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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전기 1권(23화)
제10장 청룡소집령(靑龍召集令)(3)
“니미 시펄! 다 덤벼!”
황노칠이 발악에 가까운 고함을 쳤다.
“뭐냐? 왜 이렇게 시끄러워? 어라, 땡칠이 너 지금 뭐하냐?”
당묘화가 풀린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비틀거리며 황노칠의 곁으로 다가왔다.
“누님, 비키쇼! 오늘 내가 끝장을 보고 말 테니…….”
황노칠은 당묘화가 나타나자 강력한 원군을 만난 듯이 더욱 호기롭게 외쳤다.
“그래? 그럼 그래라. 끝장을 보든지 말든지.”
별 관심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뱉은 당묘화가 어슬렁거리며 처음 시비가 붙은 청룡단원 쪽으로 다가갔다.
“……!”
황노칠은 갑작스런 당묘화의 태도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당묘화를 쳐다보았다.
“독서시 당묘화!”
검을 뽑아 든 종남의 청룡단원들 중 한 명이 다가오는 당묘화를 알아보고 침음을 흘렸다.
“호호! 예의가 없군요. 아가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근데 누군데 나를 알지?”
말을 하면서 당묘화가 자신을 알아본 청룡단원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처음 시비가 붙었던 청룡단원이었다.
“다, 당 소저! 비, 비키시오!”
그 청룡단원은 당묘화가 다가가자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웬 말더듬이야?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상판인데……. 맞다, 너 이 자식! 종남의 껄떡쇠!”
당묘화가 갑자기 생각난 듯 외쳐 댔다.
“흠흠, 다, 당 소저…… 사, 사,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오. 나, 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당묘화의 말에 상대는 다급하게 더욱 말을 더듬었다.
“에이! 맞는데 뭘. 너 작년에 호포사(虎包寺)에서 나랑 정이한테 수작 걸다가 뒈지게 맞고 도망갔잖아! 너 맞지? 마침 정이 오빠도 있는데, 정이 불러 볼까?”
신나게 말을 뱉는 그녀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만! 당 소저, 주정 그만 부리고 비키시오! 하극상을 범한 저놈을 처단해야 하오.”
옆에 서 있던 천하삼십육검수 중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이가 나섰다.
“하극상은 무슨! 지랄 염병하고 있네!”
뒤에서 듣고 있던 황노칠이 빈정거렸다.
“이놈! 풍운무적이니 뭣이니 떠들어 대니 기고만장하여 눈에 뵈는 게 없느냐!”
연장자로 보이는 청룡단원이 분통을 터뜨렸다.
“호! 그러니까 결국 풍운무적 뭐시기 때문에 기분이 더러웠다 이거네. 진작 그렇게 말하지. 같은 정의맹 평무사들끼리 무슨 하극상이람. 직속상관도 아닌데.”
당묘화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말이 지나치다! 감히 풍운대 위사 따위와 청룡단을 비교하다니!”
연장자로 보이는 청룡대원이 당묘화를 노려보며 외쳤다.
“이 아저씨 꽤나 무섭네! 나도 내년에 풍운대나 들어갈까? 그래서 청룡단에게 개겨 봐야지. 그때도 하극상이라고 할라나? 호호호!”
당묘화가 대놓고 상대를 비웃고 있었다.
“감히!”
당묘화의 비웃음에 상대는 부들부들 떨며 그녀를 향해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홋! 한번 해 보시겠다?”
당묘화의 표정이 변하였다. 술에 취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그녀의 주위로 철혈접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당 소저 말대로 하극상은 아니지. 맹의 규정엔 풍운대보다 청룡단이 우위에 있다는 규정은 전혀 없으니 말이야!”
추진양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나오며 말을 하였다.
“당신은 또 누구시오?”
당묘화를 향해 막 출수하려던 청룡단원은 다가오는 추진양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아 함부로 하대하지 못하고 경계의 빛을 띠면서 물었다.
“난 추진양일세!”
“일권붕산! 용호대 부대주 일권붕산 추진양!”
청룡단원 중 한 명이 추진양을 알아보고 외쳤다.
“아니, 이젠 용호대 부대주가 아니라 신임 풍운대주일세.”
추진양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는 용호대 부대주가 차기 풍운대주를 맡게 되는 관례에 따라 며칠 전에 신임 풍운대주가 되었던 것이다.
추진양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사태를 관망하던 주루에 있던 청의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추진양의 뒤로도 장오와 막형구, 여문철 등이 황노칠과 함께 나란히 섰다. 추진양이 풍운대주로 나서게 되면서 당묘화는 뒤로 물러나고 사건은 서서히 풍운대와 청룡단의 대립으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하하하! 이거 풍운대가 요즘 세간에 자주 오르내리더니 정말 많이 변했군!”
