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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왕전서 1권 (4화)
1장. 적리세가(赤狸世家) (4)
“죄송합니다.”
“한 놈이 도주했다. 나를 따르도록 해라.”
파파팟!
삼쇠가 몸을 날리자 덕팔도 곧바로 뒤를 따라 몸을 날리며 전음을 보냈다.
―꼭두쇠.
―놈을 추적해서 이 땅에 다시 숨어들었는지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추적할 수 있겠느냐?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놈을 사로잡는 것입니까?
―지난날의 일을 살펴보면 놈은 분명히 이곳에 연줄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놈을 잡아도 알아낼 확률이 적을 것 같으니 어디로 가는지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꼭두쇠에 부딪친 후 내상을 입은 거 같으니 은신처로 숨어들 가능성이 높군요.
―그래, 놈의 흔적을 놓치면 안 된다.
―제법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도성으로 간 것 같으니 놈이 어디로 가는지 추적하는 것은 여반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추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있어 덕팔이 놀라 걸음을 멈췄다.
“뭐냐?”
“꼭두쇠, 놈이 아이들을 피신시킨 곳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젠장!”
파파파팟!
덕팔과 삼쇠는 전력을 다해 경공을 시전 했다.
“꼭두쇠, 잠깐 기다리십시오.”
이이들을 피신시킨 곳 근처에 이르러 덕팔이 앞서 가던 삼쇠를 멈춰 세웠다.
“뭐냐?”
“흔적이 끊어졌습니다.”
“어서 찾아라.”
삼쇠의 재촉에 덕팔이 눈에 진력을 불어넣어 청안공을 시전 하자, 이내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놈이 저곳으로 몸을 날린 후 비탈로 굴렀습니다. 아이들을 피신시킨 곳으로 우리를 유인하고 몸을 빼내려 했지만 내상을 입어 몸을 가눌 수 없었나 봅니다.”
“다행이다. 어서 내려가 보자.”
파파파팟!
삼쇠는 빠르게 밑으로 내려갔다.
“맞습니다. 꼭두쇠, 놈은 이곳에서 멈춰 선 후 도성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아주 약은 놈이다. 어서 쫓자.”
“예, 꼭두쇠.”
흔적을 찾은 덕팔은 도성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두 사람은 수하들의 죽음을 남기고 도망친 적리소를 쫓기 시작했다.
중원의 무림인들이 한양성 근처에서 이리 암약할 수 있다는 것은 이곳에 연줄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금 전의 격전에서도 일부러 적리소에 대한 공격을 느슨하게 했던 것도 적들과 내통한 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삼쇠의 고심이었다.
그렇게 추적을 하며 성곽 근처에 이르자 더욱 확실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놈이 의복을 벗어 던졌습니다.”
“빨리 쫓는다.”
야행복을 발견한 후 일각이 되지 않아 삼쇠와 덕팔은 적리소의 흔적을 쫓아 성벽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도성입니다.”
“놈이 도성을 넘었는지 살펴야 한다.”
아직 성문이 열릴 시각이 아니었다. 성벽을 타 넘어 안으로 잠입했을 수도 있지만, 유인하는 기만책일 수도 있기에 흔적이 있는지 살펴야 했다.
좌우로 십여 장의 성곽을 따라 살피다가 타 넘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꼭두쇠, 중간 부분에 흙이 묻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성 내로 들어섰다는 뜻이로군.”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아직 도성 문을 열 시각도 아니고, 순라를 도는 순라군들의 눈을 피해야 하니 쉽게 숨을 수는 없을 겁니다.”
“불경한 일이지만 여기서 도성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도 이곳을 넘어 놈을 추적한다. 이번에야말로 놈들과 관련된 뿌리를 모두 잘라 내야 하니 말이다.”
“예, 꼭두쇠.”
파팟!
야행복을 벗어 던졌다는 것은 안에 옷을 받쳐 입고 있었다는 것을 뜻했다. 변복을 하고 한양성내로 잠입했다면 추적이 끊어질 수도 있기에 삼쇠와 덕팔은 다급히 성벽을 넘었다.
