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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약방 노인의 부탁(E급 퀘스트)
『당신은 노인이 만족할 정도의 지식을 그에게 알려 줄 수 있었습니다. 아직 모든 것을 알려 주지는 못했지만, 노인은 당신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불할 것입니다.
경험치 160을 얻었습니다.』

“음…… 아직 많이 남았군. 일단 올라가세.”
노인은 아쉬운 듯했지만, 서두르지 않고 핸드를 데리고 위로 올라갔다.
“도움이 됐습니까?”
“암. 충분할 것 같네. 일을 가르쳐 주지! 자네가 약초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 설명도 잘 되겠어.”
그렇게 해서 핸드는 성공적으로 약방에 취직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이득은, 시간이 나면 지하의 서고에서 노인이 따로 정리해 둔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모아 놓은 지식들을 따로 정리해서 책으로 엮어 놓았기에 핸드 입장에서는 아주 편했다.
로엠 노인의 책이라 소유할 수는 없었지만, 그 외에도 종합적으로 정리된 다른 책들도 많았다. 게다가 다른 책들은 빌려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 특별히 일당은 은화 한 닢으로 주지.”
본래 견습 기간으로 꽤 오래 보내야만 하고, 약초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야 한다. 하지만 로엠 노인과 핸드는 거래 관계라서, 사실상의 직접 전수를 받을 수 있었다.
‘이건 룽 노사님 덕분이군.’
만약 핸드에게 연단법의 지식이 없었다면, 이렇게 수월하게 일이 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니까.
이제 사흘은 푸줏간에 나가고, 하루는 로엠 노인의 약방에서 지식을 배우게 되었다.
로엠 노인이 고용한 점원이 따로 있는 모양이지만, 그는 주로 허드렛일이나 약을 파는 일만을 했으니 직접 일을 배우는 핸드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핸드는 로엠 노인이 가진 책들을 빌려 가서, 밤이 되면 자기 전에 여관에서 램프를 켜 놓고 2시간 정도 읽었다.
열 받게도 등잔 기름을 사야 했지만, 투자하는 셈 치고 끈질기게 내용을 이해하려 들었다.

『약초에 관한 책을 읽어서 지식을 쌓았습니다.
지능이 1 증가했습니다.』

대략 1권을 읽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완전히 지식으로 만드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로엠 노인이 약초에 대한 지식을 직접 전수했다. 책으로 얻은 지식을 체화하기 위해서는 직접 다루거나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말리거나 다듬은 약초를 가져오는 약초꾼도 있지만, 생으로 파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약초를 다듬는 기술은 물론, 구분하여 정리하는 것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약방에 다닌 지 5일째!

패시브 스킬 습득
『핸드가 지식(약학)을 얻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패시브 스킬 상세 설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스킬 획득 보정으로 지능이 1 증가했습니다.』

액티브 스킬 습득
『핸드가 감정을 깨달았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액티브 스킬 상세 설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스킬 획득 보정으로 지혜가 1 증가했습니다.』

핸드는 어떻게 해야 지능을 올릴 수 있는지 알았다.
캐릭터가 지식을 축적하거나 모르는 분야의 어떤 사실을 알았을 때 지능이 오른다. 중요한 지식일수록 더 많이 올려 주는 것 같았다.
책을 읽어서 얻은 지능까지 합치면 6이나 증가했다.
‘스킬 확인!’

지식(약학) - 견습 1/10(패시브 스킬)
당신은 약학에 관한 지식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보잘것없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학문의 기반을 갖춘 것입니다.
약초에 관한 지식이 축적될수록, 사용자 사전에 등록되어 캐릭터의 지식이 됩니다.
감정 스킬의 『약초』 카테고리를 개방시켜 줍니다.
상세 : 스킬 레벨 5당 약초 감정 스킬 레벨 보정 +1.

감정 - 견습 1/10(액티브 스킬)
당신은 사물을 감정하여,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당신의 감식안은 미천하며, 지식은 물론 경험적인 면에서도 아주 부족합니다.
단, 세세한 내용을 확인한 도구에 한해서는 카테고리와 상관없이 그 상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개방된 카테고리 : 약초

핸드는 로엠 노인의 책을 감정해 보았다. 이미 몇 번 정도 읽어 보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을 알 수 있었다.

