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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그래도 결국 등록금은 내야만 했다.
‘속 쓰리다.’
현재 핸드의 총 재산은 은화 145닢 정도 된다.
금화로는 약 14닢. 배낭에 들어간 동전의 무게를 재지 않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무게가 제법 나갔을 것이다.
은화 두 닢을 내자, 미리 만들어 둔 건지 청동으로 된 동그란 패(牌)를 건네주었다.
“투사들의 문으로 들어설 때는 이 패를 반드시 제시해야 하니 명심하길 바라겠네. 지금은 무급(無級) 투사지만 승수와 전적이 쌓이면 패를 바꾸면 되지.”
새겨진 무늬는 이상한 나뭇가지와 영문 B였다.
‘감정!’
투사의 청동패 내구도 ? - 종류 : 패(牌) / 등급 : -
『쿠도르프 시의 지하 격투장의 투사임을 증명하는 패. 이것을 제시하면, 투사들이 지나는 문에서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
청동으로 되어 있지만 그리 튼튼할 것 같지는 않다.』
“경기는?”
“첫 경기가 2시간 뒤입죠. 몸을 풀어 둬야 할 겁니다. 첫 데뷔니 방을 제공할 겁니다만, 다음부터는 돈을 내야 할 겁니다. 대기실 사용료는 동전 열 닢입니다.”
어떻게 운영하나 했더니 역시나 악착같이 뜯어먹는 것 같았다. 보나마나 관전 요금도 꽤 비쌀 것이다.
“그리고 투사는 자기 자신의 경기에 돈을 걸 수 없고, 파이트머니만 받을 수 있네. 자네는 무급이고 첫 경기니 동전 50닢이지. 이기면 5할의 추가 수당이 나오지만.”
“흐음.”
핸드는 투사들이 배고픈 직업이라는 걸 알았다.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격투는 하루에 한 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받은 데미지를 회복하고, 체력도 키우고 수련도 할 필요가 있다. 그걸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게다가 쿠도르프 시는 지방도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된 투사가 있을 리 없었다.
‘뭐, 나야 실전 경험을 쌓으러 온 거니까!’
하지만 핸드는 이 격투장과 어떤 인연을 맺게 될지, 그리고 어떤 악연과 만날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10장 : 무패행진
첫 경기(E급 퀘스트)
『당신은 쿠도르프 시 지하의 비밀스러운 격투장에 투사로서 이름을 등록했습니다.
당신은 그 첫 경기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경기의 규칙을 잘 숙지하고, 지금까지 연마한 모든 기술을 살려 상대편 투사와 싸우십시오.
모든 자를 매료시키는 명예로운 승리가 있기를!
보상 : 승리 시 파이트머니 50% 증가, 명성』
“긴장하지 말게나. 언제나 버드나무 가지처럼 유연하게, 그러나 철과 같이 굳세게! 분명히 기억하게.”
핸드는 심호흡을 했다.
약간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블러드 콜로세움에서는 관전 모드라는 게 있어서, 이따금 토너먼트나 아레나가 개최되면 엄청난 인파의 박력 속에서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핸드는 호흡을 하며 숫자를 세었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얻은 최고의 상태를 떠올렸다.
머리는 얼음보다 차게, 마음은 불꽃처럼 뜨겁게.
상대가 어떤 괴물이라도 주눅 들지 않는 투지(鬪志)를 가지면서, 결코 자만하지 않고 기계처럼 철저해야 한다.
“음……!”
뮬란 단장은 핸드의 눈빛을 보고 생각보다 싸움 경험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의외군. 몸은 보통인데 상당한 경험이 있는 것 같아. 어떤 곳에서는 완전히 초보인데…….’
핸드는 분장을 하고 가면을 쓴 다음, 가죽옷을 입었다. 당연히 곰의 모피 같은 비싼 것은 없기 때문에 그냥 독수리 가면을 썼을 뿐이다.
그리고 핸드는 투기장으로 안내되었다.
투기장의 구조는 상당히 특이했다.
아니, 지하에 이 정도의 넓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중앙 무대의 너비는 직경 15미터 정도.
사방을 둘러싼 좌석들은 모두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었는데, 거의 200명 이상이 관전할 수 있는 구조였다.
콜로세움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높이 차이를 두어서 모두 중앙 무대를 볼 수 있었다.