2장. 한성지야(漢城之夜) (1)
김성갑은 이른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서둘러 입궐을 했다. 자정이 가까워 궐로부터 전갈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인 일이신지…….’
대전 내시의 안내를 받아 은밀히 궐로 들어선 성갑의 눈은 곤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밤새 고민을 했지만 조선의 하늘인 성상의 뜻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하를 만나 뵙기 전까지는 아무리 고민해 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다.’
뜻을 모르는 이상 고민이 소용이 없음을 알기에 성갑은 상념을 접고 갑사의 뒤를 따랐다.
‘으음, 내 마음과는 달리 궐은 평안하구나.’
아직은 이른 시간이었기에 갑사들이 경계를 서는 것을 제외하고는 궐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고, 성갑은 그런 평안함이 부러웠다.
침전 가까이 이르자 대전내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감, 따라 오십시오.”
“알았네.”
이미 전언이 있은 듯 성갑은 자신을 기다리는 대전내관을 따라 침전으로 향했다.
성갑을 안내한 대전 내관이 안을 향해 고했다.
“전하! 한성 판윤 입시이옵니다.”
“어서 들라하라.”
미성에 가까운 나직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린 후 침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드르르륵!
침전의 문이 열리고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침전으로 들어선 성갑은 내심 놀라움을 삼켜야 했다.
‘으음, 밤을 새우신 것인가? 도대체 어떤 심려가 있으시기에…….’
지난 저녁 무렵, 자신의 집에서 궁궐로 돌아갈 때 보았던 모습이 그대로인 것도 놀라웠지만, 보료를 짚고 앉아 있는 용안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해 보여 성갑은 불안하지 않은 수 없었다.
“이리 가까워 앉도록 하시오.”
“예, 전하!”
성갑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임금 가까이 준비되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짐이 판윤대감을 부른 이유는 몇 가지 알아볼 게 있기 때문이오.”
“무슨 말씀이신지 하교하여 주십시오. 전하.”
조용히 말하는 임금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갑을 자세를 바로 했다.
“판윤께서는 이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무예의 대가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찌…….’
성갑은 임금의 말에 내심 긴장했다.
자신이 조선제일의 무인이라는 사실은 야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일 뿐, 이곳 궁궐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찬이시옵니다, 주상 전하!”
마음과는 달리 성갑은 차분하게 대답을 하며 이어질 임금의 질문을 기다렸다.
자신이 본 것을 토대로 짐작하자면 어린 임금은 자신에게 무엇인가 하문할 것이 있는 것 같아서였다.
“판윤대감, 대감께서는 변경에 봉직하시면서 오랑캐들과 명나라 사람들을 보셨으리라 봅니다.”
“…….”
“안 그렇습니까? 대감.”
임금의 의도를 몰라 미처 대답을 못하는 성갑을 향해 확인을 위한 질문이 들어왔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신이 변경에 봉직할 동안 많은 이들을 보았습니다.”
성갑으로서도 뜻밖의 질문이었만, 조선의 하늘이 하문하는 것이기에 조용히 대답했다.
“그들과 교류가 있었던가요?”
“전하의 말씀대로 북방을 순회하며 변방의 이족들과 명나라 사람들을 많이 접촉한 것은 맞사옵니다. 하온데 무슨 하교가 게시기에 그리 하문하시는지 신은 영문을 모르겠나이다.”
“짐이 묻고 싶은 것은 대감께서 만난 사람들 중에 무인들이 있나 하는 것입니다.”
“…….”
자신에게 하문하는 임금의 말에 성갑은 잠시 말문을 닫았다.
‘근심이 서리신 모습이구나. 명의 무인들과 얽힌 일이라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자신이 살핀 임금의 안색에 우려와 근심이 있음을 본 그는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같으신데…….’
하지만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로서도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꺼리지 마시고 말씀해 보시오.”
“전하, 그럼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나이까?”
