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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전기 1권(21화)
제10장 청룡소집령(靑龍召集令)(1)
정의맹이 자리한 거대한 전각 군의 중심에는 사방으로 네 개의 석사자문을 가진 내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내성을 사방에서 호위하듯 서 있는 거대한 네 개의 전각들 가운데 동쪽에 위치한 전각이 바로 청룡각이었다. 그 청룡각의 집무전에는 한 명의 귀공자가 가볍게 인상을 찌푸린 채 출입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청년의 소매에는 두 송이의 매화와 두 마리의 청룡이 살아 있는 듯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청년은 바로 매화검수이자 청룡단주인 화산검룡 금모인이었다.
잠시 후 집무전의 출입문이 열리면서 삼절수사 매단양이 들어섰다. 매단양을 본 금모인은 황급히 다가가 읍을 하며 말을 건넸다.
“사숙,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일단 앉자꾸나.”
매단양이 자리에 앉으며 말하였다.
“군사부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금모인이 매단양의 맞은편에 자리하며 물었다.
“음, 아무래도 제갈명이 마음을 단단히 먹었나 보더구나.”
“그럼 군사께선 저희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십니까?”
금모인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래, 제갈명은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하는구나.”
매단양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군사께서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휴. 그런 것이 세상의 인심이 아니더냐? 사형께는 기별을 드렸느냐?”
“네, 사부님께는 본가의 표마를 이용하여 본산에 기별을 보내었습니다.”
“그래, 사형의 상심이 크시겠구나. 하나밖에 없는 친형이신데…….”
매단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러시겠지요. 그런데 사숙, 아무래도 백호가 개입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금모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매단양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허, 그리 일찍 속단할 일은 아니다. 그들이 아무리 우리 화산과 청룡의 성세를 질시하고 있다고 하여도 어찌 그와 같은 끔직한 음모를 획책할 수 있단 말이냐?”
매단양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당가의 움직임도 수상하고, 특히 백호의 남궁 단주가 너무 적극적으로 사안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남궁전이 개입한 것은 우연하게 그렇게 된 것이라 하지 않더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수도 있는 일이지요. 저들이 사안을 다루는 핵심인 감찰전과 군사부를 장악하고 있으니 그 과정이야 꾸미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말을 하는 금모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휴……. 일단은 저들의 움직임을 좀 더 지켜보자꾸나. 살수들의 본거지가 드러났다고 하니 직접 부딪쳐 보면 뭔가 드러나겠지.”
나직이 한숨을 쉰 매단양이 금모인을 달랬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청룡소집령을 내릴까 합니다.”
“청룡소집령을?”
매단양이 의외인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금모인이 정색을 하며 답하였다.
“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듣자 하니 그 수가 많다 하나 마교도 아니고 일개 살수 집단에 불과한 자들인데…….”
“그들이 다가 아니겠지요.”
금모인의 표정은 한층 굳어지고 있었다.
“결국 백호를 자극하겠단 말이냐?”
“필요하다면 청룡의 힘을 보여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등룡관도 사숙이 이으셔야지요.”
말을 하고 난 금모인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허…….”
***
황노칠은 지금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의 미간을 겨누고 있는 진호의 목도(木刀)를 아무리 떨치려고 해도 떨칠 수가 없었다. 진호의 도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황노칠의 미간을 파고들어 왔다.
“으아!”
황노칠이 도저히 진호의 압박을 참지 못하고 풍운도법 제육초식인 풍운호우를 펼치며 뛰어들었다.
“켁!”
“더 참아! 기세에 눌려 도를 내밀지 마라!”
황노칠이 풍운호우를 펼치려는 순간 이미 진호의 목도가 황노칠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뛰어 들어오던 황노칠이 목을 겨누고 있는 진호의 목도에 찔려 뒤로 튕겨 난 것이다. 오늘만 해도 벌써 수십 번은 튕겨 났을 것이다.
“다시!”
진호가 담담하게 외쳤다.
“으아!”
황노칠은 기합을 질러 기백을 일으키고 다시금 진호를 향해 목도를 겨누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스윽!
이번엔 진호가 먼저 반보 앞으로 나오며 황노칠의 손목을 잘라 왔다. 의외로 황노칠은 차분하게 우측으로 목도를 약간 내밀면서 막아 갔다. 순간 진호의 목도가 끝이 변화하며 황노칠의 미간을 찔러 왔다. 노칠이 다급하게 목도를 가슴 앞에서 우측 대각으로 내밀며 풍림화산의 한 수로 막았다. 그러자 진호의 양 손목이 안쪽에서 바깥으로 부드럽게 돌아가면서 진호의 목도가 아래로 변화하며 풍운만변의 한 수로 황노칠의 허리를 베고 지나가 버렸다. 황노칠은 도가 허리를 파고들어 내장을 훑어 내리는 싸늘한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단지 느낌이지만 말이다.