약학총론 내구도 ? - 종류 : 책 / 등급 : 보통
『다양한 기록과 서적, 평생의 경험과 지식을 모아서 집필한 책. 재질은 양피지이며, 작성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약초의 종류는 물론, 각 약초마다 존재하는 약효를 상세하게 기술했다. 총 4권이며, 약초의 배합이나 약을 달이는 법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여관에서 일한 성과도 컸다.
핸드는 현실에서 자취 생활을 오래 했고, 룽 노사 때문에 먹는 것에도 상당히 신경 썼다.
그래서 허드렛일이긴 하지만, 주방에서 재료를 자르거나 불을 피우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을 며칠 반복하자 요리 스킬이 생성됐다.

액티브 스킬 습득
『핸드가 요리를 익혔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액티브 스킬 상세 설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스킬 획득 보정으로 민첩과 지혜, 체력이 각각 1 증가했습니다.』

요리 - 견습 1/10(액티브 스킬)
당신은 요리를 익혔습니다. 아직은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별다른 실수가 없다면 먹을 만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지금의 실력으로는 허기를 채우는 효과 외에 다른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 감정 가능 카테고리에서 식재료 감정을 개방시켜 줌.
상세 : 기초 요리를 만들 수 있음.

요리 스킬을 습득함으로써 감정 스킬도 영향을 받아 스킬 레벨이 1 증가했다.
그리고 푸줏간 역시 또 하나의 보상을 주었다.
뭔가 될 때는, 한꺼번에 성과가 얻어지는 모양이었다.
“오늘부터 자네도 칼을 잡게. 고기를 써는 걸 보지.”
여기서 커다란 도움이 된 것이 요리 스킬이었다.
요리 스킬은 단순히 볶거나, 지지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식재료를 다듬는 것도 포함한다.
본래 손재주가 뛰어난 핸드이기에 재료 다듬기만은 현실에서도 상당히 잘 하는 편이었다.
부상 탓에 칼을 잡기 어려워졌었지만, 지금은 룽 노사의 훈련을 받아 일상적인 정도는 문제없었다.
“허, 묘한 칼놀림이군. 하지만 쓸데없는 버릇도 없고. 문제없지 않을까?”
팔 전체를 쓰는 핸드의 칼질에 대하여, 바터 씨는 묘한 동작이라는 평가를 했다.
그 작업까지 익숙해지자 다음은 가죽 벗기기!
당장 도축이 아니라, 기본 단계부터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순전히 핸드의 습득이 빠르기 때문이다.

패시브 스킬 습득
『핸드가 단검에 숙달되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패시브 스킬 상세 설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스킬 획득 보정으로 민첩이 1 증가했습니다.』

단검 숙달 - 견습 1/10(패시브 스킬)
당신은 단검이나 단도, 짧은 검 등에 숙달되었습니다.
단검으로 무언가를 찌르거나 자르는 데 있어 능수능란해졌으며, 행동이나 무장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단검으로 하는 작업의 페널티가 사라집니다.
상세 : 스킬 레벨당 숙달된 무기의 데미지와 공격 속도가 1% 증가. 숙달된 무기로 방어 가능.

‘오, 처음으로 무기와 관련된 스킬이 나왔군.’
강격은 전투 스킬이지만, 지금은 푸줏간에서 뼈 부수는 데나 쓰고 있었다.
이 스킬 역시 순수한 전투용은 아니다. 무기 스킬이지만 단검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약초 다듬기, 요리, 그리고 푸줏간에서 고기를 썰었기에 생성된 것이다.
이렇게 맡겨진 일들을 해내다 보니 신용 스킬도 2단계 올라서 견습 3레벨이 되었다. 여관, 푸줏간, 약방에서 각각 신용을 쌓았기 때문이리라.
이제 스킬을 깊이 파고들거나 가짓수를 더 늘리는 길이 남았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쪼갤 수는 없었다.
‘정말 몸이 한 10개쯤 되면 좋겠다!’
스킬이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도 곤란하지만,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방대한 스킬을 익힐 필요가 있다.
핸드는 아직 하고 싶은 직업을 찾지 못했지만, 마법사 같은 계열보다는 전투도 해내면서 돈도 웬만큼 벌 수 있는 계열의 직업을 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생존력! 다양한 환경에서 활약할 수 있는 직업이 필요했다.
즉, 모험가나 레인저 계통의 직업이다.
‘무력은 전사보다 조금 약하겠지만, 검과 활을 모두 쓸 수 있고 사냥도 편하지. 게다가 숲이나 던전, 극지 같은 곳에서도 문제없이 활동 가능하니까.’
나중에 다른 동료를 만들어 파티 플레이를 하게 된다면, 레인저가 1명쯤 있어서 나쁠 건 없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생각대로 되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 캐릭터를 수면 상태로 전환한 뒤 라스트 앤서의 세계에서 접속을 해제했다.







