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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전기 1권(22화)
제10장 청룡소집령(靑龍召集令)(2)
“태호에는 지금 순찰부와 개방에서 천라지망을 펴고 감시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살수들의 이동이 보고되지 않고 있네. 화소도가 살수들의 본거지가 맞다고 생각하는가?”
제갈진이 순찰부로부터 받은 전서를 쳐다보며 물었다.
“화소도에는 십여 채의 전각과 수십 채의 천막이 있었습니다. 실제 상주 인원은 알 수가 없지만 추정하건대 천여 명은 넘을 것 같았습니다. 선착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단애들로 둘러싸여 외부에서의 침입이 어려운 요새와 같은 섬이었습니다. 여러 정황상 살수들의 본거지일 것입니다.”
군문에서 늘 겪었던 상황이라 진호는 제갈진의 물음에 그저 담담하게 진술하였다.
“흠, 좋네. 그리고 화중일 등룡관주의 사인이 음양고로 공식 발표되었네. 당가에서도 인정하였지.”
“그랬습니까?”
진호가 약간 의외인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진호 자신을 제거하려고까지 하며 감추려고 했던 사실을 너무 쉽게 인정한 것이다.
“당가에서는 당묘정 그 아이가 제혼술에 당한 상태에서 음양고를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그 아이의 후두부에서 나온 제혼침을 증거로 제시하였네. 자네가 구유음마 갈위로부터 당묘정을 구할 때 그 아이의 상태는 어떠하였는가?”
“제혼술에 당하여 이지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흠, 그래. 그 제혼침을 제거한 사람이 자네라더군. 맞는가?”
“예.”
“그래, 자네라면 가능하겠지. 결국 당가가 자네 때문에 현명한 선택을 했군.”
“……?”
“당가에서는 비록 고의성이 없다고 하나 음양고 누출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맹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네.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을 끝까지 감추려 하기보단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이지. 아마도 거기에는 당가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네를 제거하기가 쉽지 않고, 만약 실패하여 그 사실이 알려지면 당가로서는 배은망덕한 집단이 되어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게야.”
제갈진이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하였다.
“현명하기는 개뿔이! 약아빠진 것이지. 지들이 의당에서 빠지면 누가 의당을 돌볼 거냐고.”
옆에서 듣고 있던 팽위산이 투덜거렸다.
제갈진과 진호는 팽위산의 말에 고소를 짓고는 살수들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더 주고받았다. 공식적인 질문들이 끝나자, 제갈진이 부드럽게 인상을 펴며 진호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 수고했네. 그리고 혹시 자네 가형으로부터 ‘무당속가연’에 관해 들은 바가 있나?”
제갈진이 진호를 보며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가형을 뵌 지가 꽤 오래되어서 미처 들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가? 명진도장이 이번에 무당 장문인이 된다는 이야기는 들었겠지?”
“예. 그렇다더군요.”
진호도 들은 적이 있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진 그 친구가 결국 오래전부터 주장해 오던 문호 개방을 실행에 옮길 모양이더군. 자네 가형과 의논하여 무당산에 한번 갔다 오게. 명진 그 친구가 자네를 한 번 보고 싶어 하는 모양이야. 풍운대주에게는 내가 미리 부탁을 해 놓음세.”
“네.”
진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흠,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자네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팽위산이 제갈진과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냈다.
“……?”
“요즘 자네 덕에 풍운도법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더군. 자네와 그 위사들이 하는 수련 때문에 풍운도법에 상승 무공의 구결이 담겨져 있다는 소문이 다시 퍼지고 있다는 얘기지. 한때 그런 말이 나돈 적이 있어서 본가가 크게 고생한 적이 있다네!”
팽위산이 약간은 질책이 담긴 듯한 어조로 말을 하였다.
“풍운도법이 상승 무결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진호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하였다.
“정말인가?”
팽위산의 표정이 급변하였다.
“설마 몰라서 물어보시는 것입니까?”
“그게…… 정말 모른다네.”
“팽가에선 풍운도법을 수련하지 않습니까?”
“흠, 그게 도제께서 창안하신 것이라 기본적인 것은 익히지만 아무래도 깊이 수련하지는 않지.”
약간 망설이는 투로 팽위산이 대답을 하였다.
“음, 하긴 풍운도법의 초식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진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엉? 그럼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팽위산이 놀라며 진호에게 다그쳐 물었다.
“혹시 전주께서도 상승 무결이란 게 그 무결만 알면 저절로 도강이 뿜어져 나온다던지 하는 황당한 생각을 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진호가 입가에 치기를 약간 담고 물었다.
