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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왕전서 1권 (24화)
8장. 사령오아(死靈五牙) (3)
“네놈은!!”
“호오! 날 안다?”
“네놈은 사령오아(死靈五牙)중 대아(大牙) 성겸(聲鎌)이 아니더냐?”
“내가 가진 쌍성혈겸(雙聲血鎌)을 보고 알았나 보군. 이거 불공평한걸. 네놈은 날 알고, 난 네놈을 모르겠으니 말이야. 구환도를 쓰는 것을 보면 두 놈 중 하나인데, 하나는 이곳에 올 일이 없으니 그놈이겠군!”
“무, 무슨 소리냐?”
구환도를 쓰는 복면인은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나는 것이 두려운 듯 말을 더듬었다.
“후후후, 멸치도(滅齒刀) 구좌성(丘坐猩). 네놈의 이름이 아니더냐?”
“어, 어떻게? 흡!”
정확하게 자신의 별호와 이름을 말하는 통에 복면인은 자신의 정체를 부지불식간 시인하고 말았다.
“후후, 그냥 찔러 봤는데 스스로 정체를 밝히다니 어리석은 놈이로군.‘
“크크크, 이렇게 된 이상. 네놈들을 포함해 모두 땅에 묻을 수밖에…….”
구좌성은 살인멸구를 작정한 모양이었다.
천하제일대방이자 정보망을 갖춘 개방에서 자신의 정체를 아는 순간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두려움일 수도 있기에 구좌성은 살인멸구를 결심한 것이다.
그도 평생을 쫓기며 살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게 네 말대로 될까? 이중에 개방의 호협 중 몇 분은 탈출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후후! 네놈들이 그럴 수 있을까? 이좌령(二座令)님이 나서시면…….”
“그만!! 네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득의해하며 흘리는 구좌성의 말에 뒤에 남아 있던 복면인에게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되지도 않게 자신의 정체를 들먹이며 호가호위하려 한 때문이었다.
휘이이익!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복면인들이 구좌성의 옆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네놈 때문에 일이 다 틀어지는구나.”
“죄, 죄송합니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아는 듯 구좌성의 몸은 떨고 있었다.
“죽을죄를 지었다니 아쉬움은 없겠구나!”
“예?”
펑!
가운데 서 있던 복면인의 손이 구좌성의 가슴에 닿았다 떨어진 순간 폭음과 함께 구좌성이 공중을 날았다.
검붉은 피가 사방에 뿌려졌다.
갑자기 복면인이 구좌성을 공격한 것이다.
맞는 순간 구좌성이 등 쪽이 터져 나간 듯 진득한 핏물이 사방으로 뿌려지며 즉사한 구좌성은 비명조차 흘리지 않았다.
털썩!
“하찮은 놈 때문에 비밀이 새어 나갔군.”
유진성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서운 자다. 최소한 절정이 이른 자.’
방금 보여 준 것은 암경(暗勁)이 분명했다.
그것도 폭류장(爆流掌) 계열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 암경이 빠져나가는 곳이 폭발하듯 터져 버리는 무서운 중수법(重手法)이었다.
‘아직 본 실력을 드러낼 처지가 아닌데 곤란하게 됐군.’
비슷한 경지이기에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자신이 화신하고 있는 신분이 문제였다.
사령오아는 이제 일류에 들어선 자들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네놈은 누구냐?”
“후후후, 뒷골목에서 힘이나 쓰는 네놈 따위에게 알려 줄 이름이 아니다.”
“어디서 훔쳐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폭류장이라도 해도 우리를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유진성은 그의 말에 내심 어이가 없었다.
강해 보이긴 했지만 대결을 벌인다 해도 그에게 밀리지 자신이 있었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백오호라면 몰라도 사령오아는 합공을 마다하지 않았다.
휘이이익!
유진성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누군가 장내에 나타났다.
그들은 개방도들을 호위하듯 복면인들과 마주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복면인들을 비웃는 조소의 빛이 가득했다.
사령오아로 화신한 장백오호의 나머지 사람들이 장내에 나타났던 것이다.
“크크크! 사령오아란 이름이 거저 얻은 것은 아니지 말이야!”
채앵!
차차창!
사령오아로 화신한 장백오호는 살벌한 기세를 흘리며 병기를 빼 들었다.