중앙 무대에 들어가기 위한 길은 4개였는데, 철창을 내려서 닫을 수 있는 것 같았다.
핸드는 그 길과 이어진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됐다.
“이 지하 공간은 쿠도르프 시 지하에 존재했다던 고대 유적을 파내서 개수한 거지. 무슨 문명이었는지는…… 나도 모르겠군. 뭐, 이미 다 파헤쳐진 곳이지만 아직 찾지 못한 유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네.”
뮬란 단장이 그렇게 설명해 주었다.
『쿠도르프 시 지하에 존재하던 이름 모를 고대 유적의 존재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지혜가 1 오릅니다.』
‘……호오.’
퀘스트의 냄새가 풀풀 났다.
모험가 계열의 스킬에 욕심이 생겼다. 만약 유적을 발굴해 낼 수 있다면 상당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싼 부장품이 나오면 좋겠지만, 나오지 않는다 해도 능력치의 성장에 보탬이 될지도 몰랐다.
‘아니지. 지금은 싸우는 것만 생각하자.’
핸드는 뮬란 단장의 보조를 받아 몸을 풀었다.
싸우기에 적당할 만큼 몸을 달구어야 했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시작하여, 조금씩 동작의 속도를 높여나갔다. 땀이 흠뻑 배어 나오되 근육이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쉐도우를 했다.
흔히 쉐도우 복싱이라 불리는 것인데 상대를 상정하고 허공에 격투 기술을 풀어내며 몸에 익히는 것이다.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일수록 수준 높은 쉐도우를 한다.
핸드의 경우는 블러드 콜로세움의 기억에 더하여, 토룬과 지스와 대련하면서 얻은 경험들을 주로 써먹었다.
지이이이잉.
그때, 징 소리 같은 것이 울렸다.
“시간이 됐군.”
곧 핸드의 출전을 알리는 사람이 왔다.
핸드는 당당한 걸음으로 뒤를 따랐고, 곧 웅성거림과 그 소리를 압도하는 외침을 들을 수가 있었다.
「이번 경기는∼! 방어자에 청동 리그 전적 9승 3패의 투사, 청동 리그의 최강자, 흉랑(凶狼)! 이번 방어전에 성공하면 황동 리그에 들어서게 됩니다. 도전자는 신인 수리곰! 아직 전적이 없는 무급 투사이지만, 관계자들로부터 기대의 신인이라는 소문이 흐르고 있습니다.」
‘입 싼 인간들 같으니!’
뮬란 단장이 여기서 대접받는 모습을 보고, 차력사들과 격투장이 상당히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등록과 함께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격투장의 관리자 측에서 뭔가 말이 흘러나온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도박이 가능하다고 했지. 관리자들과 도박사들이 주거니 받거니 했나 보군. 쯧쯧. 경영이란 건 자고로 투명해야 하는데.’
“자, 저길 통해서 나가면 될 걸세. 규칙은 알지?”
“물론.”
격투장의 규칙은 세 가지다.
1. 무기를 사용하면 실격.
2. 고의적으로 살인하면 실격(격전의 경우 스톱이 들어갈 수 있으며, 고의적 살해에 대한 판단은 심판이 함).
3. 신호 없이 공격하면 경고. 승리해도 추가금 없음.
너무 단순한 규칙이라 숙지하고 말 것도 없었다.
핸드는 당당하게 격투장으로 걸어 나갔다.
격투장은 확실히 기이했다. 지하라서 조명을 설치하는 것이 어려울 텐데, 천장에는 특이한 광점(光點)이 잔뜩 박혀 있어서 충분히 밝았다.
어두운 통로에서 들이치는 빛을 바라보자, 반대편의 철창이 삐걱대며 열리며 거구의 남자가 나타났다.
「방어의 문에서 방어자, 흉랑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전한 풍모군요! 대단한 거구에, 가려지지 않는 저 우람한 근육! 적어도 청동 리그에서 저 폭발적인 파워와 압도적인 체중을 능가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기록한 패배는 모두 황동 리그 이상으로 올라간 투사들이 새긴 것! 당당한 걸음입니다.」
늑대의 가면과 늑대의 털가죽을 덮어쓴 거구의 남자. 핸드도 제법 장신이지만, 그보다 더 컸다. 게다가 근육도 엄청나서 털가죽으로도 다 가려지지 않았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신참 따위 마구 짓뭉개 버려, 흉랑! 거금을 걸었다!”