6장 : 도축과 요리



바깥에 나와서 정해진 수련을 하고, 약을 먹은 뒤 플래닛에 접속해 탐사를 개시했다.
이번에는 생각 외로 괜찮은 정보를 찾았다.
최단기간에 클래스 레벨을 얻겠다고 선언했던 플레이어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임 시간으로 28일, 현실 시간으로 7일!
그 시간에 무직 레벨을 10까지 올린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결과를 본 뒤에는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플레이어는 퀘스트가 상식 이상으로 어렵다던가, NPC 전사들이 형편없는 실력이라고 무시한다던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불평을 쏟아 내고 캐릭터를 삭제했던 것이다.
“역시 무조건 레벨을 올리는 건 금기였어.”
요컨대 정식 레벨을 얻었음에도 퀘스트의 요구를 따라갈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레벨도 중요하지만, 스테이터스와 스킬의 비중이 훨씬 높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게임 시간으로 40일, 현실 시간으로 10일이 지났다.
일부 눈에 띄기 좋아하고 성질 급한 유저들은 『라스트 앤서 탐방기』라든지 『라스트 앤서 초반 공략』 같은 것들을 정리해서 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중에서 도움이 될 만한 건 거의 없었다.
‘……다크 게이머들의 모임 같은 곳이 있으면, 쓸 만한 자료가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러려면 지운과 만나야 하겠지만, 전작인 『제니스』와는 스타일이 완전히 딴판이라 게임 도사라 볼 수 있는 다크 게이머들도 그리 전망이 밝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은 하던 대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아. 그럼 접속이다!”
매일 지겹게 보는 접속 과정이 끝나자, 명일은 어느새 핸드가 되어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일과대로 운동을 마친다. 동작에 점점 힘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왠지 개운함이 부족했다.
‘스테이터스의 성장 속도가 많이 줄었군.’
모래 자루가 10kg을 달성한 후부터 완력이 잘 늘지 않았다. 푸줏간에서 꽤 많은 일을 하는데도 성과가 적었다. 부담을 늘려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제 돈에도 좀 여유가 있으니…… 시간이 남을 때 납 벨트 같은 걸 주문해야겠다. 납 가격이 얼마나 할까?’
게다가 모래 자루의 부피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컴팩트한 납 벨트가 딱 좋다.
라스트 앤서의 철 시세는 1kg당 은화 3닢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납은 철에 비하면 훨씬 가공과 채굴이 용이하므로, 철보다는 훨씬 쌀 것이다.
지금 비축은 은화 10닢 정도.
40일간 노력해서, 간신히 손익분기점에 도달한 셈이다. 하지만 핸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강해지기 위해서다. 나중에 더 벌면 돼. 투자하자!’
그는 푸줏간에서 시간이 조금 나면, 바터 씨에게 구입할 게 있다고 말하고 잠시 자리를 비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쉽게 될 것 같지 않았다.
푸줏간에 출근하자마자, 바터 씨가 평소보다도 더욱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도 제법 고기를 썰 수 있게 됐으니, 오늘부터 도축장에서 일을 배우세.”

