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혈왕전서 1권 (25화)
8장. 사령오아(死靈五牙) (4)


“그만. 뒤로 물러서라.”
자신의 실력을 믿고 있는 것인지 수하들이 죽어 갔지만, 그리 다급해 보이지 않은 목소리였다.
오히려 침착함이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복면인을 지휘하는 자의 명에 따라 뒤로 물러난 자들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남아 있던 복면인들은 수뇌로 보이는 자 둘과 사령오아의 손속에서 살아남은 다섯이 전부였다.
오십여 명이 와서 겨우 일곱이 살아남은 것이다.
사령오아의 공격이 시작되었지만 유진성과 맞서던 두 사람은 수하들이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유인성이 바닥에 흘리고 있는 쌍성혈겸의 기세가 그 둘을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다.
흑도방파의 전위에 불과한 자가 흘리는 기세라고는 믿을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유인성이 사용하는 쌍성혈겸은 기병에 속하는 병기였기에 잘못 움직이다가는 낭패를 당할 우려도 컸다. 그렇기에 그들도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휘리리릭!
복면인들이 그의 상관으로 보이는 자들에게로 물러나는 것과 함께 유진성의 신형이 뒤로 날았다. 마치 허깨비가 사라지듯 꺼져 버린 그의 신영은 너울거리듯 날고 있었다.
“앗!!”
이번 사안을 집도했던 두 사람은 유진성이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뒤로 날아가는 유인성의 손목에서 쇠사슬이 풀려 나고 있었다.
차르르르르!
손목에 감겨 있었던 듯 그의 소매에서 쇠사슬이 풀려 나오고 바닥에 놓여 있던 겸인(鎌刃) 허공을 솟아오르고 있었다.
“놈이 손을 썼소!!”
성겸의 공격에 대비해 두 사람은 자세를 갖추었다.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혈겸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그들은 긴장된 안색으로 유인성이 발하는 기세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쐐애액!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혈겸은 반원을 그리며 뒤를 향해 날았다.
공격 목표는 그들이 아닌 수하들이었던 것이다.
“피해라!!”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수하들은 성겸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두 자루 겸인과 쇠사슬에서 나오는 기파가 휘몰아치는 기세로 그들을 옭아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드드드득!
“커어어어억!”
“끄…… 윽!”
답답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수하들이 일시에 당한 것이다. 예상대로 유진성의 공격 대상은 두 사람이 아니고 복면인의 명령에 물러서던 그의 수하들이었던 것이다.
쇠사슬은 수하들의 목에 걸려 있었다.
쇠사슬에 목이 걸린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목이 조여져 목뼈가 으스러진 듯 혀를 빼물고 있었다.
그리고 겸인은 다른 두 사람의 이마에 박혀 있었다.
비명은 그들에게서 터진 것이었다. 겸인의 날이 깊숙이 박혀 있는 듯 뾰족한 첨인(尖刃) 뒷머리에 삐죽이 빠져나와 있었다.
유진성은 쇠사슬로 두 명의 목을 휘감아 으스러트려 죽이고 회전하는 탄력을 이용해 겸인으로 두 사람을 더 죽인 것이다. 정말 경천할 정도의 깨끗한 솜씨가 아닐 수 없었다.
“자리를 피해라!”
수뇌로 보이는 복면인의 입에서는 단호하면서도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휘이이익!
상황이 달려졌음을 느낀 두 사람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장내를 벗어났다.
이제 세 사람만 남은 이상 사령오아를 상대하기에는 자신들로서도 불가항력이기에 자리를 피한 것이다. 장내에는 사령오아 말고도 개방의 인물들 또한 남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쐐애애애액!!
도망치는 그들을 향해 흰빛이 날았다.
퍽!
털썩!
상관의 명령으로 도망가기 위해 신형을 뒤로 돌리기도 전에 복면인은 목에 흰빛이 도는 검을 품은 채 서서히 바닥에 쓰러졌다.
백천(魄穿)의 천호백검(穿毫魄劍)이 미쳐 장내를 도망치지 못하던 도망간 자들의 수하로 보이는 복면인의 천돌혈을 향해 검을 날린 것이다.
