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4화

3장 : 라스트 앤서(Last Answer)


『계정이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계정 코드를 정해 주세요. 신체 데이터는 자동 등록됩니다.』
“황금시대.”
『중복되지 않은 계정입니다. 계정과 신체 데이터를 자동 등록합니다.』
그리고 몇 초 후, 음성이 알려 왔다.
『오프닝 영상을 보시겠습니까?』
“보지 않는다.”
곧 주변 풍경이 바뀌면서 거대한 신전이 나타났다.
라스트 앤서에서 섬겨지는 신들의 조각상이 기둥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누가 봐도 고대 그리스 양식의 신전이었다.
좌측은 악과 관련된 신들, 우측은 선과 관련된 신들. 그리고 중앙에는 중립적인 신들이 배치되어 있다.
『캐릭터를 생성하시겠습니까?』
신전의 중앙에는 분수대가 있었다. 당연히 장식용 조각품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딱 한 곳 빈자리가 있었다.
바로 분수대 중앙이었다.
“생성한다.”
그 말과 함께, 분수대 중앙의 빈자리에서 빛이 생겨나며 명일을 홀로그램 투영한 영상이 나타났다.
『외모를 수정하시겠습니까?』
“수정한다.”
장애 및 피부병을 포함하여 외모의 손상을 일으킨 사람들을 제외하면, 10% 이상의 수정을 가할 수 없다.
그러나 10%라고 해도 일정 수준 얼굴을 바꾸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좀 더 멋지고 인상적인 얼굴을 원하지만, 명일은 그러한 특징들을 배제했다. 약간 날카로운 눈매를 평범하게 수정하고, 얼굴형도 보통으로.
머리카락도 잘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갈색. 눈동자도 라스트 앤서의 세계관상 흔한 암녹색이었다. 수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평범한 얼굴로 한 것이다.
웬만하면 주목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변경 완료.”
『캐릭터 이름을 정해 주세요.』
명일은 잠시 침묵했다.
“핸드 리바이벌!”
망가진 양팔을 소생(Revival)시키는 것!
그러한 소망을 담은 이름이었다.
『캐릭터의 이름이 등록되었습니다. 핸드 리바이벌 님, 라스트 앤서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기둥 사이를 걸어 주십시오.』
명일, 아니 핸드는 기둥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기둥 사이를 지나가자 거기에 서 있는 신들의 조각상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면서 신들의 이름과 속성, 성향을 알 수 있었다.
『신앙』을 선택하여 그 신을 믿으면, 신앙의 방향성에 어울리는 직업을 얻을 때 보너스가 있다고 한다.
신앙은 나중에도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선택하지 않고 지나가도 상관은 없다.
당연히 핸드도 신앙을 선택하지 않았다.
조각상 사이를 지나가 거대한 『문』 앞에 선다. 순간 문에 그려진 복잡한 문양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일처럼 쏟아진 빛이 핸드의 몸을 집어삼키고 그를 『라스트 앤서』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눈부신 빛이 사라졌을 때, 그의 시야에 뛰어든 것은 터무니없이 거대한 세계였다.
구름이 뒤엉키거나 거센 바람에 의해 흘러 다니는, 끝없이 펼쳐진 하늘의 너머.
지평선에 밤과 낮의 경계가 걸려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둠에 가려져 있고, 특히 바다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높은 하늘에서 직접 내려다보는 느낌이 드는, 실감나는 대륙의 지도였다.
『시작 지역은 안정 구역으로 한정됩니다. 위험 지역으로 구분되는 장소나, 대도시와 국가의 수도에서는 시작하실 수 없습니다. 시작할 장소를 선택해 주십시오.』
실감나는 대륙의 영상 위에, 빛으로 그려진 지형지도가 그려졌다. 붉게 칠해진 부분은 위험 지역. 파랗게 된 부분은 대도시나 국가의 수도였다.
세부를 확대하거나 인구 밀도 등을 확인하며 시작할 만한 장소를 고를 수가 있었다.
핸드는 쭉 대륙을 훑어보았다.
‘산과 강, 그리고 숲과 바다! 이 모든 것이 가깝거나 한 자리에 모인 장소여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커다란 호수 정도는 있어야겠지.’
이미 널리 퍼진 베타테스터들의 데이터에 의하면, 캐릭터는 일점 특화로 키우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것을 생각할 때, 다양한 방향으로 발달한 장소보다는 원하는 직업과 가까운 장소가 좋다.
핸드가 택할 곳은 초반 지역으로는 거의 인기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때문에 그런 장소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이다. 쿠도르프 시!’
위험 지역과 바로 인접한 곳이고, 발달 정도는 중하(中下)지만 다양한 물자와 기술을 갖추고 있는 장소였다.

