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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왕전서 1권 (21화)
7장. 장백문인(長白門人) (4)


―자,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그만 떠나자.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사제는 저 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마라. 우리와는 길이 다른 아이니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속도를 더 높이도록 해라. 저 아이를 본 문에 빨리 데려다 주고 우리도 중원으로 들어가야 하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이만 길을 떠나도록 하자.
장백파의 문인들은 다시 길을 재촉하려는 듯 대사형의 전음이 있자 일제히 일어섰다.
부스럭.
육포를 먹으며 장백파의 문인들의 산을 타는 법에 대해 고심하던 서린은 그들이 일어서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길을 재촉하기 위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 먹지도 못했는데 성질도 급하군.’
서린이 따라 일어서는 것을 보며 장백문인들을 발걸음을 재촉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은 조금 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를 내고 있었다.
‘제기랄! 사람을 데리러 온 사람들이 저 모양이라니…….’
서린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할아버지가 알려 주시는 삼극정법을 일으키는 호흡을 계속했다.
‘그래,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호흡을 일으킨 서린은 천간십이수의 힘을 발로 운용했다.
스승으로부터 배운 천간십이수 중 탄양수(彈陽手)의 음인수(陰引手)힘이었다. 장백문인들의 움직임을 보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발로 하는 것이기에 처음에는 어려웠다. 기운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잠깐 허둥대던 사이에 장백문인들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발걸음을 살피는 동안 장백문인들이 남기는 미세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흔적이 없어질지 모른다. 분명히 성공할 수 있으니 집중을 해야 한다. 집중!’
신경을 집중하자 배꼽 아래서 느껴지던 기운이 발바닥에서도 느껴졌다.
양쪽 다리에서 따뜻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따뜻하며 부드러운 기운은 발바닥을 통해 발뒤꿈치를 타고 양교맥(陽쯅脈)과 음교맥(陰쯅脈)을 따라 흘렀다.
한 갈래는 발뒤꿈치에서 신맥(申脈)혈로 나와 외과를 감고 방광경의 바깥쪽을 따라 올라가 담경(膽經)의 거료(居꽝)혈에서 양유맥(陽維脈)으로 흘렀다.
기운은 소장경(小腸經)의 이른 뒤 대장경(大腸經)과 함께 견료(肩꽝)혈을 거쳐 지창(地倉)혈에서 위경(胃經), 대장경(大腸經), 임맥(任脈)과 만났다.
그러나 아직도 기운을 잃지 않은 듯 다시 위경(胃經)의 거료(居꽝), 승읍(承泣)을 지나 눈의 내 안각에서 수족(手足) 태양경(太陽經), 족양명경(足陽明經), 음교맥(陰쯅脈)과 만난 후에 머리를 넘어 풍지(風池)혈로 갔다가 뇌 속으로 들어갔다.
다른 한 갈래는 연곡(然谷)과 조해(照海)사이로 나와 내과를 감으며 신경(腎經)을 따라 하지 안쪽과 음부(陰部)를 돌고 체내(體內)로 들어가 결분(缺盆)혈에 이렀다.
이 기운 또한 힘을 잃지 않고 다시 인후(咽喉)를 끼고 얼굴로 올라가 충맥(衝脈)과 만났다.
다시 콧속을 거쳐 정명(睛明)혈에서 수족태양경(手足太陽經), 족양명경(足陽明經), 양교맥(陽쯅脈) 등과 만났다.
발바닥에서 기운이 시작되었지만 그 기운은 서린의 전신을 아우르며 기분을 좋게 했다.
‘히히히, 발로도 되는구나!’
점점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발에는 내기를 제대로 운용할 줄 몰라 근력으로 달리던 것과는 천양지차의 힘이었다.
앞서간 재빨리 흔적을 찾으며 장백문인들을 쫓기 시작했다.
‘뭐지?’