도축장의 일(E급 퀘스트)
『바터 씨는 당신을 믿고, 드디어 도축 기술을 전수하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도축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터 씨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 도축을 견학하십시오.
바터 씨가 가르침을 끝내야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드디어!’
이것을 해결하면 도축 스킬을 얻을 수 있다. 아마 1단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기대에 들끓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심호흡을 해 감정을 비운다. 그는 순식간에 침착해졌다.
바터 씨의 안내를 따라 푸줏간 옆으로 향한다.
피 냄새에는 상당히 익숙해졌지만, 공기에 섞인 이상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역한 냄새가 섞인 공기가 가득 차 있는 어둑어둑한 내부의 모습이 보인다.
거무죽죽한 핏자국이 보이는 바닥.
벽에 걸린 대도(大刀)나 도끼 등에도 사라지지 않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지켜야 하는 철칙이 있다.”
바터 씨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기 시작했다.
“하나, 들어오는 짐승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둘,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는 것은 생명의 모독, 죽음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셋, 적어도 이 장소에서는 절대로 웃으면 안 된다. 이상이다.”
“알겠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은데…….’
바터 씨가 뭔가를 직접 가르칠 때는, 몇 번 이상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직접 가르침 받을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바터 씨가 다른 백정들을 가르칠 때 엿듣는 것도 많았다.
곧 다른 백정이 와서, 핸드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대도와 도끼는 물론, 세세한 부분을 해체할 때 쓰는 도구들의 용법 등…… 고기 각 부위까지.
게다가 소만이 아니라 돼지나 닭, 양 등의 가축을 해체하는 방법까지 알아야 했다.
‘어렵다!’
꽤 복잡해서 단기간에는 익힐 수 없을 것 같았다.
도축은 상당히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밧줄에 묶인 소가 끌려와, 아주 조용한 분위기에서 눈을 가리고 사슬로 다리를 묶었다.
날뛸 수 없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도축장에 들어오기 전에는 동작이 거칠었지만 백정들이 잘 붙잡았다.
여러 밑 준비가 끝나자 바터 씨가 도끼가 아니라, 날이 서 있는 대도를 들었다.
옆에 있던 백정이 옆구리를 찌르며 설명을 했다.
“잘 봐 둬. 우리는 힘이 모자라서 대형 도끼를 쓰지만, 바터 씨는 큰 칼로 한 번에 친다고. 바터 씨가 직접 시범을 보이는 일은 자주 있지 않아.”
바터 씨는 왠지 고요하기까지 한 느낌이 드는 자세로 칼을 들어 올리더니, 일격에 소의 목을 쳤다.
썩둑!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지만, 핸드는 그런 소리를 들은 기분이 들었다.
팽팽한 근육에 힘줄이 돋은 걸로 봐서 대단한 힘을 쓴 모양이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리가 작았다.
‘근육은 물론 뼈까지 단숨에 절단했다! 지금의 나는 무리야. 강격을 써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시범을 보이는 대로, 소의 피를 커다란 가죽 자루로 받아 냈다. 이것도 따로 구입해 가는 요리점이 있다고 한다.
해체를 하는 도중, 고기에 피가 남아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과정이 있었다. 살이나 근육에 피가 고여 있으면 맛도 없고 쉽게 부패해서 보존하기 어렵게 된다.
밧줄로 매달아 올리고 다른 부분에 상처를 내서 혈관에 공기가 유입되면 중력에 의해 저절로 피가 빠진다. 물론 무겁기 때문에 여러 명이 달라붙었다.
그다음은 해체!
커다란 칼과 그보다 약간 작은 칼 두 자루를 들고, 가장 고참인 두 명의 백정이 소를 도축해 갔다.
가죽을 벗기고, 뼈를 뽑아내고, 내장을 처리하고…….
뭔가 순서가 있는 것 같지만 처음 보는 과정이다 보니 기억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
‘휴! 엄청난 광경이군.’
숙성과 처리가 끝나 붉은 조명 아래서 반짝이는 생고기나, 잘 구워진 먹음직스러운 완성품밖에 모르는 핸드에게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그나마도 푸줏간에서 상당히 일했기 때문에 충격이 덜한 것이다.
생명 하나가 이 자리에서 죽었는데, 핸드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해지는 것을 느꼈다.
묘한 불쾌감이 있기는 했지만, 심호흡을 하자 구역질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작업 과정이 묘하게 엄숙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면 묘한 종교적 의식 같은 게 있기도 했다.
그런 핸드를 향해, 대도를 슥슥 닦으며 바터 씨가 묘한 질문을 던졌다.
“생각보다 잘 따라오더군. 처음 들어오면 충격을 받기도 하는데 말이야. 경험이 없으면 어지간한 남자라도 혐오감을 느끼지. 혹시 사냥 일이라도 해 본 적 있나?”
그다지 실수가 없었던 듯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사실 그런 경험은 없습니다만…… 묘하게 분위기가 엄숙해서 그리 혐오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자네는 도축도 할 수 있겠어.”

『바터 씨가 당신의 반응을 확인하고, 보다 중한 일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신용 스킬이 1단계 올랐습니다.』

‘신용 스킬이 이렇게도 오르는구나. 이 퀘스트는 과정에서 얻는 게 많군. 도축은 역시 중요한 스킬이었어.’
그날 몇 번 더 도축이 있었는데, 소 말고도 돼지나 양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