“어허, 진 위사! 아무렴 팽 전주께서 그런 생각을 하시겠나?”
옆에서 제갈진이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렇겠지요. 풍운도법이 담고 있는 상승 무결이란 도의 운용에 대한 핵심적인 기본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기본 원리라고?”
팽위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기본 원리라고는 하나 제대로 구현한다면 곧 상승의 원리가 되겠지요.”
“끙! 이보게 부전주, 난 아무래도 역시 팽가 핏줄이 맞는가 보네.”
팽위산이 이마에 손을 짚고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흠흠, 형님도 참…….”
제갈진이 멋쩍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가령 풍운도법의 일초인 풍운불이(風雲不二)의 경우, 도법의 필수 요소인 쾌(快)와 변(變)에 관한 운용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풍(風)은 쾌를 의미하고 운(雲)은 변을 의미합니다. 풍운이 둘이 아니라 함은 쾌와 변을 다르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쾌가 변화를 만들기도 하고 변화가 쾌를 더욱 빠르게 만들기도 하지요. 단순히 빠르기만 한다거나, 변화가 많다고 해서 상대를 벨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진호가 담담하게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변식을 배제한 절대 쾌란 것도 있지 않나?”
팽위산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그것도 그만한 상대를 만났을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흔히 떨어지는 낙엽을 십 등분할 만큼 빠르게 도를 쓴다면 쾌도라 하겠지만, 그 정도의 쾌는 필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요. 상대는 멍하니 떨어지는 낙엽이 아니라 똑같이 그 정도의 빠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그도 그렇군.”
제갈진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국 변화가 상대의 틈을 만들고 그 찰나지간의 틈을 쾌로 베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팽위산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정색을 하고 물었다.
“역시 잘 알고 계시는군요!”
진호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황노칠이나 막형구와는 달리 팽위산은 고수답게 의미를 쉽게 파악해 내고 있었다.
“흠흠, 그러고 보니 풍운도법이 기본 원리이자 상승 무결이라는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
“얌마, 땡칠아! 빨리 한 잔 더 따라 봐!”
당묘화가 약간 취한 듯한 목소리로 황노칠에게 잔을 내밀며 말했다. 장오와 황노칠 등이 수련을 끝내고 만복루로 자리를 옮기자 은근슬쩍 따라붙은 당묘화 등이 합석하여 술자리에 끼어들어 마시기 시작한 지가 한참이 지났다.
“누님, 그만 하시죠? 이미 과하게 드셨는데…….”
황노칠이 살짝 인상을 쓰며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달 가까이 황노칠 등의 수련을 구경하는 사이 당묘화가 몇 번 술자리에 끼어들면서 제법 가까워진 두 사람이었다.
“어라. 땡칠이 너 또 뒈지게 맞고 싶지?”
당묘화가 슬며시 눈을 치켜뜨며 협박조로 말을 뱉었다.
“젠장! 그 이야긴 그만 좀 하쇼! 나도 예전의 노칠이가 아니라니까요!”
황노칠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신경질적으로 말을 뱉었다. 친해지면서 당묘화가 예전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자주 놀렸던 탓이었다.
“어쭈, 개기지. 나 진짜 성질 많이 죽었다.”
“점박아, 네가 묘화 누님 좀 말려라!”
황노칠이 옆에 앉은 당묘정을 툭 쳤다. 진호의 치료로 정신이 돌아온 당묘정은 당가의 작은공자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황노칠 등과 허물없이 지냈다.
“점박이라고 하지 말랬지. 땡칠이 너 뒈질래!”
당묘화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누나, 난 괜찮아! 이 점 때문에 내가 살아 있는 거잖아.”
당묘정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칫, 망할 놈의 인간…….”
당묘화가 혼자 중얼거리면서 황노칠의 손에서 술을 빼앗아 병째로 들이켰다.
“그럼, 그럼, 너 그 점 아니었으면 진호 형님 권강에 짓뭉개져서…… 켁!”
“입 다물고 오리나 처먹어!”
외침과 함께 당묘화가 안주로 나온 오리의 다리 한 짝을 던져 황노칠의 입에 박아 버렸다.
“그나저나 이 인간은 왜 빨리 안 오는 거야? 금방 온다더니…….”
당묘화와 황노칠이 옥신각신하는 걸 지켜보며 막형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옆 탁자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남궁전과 장오, 추진양 등이 앉은 자리는 꽤나 심각한 표정들이었다.
“청룡소집령이 내려졌다고 하더니 세상이 푸른색 천지군.”