이제 막 신이 나서 쫓으려는 찰나 은밀한 기운이 느껴졌다. 장백의 문인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서린은 재빨리 몸을 숨겼다.
‘분명 우리가 지나온 길을 따라오고 있다.’
날리듯 움직여 바위 틈 사이로 몸을 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따르는 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은밀하면서 빠른 몸놀림으로 산길을 타고 있는 중이었다. 정확한 경로를 따라 뒤를 쫓는 자들 몸놀림은 앞서 간 장백의 문인들에게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따라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젠장!’
뒤따라오던 자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내가 남긴 흔적을 쫓고 있던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남긴 흔적이 끊어지자 멈춘 것을 깨달은 서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흔적만으로 이렇게 은밀히 뒤따르는 것을 보면 자신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돌리기는 틀렸으니 일단 돌팔매로 놈들을 공격하자. 세 놈 중 한 놈이라도 처리하면 시간을 벌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냥 심심해서 연습을 했는데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이야.’
버나를 돌릴 때 강력한 공격이 될 수도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돌과 손을 이용해 틈틈이 연습을 했었다. 이제는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 바위에서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이는 납작한 돌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쉬이이이익!
양손으로 동시에 돌을 돌린 후 양손 검지로 아래쪽에 중심을 잡았다.
기운을 집중하자 아주 빠르고 매끄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워낙 빨리 도는 탓에 납작한 돌이 원반으로 보일 정도였다.
스르르…….
버나를 돌릴 때와는 다르게 손가락 위로 올려진 돌들이 약간 떠올랐다.
슈슈슈슈!
서린이 손을 휘젓듯 돌리자 돌들이 날아올라 뒤쫓는 자들에게도 향했다.
은밀하지만 빠른 속도로 돌들이 암중인들을 향해 날았다.
“헉!”
서린이 남긴 흔적을 찾아 멈추어 섰던 암중인들 중 하나가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검은 물체의 가공할 기세에 헛바람을 삼켰다.
퍼퍽!
퍽!
급히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피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서린이 던진 돌은 두 개인데 어쩐 일인지 세 번의 타격음과 함께 서 있던 암중인들이 모두 무너지듯 쓰러져 버린 것이다.
‘어서 가자.’
암중인들을 기절시켰다고 생각한 서린은 빠르게 바위틈을 벗어나 장백의 문인들이 간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기절한 자들이 깨어나 다시 쫓아오지 못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가지고 있는 기운을 최대한 활용해 거리를 넓히며 뛰었는데 한 걸음에 한 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서린은 자신의 돌팔매로 암중인들이 기절했다고 생각을 했지만, 쓰러진 이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원반처럼 날아간 두 개의 돌 중 하나는 앞에서 있던 자의 가슴을 뚫고 지나가 뒤에 있던 자의 심장 부근 휑하니 만든 후 나무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또 다른 돌은 옆에 있던 암중인의 가슴을 헤집은 후 산비탈에 삼장이 넘는 깊이로 뚫고 들어가 박혀 있었다.
쓰러진 암중인들은 가슴에 흘러나오는 붉은 선혈로 자신들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서린은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기운을 운용하는 것이 익숙해질수록 달리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파파팟!
‘저기 있구나.’
일각여를 달리자 장백의 문인들의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아스라이 점으로 보이던 장백파의 문인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파파팟!
빠르게 자신들을 쫓는 파공음에 장백파의 문인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자신들을 쫓고 있는 자가 있지나 않은가 해서였다.
그들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서린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서린이 자신들을 맹렬히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분명히 근력으로만 따라오고 있었거늘…….’
장백파의 문인들은 하나같이 놀라고 있었다.
그중에 대사형인 유진성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걸음을 더욱 재촉한 것은 자신들의 일도 있지만, 서린을 시험해 보기 위함도 컸었다. 사제들에게는 관심을 갖지 말라고 했지만 조선제일의 무인이라는 사숙의 제자였다.