―분타주님 무서운 검입니다. 비검(飛劍)의 수준에 이른 자 같습니다. 아까도 한결 같이 천돌혈만 공격해 복면인들을 상대했습니다. 목이라는 것이 공격하기 까다로운 것이 분명한데 한 치도 오차가 없는 것을 보면,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것 같습니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것 같구나. 하지만 적을 상대함에 있어 한곳만 노린다는 것은 커다란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검세를 모르는 자라면 당하기 쉽지만 알고 있는 자라면 그리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백천으로 화신해 있는 이규백의 비검(飛劍)을 보고 단교명이 놀라워하자 주인성은 백천의 검법이 보이는 허점을 지적했다.
자신도 검세를 알고 난 후이니 피한 후 공격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돌혈은 양쪽 쇄골이 맞닿는 부분으로 공격한다면 기세가 방어자의 시선하에 놓이는 것이라 누구라도 무의식 중에 피하게 되는 곳이다.
그런 곳을 정확히 찌르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와 한 치도 흔들림 없는 정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공격을 받는 자가 피하게 된다면 공격하는 자의 허점이 고스란히 나타나게 되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반격을 받게 되는 허점이 있었던 것이다.
장로들이 익히는 신법의 최고봉이라는 취팔선보(醉八仙步)는 아니지만 대성한다면 그에 못지않은 건곤보(乾坤步)를 익힌 주인성으로서는 백천의 공격을 피한 후 반격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백천으로 화신한 이규백의 검은 그의 말처럼 피할 수 없는 허점이 있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이규백이 시전 한 것은 천호백검 중 첫 번째 초식인 일세(一勢) 일점혈(一點穴)이었다. 그가 익히고 십팔세(十八勢)중 가장 약한 것이었다.
일점혈은 상당한 경지에 이른 자만이 피할 수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만약 피한다고 해도 바로 이어지는 이세인 팔로반세(八路反勢)에 의해 갈가리 베어지는 치명적인 위협을 당하는 것이었다.
일점혈을 피하고 반격을 한다고 해도 또 다른 치명적인 한 수가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검법이었다.
그리고 사령오아로 변신해 천잔도문에 들어가 있는 장백오호 또한 나름대로의 비기들은 아직 선도 보이지도 않고 있었다.
“놓친 것 같군!”
“그런 것 같습니다, 단주.”
“상당히 빠른 자들이다. 벌써 시야를 벗어나다니 말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도망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꼬리에 불붙은 개새끼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어째서 개방 분들을 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개방 어르신들의 신위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구나.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유진성은 타구봉법(打狗棒法)으로 유명한 개방을 빗대어 도망간 자들을 조롱했다.
또한 자신들로 인해 위험에서 벗어났음에도 무엇을 찾을 것이 없나, 그저 자신들만 살피는 개방도들이 괘씸해서이기도 했다.
“허허! 구명지은에 감사드리오. 난 개방 북경분타를 맡고 있는 주인성이라고 하오.”
그런 것을 눈치챈 듯 먼저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나선 것은 주인성이었다.
“감사드립니다. 전 북경분타의 호법(護法)을 맡고 있는 취상인(醉常人) 단교명(段矯命)이라합니다.”
단교명 또한 뒤를 이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별말씀을. 전 천잔도문 호아단(虎牙團)을 맡고 있는 사령오아(死靈五牙)중 대아(大牙) 성겸(聲鎌)이라고 합니다. 개방의 호협들께서도 충분히 물리치실 수 있었을 것을 주책없이 나선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성겸은 개방의 위신을 세워 주려는 듯 겸양의 말을 흘렸다.
“아닙니다. 이렇게 객지에서 도움을 얻어 감사합니다. 잘못했으면 이곳에서 불귀의 객이 될 뻔했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문도들이 많이 상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일찍 당도했었다면 좋았을 것을…….”
“할 수 없지요. 하지만 덕분에 제자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놈들의 합격진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라 소타구진을 펼쳤어도 희생이 있었습니다. 다섯 분이 아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하기도 싫군요.”
주인성은 생각하기도 싫은 듯 고개를 저었다.
본신의 실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쉽지 않았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섯 사람의 도움은 주인성으로서는 고마운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곳에서 저놈들과 조우하신 것인지요?”
“죄송합니다. 문파의 일이 되어서…….”
무엇인가 비밀을 요하는 사안이 있는 듯 주인성이 말꼬리를 흐렸다.