진호를 만나러 가다가 일행과 마주쳐 합류한 남궁전이 술잔을 탁자에 놓으며 만복루 여기저기에 자리한 청룡단원들을 둘러보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별일이네! 외진 만복루에 청룡단원들이 이리 많이 오다니. 여기만 이 정도라면 청룡단원들이 거의 다 맹에 도착했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오가 주루를 돌아보며 추진양을 보고 물었다.
“그렇겠지. 발에 차이는 것이 매화검수고 손에 걸리는 것이 복마검수에 눈에 띄는 것이 천하삼십육검수이니……. 완전히 이건 무력시위를 하자는 거군.”
추진양이 술잔을 들이켜며 장오의 말을 받았다.
“고고하기로 따진다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화산의 치부가 드러났으니 그들로선 애가 탔겠지.”
남궁전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청룡이 열 받았으니 건드리지 말라 이건가. 허 참!”
장오는 약간 격앙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잉? 저 자식이 여긴 또 웬일이래?”
당묘화의 맞은편에 앉아서 주루의 입구를 보고 있던 막형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막형구의 말을 들은 황노칠이 입구를 쳐다보니 여문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근무를 마치고 황노칠 등을 찾아온 모양이었다.
“노칠아!”
여문철이 미간을 좁히고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황노칠을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부르며 뛰어왔다.
우당탕탕!
급하게 다가오던 여문철이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지며 한 바퀴 구른 뒤 얼른 일어나 자세를 잡고는 홱 하고 뒤를 돌아봤다.
“뭐여? 왜 남의 발을 걸고 그러쇼?”
여문철이 앞 쪽에 앉아 있는 청의인 한 명을 쳐다보며 따져 물었다.
짝!
쿠당탕!
여문철의 외침에 일어서서 뒤를 돌아본 청의인이 갑작스럽게 출수하여 여문철의 뺨을 때려 버리자 여문철이 다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러쇼? 하! 언제부터 풍운대 위사 따위가 대청룡단 무사에게 반말 짓거리를 하고 그랬지?”
말을 뱉는 청의인의 소맷자락에는 청룡이 한 마리 새겨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만 하쇼! 당신이 먼저 발을 걸었잖소?”
어느새 다가온 황노칠이 청룡단 무사의 앞을 막아서며 따졌다.
“뭐야 이건 또!”
말을 뱉음과 동시에 청룡단 무사가 황노칠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쉭!
파공성을 내며 날아온 주먹이 황노칠의 안면을 강타하려는 순간, 황노칠이 반보 옆으로 빠지며 상대의 주먹을 흘리고 오른손을 좌측 대각 위로 휘둘렀다.
“헉!”
청룡단 무사가 외마디 신음을 내며 급하게 고개를 젖혀 피하였다. 황노칠의 주먹이 상대의 턱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상대는 청룡단 무사답게 턱을 노린 황노칠의 주먹을 피하는 순간 오른발을 내밀어 노칠의 하복부를 찍어 왔다. 황노칠 역시 왼발을 내밀어 상대의 공격을 막고는 바닥을 짚고 있던 오른발을 띄워 상대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황노칠의 공격을 느낀 상대는 비룡번신의 신법으로 몸을 뒤집으며 황노칠의 왼발을 흘리면서 착지와 동시에 검을 뽑았다.
차앙!
청룡단 무사의 손에는 날카로운 청강검이 예기를 발하고 있었다.
“태을검!”
“천하삼십육검수!”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장오와 주진양이 동시에 청룡단 무사의 검을 알아보고 외쳤다. 황노칠의 상대는 종남이 자랑하는 천하삼십육검수의 일 인이었던 것이다.
“감히 풍운대 위사 따위가! 이놈, 죽여주마!”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청룡단 무사가 노성을 질렀다.
그러나 상대의 노성에도 아랑곳없이 노칠의 시선은 주루의 입구를 보고 있었다. 그곳엔 진호가 소리 없이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다.
‘헤, 형님이 왔구나. 시펄, 깨져도 형님한테 뺑뺑이 돌 거고, 니미 모르겠다. 청룡단이 별거냐.’
차앙!
황노칠이 도를 뽑아 풍운도법 제일초 풍운불이의 기수식을 취하며 마주 섰다.
“감히!”
차차차앙!
황노칠이 도를 뽑자, 구경을 하던 청의인들 세 명이 검을 뽑아 들었다. 모두 종남의 청룡단원들이었다. 천하삼십육검수의 네 명이 검을 뽑아 들자 노칠은 자신을 향해 파고드는 검의 예기에 몸이 떨려 왔다. 황노칠은 다시금 슬쩍 눈을 돌려 진호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진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황노칠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