비록 문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다른 무맥의 전승자라 문파 내에서도 멀리하는 사숙이지만 그래도 조선제일의 무인이었다.
그러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경신법을 통해 얼마나 근기가 있는지 시험해 보았다. 무인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보신경(步身經)을 보면 성취 정도를 측정할 수 있기에 속도를 더했던 것이다.
근력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법 균형을 잡고 산길을 달렸지만 몸의 자세 또한 무인으로서 보일 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사제인 이규백의 말대로 이제 열다섯 살밖에는 되지 않은 아이였지만 혹시나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지 몰라 전력을 다해 달렸다. 거리가 벌어지면 조금 쉬어 가며 기다릴 요량으로 힘을 다해 달린 산길이었다.
그런데 장백오호(長白五虎)라 불리는 자신들을 뒤처지지 않고 쫓아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다면 이리 놀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세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익히고 있는 경신법과 무척이나 닮아 있는 것이다.
‘사숙은 장백의 무예를 익히지 않았다. 가문의 무예만으로 초절정의 경지이기에 익히지 않았다고 들었다. 아무리 사숙이 천재라고 하나 모르는 것을 제자에게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뒤따라오며 보고 배웠다는 소리인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 아이는 천재다. 장문인이 따로 당부를 할 정도라면 뭔가 있음이 분명하다.’
유진성은 한양에 오기 전 장문인의 말을 장백진인의 말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무슨 비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문인들이 모르게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한 아이였다. 다른 세상을 살아갈 아이니 관심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저 아이가 가지고 있는 비밀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유진성은 이내 서린에 대한 관심을 털어 버렸다.
어차피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될 아이였다. 이렇게 뒤처지지 않고 쫓아오면 자신들로서도 좋은 일이었다. 예정보다 빠르게 중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으음, 대사형. 혈향이 은은히 번지고 있습니다.
―나도 맡았다. 산군이 사냥을 한 것일 게다.
―산군이 사냥을 했다면 포효가 따라야 할 텐데 없는 것이 이상합니다.
―우리를 노리기라도 한다는 것이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저 아이를 노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속도를 더욱 높여야겠다. 쫓아오는 속도를 보아 산군도 그리 쉽게 따르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저 아이도 쉽게 뒤처지지는 않을 것 같으니 최단한 빠르게 본 문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으니 제가 살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도록 해라. 하지만 산군이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돕지는 마라.
―예, 대사형.
―속도를 높여라.
대사형의 명을 따라 장백오호는 내력을 실어 본격적으로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조금 더 빨라지더라도 서린이 뒤처지지 않을 것임을 안 때문이었다.
‘애고, 젠장! 이제는 아예 나는구나, 날아. 그렇다고 내가 쫓아가지 못할 줄 알고?’
전보다 더 빨라진 속도였다.
장백의 진인들의 움직임은 한 걸음이 거의 삼 장을 넘고 있었다.
발로 천간십이수를 시전 할 수 있게 된 후 서린은 쫓아가는 데 자신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리는 것이 더욱 쉬워졌던 것이다.
앞서가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서린도 힘을 냈다.
처음엔 약간 거리가 벌어지던 것이 시간이 지나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 번에 일 장 정도 하던 걸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장백파의 문인들과 같은 삼 장여의 보폭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볼수록 대단한 아이입니다, 대사형.
―사숙께서 제대로 키우신 모양이다.
―은밀히 살펴본 결과 산군이 따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혈향도 사라졌고 말입니다.
―다행이다. 시간을 맞추어야 하니 서두르도록 하자.
―예, 대사형.
슈― 슈슈슉!
파파파팟!
이제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는지 장백오호는 더욱 빠른 속도로 산맥을 가로질렀다. 서린 또한 곧바로 속도를 맞추어 뒤를 따랐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산맥을 가로지르던 여섯 사람은 한양을 떠난 지 닷새가 채 되지 않아 백두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