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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전기 1권(20화)
제9장 남매지정(男妹之情)(3)


갑자기 어둠 속에서 유엽비도가 진호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진호가 고개를 살짝 틀어 피하자 진호의 귀밑을 스치며 지나가던 비도가 허공에서 선회하더니 다시 진호의 뒷머리 쪽의 아문혈로 파고들었다.
‘회선비도!’
퍽!
진호의 신형이 꺼지는 듯 사라졌다. 진호가 극성의 금강부동보를 펼쳤다. 진호의 신형이 사라지자 대상을 놓친 유엽비도는 처음 튀어 나왔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다시 나타난 진호의 신형이 비도를 따라붙으며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둠 속에는 한 명의 인영이 도사리고 있었다. 인영은 진호가 비도와 같이 파고들었음에도 전혀 놀라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왼손으로 비도를 받아 들고 진호의 얼굴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인영의 오른 손바닥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진호가 반삼재보를 밟으며 살짝 몸을 틀어 피하는 순간 비릿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독장! 흡!’
인영이 독장을 쓴다는 걸 알자 진호의 권에 무형의 기운이 뭉쳐지면서 인영의 안면을 파고들었다. 독의 기운을 밀어내며 일 권에 박살 내 버릴 기세였다. 인영이 급하게 피하려고 몸을 트는 순간 달빛에 얼굴이 드러났다. 인영은 갓 스물이 되었을까 싶은 앳된 얼굴이었는데, 왼쪽 눈 밑에 난 점이 진호의 눈에 크게 확대되며 들어왔다.
‘점박이! 젠장!’
꽝!
진호가 상대의 안면을 막 강타하려는 주먹을 다급하게 옆으로 틀며 권강을 뿌려 버렸다.
인영의 뒤쪽에 있던 커다란 바위가 박살이 나며 내려앉았다.
“악! 정아!”
당묘화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둠 속의 인영은 실종된 당묘정이었다. 진호의 뒤를 따라온 당묘화가 진호의 권이 동생의 안면을 뭉개 버리려는 순간 놀람에 찬 비명을 지른 것이었다.
진호의 주먹이 피해 가자 멍하니 있던 당묘정이 왼손으로 유엽비도를 떨쳐 냈다.
스팟!
진호가 황급히 허리를 뒤로 꺾으며 피하였지만 유엽비도가 어깨를 살짝 스치며 핏물이 배어 나왔다.
챙!
진호가 어느새 허리를 튕겨 일어서며 도를 발도하여 회선비의 수법으로 뒤로 돌아 날아오는 유엽비도를 쳐 내 버렸다. 그러고는 도를 머리 위에서 회전시키며 좌측에서 우측 대각으로 내려 베며 당묘정의 목을 베어 갔다.
‘헉!’
진호의 도가 동생의 목을 베는 순간 당묘화는 숨이 콱 막혔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모든 시간이 멈추기만을 바랐다.
그녀의 바람이 통하였는지 모든 게 멈추어 섰다. 진호의 도가 동생의 목 위에 멈춰 있었다. 동생 당묘정의 목은 무사히 붙어 있었다. 잠시 후 당묘정이 스르르 무너졌다. 당묘화가 급하게 몸을 날려 당묘정을 안아 들었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더군. 혼을 제압당한 것 같아 잠시 실신만 시켰다.”
진호가 도를 거두어 납도를 하면서 말하였다.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라 진호가 마지막 순간에 도를 돌려 도면으로 당묘정의 천정혈을 눌러 실신만 시킨 것이었다.
“정아!”
다급하게 다가온 당묘화가 동생을 일으키며 불러 보았지만 당묘정은 축 늘어져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일단 동생을 데리고 먼저 빠져나가라!”
진호가 당묘화를 재촉하였다. 곧 살수들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흐흐흐, 그렇게는 안 되지. 안 그래도 음고(陰蠱)를 찾아 나서려고 했는데 제 발로 걸어오다니……. 크크크.”
소리 없이 나타난 장발의 괴노인이 당묘화가 쥐고 있는 원통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괴소를 흘리고 있었다.
“영감은 내가 처리하지.”
진호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저 아이를 제압한 걸 보니 제법 한 수 하는가 보군. 클클클.”
진호를 향해 괴소를 흘리던 괴노인이 갑자기 쌍장을 흔들어 댔다.
사이잉, 사이잉! 펑!
괴이한 소성과 함께 진호가 서 있던 자리에서 격공장이 터졌다. 진호는 어느새 옆으로 이 보 이동해 있었다.
“호! 역시 제법이구나. 클클.”
괴노인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괴소를 흘리고 있었다.
“구유마장!”
당묘화가 괴노인의 무공을 알아보고 황급히 외쳤다.
“클클클. 어린 여아가 제법이구나. 이 어르신의 무공을 알아보다니…….”