“그리하도록 하시오.”
“지금 전하께서 소신에게 하문하신 것은 감추어진 무인들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아니시면 세상에 드러난 무인들을 이름이옵니까?”
“감추어진 무인들에 대해 말해 보시오.”
대답을 하며 분노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임금을 보며 성갑은 의문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그런 자들과 상께서…….’
매우 분노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하문을 하고 있었다.
아직 국사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대신들 간의 난상토론이 있을 때도 용안에 미소를 잃지 않던 임금이었다.
그런 임금의 용안에 웃음 대신 분노가 서렸다면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상께서 그들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직접 관여되지 않고는 그럴 수 없으니 말이다.’
감추어진 무인들에 알고 있는 것도 의구심이 들었다.
세인들에게조차 그리 알려지지 않은 자들이기에 구중심처에 있는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갈리 만무했다.
그렇다는 것은 임금과 명의 감추어진 무인들이 직접 관련된 사건이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상께서 저리 분노하실 정도면 조선의 감추어진 무인들이 나설 수 있음을 저들도 알 터인데…….’
사람의 피를 하찮게 여기는 강호였지만 스스로 지키는 금약이 몇 있었다.
그리고 금약 중 하나가 타국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칫 피가 튀기는 살육전이 전개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무림이라 칭하는 곳에서 활동하는 자들이 주상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 같아 마음이 심란했다.
심신을 수련하기 위해 꺼내 들던 자신의 애검에 피를 묻힐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판윤대감, 왜 답이 없는 것이오?”
머릿속이 복잡해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한 성갑을 향해 임금이 하문했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전하도 아시다시피 신이 변경에 봉직하는 동안 여러 인물들을 만났사옵니다. 그중 백두에 있는 산인들과 교류를 가질 수 있었는데, 그들의 주선으로 명나라 무인들과 면식을 가질 기회가 있었나이다.”
“그래요?”
자신의 말에 임금의 눈을 빛내자 성갑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모용세가라 칭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사온데 그들 또한 감추어진 무인들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산인들은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마음을 정한 탓에 대답은 빠르게 이어졌다.
“백두산에 있는 장백파라 불리는 곳에 수장이신 장백진인의 사형제 되시는 분께서는 사사로이 저에게 외숙이 되시는 분이옵니다. 해서 명에 있는 감추어진 무인들의 세계라는 강호에 대해서 일부나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강호요? 무림이라고도 불리는?”
“그렇습니다. 외숙의 말씀으로는 명에는 강호라 칭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무림이락도 하지요. 그곳은 일반 백성들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고 하옵니다. 그들의 무예는 경천동지할 위력을 가지고 있으며, 피가 멈출 날이 없을 정도로 살벌하기 그지없는 곳이라고 하옵니다.”
“으음, 그런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오? 판윤.”
“그러하옵니다, 전하.”
“내 설마 했거늘, 그런 곳이 진정으로 존재할 줄이야. 판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자들이 실제로 존재했구려.”
“그렇습니다, 전하. 그들은 실존하는 이들입니다. 명 황실도 무서워하지 않으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옵니다.”
“그들이 명 황실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예, 전하. 그들의 힘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서 명의 건국에도 막대한 힘을 보탰었다고 합니다.”
“으음.”
“힘이 있으니 그럴 것이옵니다. 명 황실도 불가근불가원한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다른 세상을 사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명을 들은 임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실도 무서워하지 않고, 막강한 힘을 구축하며, 자신들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이라니…… 그저 딴 세상 사람들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전하.”
성갑의 대답을 들으며 뭔가 고민을 하던 임금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나 더, 대감께 여쭙겠습니다. 어제 그 아이 말입니다. 판윤대감이 보시기에 무인으로서의 그 아이의 자질이 어떤 것 같습니까?”
“그 아이라시면?”
어제 자신의 집에서 사당패를 불러다 놀이판을 열었기에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지만, 의외의 질문이라 성갑이 반문했다.
“어제 재주를 부리던 아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