“이번에도 멋진 경기를 보여 줘!”
욕설 섞인 함성이 울려 퍼진다. 하지만 핸드의 귀에는 그런 소리가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르르르릉.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서, 철창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대편, 도전의 문에서 신인이 등장합니다. 신참자 수리곰을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문이 열리자마자 덤덤한 자세로 걸어 나갔다.
「역시 기대의 신인입니다. 청동 투사 중 최강자인 흉랑을 앞에 두고도 긴장하고 있는 것 같지 않군요! 자포자기의 태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파이터, 흉랑은 양팔을 들어 보이며 환호를 받아들이다가 핸드가 나타나자 코웃음을 치며 도발을 했다.
“흥! 아가야, 나름대로 몸은 만들고 온 것 같지만 첫 상대가 나라는 걸 불행으로 여겨라.”
집중하고 있는 핸드가 그런 싸구려 도발에 걸릴 리 없었다. 그는 약간 자세를 낮추었다.
「신인은 벌써 준비 태세입니다. 잔말은 필요 없다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경기를 준비하겠습니다. 양자는 경기장 중앙으로…….」
경기장 중앙에는 작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열 걸음 정도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원이다.
원의 끝에 선 상태에서, 경기 시작의 신호가 떨어지면 싸우게 된다. 거리는 약 6미터 정도였다.
도발을 하던 흉랑도, 핸드의 반응이 너무 담담하자 더 이상의 도발은 없었다. 최하의 청동 리그라고 해도 최강자라 불릴 자격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자에겐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 상반신에 비해 하반신의 근육이 약해. 주로 상체의 힘을 이용해 싸우거나 접전을 하는 타입이군.’
핸드는 흉랑의 근육이 발달한 정도만 보고도 그의 장기를 알아맞힐 수 있었다. 룽 노사에게 주입 받은 지식의 덕분이다.
「경기 시작!」
신호와 함께 흉랑은 전력을 다한 태클을 걸었다.
그러나 상대가 파워 파이터, 웬만한 타격은 몸으로 받아 내는 타입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던 핸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옆으로 피하며 무릎을 옆에서 걷어찼다.
쩍!
피하면서 넣은 킥이라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초탄으로서는 충분했다.
흉랑은 태클 실패에 약간 주춤거렸고, 두 번째 공격을 차 넣기에 넘칠 만큼 큰 틈을 보인 것이다.
즈컥!
약간 수그린 흉랑의 목에 들어간 우아한 상단 차기. 이번에는 제대로 된 타격이었다.
“커억!”
흉랑은 본능적으로 손을 휘저으며 핸드의 접근을 막았다. 하지만 핸드는 품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이걸로 연속기를 넣어서 승리하면 너무 시시하지.’
“정신 차리셔. 너무 얕보니까 그렇게 된 거라고.”
핸드는 자세를 낮추고, 손을 팡팡 두드렸다.
그러더니 손가락까지 까딱거리며 흉랑을 도발했다.
관중석에서 환성과 야유가 교차했다.
「웬만한 청동 투사는 걸리기만 해도 당하는 흉랑의 태클을 간단하게 무력화시켰습니다. 게다가 도발까지! 자, 청동 투사의 최강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액티브 스킬 습득
『핸드가 도발을 습득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액티브 스킬 상세 설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스킬 획득 보정으로 지혜와 매력이 1 증가했습니다.』
기분 좋은 알림이다. 자세한 건 천천히 확인하기로 하고, 핸드는 손의 관절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를 냈다.
“이, 이 자식……!”
목의 통증이 사라졌는지, 흉랑은 분노하며 땅을 강하게 차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정신을 차리라고 했잖아?”
핸드는 덮쳐드는 흉랑의 양팔을 잡아챘다.
전력으로 달려들며 뻗은 양손을 깍지 끼면서 잡아챈다. 마치 멈춘 것처럼 공격을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핸드의 동체시력이나 민첩함은 이미 상당한 수준인 것이다.
「손을 중간에 잡아챘습니다! 대단한 재주지만, 무모합니다. 흉랑보다 작은 체구인 수리곰이 힘으로 겨루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흉랑은 전력을 다해 핸드를 짓눌러 버리려 들었다. 그러나 핸드는 균형 잡기 스킬로 버티고 서서 악력으로 흉랑의 손을 강하게 쥐며 반대로 꺾기 시작했다.
