”
이성을 잃어버리면 더욱 상대하기 쉽다. 핸드는 다음 공격을 완전히 예지했다.
‘맞아 주고……!’
비스듬히 내리꽂히는 것 같은 펀치.
핸드는 자세를 낮추었다. 펀치가 작렬하면서 눈앞에 별이 번쩍했지만, 몸을 낮추었기에 타점이 분산됐다. 그것을 신호로 강하게 땅을 박차면서 몸을 일으켰다.
뻐억!
도약 스킬을 이용하여 전신의 힘을 뛰어오르는 데 사용했다. 모래가 튀어 오르며 몸이 솟구친다.
정확히 핸드의 머리 위에는 백상어의 턱이 있었다.
“커억……!”
약한 뇌진탕을 일으키고도, 간신히 쓰러지지 않은 채 휘청거리며 필사적으로 물러나는 백상어.
“슬슬…… 끝내 볼까?”
당연히 최후의 공격은 결정되어 있다.
핸드는 강하게 땅을 박찼다.
퍼억!
핸드는 쓰러지기 전의 백상어에게 강격을 꽂아 넣어, 단숨에 몇 미터나 날려 보냈다.
털썩, 하고 백상어가 쓰러져 의식을 잃자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의 함성이 울러 퍼졌다.
「대단합니다―! 대단합니다. 투사 수리곰! 10연승! 경이적인 10연승입니다! 단 한 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고, 최단기간에 황동 투사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닉네임 백상어를 물리침으로써, 경험치 120을 받았습니다. 격투장의 대전이므로 온전한 경험치를 받게 됩니다.』
『당신은 자신보다 높은 등급의 투사를 압도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투사 간의 대결이므로 상대의 명성 1할인 60을 빼앗았습니다.』

‘좋았어!’
무려 경험치가 흉랑의 2배. 명성치도 2배나 된다.
핸드도 데미지가 없지는 않았지만, 중대한 타격은 거의 받지 않았다. 대부분 받아넘겼기 때문이다.
아마 사흘 정도 지나면 최고의 컨디션으로 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운도 좋았지. 복싱에 관해서는 바깥에서 상당히 연구를 했거든. 같은 자세를 취한 건 도발 겸, 기술을 효과적으로 습득할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스타일 하나를 격파함으로써 보상을 얻습니다.
간파 +1, 안목 +1, 격투기 +1, 반격 +1』
『확장 스테이터스, 「투지」를 개방했습니다! 투지 스테이터스를 개방함으로써 전사 및 투사 계열 직업 중 일부의 전직 자격을 얻었습니다. 의지 스테이터스가 2 오릅니다.
투지 : 막강한 적과 만났을 때, 위압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
전투 중에 공포나 위압 등에 저항 가능하며, 투지 스테이터스가 높을수록 전투 스킬을 습득하기 쉬워진다.
투지를 기반으로 한 스킬의 위력이 상승한다.』

게다가 간파 스킬도 중급이 되며, 시각과 지혜 스테이터스가 2씩 증가했다.

간파 - 중급 21/30(패시브 스킬)
당신은 페인트(Feint)나 수준 높은 스킬에 대한 간파에 페널티를 받지 않게 됐습니다.
또한 상대의 패턴까지 이해했을 때 회피에 지혜 스테이터스의 보정을 받게 됩니다.
간파에 실패하더라도, 성공할 때까지 시도 가능.
뛰어난 도둑은 도둑 잡기에도 뛰어납니다. 당신은 허세와 페인트에 추가 보정을 받습니다.
상세 : 허세(Bluff) 스킬에 대응 가능. 지혜가 대상자보다도 높으면 상대의 스킬 레벨이 더 높을 경우에도 대응 가능. 페인트(Feint) 체크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음. 간파한 스킬이나 공격에 대하여 회피에 보정을 받음. 초급 이하의 스킬에 대한 간파에 추가 보정. 간파에 실패한 스킬에 대한 간파 재시도 시 페널티 없음.

‘호오…… 이런 스테이터스도 있었구나. 왠지 전투 중독이 된 것 같아서 찝찝하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상당히 유용한 스테이터스였다.
왜냐면 다크 게이머들의 비법, 『복원(피드백)』은 장시간 쓸 수 있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투지와 병행하여 사용하면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다.
공포와 관련된 효과를 쓰는 적을 만나도, 무력화되지 않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얻어진 성과들을 확인하고 대기실에 돌아오자, 뮬란 단장이 어깨를 두드렸다.
“때로 한 번의 실전이 수백 번의 단련을 능가하는 성과를 주기도 하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련을 게을리 하면 안 되지만…… 잘 해냈네!”
그 말과 함께 오랜만에 신용 스킬이 1레벨 증가했다. 순전 싸우기만 했기에 올릴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은 어쩐지 휴식이 주어졌고, 저녁에는 파티도 벌어졌다. 요리를 핸드 본인이 한 게 문제지만.
그간 핸드 덕분에 뮬란 단장이 번 돈은 상당했고, 눈에 보일 만큼 차력사들의 재정도 좋아졌다.
고기를 우걱우걱 먹어 치우며 핸드는 생각에 잠겼다.
‘흠, 나도 돈을 맡겨 봐?’
자신이 싸워서 얻는 대가다. 도박이라 해도 앞으로 거금이 필요한 핸드 입장에서는 꺼릴 일이 아니었다.
현재 재산은 은화 200닢이 약간 안 된다.
금화로 따져서 20닢 남짓. 앞으로 많은 스킬을 배워야 하는데다, 장비를 갖출 것을 생각하면 큰돈은 아니었다.
이번 경기의 배당은 꽤 컸다. 기성의 강자와 싸울 때는 떨어졌던 배당도 크게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질 가능성도 상당해서, 상당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력을 믿고 들이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안전하게 자기 돈은 걸지 않을 것인가?
‘에이! 여기선 지르는 거다. 너무 신중해도 안 돼. 이길 때까지 계속한다! 지금까지 해 온 노력을 믿는 거야!’
핸드는 결국 뮬란 단장에게 20닢의 은화를 맡겼다.
청동 리그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배당이 자꾸 떨어졌지만, 지금은 황동 리그에 돌입했다.
무패행진과 화려한 황동 리그 데뷔전 때문에 기대치가 은근히 높겠지만, 전보다 배당은 올랐을 것이다.
여기서 또 핸드의 강점이 발동되었다.
불안 요소가 있으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친다!
‘이기면 된다!’
핸드는 다음 경기까지 격렬한 훈련을 했다.
황동 리그와 철혈 리그.
핸드는 수리곰이 아닌 상태에서 다양한 경기를 관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