갑자기 만복루의 이층에서 한 귀공자가 웃으면서 내려왔다. 귀공자는 청룡단주인 화산검룡 금모인이었다. 그 뒤를 따라 주작단주 소검후 연지하가 내려오고 있었다.
“청룡현세! 청룡단주님을 뵙습니다!”
금모인이 나타나자 청룡단원들이 모두 읍을 하며 인사를 하였다. 금모인은 가볍게 손을 들어 청룡단원들의 인사에 응하고는 추진양을 향해 마주 보며 읍을 하였다.
“추 대협! 풍운대주로 승차하셨다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읍을 하며 인사를 하고 난 금모인이 추진양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별말씀을…….”
추진양이 가볍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하하하! 그런데 신임 풍운대주께서 위사들을 너무 감싸 주는 거 아닙니까?”
금모인이 입가에 여유 있는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흠, 내가 보기에 우리 황 위사는 전혀 잘못이 없다고 보네만?”
말을 하는 추진양의 입가엔 차가운 냉소가 어려 있었다.
“하하하! 이거 참, 추 대협께서도 풍운대와 같이 많이 변하신 듯하군요.”
금모인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정작 웃으면서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기세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도 풍운대주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네만.”
남궁전이 뒤쪽에서 추진양을 옹호하며 앞으로 나섰다.
“이런! 형님께서도 계셨습니까? 이번에 고생이 많으셨다고요.”
금모인이 추진양에게 향하던 기세를 급하게 풀고는 남궁전에게 읍을 하며 인사를 하였다.
“뭐 고생이라고 할 것까지야 있나. 그래, 자네도 요즘 한창 바쁠 터인데…….”
“하하하! 바쁠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그까짓 살수 나부랭이들 토벌하는데. 그저 사냥이나 간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금모인이 여유 있게 웃음을 터뜨리며 답하였다.
“남궁 단주님을 뵙습니다.”
금모인의 뒤에 서 있던 연지하가 앞으로 나서며 남궁전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소검후도 계셨소? 오랜만이오.”
남궁전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연지하의 인사에 답하였다.
“하하! 이거 어쩌다 보니 삼 단의 단주가 다 모이게 되었군요!”
금모인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호기롭게 웃으며 말을 하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군.”
“참 재미있는 우연이군요, 후후. 그런데 형님, 백호와 풍운이 언제부터 이렇게 친해지셨습니까? 이거 배신감마저 드는데요. 하하하!”
“이제 그만 하지, 금 단주!”
남궁전이 차갑게 안색을 굳히며 말하였다.
“하! 형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만 해야지요. 이 자리에 현무와 용호가 없는 게 아쉽군요. 함께했다면 정말 재미가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하!”
금모인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실실거리고 있었다.
“길 좀 비켜 주지. 나도 소속이 저쪽 편이거든.”
성조가 거의 없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작지만 또렷하게 모두의 귀에 파고들었다.
금모인과 연지하는 차갑게 굳어진 표정으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풍운대 복장의 한 사내가 청룡단원들 사이를 빠져나와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바로 진호였다.
‘풍운무적!’
금모인은 사내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최근에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일개 풍운대 위사 주제에 현재 정의맹 전체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문제의 그 사내였다.
“호.”
금모인이 막 입을 열어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진호의 시선이 연지하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모인이 옆을 돌아보니 연지하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가슴 어림을 양손으로 가린 채 멍한 눈빛으로 진호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금모인의 차가운 눈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랜만이군.”
진호가 먼저 말을 건넸다.
“네.”
연지하는 고개를 숙이며 나직하게 대답을 하였다.
진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모인과 그녀 사이를 통과하여 지나갔다.
진호가 지나가자 연지하는 가슴이 답답해지며 가슴에 올린 그녀의 손으로 급격하게 빨라진 심장의 울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녀의 맞은편에 선 금모인은 진호가 그들 사이를 지나 남궁전 앞에 이르기까지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름이 뭔가?”
말없이 진호를 노려보고 있던 금모인이 불쑥 진호를 향해 물었다.
“진호!”
“그 이름 기억해 두지. 연 단주, 갑시다!”
말을 던진 금모인이 뒤돌아서서 주루 밖으로 향하였다. 그 뒤를 청룡단원들이 따랐다.
연지하는 남궁전 등에게 목례를 하고서 천천히 금모인의 뒤를 따라 주루를 나갔다.
“두 사람이 곧 정혼을 한다더니 그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네요.”
연지하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장오가 추진양에게 불쑥 말을 꺼냈다.