“제가 괜한 것을 물었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수련을 마치고 오시는 길인가요?”
사령오아의 느닷없는 출현에 주인성은 자신의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저희가 수련을 하러 북경을 떠났다는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까? 역시 개방은 다르군요.”
주인성의 내심을 알고 있는 성겸은 솔직히 수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임을 시인했다.
“어찌!! 소문이 그렇게 났기에 한 번 여쭤본 겁니다. 역시 수련을 떠났다가 북경으로 돌아가시는 길이군요.”
“그러셨군요, 맞습니다. 저희는 수련을 마치고 이제 북경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아까 그자들의 기세를 보아하니 쉽게 물러날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던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북경까지 동행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닙니다. 죽은 제자들의 장사 문제도 있고 하니, 저희는 이곳에 좀 머물러야겠습니다. 놈들이 나타나는 순간 이미 산해관에 있는 동도들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니 지금쯤 달려오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동행은 어렵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일에 대한 감사는 북경에 가서 반드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군요. 사례하신다는 말씀을 감사합니다만 북경에서는 곤란할 것 같군요, 분타주님. 저희도 문에 소속된 사람들이라서 말입니다.”
성겸이 주인성의 감사 인사를 꺼려하는 것은 천잔도문이 흑도에 속한 방파이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자신들보다는 개방에 안 좋은 소문이 날 것을 우려하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해도 은혜는 은혜지요. 오늘 받은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주위의 눈 때문에 감사 인사를 거절하신다니, 만약 어려운 일이 있어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북경분타로 찾아오십시오. 개방이 도움을 주는 것이 어렵다면, 제 개인이라도 힘이 닿는 대로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하도록 하지요. 그럼 저희는 먼저 북경으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을 비운 것이 오래돼서 문주님께서 기다리실 것 같군요.”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유진성을 비롯한 장백오호는 북경을 향해 길을 떠났다. 빠르기 그지없는 몸놀림으로 신형을 날린 것이다.
“단 호법! 산해관의 동도들이 당도하면 곧바로 총타로 전서구를 날리도록 하게. 분타에도 날리고.”
“뭐라고 연락을 합니까?”
“사령오아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라고 하게. 그들의 십 대 조상에서부터 시작해, 태어나서 지금까지 모든 행적을 조사하라 이르게.”
“알겠습니다.”
원래 보통의 분타주라면 이런 요청을 총타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인성이 북경 분타주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개방의 분타주는 삼결의 제자가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나, 오직 두 곳의 분타만은 양상이 달랐다.
총타가 있는 개봉과, 북경이 그곳이었다.
개봉은 총타가 있기에 그런 것이라지만, 북경에 당주급인 오결의 분타주가 있는 것은 정치적 이유가 컸다. 명의 황실이 북경에 있기에 당주급인 오결제자가 북경의 분타를 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찬잔도문도 어떤 곳인지, 지금부터 낱낱이 파헤치도록 하고. 기존에 조사해 놓은 것은 모두 무시하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확실하게 조사하도록 지시해 놓게.”
“예!”
사령오아에 의문이 든 주인성이었다.
앞으로 천잔도문과 사령오아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될 것 같기에 내린 명령이었다.
“단주님! 예상대로 미끼를 물었군요.”
“그런 것 같다. 우리와 그 아이의 신원은 앞으로 저들이 보증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역시 도움을 줄 수 있을 터. 우리들은 완벽을 기했기에, 저들은 우리가 안배한 것 이외에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 이제는 그만 돌아가 보도록 하자.”
“예, 단주! 그럼 그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굳이 쫓을 필요는 없다. 이미 어느 정도 정체를 파악했으니 말이다.”
“역시 그곳이겠죠?”
“그렇겠지. 놈들은 분명 그곳에서 나온 놈들이 확실하다. 후후, 예상외로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구나.”
유진성이 얇은 미소를 흘리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자, 가자!”
다시 돌아와 암중에서 개방도들을 감시하고 있었던 장백오호는 자신들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자 북경을 향해 다시금 경신법을 발휘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시전 한 것은 산세를 넘는 데 탁월한 장천산행이었다. 장백파에서 오직 다섯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경신법인 장천산행으로 빠르게 북경으로 향할 수 있었다.


<『혈왕전서』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