「겨, 겨루고 있습니다! 수리곰이 흉랑과 정면에서 힘을 겨루고 있습니다!」
흉랑의 얼굴이 고통으로 비뚤어져 갔다. 가면을 쓰고 있지만 드러난 부분에 힘줄이 돋아난다.
그러나 핸드는 차츰 힘을 강하게 줘서 꺾기 시작했다.
‘멍청한 자식…….’
까놓고 말해서 흉랑은 너무 약했다.
레슬러인 토룬보다도 느리고, 아웃 파이터인 지스보다도 힘이 약하다. 힘이라면 아직 핸드보다는 강하지만 그걸 효율적으로 쓸 줄 몰랐다.
핸드는 정면에서 힘을 겨루는 게 아니고, 가하는 힘을 분산시키면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 으그극……!”
모래에 자국을 남기며 흉랑이 밀려 나간다.
균형을 잡고, 골격으로 땅을 지탱하며 서 있는 핸드는 지지대부터 달랐다.
“합!”
힘겨루기에 질린 핸드는 강하게 힘을 줘서 흉랑을 쳐서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밀려나는 속도를 따라잡아, 그대로 보디 어퍼를 꽂아 넣었다.
“커억!”
밀려나는 동안에는 복근에 힘을 주기 어렵다. 단련한 근육도 긴장되어 있지 않은 동안에는 약하다. 일점에 정확히 찔러 넣은 타격은 내장에까지 전달되었다.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르던 흉랑은 다음 추격타를 당하기 전에 필사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흔들림이 없는 핸드와 달리 상당한 타격을 받은 상태였다.
“크, 으윽!”
정신이 번쩍 든 흉랑은 신중한 태세를 갖추었다.
이렇게 되면 핸드 역시 타격 없이 이기기 힘들다. 타격을 받는 순간에 반격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쩐다? 플래시 잽? 아, 딱 좋은 게 있군.’
그는 지스에게 당했던 기술을 써 보기로 하고는, 자세 없이 평범한 걸음으로 흉랑에게 다가갔다.
“이놈, 또 묘한 수작을……! 이번에는 안 통한다!”
푸악!
흉랑은 모래까지 날리면서 달려들었다. 잡는 기술은 안 통한다는 걸 알았는지, 전신의 힘을 사용한 펀치였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펀치를 정확히 보고, 몸을 수그리며 옆으로 피했다.
머리카락을 흔들면서 스쳐 지나가는 펀치. 그리고 흉랑이 달려드는 방향으로, 약간 비스듬하게 턱을 끊어 쳤다.
지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깨달은 점 하나.
동작은 짧고 간결하면서, 상대의 흐름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 가장 유효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빠름이나 민첩함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일정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은 점점 더 최단거리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 천변만화하므로, 경험을 쌓아서 몸에 익히는 수밖에 없다.
그것을 추구한 결과물이 바로 카운터(Counter)!
핸드가 처음으로 성공시킨 카운터 펀치였다.
즈컥!
턱을 부수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제대로 들어간 타격은 흉랑을 뇌진탕 상태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안 되지.’
핸드는 자신이 격투장에서 인기몰이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후의 공격은 반드시 화려하게 끝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슉.
발을 땅에 디디고, 이미 의식이 없는 흉랑의 가슴 중앙에 전신의 골격을 가동시킨 강격을 날렸다.
충격보다는 밀어내기.
파악!
가죽 북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흉랑의 거구가 3미터 가까이 밀려나 모래바닥에 쓰러졌다.
잠시 좌중이 고요해졌다.
하지만 흉랑이 일어나지 못한 채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 확인되자 함성이 끓어올랐다.
액티브 스킬 습득
『핸드가 반격을 습득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액티브 스킬 상세 설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스킬 획득 보정으로 지혜와 민첩이 1 증가했습니다.』
『투사 닉네임 흉랑을 물리침으로써, 경험치 60을 받았습니다. 격투장의 대전이므로 온전한 경험치를 받게 됩니다.』
『당신은 자신보다 높은 등급의 투사를 압도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투사 간의 대결이므로 상대의 명성 1할인 30을 빼앗았습니다.』
‘좋았어!’
핸드는 주먹을 불끈 쥐며, 당당하게 들어 올렸다.
뮬란 단장에게서 격투장의 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쇼맨십을 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세리머니까지 준비했다.