“구유음마! 당신은 구유음마군요!”
괴노인은 제혼술과 술법으로 악명을 떨쳤던 전대 거마인 구유음마였다.
“클클클. 이 어르신을 알아봤으면 음고를 내놓아라, 아이야.”
구유음마 갈위는 득의의 괴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영감하고 놀아 줄 시간이 없으니 그만 끝내지.”
옆에서 보고 있던 진호가 말을 뱉음과 동시에 구유음마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갈!”
구유음마는 진호가 달려들자 양손을 교차하였다가 오른손으로 다가오는 진호의 안면을 찍어 갔다. 어느새 구유음마의 양손에 철조가 끼워져 파르스름하니 사이하게 빛나고 있었다.
스걱!
구유음마가 철조를 낀 오른손을 뻗어 오자 진호가 달려드는 자세 그대로 발도를 하면서 철조를 베어 버리고 그대로 구유음마의 신형을 대각으로 올려 베어 버렸다.
퍽!
진호의 도가 베어 버린 구유음마의 신형이 먼지처럼 흩어지면서 사라져 버렸다. 구유음마가 다급하게 술법을 사용하여 진호의 도를 피한 것이다.
“영감이 재롱을 피우는군.”
진호의 입가에 냉소가 어렸다. 진호가 좌측을 향해 왼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퍼퍼퍼펑!
진호의 왼쪽에서 연속으로 격공장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큭! 십단금!”
구유음마는 핏물을 뿜어내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찰나지간에 진호의 신형이 그 앞에 나타나더니 도광이 번쩍거렸다. 그와 동시에 진호가 등을 돌리고는 당묘화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가지.”
순식간에 다가온 진호가 당묘화 대신 당묘정을 안아 들어 어깨에 메며 말을 뱉었다.
“아…….”
당묘화는 그제야 비틀거리던 구유음마의 몸에서 목이 분리되어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마치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당묘화는 그 빠르고 냉정한 진호의 쾌도에 소름이 끼쳤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자 진호가 저만치 가고 있었다. 당묘화는 급하게 신법을 펼쳐 따라붙었다.
운교에 다다르자 독암대가 먼저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운교를 넘어갔고, 그 뒤를 당묘화가 따랐다.
쇄액!
진호의 뒤쪽에서 비도 하나가 날아오더니 갑자기 세 개로 분리되며 진호를 덮쳐 갔다.
챙! 챙! 챙!
진호가 뒤쪽에서 들리는 비도의 소리를 듣고 돌아서며 비도를 쳐 내 버렸다. 파산비였다.
특급 살수들이 먼저 따라붙은 모양이었다. 당묘화가 운교를 반쯤 건넌 것을 보고는 진호가 운교 위로 몸을 날렸다.
당묘화는 운교의 끝을 삼 장 정도 남겨 두고 몸을 띄우기 위해 발을 굴렀다.
‘학!’
운교의 발판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쫓아온 살수들이 이미 운교의 밧줄을 뒤쪽에서 잘라 버린 것이다. 당묘화는 다급해졌다. 철혈접을 건너편 암벽에 박아서라도 몸을 띄워야 했다. 순간 당묘화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손이 있었다.
진호였다. 당묘정을 어깨에 메고 뒤를 따르던 진호가 당묘화의 몸이 추락하기 직전에 잡아채 올리며 건너편 절벽에 내려섰다.
“운룡대팔식!”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먼저 운교를 건넌 후 당묘화를 기다리던 당문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문기 아저씨, 빨리 가요!”
당묘화가 진호와 함께 당문기의 옆을 지나며 외쳤다. 뒤쪽에서는 신호전들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

대략 반 시진 후, 진호와 당가 일행은 용두선으로 돌아와 무오촌으로 향하고 있었다.
용두선의 선실 한쪽에 놓인 침상 위에는 당묘정이 여전히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고, 그 곁에서 당묘화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 위사님, 정이가 왜 깨어나지 않는 거죠?”
“제혼술에 당한 모양인데, 보통 제혼술은 후두부의 혈을 이용하지.”
“어떻게……?”
당묘화가 술법과 제혼술까지 잘 알고 있는 진호가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뭐, 그런 눈으로 볼 정도는 아니고…… 왜구들 가운데 닌자라고 술법과 제혼술 따위를 잘하는 놈들이 있어서 조금은 알게 됐지.”
말을 하며 진호가 누워 있는 묘정의 후두부와 백회혈 등을 여기저기 손으로 훑어보았다.
“역시 후두부의 뇌호혈에 제혼침이 박혀 있군.”
진호가 당묘정의 고개를 조심스럽게 옆으로 돌려놓았다.
“그러면?”