장백오호의 둘째인 박도운(朴櫂雲)은 사령오아(死靈五牙)중 이아(二牙) 도운(刀雲)으로 변신해 있는 중으로 검은색의 도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셋째인 유청수(楡淸秀)는 삼아(三牙) 명수(冥袖)로 아무런 무기를 들지 않고 있었고, 넷째인 김호명(金淏命) 사아(四牙) 호명(虎銘)으로 주먹에 쇠침이 박힌 철권(鐵券)을 끼고 있었다.
또한 막내인 이규백(李圭伯)은 오아(五牙) 백천(魄穿)으로 한 자루 흰빛의 검을 빼어 들고 장내에 나타난 것이다.
“으음, 북경 천잔도문(淺殘屠門)의 사령오아가 모두 있었다니.”
나타난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며 복면인은 신음을 토해 냈다.
비록 흑도방파인 천잔도문에 머물고 있지만, 지닌바 실력이 구대문파의 일대제자에 미칠지도 모른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용서해 주겠다. 그러니 이곳을 떠나라. 이곳에서의 일을 상관한다면 이 자리에서 묻을 수밖에 없다.”
“크크크,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그럴 수 없는 입장이거든!”
사아 호명이 앞으로 나서며 괴소를 흘려 냈다.
“무슨 말이냐?”
“저기 있는 어르신이 우리를 좀 많이 봐주시는 편이라서 말이야. 이대로 모른 척했다가는 좀 많이 괴로워져서 말이야.”
호명은 북경분타주인 주인성을 가리켰다.
“북경에서 행세하려면 저 양반에게 밉보이면 안 되거든. 그러니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그리고 한 고향 분이라 그냥 가기도 뭐하고 말이야. 이번 기회에 신세를 갚고 싶어서 네 말을 들어줄 수가 없겠는데.”
“이이이이!!”
느물거리는 호명의 말에 분통이 터지는 듯 복면인이 말을 잊지 못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느물거리던 호명을 비롯해 사령오아의 안색이 변했다.
줄기줄기 살기를 뿜어내는 모습은 조금 전까지 느물거리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사신의 모습이었다.
“그대들에 대해 많이 와전되었군. 한낱 파락호의 무리라 여겼거늘. 천잔도문이 아무리 북경의 밤을 지배한다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기세가 일변하자 이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던 복면인이 말을 이었다.
젊어 보이는 듯한 그의 목소리는 사령오아의 기세에 진정 감탄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죽고자 하니 죽여 줄 수밖에. 쳐라!! 한 놈도 살려 두면 아니 될 터!”
파파팟!
명이 떨어지자 복면인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사령오아를 포위하고 덮쳐든 것이다.
하지만 명을 내린 복면인도 사령오아의 진정한 신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가진 진정한 실력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쇄액!
퍼퍼퍽!
제일 먼저 복면인들의 검세 안으로 파고들며 가슴을 가격한 것은 호명(虎銘)의 호아철권(虎牙鐵拳)이었다.
호랑이 이빨을 닮은 철권(鐵券)을 끼고 있는 그의 권법은 가격당한 자의 몸에 호랑이 이빨 자국을 남기는 잔혹한 것이었다.
상대방의 요혈을 찍어 통째로 뜯어내는 호아철권의 공격은 당하는 자의 고통을 극대화시키기도 하지만 단숨에 숨을 끊어 낸다는 장점도 있었다.
“커억!!”
답답한 비명 소리와 함께 복면인 하나가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의 가슴은 짐승에게 당한 듯 갈가리 찢어져 있었다. 가격당하는 순간 절명한 것이다.
휘이이익!
퍽!
“끄억”
하나의 생명을 앗아 간 것이 모자란 듯 숲을 헤집고 자신에게 도전한 자들을 향해 달려드는 호랑이 이빨은 또 따른 희생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냥이 아닌 적에 대한 산군(山君)의 강력한 응징이었다.
펄럭!
“크아아악!”
바람이 이는 소리와 함께 처절한 비명 소리를 흘리는 복면인은 얼굴 한쪽이 완전히 뭉개지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명수(冥袖)가 펼치는 죽음의 소매 바람인 최혼명수(?魂冥袖)에 당한 자였다.
명수가 입고 있는 소매는 가늘기가 머리카락보다 더 가는 오철(烏鐵)로 만든 철사(鐵絲)와 소의 힘줄을 가늘게 쪼개 무명실과 섞어 짠 천이 테를 둘러 덧붙인 것이었다.
평상시에는 보통의 옷과 다를 바 없지만 일단 공력을 주입하면 예리하기 하기 그지없는 암병으로 화신해 버리는 기병이었다.