「대이변입니다―! 신인이 수리곰이 청동 투사 중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흉랑을 노 데미지로, 깔끔하게 쓰러뜨렸습니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은 매끄러운 동작! 수리곰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기술입니다.」
해설자가 흥분해서 떠들어 댔다. 핸드가 세리머니를 하자 훨씬 함성도 커졌다.
돈을 날려 버린 사람들도 야유를 날리기보다 놀라움을 표현할 정도의 승리. 핸드가 생각해도 그림같이 들어간 카운터와 강격이었다. 강격 쪽은 의도한 것이지만, 그만한 안목이 있는 인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환성을 받아 준 다음, 핸드는 다시 대기실로 들어갔다.
“수고했네. 참, 멋지게 마무리를 했더군. 마지막 건 쇼맨십으로서 나쁘지 않았어.”
뮬란 단장이 칭찬했다. 강격보다는 그 전의 반격이 훨씬 어려운 기술이었다. 사실상의 첫 싸움이면서 그 정도로 해낼 수 있는 것도 재능인 것이다.
“저 인간한테 한 대라도 맞았으면 지스가 저를 반쯤 죽여 놓을 걸요?”
“하기야…….”
핸드는 불과 사흘도 안 되어 지스의 공격을 본능적으로 비껴 맞거나, 타격이 적은 곳으로 받아 낼 수 있게 되었다. 지스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 핸드가 근육만 키운 흉랑에게 한 대라도 유효타를 허용했다면 지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핸드는 조금 반성했다.
‘내구나 인내 스테이터스를 올리려면, 실전에서의 타격을 경감하는 요령도 알아야 하는데…… 지스와 거의 실전같이 겨루긴 했지만 그건 봐준 거잖아.’
언제쯤 지스 같은 파이터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까마득하다.
‘하지만 맞아 주고 싶어도 너무 느려서! 기술이나 속도를 위주로 하는 투사를 만나면 좀 맞으면서 싸워 보자. 자세한 반성은 나중에 하고 스킬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핸드는 스킬 창을 열었다.
도발 - 견습 1/10(액티브 스킬)
당신은 일정 이상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를 도발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를 흥분시켜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으며, 도발에 걸린 대상은 저돌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 후 일정 이상의 타격을 받으면 도발의 효과는 사라집니다.
당신은 아직 대화가 통하거나, 특수한 제스처로 현혹할 수 있는 수준의 대상밖에 도발하지 못합니다.
조건 : 초급 간파, 도발 성공
반격 - 견습 1/10(액티브 스킬)
당신은 전투 중에, 적의 공격을 회피하고 치명적인 급소를 타격하는 기술을 알게 되었습니다.
적이 가한 공격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반격은 그에 상응하는 데미지를 가합니다.
이 스킬의 전제 조건은 적의 기술과 행동을 간파하고 그 빈틈을 찌르는 것입니다.
때문에 당신이 간파에 실패하면 반격 스킬은 발동되지 않습니다.
만약 페인트에 현혹된다면, 적이 반격 스킬을 가지지 않았을 경우에도 자신이 역으로 반격을 받게 됩니다.
조건 : 초급 간파, 안목 습득, 시각 스테이터스 개방
상세 : 적의 행동을 간파하고 회피했을 시 스킬 레벨당 치명타 확률 +2%
핸드는 싸움이 끝나고, 몸이 차갑게 식지 않도록 적당한 스트레칭을 해서 근육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다른 스킬들을 확인해 보니 상쾌한 승리 덕분인지 격투기 스킬이 1레벨 올라 있었다.
그 밖의 성과는 돈!
“오늘 파이트머니는 동전 75닢일세. 하지만 내가 돈을 걸었고 배당이 꽤 높았으니까 합쳐서 은화 3닢을 주지.”
“어? 돈을 걸어도 됩니까?”
“나야 투사가 아니잖아?”
“아하…….”
뮬란 단장은 꽤 많은 돈을 걸었을 것이다. 아마 은화 30닢 가까이는 벌었을 걸로 짐작됐다.
물론 핸드는 신세를 진 게 많으므로 1할 정도 건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지만.
‘적자 안 난 게 어디야?’
라스트 앤서를 시작한 이래 쫀쫀해지기 시작한 핸드였다. 적자에 날카로워진 것이다.