이름 : 쿠도르프 시
인구 : 약 15,000명
산업 - 분야 : 20종 이상 / 등급 : C
군사 - 병종 : 레인저, 궁수, 경보병 / 등급 : D+
치안 - 체계 : 자치 / 등급 : C
영주 - 아란 남작 산하

위험도도 높고, 기술도 어중간하고, 병종도 적다. 마법에 관해서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변경 도시.
베타테스터들의 평가도 냉혹했다.
생산 직업을 얻기는 좋지만, 장기간 머무르는 건 소득도 없고 도움도 안 되는 장소라는 말이었다.
순수한 전투 직업을 원하는, 전사를 선호하는 유저들에게 있어서도 기피되는 장소.
그나마 뛰어난 목재가 나오는 정도. 광산도 있지만 별로 대단한 광맥은 찾을 수 없다. 다양한 금속들을 얻을 수 있다지만 생산력도 보통 이하였다.
게다가 지배권을 가진 영주는 남작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도시지만…… 지정학적으로는 아주 좋아. 위험 지역과 접해 있기 때문에 그 장점이 발휘되지 않았을 뿐이지.’
핸드는 선택을 바꾸지 않았다.
『쿠도르프 시를 선택하셨습니다. 핸드 리바이벌 님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그와 함께, 강한 빛이 핸드를 휘감았다.
핸드가 나타난 곳은 그야말로 한적한 도시였다.
물론 사람이나 우마차도 바쁘게 지나다니고 있지만, 여타의 유저들이 선택한 번화한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핸드는 다른 것을 노리고 있었다.
핸드가 나타난 곳은 도시 광장의 중앙이다.
그곳에는 분수대가 있었는데, 크기 자체는 별로였지만 이상할 정도로 물이 깨끗했다.
‘생각보다는 수준이 높은데? 변경 도시인데도 상하수도가 잘 정비되어 있는 것 같아.’
도시에서 퀴퀴한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상하수도 시설이 정리되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하긴, 중세 세계관이라도 어느 누가 오물을 길바닥에 버리는 사람들로 득실대는 게임을 하고 싶겠는가?
‘대단하다! 현실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야!’
핸드는 3세대 가상현실의 접속이나 이용 경험이 많다.
특수하게 현실감을 강조하여 조성된 환경을 접할 일도 많았다. 하지만 특별한 보정 장치 같은 것이 없음에도, 4세대 가상현실은 차원이 달랐다.
약간의 위화감도 적응하면 사라질 것이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것을 위해 가상현실 접속 장치에는 『프로텍터』가 설치된다. 깨어나고 나면 조금 기억해 내기 어렵도록…….
의심스럽지 않을 정도로, 태연하게 주변을 살피며 핸드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대부분 NPC―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이다.
‘관찰도 쉬면 안 되지.’
베타테스터들에게서 흘러나온 자료는 방대하지만, 그것을 100% 믿을 수는 없었다.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핸드는 스테이터스 창, 그리고 각종 파라미터와 관련된 기능을 조사하기로 했다.
“스테이터스 오픈.”

이름 : 핸드 리바이벌 성향 : 중립
직업/레벨 : 무직/1
칭호 : 초보자 명성 : -
생명 : 20 마력 : -
기본 능력치
완력 : 20 민첩 : 20 체력 : 20 지능 : 20
지혜 : 20 매력 : 20 행운 : 20
공격력 : 10 방어도 : 10
스테이터스 포인트 : 1 스킬 포인트 : 0
경험치 : 0/1,000
적하(積荷) : 12.05/15.00(kg) - 배낭에 넣었을 때는 적하 한계의 1.2배까지 짊어질 수 있음
갈증/공복 : 보통/보통
- 비무장 상태이므로 치명적 공격을 할 수 없습니다.
-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습니다.
- 지치지 않은 상태입니다.

‘……상당히 복잡한데?’
꼼꼼하게 시스템, 그리고 친구가 조사해 놓은 자료들을 기억했기 때문에 좀 혼란스러웠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린 것은, 적하 개념 때문이었다.
“인벤토리 오픈.”
인벤토리를 열자, 상황이 나타났다.

소지품 : 평범한 단검 1개(0.5kg), 여행자의 옷 1벌(2kg), 가죽 수통 1개(1.5kg), 모포 1장(1.0kg), 비누 덩어리 1개(0.5kg), 배낭 1개(1.0kg), 식량 자루 1개(0.5kg; 빵 10덩어리 +5kg), 잉크 1병(0.05kg), 깃털 펜 1개(-), 모험일지(특수)
현재 재산 : 금화 0닢, 은화 10닢, 동전 10닢

무게까지 매겨져 있다. 아무래도 상당히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게임인 모양이다.
핸드는 왜 라스트 앤서가 고평가를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임은 편의성을 어느 정도 추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때,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여행 준비(F급 퀘스트)
『당신은 대륙의 초보 여행자입니다.
갓 여행을 시작한 당신의 힘과 재산은 너무나 빈약하고, 구색을 맞춘 정도의 장비밖에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여행 도중에 들른 이 땅에서 무언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행자에게 있어 돈이란 곧 시간입니다.
머무를 장소를 정하고, 생업(Job)을 얻으십시오.』

“…….”
아무래도, 라스트 앤서에 적응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여타의 게임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시작하며, 사냥을 하고 돈을 벌어서 캐릭터를 키워 가는 개념이다. 그런데 라스트 앤서는 완전히 무능력자 상태에서 시작됐다.
걷거나, 가볍게 뛰거나, 여러 동작을 확인하며 핸드는 이 캐릭터가 그야말로 ‘보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황당할 지경이었다.
토끼 한 마리나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떻게든 바닥에서부터 능력을 키워야 하는 모양이다.
내친 김에 그는 스킬 창까지 열어 보았다.

파라미터 스킬 : 0[상세]
패시브 스킬 : 0[상세]
액티브 스킬 : 0[상세]

……당연히 텅텅 비어 있었다.
장비 창에 이르러서는 허리에 찬 단검, 여행자의 옷밖에 없어 썰렁하기까지 하다.
“……일단, 그건 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