“제일 간단한 방법은 약물을 뇌호혈에 투입하여 녹여 없애는 방법이지만 여기서는 약재를 구할 수 없으니 힘들 것 같고, 다른 방법은 열양공을 지닌 고수가 제혼침을 열양공으로 녹인 후 흡자결로 빨아내는 수밖에 없는데…….”
진호가 누워 있는 당묘정을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진 위사님!”
당묘화가 갑자기 무릎을 털썩 꿇었다.
“…….”
“진 위사님, 묘정이를 살려 주세요!”
“…….”
진호는 묵묵부답 말없이 그저 침상에 누운 깡마른 당묘정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제발…… 어려서 늘 형의 그늘에서 눈치만 보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 제 혼백마저 빼앗긴 상태로…… 흑흑흑.”
당묘화는 마침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동생 묘정이가 너무 가여웠다.
“끙, 나가서 문이나 지켜. 아무도 못 들어오게!”
“감사합니다, 진 위사님!”
당묘화는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 진호는 등을 돌린 채 당묘정의 완맥을 잡아 맥박을 짚어 보기 시작했다. 당묘화가 선실 밖으로 나가자 진호의 오른손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건곤태극공을 완성한 후로는 처음으로 건과 곤을 따로 분리하여 건공만을 일으켰다. 실제로 침을 제거하는 과정은 간단하였다. 진호의 손에서 뻗어 나간 양강지기가 당묘정의 뇌호혈에 박혀 있던 은침에 닿자 은침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은침이 다시 굳기 전에 진호가 흡자결로 빨아들이자 시커먼 죽은피 약간과 함께 굳지 않은 은침이 빠져나왔다.
진호가 다시 완맥을 잡아 살펴보니 맥도 정상이고 당묘정은 편안하게 잠든 상태였다.
진호가 선실 문을 나서자 당묘화가 불안한 눈으로 진호의 입을 주시하였다.
“다행히 제거는 잘되었다.”
말을 하며 진호가 당묘정의 머리에서 나온 은침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진 위사님!”
당묘화가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진호는 그저 손을 한차례 들어 보이고는 갑판 쪽으로 걸어갔다.
진호가 갑판 위로 나오자 진호 주변으로 하나 둘씩 독암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 위사! 작은공자님을 살려 주어서 정말 고맙소!”
조장인 당문기가 읍을 하며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진호가 천천히 당문기를 돌아다보았다.
“말과 행동이 다르군.”
진호가 자신의 주위에 나타난 독암대들이 일정한 진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입가에 냉소를 떠올리며 말을 하였다.
“미안하오! 독암대는 명에 살고 명에 죽는 집단이오!”
“재미있군.”
진호의 검미가 살짝 위로 올라가면서 입가엔 냉소가 더욱 짙어짐에 따라 기세도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스르릉!
진호는 가만히 서 있었지만, 진호의 도가 스스로 삼 분지 일쯤 도집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삐죽이 빠져나온 파르스름한 도신이 달빛을 받아 더욱 요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갑판 위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무슨 짓들이에요!”
당묘화가 다급하게 날아들어 진호의 앞을 막고 섰다.
“아가씨! 어시 비키십시오!”
“문기 아저씨!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진 위사님은 당가의 대은인이에요!”
당묘화가 분노에 찬 표정으로 외쳐 댔다.
“독암대는 명을 따라야 합니다! 그 은혜는 명을 이행하고 제 목숨으로 갚겠습니다.”
당문기가 품속으로 손을 넣으며 단호하게 외쳤다.
“눈물 나는군. 그래도 개새끼로 길러진 것들보다는 주인으로 길러진 것이 좀 나은가? 비켜라!”
말을 마친 진호의 오른 무릎이 살짝 구부려졌다. 당묘화는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진짜 화를 내고 있어!’
당묘화가 다급하게 돌아서서 무릎을 꿇었다.
“진 위사님! 제발! 저들을, 당가를 용서해 주세요! 흑흑흑!”
“아가씨!”
당문기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너부터 벤다!”
진호가 예의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흑흑, 제발…….”
순간 전방에서 불빛이 비춰지며 배가 한 척 나타났다.
“진 위사! 묘화야!”
남궁전이었다. 아마도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배를 끌고 나온 모양이었다.
스릉!
찰칵!
진호의 도가 도집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저 양반이 아홉 마리의 개새끼를 살렸군.”
말을 뱉은 진호가 남궁전이 타고 있는 배 쪽으로 신형을 돌렸다.
퍽!
진호가 신형을 돌림과 동시에 당문기의 가슴 어림에서 작은 폭음이 일었다.
“크악!”
품속에서 폭우이화침통을 꺼내려던 당문기의 오른손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가루가 되어 버렸다. 어느새 진호가 격공장을 응축시켜 터뜨린 것이다. 독암대와 당묘화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오연하게 버티고 선 진호의 등을 바라볼 뿐이었다.