“자네는 처음이니까 아직 코치가 없지만, 제대로 흥행할 수 있는 승리를 보여 줬으니 코치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겠지. 물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해야겠지만…… 코치는 돈을 걸어도 되거든.”
말이 코치지 일종의 매니저인 셈이다.
당연히 이쪽에서 소개를 받는 것보다는 직접 찾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대체 뭘 믿고 여기다 맡기겠는가?
“그런 시스템이었군요? 어쩐지 박한 조건인데도 싸운다더라. 그럼 져 주면서 벌어 가는 파이터도 있습니까?”
승부 조작은 현실에서도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하물며 사회윤리가 많이 무른 라스트 앤서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뭐, 그런 놈도 있겠지. 하지만 발각되면 추방이니까…… 격투장 주인이 그런 걸 싫어해.”
핸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는 돈 때문에 온 게 아니다. 돈이 된다면 좋지만, 결국 스테이터스와 스킬을 올리기 위한 장소다.
그날은 미행을 따돌리고 잽싸게 돌아갔다.
다음 경기는 이틀 뒤에 있었다.
노 데미지로 승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본래라면 타박상에도 1주일 이상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청동 투사 중 전적 2위.
핸드보다 약간 키가 작고, 근육도 날렵한 기교 계열의 스피드 파이터였다.
확실히 핸드보다 아주 약간 빠르긴 했다.
하지만 기술이 별로 다듬어져 있지 않고, 파워가 너무 떨어졌다.
타격을 허용하긴 했지만 접전 스킬에 관해서는 거의 문외한 수준의 실력. 접전에 들어가자 일방적으로 잡아챈 뒤 패대기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패대기 한 방으로 뇌가 흔들려 휘청댄다.
‘……차라리 흉랑이 터프해서 때리기 좋았지. 기술도 영 날카로운 맛이 모자라고.’
마무리는 역시 강격. 그리고 세리머니였다. 약간 봐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라서 시시했다.
‘청동 등급 투사들은 기대가 안 되는군.’
동네 불량배 개싸움 딱지를 뗀 정도! 몇몇을 제외하면 그것이 청동 투사들의 수준이다.
저마다 특기는 있지만, 별다른 특기가 없는 핸드가 보기에도 상당히 미묘한 수준이랄까? 밸런스가 나빠서 약점을 찌르면 하나같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핸드는 약점을 찌르는 것보다는, 강점으로 강점을 쳐서 쓰러뜨리는 호쾌한 싸움을 했다.
가끔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운 것처럼 보이는 투사도 있었지만, 수련이 부족했다.
블러드 콜로세움의 경험을 완전히 격투기에 녹여 낸 핸드의 상대가 될 인물은 없었다.
전적은 9승 무패. 파이트머니는 조금씩 늘어나서 지금은 은화 2닢이 되어 있었다.
대신 이길수록 배당이 낮아져서 도박에서 떨어지는 돈은 얼마 안 됐다.
성과는 명성 250 달성과 경험치 240 정도를 번 것.
경기가 없는 날에 토룬과 지스를 상대로 혹독한 훈련을 하고, 로엠 노인의 저주받은 연단법을 받는다.
독 내성이 없었으면 계속 스테이터스 데미지가 누적되어, 청동 투사에게도 깨졌을 것이다.
9전을 하는 동안 가장 많이 오른 스킬은 역시 격투기. 다음이 접전, 세 번째가 간파였다.
격투기는 견습 8레벨, 접전은 견습 6레벨이 됐다.
간파는 초급 9(19)레벨까지 올랐으므로 조금만 있으면 중급에 오를 것이다. 그 외의 스킬도 조금씩은 올랐다.
‘역시 스킬은 치열해야만 빨리 오르는 거야.’
도발과 반격 스킬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쉽게 도발에 걸리고 반격을 당하는 격하의 투사들을 상대로는 그다지 숙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스테이터스는 생각보다 잘 올랐다.
거의 변동이 없었던 매력도, 도발에 성공하거나 세리머니로 좋은 반응을 끌어낼 때마다 올라갔다.
그래서 현재 매력은 딱 29였다.
‘공연을 하거나 연기를 하고, 상대를 속이는 것에 성공하면 오르는 거였구나.’
그 외에도 교섭(아직 얻지 못했지만)도 매력과 관계된 스킬 같았다. 즉, 매력이란 외모만이 아니라 화술 같은 능력을 포함한 스테이터스였다.