“오너라!”
진호가 멍하니 선 황노칠을 보고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황노칠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하였다. 황노칠은 곁눈으로 우측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막형구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채 길게 뻗어 있었다. 황노칠은 어금니를 깨물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 달 가까이 하면서도 전혀 적응이 되지 않는, 어차피 겪어야 할 그날의 마지막 수련 과정이었다.
“이얍!”
황노칠이 기백 있게 기합을 지르며 진호의 머리를 베어 갔다.
퍽!
그러나 진호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서는 목도로 황노칠의 목도를 살짝 위로 튕겨 흘리고는 황노칠의 허리를 때려 버렸다. 비틀거리며 삼 보 정도 튕겨 난 황노칠이 다시금 진호를 찔러 들어갔다. 진호가 삼재보를 밟으며 슬쩍 피하고는 황노칠의 등을 목도로 두들겼다.
“느려!”
“으아!”
황노칠이 다시 달려들었다. 황노칠의 목도는 진호의 목을 겨누고 찔러 들어갔다. 진호가 손목을 가볍게 튕겨 황노칠의 목도를 튕겨 내고는 달려드는 황노칠의 목을 찔러 버렸다.
“쿠웩!”
황노칠이 목도를 떨어뜨리며 목을 붙잡고 뒤로 튕겨 났다.
“어쭈! 누가 도를 놓으라고 했냐?”
진호가 말을 하며 다가와 목을 잡고 엎드린 황노칠의 옆구리를 걷어차 버렸다.
퍽!
옆구리를 차여 옆으로 두 바퀴를 구른 황노칠이 엉금엉금 기어서 떨어진 목도를 주웠다.
“이히얏!”
황노칠이 다시금 괴성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엉덩이가 빠졌잖아!”
진호가 슬쩍 피하여 황노칠의 엉덩이를 냅다 걷어차 버렸다. 앞으로 몇 바퀴를 구르며 나자빠진 황노칠이 벌떡 일어나 다시 덤벼들었다.
거의 일각 동안을 두들겨 맞고, 자빠지고, 구르면서 황노칠은 끝까지 덤벼들었다. 진호가 그만두기 전에 먼저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미 경험을 통해서 뼈저리게 가슴에 새기고 있는 황노칠이었다. 이 수련을 처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몇 번 덤벼들다가 너무 힘들어서 쓰러진 척하였던 황노칠은 그날 염라대왕의 신발 한 짝을 보고 왔다.
“으아! 이 시발! 시발! 헉! 헉! 헉!”
거의 실신 지경에서 입으로 욕을 내뱉으며 목도를 휘두르다 숨이 찬 황노칠이 헉헉거렸다.
“바보같이! 무사가 흉부로 숨을 쉬어? 죽고 싶냐! 무사는 배로 숨을 쉬어야 한다지 않았나! 힘들다고 가슴으로 숨을 쉬는 순간 내기가 흩어지고 호흡이 급격하게 빨라진다! 단전으로 숨을 내려!”
진호가 황노칠을 나무라며 오른발을 들어 황노칠의 가슴을 냅다 밀어 차 버렸다.
“쿨럭! 쿨럭!”
황노칠이 뒤로 굴러 떨어졌다가 또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도를 뻗었다. 이미 황노칠의 의식엔 도를 뻗는다든지, 누군가를 베어야 하겠다는 의식 따윈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도를 내밀 뿐이었다.
“일 도에 혼을 담아!”
그때 황노칠의 뇌리로 진호의 외침이 파고들었다.
쐐액!
황노칠의 도가 전광석화처럼 진호를 꿰뚫었다. 그러자 진호가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가 옆에서 나타났다.
“그만!”
진호가 목도를 거두었다.
철퍼덕!
그 자리에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진 노칠의 입가로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오늘 조금은 느낀 것이다. 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애써 정신을 추스르며 진호가 있는 곳으로 기어가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오늘도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늘 인상을 찌푸린 채 팔짱을 끼고 있는 곰탱이 조장도 매번 빠지지 않고 구경하고 있고, 용호대 부대주인 추진양 저 인간도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이곳이 풍운대의 소연무장이니만큼 오가다 구경하는 풍운대 위사들은 부지기수였고, 더욱 황노칠을 미치게 하는 것은 이 처절한 수련이 있게 만든 장본인인 독서시 당묘화가 그의 점박이 동생을 데리고 매일 와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을 한다는 것이다. 가끔은 불쌍하다는 표정도 지어 가면서…….