“나도 그렇게 듣긴 했는데…… 뭐, 그렇겠지.”
추진양이 혼잣말처럼 답했다.
“뭐야, 술자리가 왜 이래? 한잔하지. 내가 늦게 왔으니 후래삼배(後來三盃)를 하지.”
진호가 자리를 찾아 앉고서는 잔을 들며 밝은 목소리로 떠들었다. 진호가 연거푸 세 잔의 술을 마시고는 어두탕을 한 모금 떠먹다가 어두탕이 다 식어 버린 걸 보고는 당묘정을 찾았다.
“이거 뭐야? 어두탕이 다 식었네! 점박아, 가서 춘삼이 형보고 어두탕 좀 데워 달라고 해라!”
활기차게 밝고 큰 목소리로 이것저것 말을 하며 떠들어 대는 진호의 모습을 보고 있던 장오는 오늘따라 유난히 진호가 말이 많다고 느꼈다.
“그래, 감찰전에서 이야기는 잘 끝났나?”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진정되자 남궁전이 진호에게 술잔을 건네며 물었다.
“예, 뭐……. 무당산에서 무당속가연이 열린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라면 나도 들었네! 아, 자네도 거길 가는가?”
남궁전이 진호의 형인 유운일검 진성이 명진도장의 제자인 것을 떠올리고는 진호에게 참가 여부를 물었다.
“참! 안 그래도 제갈진 부전주께서 그 이야기를 하더군. 자네에게 임무를 하나 만들어 시간을 좀 주라고 말이야.”
추진양도 들은 바가 있는지 말을 하며 끼어들었다.
“예, 아무래도 갔다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잘되었군. 자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남궁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하였다.
“어? 너 그거 뭐냐?”
장오가 진호의 손에 든 당과를 쳐다보며 물었다.
“탐하지 마라, 곰탱이! 소희 줄 당과니까! 오늘은 일찍 파하고 집엘 좀 갔다 와야 할 것 같아서 소희 주려고 샀다.”
진호가 앉은 자리 옆에 당과를 챙겨 두면서 말을 받았다.
“그러냐? 그러고 보니 그 소마녀를 안 본 지도 꽤 오래되었네. 그럼 나도 오늘 소마녀 보러 한번 가 볼까?”
장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옆자리에서는 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막형구와 황노칠이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진호가 무당산에 갔다 올 동안은 그 처절하고 혹독한 수련으로부터 해방이기 때문이었다.
“노칠아!”
갑자기 진호가 노칠을 불렀다.
“옛!”
황노칠이 숨은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이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래, 조금 전엔 제법 괜찮았다. 특히 처음에 상대의 공격을 끝까지 기다린 건 정말 좋은 판단이었다.”
진호가 황노칠을 칭찬하자 황노칠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였다.
“형님! 감사합니다.”
“그래, 그런 기억을 잊지 말도록 해라! 금강부동이 별거냐…….”
말을 뱉은 진호가 술잔을 들고 한 잔 들이켰다.
“그나저나 호야 네가 무당산에 갔다 올 동안 저놈들은 해방이네.”
장오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눈치 없이 한마디 툭 던졌다.
‘시파 곰탱이!’
황노칠과 막형구가 동시에 속으로 외쳤다.
“흠, 그도 그렇군. 지금 그만두면 안 되는데…….”
진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헤헤. 형님, 걱정하지 마십쇼! 저랑 형구 형이랑 열심히 복습을 하고 있겠습니다!”
“흠, 그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추진양이 끼어들며 말을 꺼냈다.
“무슨 방법이?”
장오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이번 무당속가연이 무당파의 신임 장문인의 착좌식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맹에서도 제법 많은 축하 서신과 공물이 발송될 것이네. 그 공물의 운송을 풍운대 위사로 구성된 운호조가 맡게 될 것일세.”
“그럼?”
“그렇지. 이번 운호조의 책임자로 진 위사를 조장으로 승급하여 맡기기로 하였네. 그리고 운호조의 위사들은 각 조에서 차출하는 걸로 되어 있으니 그 명단에 황 위사와 막 위사, 자네들을 올려놓겠네.”
“그런 묘안이!”
장오는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무릎을 치고 말하였다.
“추 대주께서 신경을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허, 진 조장! 감사는 무슨……. 운호조의 일이 간단한 것처럼 보여도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닐세! 책임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니 오히려 내가 자네에게 부탁을 해야 할 일이네.”
“예! 잘 알겠습니다.”
‘아! 시파, 복도 없지. 왜! 왜! 운호조 따위에 들어가야 하냐고요!’
황노칠과 막형구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감히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는 말이었다. 두 사람은 그저 한숨만 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