신용 스킬도 매력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흠, 이제 1승만 거두면 황동 투사가 되는군. 그나마 좀 싸운다고 할 수 있는 녀석들은 대부분 황동 투사와 철혈에 속해 있지. 백은 등급은 대도시의 격투장에 가도 통용되는 레벨이야. 지금까지는 워밍업에 불과했어.”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감을 얻기는커녕 토룬과 지스에게 대항하는 시간이 늘어났을 뿐이니까.
청동 위에는 황동, 그 위에는 철혈, 그다음에 백은 등급이 있고 마지막이 황금 투사라고 한다.
백은 투사는 다른 지역의 공식 격투장에서 온 상급 투사, 혹은 현직 용병 중에서 격투에 뛰어난 인물들이 푼돈벌이로 끼어드는 경우에 주로 얻는 등급이다.
황금 투사는 무패의 챔피언에게만 주어진다.
당연히 쿠도르프의 지하 격투장에 황금 등급의 투사는 한 명도 없었다.
‘무직 레벨인 내가 거기까지 가는 건 좀 무리겠지. 내 목표는 그런 게 아냐. 주요 스킬들을 중급까지 끌어올리고, 아직 고만고만한 스테이터스도 상승시켜야 해. 그놈의 연단법도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니.’
스킬은 견습 수준까지는 잘 오르지만, 초급부터 성장 속도가 반으로 준다. 중급부터는 더 줄어들 것이다.
스테이터스의 분수령은 50.
그 이전까지는 노가다로 잘 오르지만, 그 이후부터는 상당히 신경을 써야만 올랐다.
격투장 퀘스트는 능력 상승의 기회인 것이다.
“다음 경기는 황동 투사. 왜냐면 승급 경기니까. 게다가 황동 투사 중에도 제법 전적이 있는 노련한 중견이라는군. 황동 투사들은 제법 기술도 쓸 줄 안다네.”
승급 조건은 10승.
하지만 승급 경기로 자기보다 높은 등급의 투사와 싸워서 이겨야만 다음 리그에 참여할 자격이 생긴다.
흉랑은 승급 자격을 이미 얻은 상태였지만, 핸드에게 지면서 승급의 꿈을 접어야 했다.
“청동 리그에서는 기량부터 차이가 나서 별문제는 없었지만…… 황동 투사쯤 되면 힘이나 스피드 같은 건 자네와 거의 차이가 안 나지. 경험이 풍부한 저쪽이 유리하다는 말일세. 그러므로 상대의 경기를 보고, 스타일을 연구해야 해. 이번 경기는 할 수 없지만.”
하지만 다음 경기는 사흘 뒤.
상대는 그 사이에 예정된 경기가 없었다. 이번에는 결국 지금까지 쌓은 것을 믿고 들이대야 했다.
“자, 어쨌건 간에 기초를 게을리 하면 안 되지.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기본이 안 되면 소용없으니까.”
분위기를 환기한 뮬란 단장은 밧줄 타기를 시켰다.
이제는 밧줄 타기도 위험했다. 균형 잡기가 초급이 된 뒤에는, 장대에 매달린 밧줄을 타야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높은 곳에서 점프하는 훈련까지 한다.
현재 핸드의 내구는 35. 보통 사람 3배 가까이 튼튼하다. 그렇다 해도 낙하의 충격은 장난이 아니다.
만약 필사적으로 낙법을 구사하지 않았다면 어딘가 부러져도 부러졌을 것이다. 생명력이 떨어질 정도의 데미지였는데, 차력과 유연성 스킬 덕분에 살았다.
그나마 두 가지 스킬이 생성된 것만이 위안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내던져졌을 때의 충격을 흡수하는 낙법 스킬!
그리고 보다 높게, 혹은 멀리 뛸 수 있는 도약 스킬의 두 가지였다.
‘어째 스킬이 엄청나게 불어나는데…….’
하지만 스킬을 얻으면 스테이터스가 증가한다.
직업을 얻었을 때 주로 쓸 스킬이 아니면 뒷전이 되겠지만 견습이나 초급까지 끌어올려서 손해 볼 일은 없다.
자주 쓰지 않아서 쇠퇴하거나 하면 골치 아프겠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격투장 일이 마무리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특정 직업을 노리고 스킬을 좁혀서 연마할 생각이었다.
핸드는 경기가 있는 날까지 필사적으로 수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