황노칠은 처음 진호가 추적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약속한 대로 무공을 가르쳐 주마 했을 때 막형구와 같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황노칠도 이미 추적조에서 진호가 보여 준 가공할 무위에 대해서 귀가 닳도록 들었다. 마교의 호법인 권마를 박살 내고 전대의 거마인 구유음마의 목을 베어 버린 그 상상도 못할 고수에게서 무공을 사사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는 가히 기연이라고 할 만했다. 물론 그 기쁨은 하루 만에 처참하게 깨져 버렸다.
그들이 진호에게서 받은 것은 고절한 상승 무공의 수련이 아니라 지옥의 고문이었다. 처음 이레 동안은 매일 빠짐없이 아래위로 노란 국물을 줄줄 흘릴 정도로 맞았다.
그럼에도 그들이 포기하지 못한 이유는 진호가 바로 출언필행(出言必行) 소하귀동이었기 때문이다. 진호가 이미 약속한 이상 반드시 그들에게 상승 무공을 가르쳐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믿음으로 거의 한 달 가까이를 이 지옥 같은 수련을 받으며 버텨 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 황노칠은 아주 작지만 너무나 소중한 느낌을 가져 봤던 것이다.
“형구! 똑같이 칼을 든 백정이 아무리 소를 깔끔하게 잘 잡아도 무사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아냐?”
진호가 어느새 깨어나 부복하고 있는 막형구와 황노칠을 보면서 물었다.
“그게…….”
“백정의 상대인 소는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이지만, 무사의 상대인 적은 두려움에 떨고 있기는커녕 호시탐탐 무사의 목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가만히 있는 대상을 베는 것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천변만화하는 적을 나의 움직임으로 멈추게 하고 나의 멈춤으로 움직이게 하여, 상대의 거리를 빼앗고 나의 거리를 장악해 적을 베는 것은 무사만이 할 수 있다. 그것이 백정과 무사의 차이다.”
“예!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막형구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노칠이는 아직까지 대응하는 동작이 너무 크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그게…… 대응이 커서 상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 반드시 공방일치(攻防一致)를 명심해라. 그리고 오늘 느낀 도와 하나가 된 느낌을 잊지 않도록 해라. 그것이 쾌도로 가는 첫걸음이다.”
“옛!”
황노칠이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래, 다들 수고들 했다. 씻고들 와라, 만복루에 가서 분주나 한잔하자!”
진호가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진 위사!”
구경을 하던 이들 중 감찰전의 무사 한 명이 진호를 불렀다. 진호가 돌아보니 감찰전 부전주인 제갈진의 부하, 검위사 단형이었다.
“무슨 일이오?”
진호가 의복을 추스르며 물었다.
“감찰전에서 찾고 있소.”
“감찰전에서? 흠, 곧 가지요.”
“그럼!”
검위사 단형이 몸을 돌려 연무장을 나갔다.
“곰탱아! 애들하고 만복루에 가 있어라. 감찰전에 들렀다가 금방 가마!”
진호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장오에게 말을 하고는 연무장을 걸어 나갔다.
***
“아, 진 위사! 어서 오게!”
진호가 감찰전에 당도하여 검위사 단형의 안내를 받아 감찰전주의 집무실인 창응각으로 들어서자 제갈진이 먼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호가 읍을 하며 응대하였다.
“그러게 말이야! 자아, 인사드리게. 이분은 감찰전주님이신 진천도 팽위산 대협이시네!”
제갈진이 우측에 선 중년인을 가리키며 소개하였다.
“감찰전을 맡고 있는 팽위산일세.”
팽위산이 반갑게 진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팽위산은 부리부리한 호목에 남자답게 선이 굵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예, 풍운대 위사 진호입니다.”
진호가 읍을 하면서 담담하게 말을 하였다.
“자아, 일단 앉지!”
제갈진이 진호에게 자리를 권했다.
“일단 여담은 나중에 나누기로 하고 오늘 부른 이유부터 말하겠네.”
제갈진은 세 사람이 자리를 잡자 약간 정색을 하고는 말을 꺼냈다.
“예.”
“이미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맹을 침입하였던 살수들의 토벌은 청룡단에서 맡기로 했네. 그래서 지금 청룡소집령이 내려져 있네. 이미 거의 다 집결한 상태라 조만간 출정을 하게 될 걸세. 그 때문에 군사부에서 보고서 제출을 원하니 자네가 몇 가지 사실만 확인을 해 주어야겠네.”
제갈진이 탁자 위에 놓인 보고서 문건을 만지작거리며 말하였다.
“예.”
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