펄럭!
퍽!
“꺼…… 억!!”
그의 손에서 소매 바람이 일 때마다 가격당한 부위가 뭉개지며 복면인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한 마리 나비마냥 복면인들의 사이를 헤집는 그의 손속에 복면인들은 겁을 집어먹으며 연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쩌어억!
뼈가 갈라지는 비명소리조차 없었다.
도운(刀雲)의 흑오도법(黑烏刀法)이 공격해 드는 복면인을 머리부터 일도양단(一刀兩斷)한 것이다.
검은색이 칙칙하게 감도는 그의 도에는 피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다.
중도(重刀)의 기세를 이용한 그의 도법은 복면인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눈앞에 검은 빛이 이는 순간 복면인들의 몸이 갈라지고 있었던 탓이었다.
검으로 막으면 검과 함께, 도로 막으면 도와 함께 허리건 가슴이건 한 번에 쪼개지고 있는 것이다. 막을 방법이 없이 속절없이 동료들이 검은색의 도에 잘려져 나가자 복면인들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도운의 흑오는 중병에 속했다.
지심한철을 섞은 풍오동(風烏銅)을 제련해 낸 것이라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거의 열두 근에 달하는 흑오의 무게는 흑오도법의 기세를 더욱 강력하게 하는 기병이었던 것이다.
검은 바람이 이은 칼바람 역시 주위에 있는 복면인들이 땅위 두 발로 디디고 서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주위를 휩쓸어 갔다.
푹!
백천(魄穿)의 천호백검(穿毫魄劍)은 복면인들의 천돌혈를 무참히 찌르고 있었다. 그의 검에 당한 자들 또한 비명 없이 쓰러져만 갈 뿐이었다.
예리하기 그지없는 하얀색의 검이 귀기에 휩싸여 있었다.
복면인들이 피하려 애를 썼지만 귀신의 행보마냥 흔적도 없이 쫓아가는 그의 검은 여지없이 복면인들의 천돌혈을 꿰뚫고 있었다.
백천이 흘리는 검의 궤적은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눈앞에 한순간 나타나면 목에 불로지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올 뿐이었다.
한순간 혼을 앗아 가 버리는 귀신의 검법!
백천은 지금 귀신의 몸놀림으로 복면인의 목을 꿰뚫어 가고 있었다.
성겸을 제외한 네 명이 나서자 그 많던 복면인들이 얼마 남지 않고 순식간에 모두 쓰러졌다.
이미 지쳐 있다고는 하지만 개방도들도 손을 놓은 채 멍하니 사령오아의 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분타주님! 사령오아의 실력이 이 정도였습니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취상인(醉常人) 단교명(段矯命)이 주인성에게 물었다.
개방의 오결(五結)제자이지만 북경분타주를 맡고 있는 호걸개(岵乞짵) 주인성(朱寅星)도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와 사령오아의 모습이 많이 다른 탓이었다.
“아니다. 다만 이번에 비급을 얻어 수련을 위한 수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토록 강할 줄이야. 나도 예상외의 실력이다.”
북경의 개방부타주인 주인성은 오결이었다.
지닌바 무예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다른 분타의 타주가 삼결임에 반해 그가 오결인 것은, 그의 머리가 뛰어나고 맡고 있는 중요해서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무예가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도 성겸을 제외한 네 명의 손속에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간결하면서도 신속한 손속과 단 일 합에 적에게 상처를 입히는 솜씨는 구대문파의 일대제자로도 보여 주기 힘든 솜씨였던 것이다.
직접 손을 맞대 본 적은 없으나 천잔도문의 사령오아가 상당히 강하다는 소리는 듣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본 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구대문파의 일대제자를 넘어서 거의 장로급의 실력을 갖춘 자들이 아니던가?
이런 실력을 가진 자들이 한낱 뒷골목이나 지배하는 흑도방파의 전위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저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아무리 북경을 제패한 흑도방파라고는 하지만 저들은 한낱 천잔도문에 머물 만한 자들이 아니다. 전에 보인 실력은 그들의 본 실력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동안 진재절학을 숨기고 있었던 것인가?’
놀라운 실력을 보이고 있는 사령오아에 대해 개방의 분타주답게 의심이 드는 주인성이었다.
하지만 그도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의 이런 생각을 사령오아로 변신한 장백오호가 노리고 있었음을 꿈에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